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4화 〉여진(餘震) (94/164)



〈 94화 〉여진(餘震)

아스타는 가만히 오두막 안을 살펴보았다. 지진으로 완전히 뒤집어진  안임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삭막하게 느껴지는 것은 애초에 물건이 적어서 일까.

그 집에는 방이 단 두 개 뿐이었다. 도르베에게는 형제가 몇이었는가. 둘? 셋?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스타는 두개의  중  넓은 쪽으로 들어가 보았다.

한 방 안에 여러 나이대가 보이는 듯한 느낌. 닳고 찢어진 고전책 위에는 나무로 깎여 있는 장난감이 떨어져 있다. 하나씩 살펴보면, 무너진 책장에서 튀어나온 노트 중에는 자작 소설 따위나 연애편지같은 것이 끼워져 있다. 도르베가 맏아들이라고 했던가. 동생 중 적어도 하나는 이 곳을 떠나기 전에도 근처 마을 여식들과  뜨거운 청춘을 보내고 있었던 듯하다.


하지만 도르베가 했던 말을 떠올려 보면, 그의 동생들이 이 집을 도망쳐 나간지 적어도 3년은 지난 곳이었다. 아니, 계산을 다시 해 보면 적어도 5년은 비어 있던 곳이다.


저기 저 힘 빠진 노인네는 자기 자식들이 전부 도망가 버린 방 안에서 무엇을 봤길래 이런 시시콜콜한 것까지 남겨둔 걸까.

아스타가 가만히 그 노트를 펼쳐 읽어 보고 있을 때였다. 도르베가 방으로 들어왔다.

"아, 여기 있었나."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간 그는 아스타가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시선을 돌렸다.


"뭐야, 남의 일기장을 보고 있느냐."
"응, 뭐..."
아스타는 말 끝을 조금 흐렸다. 도르베는 웃으며 그 노트를 읽어 보다가 나즈막하게 말했다.

"뭐 궁금한 거라도?"
"... 전에 말했잖아, 너네 아버지가 술살라고 니네 물건은 잡히는 대로 팔았었다고. 그런 것 치고는 되게 생생히 남아있는  같아서..."
"이것도 뭐, 책상이니, 침대니 전부 빠진 상태인 거다. 남은 건 우리가 갖고 놀았던 장난감, 읽었던 소설, 일기장... 뭐, 그런 거지. 별로  되지 않을 것들."
도르베는 그렇게 말하고서 노트에서 눈을 뗴고 바닥에 있던 나무 조각을 집어 들었다.

"이것도 있었나, 그리운 걸."
"...그러냐."
아스타는 가만히 도르베를 바라보다가  책장의 한쪽을 잡았다. 도르베도 들고 있던 나무 장난감을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책장의 반대쪽을 잡았다. 책장을 들어 세우고, 그들은 거기서 떨어진 책과 노트들을 다시 꽂아 넣었다.


40분정도 걸렸을까, 그 방은 금방 정리가 끝났다. 애초에 크지 않은 오두막집이었기에 내부 정리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순서가 조금 바뀐 것이긴 했지만, 내일 아침부터 외부 보강을 하기로 했다.


아스타는 정리가 끝난 방을 바라보다가, 옆에서 땀을 닦고 있는 도르베에게 물었다.

"야, 근데 난 여기 어디서 자야 되냐?"
"아..."

#


잠들어 있던 그녀는 나무문이 울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어느새 해가 떨어졌나, 눈을 떠도 눈 앞은 어둠 뿐이었다. 미약하게 창 틈으로 들어오는 빛으로 그녀는 더듬거리며 알이 두꺼운 안경을 찾았다. 그리고 울리는 나무 문을 향해 허리를 피며 물컵을 집어 들고 발을 옮겼다.

"네, 나가요... 젠장, 귀찮게..."
그녀는 조금 칭얼대며 크게 하품했다. 그리고 물컵을 입에 대고 문을 열었다. 문 앞에 서 있는 것은 라드였다.

"푸흡!"
그녀는 방금 전까지 졸았던 사람이라고 믿을  없는 반응속도로 문을 닫았다. 그리고 목에 걸린 물때문에 거칠게 기침을 하며 눈물을 뿜어 대면서 문 밖으로 소리를 질렀다.

