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5화 〉여진(餘震) (95/164)



〈 95화 〉여진(餘震)

"차는 필요 없나?"
"괜찮아요. 아직 아침도 안 드셨으니까..."
리쿠르트는 그렇게 대답하고 의자에 앉았다. 그건 그렇지, 하고 요나가 대답하며 맞은편에 앉았다.

"단순히 아침 수다나 떨려는 건 아닌  같은데... 무슨 일이라도?"
"그게..."
리쿠르트는 잠깐 말을 멈췄다. 한순간의 망설임. 그녀는 벌렸던 입을 다시 닫았다가 눈을 감았다.

"리쿠르트?"
"...요나, 이번에 갤러한이 저에게 제안한 게 있어요. 임무가 끝나면 성을 나와서 같이 살자고 했어요."
"...호오."
요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담배에 손을 가져다 대다가, 리쿠르트는 담배에 약하다는 것을 기억해내고 다시 손을 내렸다.

"그건 청혼이었나?"
"뭐... 영 타이밍이 아니었어서 다시 말해준다고는 하는데, 그런 거 아닐까요?"
그녀는 쿡쿡거리며 입가에 손을 대고 웃었다.

"아무튼, 지난번에는 뭔가 대충 넘어갔지만... 이번에는 확실히 말 해 두려구요. 소금부대의 임무가 끝난다면 저는 성을 나가보도록 할게요."
"그래. 추천서를 준비해 놓으마. 그럼-"
"잠깐. 아직 더 말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그래?"
뭔가 낌새를 느꼈는가, 요나의 눈에 경계가 담긴다. 리쿠르트는 그녀에게 보이지 않을 무릎위에 얹은  주먹을 더 강하게 쥔다.

"제, 제가 떠나기 전에 확실히 알아 두고 싶은 게 있어요."
요나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칼린의 상태, 임무를 하나 끝낼수록 안 좋아지는  같아요. 요나를 믿지만 그래도 확실히 해 두고 싶어요. 그러니까 성가셔도 대답해 주세요."
리쿠르트는 한번 심호흡을 하고서 입을 열었다.

"지금 영주님은 칼린을 정신적으로 몰아가고 계시지는 않으신 가요?"
 질문은 아침의 푸른 빛만이 가득했던 요나의 방안에서 요동치듯 퍼졌다.

"잘못 본 거라면 죄송해요. 하지만 그가 지금 정신적으로 무리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 서요. 지지난 임무 때부터 그는 뭔가... 점점 한계를 마주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전 요나, 당신이 칼린을 위로해 준다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칼린이 괜찮아 보이지는 않아요."
"... 그래서?"
"영주님이 단순히 위로에 서툰 것이라면, 조금 냉정한 말이지만 차라리 다행이죠. 그렇지만 만약 영주님이 칼린을 일부러 정신적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라면-"
한마디. 한마디를 더 뱉어야 한다. 확실히 이 상황을 굳히기 위해서는 말을 끝내야 한다. 리쿠르트의 몸이 떨렸다.
아버지. 어머니. 갤러한. 나에게 불의에 저항할  있는 용기를 주세요. 겁먹은 나의 등을 떠밀어 주세요. 옳은 말을 할 수 있게 어깨를 붙잡아주세요. 이 순간에도 그녀는 요나를 믿고 싶었다. 몸이 떨릴 정도로 요나의 진심을 마주하는 게 두려운 것은 그것 때문이었다.


"-저는, 세부사항을 직접 듣기 전까지는 제가 보고 느낀 정의에 따라서 행동할 겁니다. 요나,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해 주지 않으실 거라면 적어도 저에게 진실을 알려주세요."
리쿠르트는 당당히 말하고 올곧은 눈으로 요나를 바라보았다. 요나는 그 말에 잠시 얌전히  있다가, 속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상황조차 제대로 모르면서 그렇게 말하다니, 이걸 네 정의를 위한 용기 있는 행위로 넘어가야 하는 것일까, 무례로 봐야하는 것일까."
요나는 그렇게 말하고서 담배를 꺼냈다.  대를 꺼낸 그녀는 천천히  담배의 향을 맡아 보았다.

