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화 〉여진(餘震)
칼린은 눈을 뜬다. 이상하게도 머리가 맑다. 평소처럼 악몽에 쫓기듯 눈을 뜬 것이 아니다. 오히려 좋은 꿈을 꾼 것 같지만,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는 거기까지 생각이 닿고 나서야 자신이 있는 곳을 둘러본다. 낯선 곳이다. 창 밖에서 흘러나오는 빛을 보니 벌써 아침이었다. 보아하니 어제 이바노프의 집에서 기절하듯 잠들었던 것 같다.
오랜만에 느끼는 필름이 끊어진 듯한 감각. 그러나 숙취가 있지는 않다. 그도 그의 몸이 만독불침에 가까운 것을 알기에, 약물같은 것은 의심조차 하지 못한다. 그저 어제 받아들인 새로운 사실이 너무 놀라웠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머리에 손을 댄다.
가면을 쓴 채로 잠들었던 걸까. 저들이 벗겨보지 않았다면 좋겠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입고 있던 정장을 몇 번 툭툭 털었다. 용케도 이런 걸 입고 잠들었다.
문 앞에서 그는 잠깐 망설였다. 이 문을 열고 나가면서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서서히 깨어나는 의식속에서 그는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을 한 것인지, 이 아침이 얼마나 어색해 질 것인지 곱씹으며 얼굴을 붉혔다. 크게 심호흡을 한번 하고서, 빠르게 여기를 떠서 대사관으로 가야 겠다고 결심한다.
"실례합니다..."
마치 친구집에 들어가듯 방 문을 열고 나온 그에게 보인 것은 이미 아침식사 준비가 끝난 식탁이었다. 소박한 식탁이지만, 분명히 삼인분이 준비되어 있었다. 이바노프는 귀여운 앞치마를 벗으며 칼린을 쳐다본다.
"타이밍이 좋군. 음식냄새에 눈을 뜬 건가?"
"아... 그게..."
칼린은 눈을 내리깔고 조금 고민하다가 천천히 발걸음을 옆쪽으로 옮겼다.
"큰 실례를 했습니다... 대접해 주시려는 마음은 고맙지만, 저는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오호, 어제 저녁에 그렇게 큰 난리를 쳐 놓고서 그냥 간다는 겁니까. 대범하군."
그의 말에 칼린은 흠칫 놀라며 발걸음을 멈춘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없다. 큰 실수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이 세계에 넘어온 후 부터 성욕이라는 것을 느껴본 적이 없으니까. 애초에, 만독불침인 그가 취해서 뭔가를 저지른다는 것이 말이 안된다.
하지만 그래도. 기절해서 잠꼬대로 뭔가 실례되는 말을 했을 수도 있다.
"아... 혹시... 제가 큰 실수를 했나요...?"
아침에 느껴졌던 묘하게 개운한 감정. 그것이 실수로 말미암은 것이라면 곤란하다. 당황한 칼린을 보며 이바노프는 조금 웃었다. 그리고 등을 돌렸다.
"아침이나 먹고 가시오, 큰 실수는 안 했으니 그걸로 봐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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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은 상당히 즐겁게 먹을 수 있었다. 이바노프가 준비한 요리가 선지로 만든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빅센마르크의 전통 요리라고 했다.
그러나 그 맛있는 음식을 두고도 칼린의 마음은 식사 내내 불편했다. 소냐가 계속 자신을 힐끔대며 보는 탓에 무슨 실수를 했는지 떠오르지 않아 미칠 것 같았다.
"...잘먹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 가면을 다시 내린 뒤, 소냐의 눈치를 보며 작게 질문했다.
"소냐씨, 혹시 제가 어젯밤... 뭔가 실수했을까요?"
"응? 아, 아니! 형씨는 괜찮아! 아무 일 없었습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을 하면서도, 상당히 동요한 듯한 발언. 칼린은 조용히 머리를 감싸 쥐고 담배를 꺼냈다.
"정말 가보겠습니다... 아침까지 얻어먹고, 정말 할말이 없습니다."
"잠깐."
이바노프는 칼린을 또 멈춰 세우고서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이제는 진짜로 가봐야 될 것 같은데-"
"안 막소. 잠시 기다리란 말이요."
그렇게 말하고서, 이바노프는 자신의 푸줏간 쪽으로 발을 옮겼다. 소냐와 칼린 둘만 남은 어색한 상황에서, 먼저 입을 연 것은 소냐였다.
"저기..."
"네?"
"... 아니..."
그녀의 반응은 지나치게 수상했다. 칼린은 그녀에게 다가가며 곤란한 듯 질문했다.
"제가 대체 어제 무슨 실수를 한 거죠...?"
소냐는 가면 너머로 어제 봤던 그 얼굴이 떠올라 얼굴을 붉히며 뒷걸음질 치다가 뒤로 넘어졌다. 꽤 강한 거부반응에 칼린도 충격을 먹어 뒷걸음질 쳤다.