"너! 케헥! 너가 왜 와! 빚은  갚았잖아!"
"이봐, 유스티스. 그 반응은 조금 상처인데..."
문 너머로 그런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문 앞에 쪼그려 앉은 상태 그대로 다리만 뻗어 근처에 있던 빗자루를 끌어당겼다. 그리고 그걸 문고리에 건 뒤, 마치 화상이라도 입은 것처럼 문에서 빠르게 떨어졌다.


"저리 꺼져! 위병부를 거야!  진심이야! 우리 집에 전화기 있어!"
"네 자유긴 한데... 빨리 불러야 될 거야. 전화국이 문닫을 때까지 앞으로 2...아니, 1분정도밖에 안남았거든."
"뭐?"
그녀는 허둥지둥 몸을 움직여 시계를 바라보았다, 마지막 1분이 허망하게 지나고 있었다.

"나쁜 소식 전하러  거 아냐. 이야기 정도는 들어줄 수 있는 거 아냐? 우리 사인데..."
아쉬움이 뚝뚝 묻어 나오는 목소리. 그녀는 잠깐 머리를 붙잡고 이를 악물었다.

"내가, 너랑 무슨 사인데, 이 씨발 또라이 새끼야..."
"입이 더 거칠어  거 아냐?  열고 이야기해."
"아! 그러지 마! 소름 끼친다고 씨발!"
그녀는 잠깐 집 안을 정리했다. 만일의 경우 창문으로 바로 빠져나갈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두기 위함 이었다.

"무, 무슨 일인데."
"네가 봐줬으면 하는게 있어. 안에서 이야기하면 안돼? 조금 눈치 보여서 말야."
"거래 조건 말하기 전에는 못 들어와."
"... 내가 찾은 걸 봐주면 네가 좋아하는  줄게."
"뭔데?"
"라드씨의 사랑."
"저리꺼져."
"...과 아직 포르말린속에서 싱싱한 라드씨의 오른쪽 눈알. 어때?"
잠깐 세상이 멈췄다. 그녀는 조금 머뭇대다가 문을 반 정도만 열었다.

"먼저 눈알부터 보여줘..."
"어이쿠. 눈으로만 봐."
라드는 문 너머로 포르말린병을 들이 밀어 보여줬다. 그녀는 잠깐 그걸 바라보다가 곧 문을 활짝 열었다.


"어서와!"





라드는 가만히 의자에 앉아 방방 뛰고 있는 유스티스를 바라보았다. 유스티스는 포르말린 병을 잡고 홀린  춤추고 있었다.


"그게 그렇게 좋은 거야?"
"아아... 최고야... 뭐든 들어 줄게, 라드!"
코라 유스티스. 전쟁 전 귀족의 시체를 파내다가 근위병에게 발각 당했고, 도주 당시 라드의 도움을 받았었다.


요금을 제대로 지불하지 못 했었기에 한 6개월을 라드에게 시달렸었지만.

"아아... 진짜 이쁘게 망가졌다... 넌 진짜 생긴  딱 내 취향인데..."
그녀는 중증 네크로필리아(시체애호자)였다.


"죽으면 나한테 시체 기증해 줄래?"
그녀는 홀린 듯 막말을 내뱉다가, 대답이 없는 라드를 보고서 얼굴이 하얘졌다.

"미안! 미안! 실언이야! 미안!"
"그래, 그래. 부탁하러 온 거니까 실언정도는 용서해 줄게."
라드는 웃으며 안대 쪽을 긁었다. 그녀가 또라이라는 것은 알고 온 것이니까 감당할 수 있었다.

"그런데... 라드, 너 눈은  뽑은거야?"
"내가 직접 뽑은 것처럼 말하네?"
"직접 뽑은 거 아냐?"
그가 이 또라이를 만나러  이유. 그녀에게는 특별한 재능이 있었다.

"그야, 눈알이 뚫린 자국이 너무 깔끔하잖아. 동공 쪽으로 깔끔하게 뚫린 구멍이라니, 화살이 꽂히는 순간까지 화살을 보고 있었다는 거고, 꽂히면서 움직이지도 않았는지 안쪽이 여기저기 많이 찢어지지도 않았어. 마치 눈알을 뽑아 낼라고 일부러 화살을 꽂은  같은데..."
줄줄이 떠들어대는 그녀를 보며, 라드는 제대로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못 속이겠구만. 무슨 일인지는 언젠가 다음 기회에 말하자구.  줬으면 하는게 있어."
"뭔데?"
"이거."
라드는 호주머니를 꺼내 열었다. 그리고 안에 있는 것을 손으로 집어 그녀의 책상 위에 올려 주었다. 유스티스도 곧 포르말린 병을 아기라도 다루듯 선반위에 올려 두고 라드가 올린 것을 확인하러 다가왔다.