"만약에 내 대답이... '그렇다'라면,  어떻게 할 거지?"
 사이에는 어떤 대화도 흐르지 않았다.


"네가 뭘 할  있지?  약점을 쥐고 있나? 나의 성에서 벗어날 능력이 있나? 아니면 뭐, 지금 바로 새로운 일자리라도 알아볼 건가?"
대답으로는 충분한 말이었다. 리쿠르트는 올라오는 충격에 잠깐 정신이 어질해졌다.

"네가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이해한다. 하지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모든 일은 모두 칼린을 위한 것이다. 넌 그냥 나를 믿으면 된다."
그녀는 불붙지 않은 담배를 입에 물고서 리쿠르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나를 믿고 그냥 성 안에만 있으면 된다. 그저 석상처럼 다물다가 그의 부대임무가 끝났을 때 내가 작성해  추천장과 함께 원하는 학교에서 선생으로서 일하면 된다. 네 남자친구와 행복한 나날을 보내면 되는 거다.'
그녀의 눈에 담긴 것은, 자비. 강자의 입장에서 약자를 살릴 때 보여주는, 동정심과 오만함이 섞인 감정. 압도적인 우위에 서 있을 경우에만 나오는 얼굴.

"넌 일개 가정교사였을 뿐이다. 갑작스레 왔었고, 계약관계로 만난  명의 학생일 뿐이었으며,  그 정도의 관계로 헤어지면 되는 거다. 함께한 시간조차 길지 않았었다. 오히려 너와 함께한 시간은 내가  길었지... 리쿠르트, 정신 차리거라. 네가 칼린에게 그렇게 신경 쓸 이유는 없어."
리쿠르트는 여러 감정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중이었다. 현기증, 어지러움. 앉아있는 데도 붕 떠있는 기분이다.


"게다가... 우린 이미 네 '착각'때문에  번 큰 갈등을 지나쳐 왔잖느냐."
리쿠르트의 어깨에 얹어진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녀는 그 압력에 몸을 크게 튕겼다. 요나는  반응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손을 뗐다.

"내가 자네를 잘 설득했나?"
리쿠르트는 몸에 떨림을 어떻게든 멈춰보려고 했다. 그러나  자신이 그걸 제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떨리는 고개를 떨궜다. 그리고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정을 곱씹었다.

"...네."
비참하게 고개를 떨구고, 또 한번 막강한 벽 앞에서 자신의 정의를 행해내지 못함에 수긍까지 하고 있는 것. 그 일련의 행위 속에서,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자각할 수 있었다.


그녀가 느끼고 있는 감정은 틀림없는 분노였다.

#

라드는 문을 밀어 열고 날씨를 보았다. 꽤 우중충하다. 약간 쌀쌀한 것이 망토를 잠구고 싶게 만든다.

그는 담배를 찾으려 옷 주머니를 뒤져 보았다. 그러나 어느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어도 담배가 잡히지 않았다. 여러가지로 잘  풀리는 느낌이다. 머리가 아프다. 그는 길을 나선다.


"눈  짝 더 잃으면 그것도 나한테 줘~"
뒤에는 유스티스가 활기를 띈 목소리로 자신을 마중한다. 그는 다시 한번 호주머니에서 그 이빨 조각을 꺼내 본다. 여기서 뭔가 알아내지 못한다면, 눈알 뿐이 아니라 자신의 시체 전체가 저 년에게 직송 포장될 수도 있다. 아니, 그만 죽는다면 그만한 행운이 없다.

그는 안대 뒤의 이미 없는 눈을 긁어 대다가, 휘파람을 불어 말의 시야를 잡았다. 말에 올라타며 그는 이번에 자신이 얻어낸 정보를 정리해 보았다.

1.칼린이 숨긴 것은 '이빨들'이었다.
2.그걸 챙기기 위해 칼린은  외벽을 타고 방으로 갔었다.
3.방에서 칼린은 요나와 마주치고 붙잡혔다.
4.자동적으로 칼린이 리쿠르트를 구하러 가다가 잡혔다는 말은 거짓이 된다.


