소설리스트

〈 88화 〉숙청회(肅淸會) (88/164)



〈 88화 〉숙청회(肅淸會)

"뭐야, 핀. 일찍왔네?"
핀은 입고 있던 케이프를 걷으며 인사하는 륑게를 향해 웃어 보였다.


"애들 깨기 전에 몰래 나왔어요. 다 모였나요?"
"갤러한이랑 소니아는 곧 올 것같고, 이리하는 저녁에 온다고 했어."
"그럼 전부  모이는-"
"그래. '8명 전부' 다 모여."
륑게의 말에 핀이 입을 다물었다. 륑게는 말 실수한 것을 알고 조금 머리를 싸맸다가, 웃으며 분위기를 환기시킬 만한 말주제로 대화를 돌렸다.

"그래서, 고아원 애들은 어때. 한 6개월만에 가는 거라고 하지 않았던가?"
"아, 좋아요. 원장님이 이번에 시설 보강을 하셨더라구요. 거기에 '구국 영웅 핀이 나온 곳' 이라는 푯말도 달았어요. 보세요."
핀은 자신이 스크랩한 신문 사진을 륑게에게 들이밀었다.

"...저기 엄지 올리고 있는  너냐?"
"네. 그리고 현수막 반대쪽을 잡고 있는 게 우리 원장님."
륑게는 사진을 다시 봤지만, 현수막 맞은편은  꼬맹이가 잡고 있고 가운데로 한 노인이 지나치게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엄지를 들고 있었다.


"...네 원장님이 어떤 분이신지는 알  같아."
"네? 또 이상하게 사진 찍으셨어요?"
"아니, 그냥 한 말이야... 쨌든, 일찍 왔으니까  도와 줄래?"
핀은 웃으며 가방을 내려놓았다.

"전원 무사복귀 파티, 이번에도 해야지!"



라드는 더러운 거울을 바라보며 안대를 들어 올렸다.  뒤에는 제대로 동공조차 그려지지 않은, 목재로 만들어진 의안이 들어있었다. 보이지도 않을 것을  집어넣는 거냐고 따졌으나, 아무것도 없이 비어 있으면 얼굴이 무너진다며 왕도의 주술사에게 하나 선물 받은 것이었다. 그는  나무의 감촉을 조금 느껴보다가 곧 안대를 다시 내렸다.


점점 양측의 임무를 동시에 받는 것이 벅차다. 감각이 없는 공허한 오른쪽 눈에서 있을 리 없는 통증을 곱씹는다. 그 통증의 이름이 두려움이리라. 그는 의자에 기대 앉아 다리를 테이블에 걸쳐 올렸다.

담배를 하나 꺼내 든다. 앞으로의 일을 생각한다. 그가 놓칠 수 없는 것들을 정리해 본다. 어떻게 교란할지, 어떻게 양측에서 이익을 거둘지, 어떻게 누이를 빼돌릴지 계산한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지금 제일  써먹을 수 있는 카드는 역시 칼린이다.


그래, 그림은 그려 뒀다. 어떻게 선을 잇느냐가 문제다. 안심하자. 웃자. 힘들면 웃어야 한다. 성냥으로 담배에 불을 붙인 그는  그 성냥으로 등불까지 키고서 연기를 깊숙이 빨아들인다. 잠깐 그렇게 안식을 취하던 그는, 문에서 들려오는 노크소리에 눈을 감싸 맸다.

"나갑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아직 조금  담배를 아까운 듯 바라보다가, 테이블 끄트머리에 걸치고 나섰다. 그리고 문을 열어보니, 문 뒤에는 소니아가 있었다.


"...어이쿠. 오페라 일자는 4일 후 아니야?"
"그것 때문에  건 아니야. 잠깐 들어가도 돼?"
라드는 문을 잡고 그녀가 들어올 수 있도록 했다. 더러운 방에 소니아가 얼굴을 조금 찌푸렸다.

"손님이 오는 줄 몰랐거든."
라드는 눈웃음을 지으며 테이블에 걸쳐 둔 담배를 다시 집어 물었다. 그리고 선반에서 술을 꺼냈다.


"내 집주소는 어떻게 알았지?"
"갤러한한테 물어 봤어. 엄청 고민하다가 알려주더라."
"고민을 해?"
그는 유리잔 두개를 꺼내 하나를 소니아에게 건내면서 그렇게 물었다. 소니아는 손을 내밀며 그 제안을 거절했다.