"이건..."
"이게 뭐같아?"
"이빨...조각?"
그녀는 그 조각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자신이 없는 듯  끝을 올렸다.

"만져 보자니 이빨 같은데...
"그게 뭔지 내일 아침까지 좀 밝혀내줘. 해줄  있어?"
"너무 쥐좆만한 조각이라서 힘들긴 한데... 귀한 걸 가져와 줬으니까. 어차피 너 오기 전까지 자고 있었고."
그녀는 그 조각을 잡고 페트리 접시 위에 얹었다.

"알아보고 있을 테니까, 뭐. 저기 구석이나 소파 위에서 잠이라도 자면서 기다려."
"고맙구만. 긴 하루였거든... 혹시 먹을 건 없나? 배가 좀 고픈데."
"알아서 요리해 먹어. 부엌에 있는  뭐든 먹어도 되니까. 아!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선반은 열어보지 마라?"
라드는 부엌에 들어가 봤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풀떼기들과 양의 넚적다리, 향신료들. 그녀는 꽤 부유하게 살고 있는 듯했다. 그는 대충 수프나 끒여 먹을 생각으로 아궁이에 넣을 땔감을 옮기기 위해 오두막을 나섰다.


#

눈을 찌르는 아침해에 이리하는 잠에서 깼다. 잠깐 아침의 여운을 즐기던 그녀는 누군가 들어오기 전에 목걸이를 다시 꼈다.


여관에서 간단히 아침을 챙겨 먹은 그녀는 곧 방으로 돌아가 남은 여비를 확인해 보았다. 마차가 안온다면 말 한 마리를 구입할 수도 있을 만한 돈이 남아있다. 돈은 많다.

그녀는 옷을 다시 걸쳐 입고 코트 깃을 올렸다. 전날 입었던 후드를 베낭 안에 집어넣고, 그녀는 여관을 나왔다.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 있었다.


힘들게 끼어서 그들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해보니, 비나흐의 근황에 관한 것이었다. 전화국과 열차가 폭파당한 것이 적혀 있었다. 범인이 주변에 있을지도 모르니 조심하라는 내용의 전보였다.


이리하는 자신의 목걸이를 매만지며 약간 뒷걸음쳤다.  목걸이는 자신이 인식하는 것까지는 바꿀  없다. 즉, 만에 하나 목걸이가 잘못된다면, 스스로는 그걸 확인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얌전히 군중을 빠져나온 그녀는  마부 여관에서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고 있는 남성을 향해 달려갔다.

"이봐요, 마차 운영 하십니까?"
그는 잠깐 멍하게 비둘기에게 모이를 던지다가 입을 열었다.

"어디로."
"로가로 가려 해요."
"로가... 가까운 곳이긴 하지."
그는 다시 비둘기에게 모이를 뿌리기 시작했다.


"저기... 그래서..."
"얼마."
"네?"
"얼마 낼 거냐고."
"아, 20생텀이면 될까요?"
모이를 뿌리던 남자는 그 손을 멈추고,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대충 비둘기들을 향해 던졌다. 그리고 손을 털며 웃었다.


"협상이 능숙하군. 좋아."
그걸로, 이리하는 로가를 향했다. 40분이면 도착하리라.

#


아스타는 눈을 비비며 어린이용 침대에서 몸을 폈다. 그의 방에 유일하게 남아있던 침대였다. 좁긴 했지만, 못 잘 정도는 아니었다.


몸을 일으키며 한번 기지개를 핀 그녀는 바닥에 퍼질러 자고 있는 도르베를 보았다. 자는 얼굴을 보면 아직도 어린 티를 다 못 벗었다. 잠깐 그 모습을 보던 그녀는 곧  바깥에서 나는 달콤한 냄새에 고개를 돌렸다.


방을 나서 보니 오두막의 문이 열려 있었다. 문 밖에서는 도르베의 아버지가 화덕에서 삽을 꺼내고 있었다. 벌꿀냄새가 달콤하게 코를 찔러왔다.