오리무중이다. 한걸음이 눈앞인데,  한걸음이 인지를 벗어나 있는 느낌이다. 가만히 조각을 노려보던 그는 말에 올라타 자신의 집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

칼린은 옷을 전부 챙겨 입고 거울을 바라보았다. 거울 안에는 이제 슬슬 익숙해지기 시작한 자신이 보인다. 아니, 저건 자신이 맞는가.


칼린은 그 거울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옷깃에서 손을 뗀다. 그리고 나즈막하게 묻는다.

"넌 누구냐."
그도 알고 있다. 이것이 전생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을 어떻게든 구분해보려고 하는 발악일 뿐임을 알고 있다. 그런 짓을 한다고 해서 기분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지금 그가  일은 간단하다. 지금에 충실하게, 지금의 동료들과 지금의 은인에게 충실하게. 지금 당장은 집사로서의 일을 하러 나가야 한다. 그는 문을 열었다.


요리사들이 분주하게 음식들을 옮기고 있다. 아직 아침을 먹을 시간은 아닐 텐데, 평소보다도 많은 요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약간의 의문과 함께 영주실로 발을 옮겼다.

"들어가겠습니다."
"아! 그래, 들어오거라."
요나는 오늘 기분이 좋은 듯했다. 문 너머의 목소리로도 알 수 있었다. 문을 열자, 요나는 평소와는 다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오늘 무슨 파티라도 있는 건가요? 요리사들이 분주하던걸요."
"아, 그런 게 아니다. 이제 8영주의 위치에 올랐으니, 식사도 그에 맞춰볼까 싶어서 말이지."
그녀는 생글거리며 칼린에게 다가갔다.

"오늘 아침은 함께해 주겠나?"
"네? 저도 말입니까?"
"그래. 이제부터는 네가 나와 같이 식사할  있으면 좋겠구나."
조금 당황한 칼린에게 어깨동무를 걸고, 그녀는 거의 칼린을 밀 듯이 하며 그를 식당으로 데려갔다.

식탁은 화려했다. 단 둘을 위한 식탁이 아니었다. 길게 뻗은 식탁을 보며 칼린은 어쩔 줄 몰라 음식을 옮기는 요리사들을 도우려 했다.

"칼린, 여기 앉아서 음식이 오는 것을 기다리거라.  나와 식사만 같이 해주면 된다."
"하지만 저도 사용인인데..."
"사용인이라면 영주의 말을 따라야지. 앉아라."
그녀는 자신의 대각선 옆자리 쪽을 가리키며 냅킨을 둘렀다. 살짝 얼떨떨하게  자리에 앉은 칼린에게 요리사들이 상의 음식들을 조금씩 덜어다 주기 시작했다.

"즐기거라. 이제부터는 매일마다 이런 식사를  수 있을 거다."
"그, 글쎄요. 아직은 조금 급한 게 아닐까요?"
"하하! 걱정마라! 지금까지 내가 지나치게 검소하게 먹었을 뿐이다. 이 정도 식사에 무리는 없어."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초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벨카에게 이정도의 여유는 있었다.


"그나저나 아침을 먹으면서 이번에 있던 일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싶군. 자, 얼른 식기를 들어라."
"아, 네."
언제까지 멍하게 있는 칼린에게 요나는 그렇게 말하고서 자신도 첫 입을 들었다.


"8영주회의에서 지진이 일어났던 것은 기억하지?"
"네."
"그 지진은 윌레인 전역적으로 발생한 것이었다. 그것 때문에  많은 사상자가 나왔어."
"네? 그 정도로 강진이었던가요?"
칼린은 그렇게 말하다가 곧 한가지를 더 떠올렸다. 강진은 아니었지만,  세계에 방진시설이나 그런 대책이 대도시 이외에도 있을 리는 없다. 아마 약소 영지들은 대참사가 일어났으리라. 그래, 라무르영지 같은 곳이라면-

"알아서 납득한 모양이구나."
"네. 실언이었네요..."
"아니, 아직 이 세계에 대해 잘 모를테니 말이지.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렇다면 본론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그녀는 입가를 냅킨으로 닦아내고 말을 이었다.