"난 됐어. 앞으로 실컷 마실 거거든. 사실, 너도 날 따라 와야 돼."
멍하니 잔과 와인을 들고 서 있는 라드를 향해 소니아가 긴장한  웃었다.

"도르베가 드디어 완전 회복 했대. 깨어난 지 이틀만에. 전부 모여서 무사복귀 파티 하기로 했어."
"...륑게가 나도 껴도 좋다고 했고?"
"걔는 주최자도 아니고, 이번 임무에서   짝 잃은 놈이 건배사도 안 하면 말이 안된다고 설득했지... 갤러한을."
라드는 물고 있던 담배를 손으로 집어내고 웃었다.

"설득보다 저지르고 욕먹는 쪽이 싸게 먹힌다, 이거야?"
"그거지. 어때, 올 꺼야?"
"내가 빠질 이유가 있겠어?"
라드는 즐거운 듯 자신의 술을 내려 놓았다.

"이걸로 오페라 값이 되나?"
"차고 남아. 고맙군."
소니아는 웃으며 발을 옮겼다.

"진지하게, 부대에서 돈도 많이 받는데 왜 이렇게 거지처럼 살아?"
"난 항락적인 소비가 취미거든..."
"어련할까."
그리고 의자에 앉아서 머리를 다시 묶으며 말했다.


"옷 갈아 입고, 바로 가자고.  나랑 같이 가야 되니까."
"확인."
라드는 생각을 정리해 본다. 그리고 옷을 갈아 입는다. 그래, 상황은 생각보다는 순조롭다. 실수없이 새로운 길을 파자. 그러면 된다. 살아남을 수 있다.

"나가자고."




"얼추 모인 것 같은데 먼저 시작할까?"
아스타가 그렇게 말문을 연다. 기다리기 힘든 것처럼 보였다.

"아니, 아직 공석이 좀 있다만..."
"먼저 마시자고! 빨리!"
그렇게 소리치며 아스타가 잔을 들어 올렸다.


"난 찬성. 늦은  잘못이지! 건배!"
릴로가 그렇게 소리치며 먼저 잔을 올려버렸다. 주인공인 도르베보다도 먼저, 눈치 빠른 륑게와 갤러한이 잔을 받아 쳤다. 핀과 도르베는 얼떨결에 뒤늦게 잔을 올리며 받아 쳤다. 그걸로 축제가 시작되었다.


"자! 그러면! 이번 임무에서 우리 엉덩짝을 지켜낸 일등공신! 도르베의 말 한마디 듣고 시작합니다!"
갤러한이 그렇게 말하며 그의 등을 한번  쳤다. 도르베는 놀라서 잔을 들고 조금 두리번거렸다.

"아니, 나 이런 거 진짜 재미있게 못하는데, 전에 부대에서도 나에게 건배사는 안 시켰단 말이다..."
"마, 재미없으면 한잔 더 먹으면 되지!"
"그, 그러냐, 부끄럽군. 음, 그래..."
도르베는 잠깐 허공을 보며 말을 정리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 모두들 덕분이다. 좁은 안목으로 세상을 판단하던  고쳐줬고, 다시 나의 동료로 와주었다. 내가 너네를 지킨 게 아냐. 내가 다시 누군가 지킬  있도록 너네가 도와 준거다... 이 잔을 내 모든 동료들에게 바치겠다."
그는 말을 끝마치자 조용해진 반응을 보고 수줍게 잔을 들어 올렸다.

"건배...?"
"진짜 존나 재미없긴 하다..."
"분위기 초치네... 후..."
"나, 난 좋았어!  그러냐!"
"그...래요 뭐! 가슴이 막, 이렇게, 따뜻해지는? 그런 느낌이라 좋았어요!"
"야, 도르베! 막 좆같지는 않았어! 그냥 마시자!"
어설프게 위로하는 갤러한과 핀, 아스타를 보고서 도르베는 어쩔 수 없이 웃었다. 그리고 붉어진 얼굴을 떨구며 술잔을 더 높이 올렸다.


"너네 전부 병신이다. 마셔."
"그게 낫다."
그제서야 일행들은 술을 들이 마셨다. 그리고 그때 가게 문이 열렸다.


"뭐야, 벌써 마시고 있었어?"
소니아였다. 릴로가 테이블을 두들기며 손을 흔들었다.


"마신지 얼마  됐어! 아니, 이제 두 잔 마셨다! 빨리 와서 앉..."
그리고 뒤에 따라 들어온 것은 라드였다.