"오, 일어나셨습니까. 도르베는...?"
아스타는 냄새에 이끌려 나온 자신을 탓하며 뚱하게 그를 쳐다보다가 불만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직 자."
"하하, 그 아이, 영 잠에서 안 깨죠. 그렇지 않습니까?"
그는 그렇게 웃으며 땀을 한번 닦고 삽을 들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접시에 빵들을 놓은 그는 다시 문을 닫았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아들 없는 자리에서 대화나 해 보시지 않으렵니까?"
"...왜 갑자기 존대말을 쓰지?"
"생각해 보니, 어제는 아들의 동료라는 말에 무턱대고 반말을 써버렸죠. 혹시 그게 기분을 상하게 만들었나 싶어서... 영웅의 부대잖습니까. 귀족이 있을 수도 있고, 예비 귀족이 계실 수도 있는 건데 말이죠."
아버지가 아들 망신을 시킬 수는 없으니까요, 라고 덧붙이고 그는 웃었다. 아스타는 그의 맞은편에 앉아 빵을 하나 집어 보았다. 아직 많이 뜨거웠다.

"조심하세요. 아직 뜨거울 겁니다."
"빵을 꿀로 적신...건가? 무슨 짓을  거야?"
"꿀을 바르고 구운 겁니다. 소박해 보이겠지만 뭐, 사는게 여유롭지가 못해서... 죄송합니다만 이정도로 참아 주세요."
아스타는 포크로  빵을 조금 뜯어보았다. 부드럽게 뜯어지는 것을 보아, 싸구려 빵은 아니었다. 어느 정도 가격이 있는 빵이리라. 분명 그 나름의 사치품이겠지.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뜯은 빵을 입에 집어넣었다.

"어떤가요?"
"...막 나쁘지는 않네."
"하하, 다행이네요."
아스타는 그 빵을 다시 한입 뜯어먹었다. 그리고 수프를 한 국자 떠서 앞접시에 담았다.

"...도르베가 돈을 엄청나게 벌 텐데... 그 돈은 어디에 쓰는 거지?"
그리고 약간의 시비를 담은 어조로 그에게 물었다. 그는 잠깐 빵을 집어먹던 손을 멈추고 아스타를 바라보았다.


"당신이 바라던  아닌가?  많이 벌고 자기를 귀족으로 만들어줄 아들 말이야."
그녀는 얼굴에 비웃음을 머금고 다시 빵을 집어먹었다.

"후회됐지? 당신 아들은 댁한테 버려지고 나서야 날개를 핀 거라고."
그래, 스스로는 뭔가  능력도 없어서 아들한테 구걸이나 시켰던 못난 애비가 금의환향한 아들을 보며 후회하는 모습. 아스타는 그게 보고 싶었다. 지 아들이 갑자기 찾아왔을  첫마디가 '왜 온 거냐?' 따위인 못난 아버지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을 봐야할 것 같았다.

"댁 아들은 임무 하나 끝나면 이딴 오두막집을 단지(團地)단위로 살 수 있어. 왜, 이제 와서 아들내미한테 손을 뻗치기는 부끄러웠냐?"
한번 터진 말문은 계속 흘러나왔다. 점점 씹는 것조차 멈추던 도르베의 아버지는 곧 냅킨을 들고 자신의 입을 닦았다.


"... 제 아들은 좋은 동료를 뒀군요."
"...뭐?"
그리고 아스타가 예상한 것과 다른 반응으로 대답하기 시작했다. 그는 담담하게 식기를 내려놓았다.

"당신 말이 전부 맞습니다. 아내는 죽고, 혼자 남은 아비라는 것이 제 역할도 제대로 못해줬었죠. 아니, 제 역할만 못했을 뿐 아니라, 아예 아들의 짐덩이가 되었었죠. 이야기를 들어보니, 제 아들은 이런 못난 아비를 그래도 계속 아버지로 생각해 줬던 것 같습니다. 참 올곧은 아이예요."
아스타는 조금 불쾌해졌다. 그가 이런 말을 하기를 바란 것이 아니었다. 추한 변명을 늘어놓으며 본성을 드러내기를 바랬다.

"...저와  아들이 다시 '가족'으로 돌아가는 길은 분명 아직 멀고 험할 겁니다. 하지만 저는 다시 한  그의 '아버지'가 되기 위해 일단 할  있는 모든 일을 해볼 생각입니다. 가장 먼저 할 것은 우리를 강제로 묶어 버린 성을 없애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네. 그래서 지금 저와 도르베는, '아라드 베일'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사람  사람으로 서로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전 더 이상 도르베에게 손을 뻗지 않을 겁니다."
그는 다시 식기를 움직이며 빵을 잘라냈다.

"제 아들을 위해 화내 주신 거였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호인이시군요. 제 아들만큼은 아니지만."
그리고 쿡쿡 대며 웃기 시작했다. 아스타는 그제서야 자신의 실수를 눈치챘다.