"걔 중에서도 특별히 피해가 컸던 지역이  곳 있지. 한곳은 놀랍게도, 비나흐다."
"비나흐가요?"
"그래. 기억하겠지."
잊을 수 있을  없다. 그 근대적인 풍경. 칼린에게는 더더욱 와 닿는 풍경이었다.


"전화국과 열차 정류장, 열차 그 자체가 터졌다는구나. 자세한 것은 더 알아보고 있다지만, 뭐... 이번 일로 마도과학기술에 대한 신뢰도가 대폭 떨어졌다고 한다."
"아..."
"하지만 증언에 따르면 전부 바로 터진 것은 아니라더군. 지진으로 탈선하고 별 난리통이 끝나고 나서 이차적으로 폭발했다는 듯하다. '동력원'도 미리 차단되어 있었다고 하고 말야. 아직 모를 일이지."
요나는 그렇게 말하고 고기를 잘라냈다.

"그러면... 나머지 한 곳은요?"
"거기가 아마도 부대의 다음 임무지가 될  같구나."
그녀가 웃으며 칼린을 보았다.

"이야기한 적 있던가, 이름은 칼타코다."


#

"돌아오셨군요, 이리하."
"죄송합니다. 많이 늦었습니다."
이리하가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자, 교주는 웃으며 손을 모았다.

"그럴 만한 일이 있었으니까요. 돌아와 주신 걸로도 감사할 일이랍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바로 일에 보고를..."
"괜찮습니다. 신문을 봤거든요."
그녀는 테이블 위로 신문을 내밀었다. 거기에는 폐허가 된 비나흐의 풍경이 찍힌 사진으로 헤드라인이 걸쳐져 있었다.


"일은 훌륭히 성공하신 것 같군요."
"...너무 크게 벌어진 게 아닌가 걱정이네요."
"아뇨. 일이 이렇게 흐른 것조차 그분의 뜻이겠지요. 질책할 것도, 자책할 것도 없습니다. 이번에 죽은 자들 중에 무고한 자가 있었을까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신문을 펼쳐 다시 이리하에게 밀어냈다.


"그리고 대도시에 이정도의 피해를 입힌 덕분에, 다른 피해를 입은 도시에 대한 것을 묻을 수 있었죠."
"무슨...?"
"칼타코의 대사관이 완전히 불타버렸습니다. 안에 있던 대사들도 전부 죽었구요."
이리하는 그녀가 건낸 신문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어디에도 그런 내용은 볼  없었다.


"이리하. 칼타코에서 자치정부를 만들어내고 싶어하던 것은 알고 계시겠죠."
"네. 분명 교단에서 지원하기로 했지 않았나요?"
"그렇죠. 하지만 제가 말하려는 건 그쪽이 아닙니다."
교주는 미소 지으며 신문을 덮었다.

"자치정부를 원하는 영지에서, 지진으로 대사관과 안에 있던 자들이 전부 무너졌다, 라... 이건 무슨 뜻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이리하가 입을 다물자, 교주는 후드를 벗고 손을 모았다.


"신이 주신 신호가 아니라면, 고통받는 민중이 보낸 신호인 겁니다. 지금이 성화(聖火)를 올리기에 가장 적절한 시기다... 하고 말이죠."
그녀는 이리하의 손을 감싸 잡으며 눈을 감았다.

"이리하 자매님, 힘든 일을 해내셨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쉴 수 있는 때가 아닙니다. 곧, 당신의 부대에게도 이 사실이 전해지겠지요. 칼타코는 방치하기에는 너무 이점이 많은 곳이고, 그렇다고 공론화 시키기에는 너무 불안정한 곳이니까요. 곧 당신의 부대가 구호라는 명목으로 출동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리하는 자신을 감싼 손을 바라보았다. 교주가 눈을 떴다. 보라색 눈, 이 정도로 신비한 빛깔을 그녀는  적이 없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아시겠나요?"
"...확실히 알아들었습니다."
둘은 서로를 마주하며 웃고 기도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미사를 향해 걸었다.