"...새.. 친구를 소개합니다...?"
소니아가 어색하게 손을 활짝 펼치며 라드를 향해 흔들어 댔다. 조금 험해진 분위기 속에서 도르베가 입을 열었다.

"앉아라. 마시자."
"이거, 영 어색해지는군. 역시..."
"앉아."
입을 연 것은 륑게였다. 불만스러운 표정이 한가득이었다.


"저기, 나도 찬성하긴 했었는데... 정말 괜찮겠냐?"
"...저새끼도 부상을 입었었지. 아무래도 나랑 아스타 빼고는 전부  새끼를 나름 받아들인 것 같고 말야. 좆같지만 뭐, 어쩌겠냐."
륑게는 아무래도 불만스러운 표정까지 지울 수는 없었다. 갤러한이  대답에 어물쩡 대자, 그는 어쩔  없다는 듯 술을 들이 마셨다.

"아 씨발, 앉으라고! 거기 멀뚱히 서있는다고 너가 좋아지지는 않아! 아스타! 너도 괜찮지?"
"난..."
아스타도 라드가 별로 반갑지는 않았지만, 도르베가 라드와 꽤 가까운 관계가 되어 있었다. 하는 수 없이 그녀도 백기를 올렸다.

"하... 이리하 설득은 직접 해... 너 보고 그냥 방으로 들어가 버릴 수도 있으니까."
"고마워라."
륑게는 웃으며 그렇게 답하고 소니아를 향해 엄지를 올렸다. 소니아도 힘겹게 엄지를 올렸지만, 머리속으로는 나중에 륑게와 아스타에게 어떻게 사과할지 생각 중이었다.

"...자, 그럼... 너도 뭐, 건배사 할래?"
"아니, 건배사는 생략하지. 내가 해도 분위기만 족칠 테니까."
라드는 바로 한잔을 비우고 말했다.

"대신, 오늘 너네가 하는 모든 디스를 들어주지. 나도 내 잘못이 있었다는 걸 알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자고."
그리고 실수했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 아스타를 향해 웃어 보였다.

"그것 때문에 왔으니까 말야."



이리하가 술집에 들어왔을 때에는 이미 만취한 사람들이 하나씩 속출하기 시작한 때였다. 핀과 릴로는 테이블 위에서 팔을 걸고 춤추며 노래하고 있었고, 아스타는 라드를 잡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도르베와 갤러한은 팔씨름 중이었고, 소니아와 륑게는 그걸로 내기를 하고 있었다. 이리하는 조용히 그 사이를 뚫고 지나가며 의자를 하나 잡아 끌었다.

"여."
"왔냐? 너도 내기할래?"
"아니, 난 됐어. 오늘은 라드도 왔네?"
"그래. 유감이지. 야, 도르베! 힘빼지 말라고!"
"좋다! 갤러한! 믿고 있다!"
흥분한 둘을 보고서 이리하는 조용히 손을 들어올리고 잔을 받았다.


"아, 씨팔! 갤러한, 부끄러운 줄 알아라! 장애인한테 안 지려고 온갖 추태를  부리네!"
"잠깐,  장애인이 아니다!"
"야, 도르베! 손가락만 다 있었으면 너가 압승이었어!"
갤러한은 소니아와 하이파이브를 하며 자리에서 나와 이리하에게 다가갔다.

"미안하구만, 늦길래 먼저 시작했어."
"미안할건 뭐야, 재밌어 보이고 좋구만."
"뭐, 신경 안 쓰면 다행인데..."
갤러한은 슬쩍 라드쪽을 바라보았다.

"...괜찮지?"
"뭐가?"
"그... 라드말야..."
"신경  써."
이리하는 진짜 신경쓰지 않았다. 그녀는 애초에 라드를 적대할 생각도 없었다. 다만 맞지 않는 사람일 뿐이었다.


"그래서, 라드까지 왔는데..."
이리하가 무슨 말을 할지는 알고 있다. 갤러한은 뒤통수를 긁적이다가 꽤 힘겨운 듯 입을 열었다.


"아직은 안돼... 이기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일단 리쿠르트의 안전과 약간의 실마리라도 잡아야 겠어. 그 전까지는..."
이런 분위기가 유지되어야 한다. 칼린이 고립되어야 한다. 갤러한이 하고자 하는 말을 알고 있고, 그게 잔인한 일이라는 것도 안다. 그러나 이리하도 할 말은 없었다. 그의 고립을 이용하는 것은 자신도 똑같았기에.