그녀는 도르베의 아버지에게서, 죽은 자신의 아버지를 겹쳐보고 있었다.


"...미안."
그녀는 고개를 떨구며 사과했다. 맞은편의 상대가 어리둥절해 하자, 그녀는 이마를 식탁에 박으며 한번 더 사과했다.


"당신에게 하던 말이 아니었어... 난 다른 누군가를 보면서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 같아. 미안해."
"...혹시 그 다른 사람이 아버님이신가요?"
그녀가 놀라서 고개를 치켜들자, 그는 가볍게 웃었다.


"당신은 제 아들하고 무척 닮았거든요. 사실 당신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아스타씨.  아들이 어찌나 많이 이야기하던지요. 동료들 이야기를  때면 막혔던 대화가 술술 나오지 뭡니까."
그는 그렇게 말하고 가만히 아스타를 바라보다가, 곧 빵을 한번 눌러보고 다시 셔츠 팔을 걷었다.

"이런, 빵이 딱딱해졌네요... 다시 데워야  것 같습니다. 여기서 기다려주세요, 아스타씨. 그리고..."
그는 그 빵을 집어 바닥에 얹어져 있던  위에 올렸다. 그리고 삽을 들고 나가며 말했다.


"부끄럽지만, 제 아들을 잘 부탁합니다. 제가 못 챙겨 준 만큼요."

#

요나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 주방으로 발을 옮긴 그녀는 조리사에게 오늘부터는 조금  사치스러운 요리를 준비하라고 명령했다. 윌레인의 갖가지 진미들을 2인식탁으로 준비하라고 명령하고 그녀가 주방을 나왔을 때였다. 리쿠르트가  자리에 서 있었다.

"이런, 리쿠르트. 일찍 일어났군."
"요나도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네요."
그녀는 활짝 웃으며 요나의 앞에 섰다. 발걸음을 멈춘 요나는 잠깐 어색하게 웃다가 옆으로 피해가려고 했다. 리쿠르트가 옆으로 한보를 뻗어 그녀의 앞길을 막았다.

"...나에게  일이라도?"
"네. 사실 칼린이 일어나기 전에 둘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요..."
요나는 다시 리쿠르트를 훑어보았다.

"...지금은 조금 바쁜데 말이지, 칼린이 있는 자리에서 이야기하기는 좀 그런가?"
"금방 끝날 거예요. 잠깐도 안될까요?"
그녀의  너머에는 비키지 않겠다는 의지가 보이고 있었다. 요나는 귀찮은 기색을 숨기며 웃었다.


"스승의 부탁이다. 기쁘게 받아 들여야지..."
그리고 리쿠르트와 함께 영주실로 발을 옮겼다. 머리속으로는 또 귀찮은 것이 앵겼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걸 티내는 일은 없었다. 둘은 그렇게 서로 속내를 감춘 웃음을 보이며 걸었다.


#

라드는 눈을 떴다. 적당히 저녁을 챙겨 먹고 그대로 소파에서 잠든 듯했다. 잠깐 눈을 비비고 고개를 돌려보니, 유스티스는 어제 저녁과 같은 자세로 책상에 앉아 있었다. 라드는 몸을 일으켜 그녀에게 다가갔다.

"어때?"
"어떠고 자시고, 그냥 이빨이야... 네가  거니까 뭐가 있지 않을까, 하고 계속 살펴봤는데 아무리 봐도 그냥 이빨이야."
"뭐... 그러냐? 진짜 이빨이라고?"
"응. 뭐 섞인 것도 없는 진짜 그냥 이빨이야."
라드는 잠깐 생각이 멈췄다가 질문을 바꿨다.

"... 그냥 '인간'의 이빨이라고?"
유스티스는 그 대답에는 조금 반응이 달랐다. 잠깐 고민하던 그녀는 입을 열었다.


"그게...조각만으로 판단하기는 힘들지만... 이상하거든. 조각 크기 보면 사람크기 동물의 이빨 같기는 한데..."
그녀는 담배를 하나 꺼냈다.

"경도가 생물체의 것이 아니란 말야... 괴물딱지 이빨이 틀림없거든. 애초에 이걸 어떻게 부신 거냐? 망치로 작정하고 뚜들겨도 어떻게 하기 힘들 것 같은데, 보니까 뭘로 꽉 쥐어서 깨진 거데?"


라드의 뇌가 정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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