#


"아마 이번 일이 당신의 마지막 일이  것 같아요, 라드씨."
에테롬은 그렇게 말하고 게걸스럽게 들고 있던 폭 립을 뜯었다.

"이번 일의 성패가 당신의 운명을 결정할 거예요. 성공하시면 당신과 당신의 누이는 자유입니다. 실패한다면 둘 다 죽일 거예요. 도망치신다면 따라가 죽입니다. 그 정도로 이번 일은 중요합니다."
손가락을 빨며 그렇게 말하는 에테롬을 보며, 라드가 담배를 꺼냈다.


"꽤나 궁지에 몰린 듯이 말하시는 군요."
라드의 말에 에테롬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라드를 바라보았다.


"꽤나 궁지에 몰린 듯? 라드씨, 우린 좆됐습니다."
"헤?"
"충족 놈들에게 당신들을 보내고, 또 지원 병력들을 못 보내게 막아내는 데에는 어떤 노력이 있었을까요? 전 데버만의 영주를 회유했었고, 그는 제 제안을 받아들여 다른 8영주의 병력까지 막았었습니다. 소금부대는 살아 돌아왔고, 아이델씨는 저에게서 손을 털었어요. 이렇다  소식이 없는 것을 보면 숙청은 진행하지 않았거나 상회가 관여되어 있다는 증거를 찾아내지 못한 것이겠지만, 아무튼 우리 지금 상황은 풍전등화라는 겁니다."
그는 열심히 립을 뜯어먹으며 말했다.


"하지만 다음 임무, 다음 임무는 그 모든 걸 뒤집을 수 있는 탈출구입니다. 우리의 새로운 거점지를 찾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다음 임무에 대한 지령은 아직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멍청하긴, 뻔한 것 아니겠습니까? 당신들의 다음 임무는 '칼타코 복구작업'이 될 거예요."
라드가 이해를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자, 에테롬은 잠깐 그를 바라보다가  실례했다는 듯 냅킨을 흔들어 대며 입을 닦았다.

"이거 실례. 설명이 없었군요. 멍청한 건 저였네요. 제퍼만!"
에테롬의 뒤에 서있던, 거뭇한 피부에 마르고 키  남성이 그에게 종이를 건내 주었다.

"이 종이를 읽어 보세요."
라드에게 던져진  종이는 칼타코에서 온 것이었다. 지진을 틈타 대사관에 불을 질렀으며, 이것을 신호탄으로 혁명을 시작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다 읽으셨나요?"
"...뭐, 대충."
"그렇다면."
에테롬은 그 종이를 빼앗아 다시 제퍼만이라고 불린 남자에게 건내 주었다. 그가 그 종이를 왼손으로 받아내자, 곧 그 종이는 마치 물처럼 녹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기록이 남으면 안되는 문서거든요. 아무튼, 당신네 부대는 아마 '대사관이 지진으로 인해 불타버린' 칼타코로 향하게 될 거라는 겁니다. 복구작업을 명목으로 보내겠지만 아마 불손분자를 색출해내는 일같은 것도 시킬 거예요."
"그래서 에테롬씨가 원하는 건?"
에테롬은 그 말에 식사를 멈추고 라드를 보았다. 대화가 멈추고, 그의 뒤에 서 있던 제퍼만이 손관절을 풀었다.

"...요?"
라드가 뒤늦게 한마디 덧붙이자, 에테롬은 만족스럽게 다시 음식에 입을 가져댔다.


"말이 빨라서 다행이네요. 어디까지나 '잘'하라고 명령한 만큼, 이번 라드씨의 임무는 재량에 맡기는 형태가 아닐 거예요. 라드씨는 이번 임무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이예요."
그는 먹던 고기가 막혔는지 물을 삼켜내고 몇 번 명치를 두들기며 말했다.

"라드씨, 칼타코에 상회의 병력들이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 주셔야 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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