"...알겠어. 어쩔 수 없는 거지."
이리하는 그저 그 분위기에 끼기 위해서 아무 감흥도 없이 핀과 릴로를 향해 지폐를 뿌렸다.


륑게는 술집을 나와 골목에서 소변을 보고 있었다. 한창 일을 보는 중, 그의 옆으로 라드가 다가왔다.

"브...!"
영문을   없는 소리를 내며 한발짝 빠진 그는 곧 잔여물을 털어내고 라드를 바라보았다.

"미안, 놀래켰나?"
"아, 거... 말 좀 하고가까이오아..."
그는 조금 풀린 눈으로 손을 휘저으며 그렇게 말했다.

"륑게, 이친구야... 술 약한 건 옛날부터 알고 있었단 말이지."
"무머... 녀가, 나 잡으로 다닐떄부터?"
"그래. 그때도 알고 있었지."
라드가 웃으며 그에게 담배를 물려주었다. 륑게는 별 저항없이 그걸 받았다.


"있자너, 사실.. 너랑같은 부대에ㅐ ㅏㅇㅆ으면서 느낀건데.."
"응?"
륑게는 성냥을 들고 몇 번 틱틱대다가, 불이 붙지 않자 라드가 집고 있던 성냥을 가져갔다.

"너가, 같은 부대원으로서  좆같능놈은 아니더라구... 다른 애들을 몇ㅌㅁ번 구하기도 하고, 아무튼..."
라드는 웃으며 담배에 불을 붙이고 성냥을 바닥으로 던졌다.

"능력도 좆긴하지... 암튼! 막 좆같은 놈이 아닌 것처럼 보이기 시작하더라, 이말씀이야!"
소리치는 륑게를 보며 라드는 담배연기를 한번 빨아들였다.


"그거 영광이군."
"영광일껀 아냐! 그도 그런게!"
륑게는 그렇게 목청을 높이더니 곧 몸을 툭 떨궜다. 라드가 그를 붙잡았다. 그러자 그는 작게 속삭이듯 그에게 말했다.

"난 아직도 네가 좆같더라고."
멀쩡한 목소리. 라드는 얌전히 그를 붙잡고 있는다.

"뭔 말인지 알겠냐? 네가 아무리 똥꼬쇼를 해도 난 안 믿어. 또 무슨 개수작을 꾸미길래 이렇게 친근하게 구는지는 모르겠 다만, 빌어먹을 천재지변이 일어나도 나는 너부터 의심할꺼다."
그렇게 말하고서 륑게는 라드를 밀어내며, 비틀거리는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러니까! 조심하라구우..."
그는 취한 척하면서 비틀대며, 냉랭한 눈으로 입만 웃으며 라드를 바라보았다. 라드는 가만히 그 모습을 보다가 할 말이 없어 그저 웃었다.


"야... 도르베..."
한참동안 라드를 붙잡고 욕설을 뱉던 아스타가, 라드가 나가니 갑자기 도르베를 불렀다.


"욕  꺼면 들어줄 생각이 없다. 난 지금 매우 분하다."
도르베는 도르베대로, 팔씨름에서 진 것을 신경 쓰고 있었다. 그런 그의 등짝을 아스타가 강하게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아, 그런 거 아냐!"
"말로해라! 뭔데..."
"아 씨발, 줄 거 있었는데..."
아스타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조금 한산해진 분위기. 준다면 지금이 기회일 것 같았다.


"거 씨발, 애들 앞에서 떡하니 주려니까 뭔가 쪽팔리더라... 기다려봐."
그녀는 곧 호주머니에서  고급 져 보이는 케이스를 하나 꺼냈다. 남색 빛깔을 띄고 있는 사각 케이스였다.

"이게 뭐냐?"
"받아."
도르베가 그걸 받아 열어보니, 안에는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는 손가락이 있었다. 색부터 장식들까지, 일반적인 가짜 손가락 같은 것이 아니었다.

"아스타, 이건..."
"나, 그런 거 잘 몰라서... 그냥 일단 비싼 걸로 사봤다."
지나치게 화려했다. 도르베가 거기에 맞게 끼고 다닐 장식품이나 옷도 없었고, 전투하며 끼우기에는 택도 없는 모양세이다. 끼고 다닌다면 말 그대로, 졸부가 돈 쓰는 법을 몰라 꼴에 맞지 않는 장신구를 산 것처럼 보일 것이다.


"암튼 비싸면 좋을 것 같아서... 별..로냐?"
물론 도르베는 지금, 자신에게는 지나치게 화려한 그 가짜 손가락보다도, 안절부절하며 자신을 보고 있는 아스타가  웃겼다. 그는 대폭소하며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하, 하하하하! 아스타! 최고의 선물이다!"
"그, 그러냐? 진짜? 맘에 들어?"
"맘에 들고 말고! 하하하하하! 맙소사! 아버지랑 같이 했던 아침식사 이후 최고의 선물이다!"
그는 아스타의 머리를 헤집으며 문으로 들어오는 라드를 향해 가짜 손가락을 끼운 손을 흔들었다.


"이봐, 라드!  손가락을 끼고   있는 마술을 알려 다오!"


"어머, 칼린씨..."
리쿠르트는 저녁을 먹고 방으로 돌아가는 중, 칼린을 마주했다. 칼린도 리쿠르트를 마주하고 반갑게 웃었다.


"안녕하세요, 리쿠르트."
"요즘 만나기 힘든 것 같네요. 집사일이 많이 힘드신가요?"
"아뇨, 전혀... 아! 아니, 알레프씨가 하는 일이 없다는 게 아니라,  전문도가 다르니까요!"
조금 허둥대며 말하는 칼린을 보며, 리쿠르트는 그가 바뀌지 않은 것에 조금 안심했다.

"아뇨, 부대원 분들이 모여서 파티 한다고 했었는데, 그것도 못 가고 일하는 걸... 보...면...?"
리쿠르트는 말을 하면서 조금 눈치를 보았다. 갤러한과 있었던 일에 심각성을 조금 보려 한 것이었다.

"아하, 하하! 리쿠르트씨, 그건 조금 달라요. 요나님은 가고 싶으시면 갔다 오셔도 된다고 하셨어요."
웃으면서 리쿠르트의 어깨를 툭툭 치는 칼린. 그녀는 그 모습에 안심했다. 역시 무거운 일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뭐야, 그럼 영주님 주무시고 참여하시게요?"
"아뇨. 전 불참하려고요."
그녀의 웃음기가 사라졌다.

"혹시... 갤러한과 싸웠나요?"
"네? 아뇨, 아뇨 아뇨... 안 싸웠어요."
조심스레 질문한 리쿠르트를 향해 칼린은 한 손으로 손사래를 치며 부정했다.

"제가  사이에 끼지  하는건 전부 제가 빌어먹을 겁쟁이였어서 그래요."
조금 커진 리쿠르트의 눈을 절묘하게 피하며, 칼린은 리쿠르트를 껴안았다.


"걱정마요, 선생님. 이제는 아니니까. 지금 관계가 딱 좋아요. 이제 갤러한이 다칠 일은 없어요."
리쿠르트는 이 대화를 따라갈 수 없었다. 그녀는 칼린을 밀어내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참 평온해 보였다.

"그럼, 영주님이 부르신 거라서... 슬슬  볼 게요. 수고하세요, 선생님!"
그렇게 말하고 아무  없던 것처럼 자신을 지나쳐 가는 칼린에게서, 그녀는 눈을  수 없었다.


"들어 갈게요, 요나."
칼린은 그렇게 말하고 영주실에 발을 들였다. 요나는 평소처럼 종이들을 늘어놓고 뭔가를 확인하고 있었다.

"수고가 많다. 정말 부대원들을 만나보러 가지 않아도 좋은 것이냐?"
"안 가는  좋을 것 같아요."
즉답하는 칼린. 요나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자신의 빈 잔을 들이 밀었다.

"그래. 그게 좋은 선택일 거다."
칼린은 그녀의 빈 잔에 차를 따랐다.

"너도 알겠지만, 세상에 좋은 일이라는 건 언제나 기분 좋은 방식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야."
"당연하죠."
"그래. 넌 잘해주고 있다, 칼린. 이게 네 동료를 위한 선택임을 잊지 말거라."
잔이 찼다. 요나는 잔에 담긴 차를 한 모금 들이마시고 만족스럽게 자신의 종자를 바라보았다.

"점점 발전하는구나."
"감사합니다."
"상을 줘야지."
그녀는 목을 들이 밀었다. 칼린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5일 후다... 알고 있지, 칼린?"
"문제없어요..."
칼린은 그렇게 말하고 입을 벌린다. 요나는 목덜미에 그의 숨결이 닿는 것을 느끼며 조금 얼굴을 붉힌다.

밤이 깊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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