"아니! 실수 때문이 아니라..."
소냐는 엉덩방아를 찧은 그 자세 그대로 조금 말을 생각해 보다가 고개를 떨궜다.
"잠꼬대를 들었거든..."
"잠꼬대요?"
칼린이 의아해 하자 소냐는 다시 말을 아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엉덩이를 털었다.
"형씨는 좋은 사람이예요."
"? 네..."
영문모를 격려를 받은 칼린이 당황하고 있을 때 이바노프가 다시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갈색 코트가 들려 있었다.
"사슴 가죽으로 만든거요, 항상 그것만 입어 대니 추워 보였거든."
그는 그렇게 말하며 칼린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에 그 코트를 걸쳐 주었다.
"사이즈는 대충 눈대중으로 재고 만들어 봤는데... 맞는군. 이제 이곳에 혹한이 찾아올 거요. 나 참, 추위를 안타는 건지 추위라는 걸 모르는 건지는 몰라도, 그대로면 얼어 죽는다니까."
평소와 같은 저음이었지만, 평소에는 냉랭하게 들리던 그것이 오늘따라 묘하게 따뜻하다. 아마도 코트 때문일까. 칼린은 그 코트를 조금 더 껴입어 본다.
"어때?"
소냐의 질문에 칼린은 잠깐 숨을 멈춘다. 어떠냐니, 말할 것도 없었다. 아니, 그것보다 말할 수가 없었다. 그가 느끼는 이 감정이 너무 오랜만이라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
"춥지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는 그 코트의 팔을 집어넣는다. 제대로 입고서 단추까지 전부 채운다. 그리고 다시한번 가면이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전 사실 추웠던 거군요."
그가 지금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 지 그도 알 수 없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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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관으로 돌아가는 길, 문 앞에서 칼린이 만난 것은 릴로였다. 그녀는 칼린을 보고 잠깐 발걸음을 멈췄다가 곧 어색하게 다가왔다.
"왜, 왠일로 네가 외박을?"
"아... 그..."
그는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생각해 보다가 적당히 답했다.
"마을 대표님이 초대해 주셔서 놀다가 피곤해서 잠들었었거든요... 거기서 이 코트도 선물 받았어요."
"아, 그래?"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서 어색하게 웃다가, 곧 문과 그를 번갈아 바라 보았다.
"안 들어가세요?"
"그게 말야..."
그녀는 식은땀을 흘리며 그를 바라보다가 작게 말했다.
"그... 나도 외박했다가 이제 돌아온 거거든..."
칼린은 릴로가 뭘 하고 온 건지 예상할 수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여자라고 생각하면서도 별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우리 둘이 같이 딱 들어가면 조금... 오해가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맙소사, 릴로..."
"아니, 혹시 말이야..."
"제가 잘 해명할 테니까 일단 들어가죠..."
칼린은 눈을 감고 대사관의 문을 밀어 보았다. 그러나 문이 열리지 않았다. 잠긴 것이 아니라, 뭔가에 막힌 것이었다.
"어라?"
칼린이 조금 더 힘을 줘서 밀어 보니, 곧 뭔가가 밀리는 느낌이 나며 문이 열렸다. 그리고 열리자마자 안에서 진하게 술냄새가 퍼져 나갔다.
"윽! 냄새..."
칼린이 발걸음을 들여서 보니, 문을 막고 있던 것은 쓰러져 있는 소니아였다. 칼린은 그제서야 표정이 굳었다.
"소니아씨가 이렇게 될 때까지 마셨다고...?"
그가 알기로는 소니아는 술이 센 편이었다. 애초에 이렇게 될 때까지 마시는 일도 별로 없었다. 그녀는 항상 술 취한 사람들에게서 이득을 뽑아내는 입장이었다.
도대체 다른 사람들은 어떤 꼴이 되어 있을지 예상조차 가지 않았다. 뒤따라 와서 질겁하는 릴로를 두고, 칼린은 조금 기대되기 시작해서 웃었다.
조금 걸어서 식탁 쪽으로 다가가니 이미 문에 걸쳐서 기절한 사람이 있었다. 얼굴의 반에 화상자국이 있는 사람. 자세이는 모르지만, 다리 공사할 때 륑게와 대화를 나누는 것을 자주 봤었다.
그리고 그 사람의 바짓가랑이를 잡은 채로 잠들어 있는 것이 갤러한이었다. 칼린은 근처에 던져져 있는 식탁보를 잡아, 푸르투가의 꼴사납게 드러나 있는 하반신 위로 덮어주었다.
식탁 위에는 륑게가 몸에 음식을 쳐 바른 채로 누워 있었다. 꽤 경건한 자세로 누워있는 그는 평온한 표정으로 잠들어 있었다.
"거나하게 놀았나 보구만..."
릴로도 맨정신으로 보기에는 추한 광경이었는지 눈가를 찌푸렸다. 칼린은 평소에는 당신도 저 사이에 있었다고 말하려다가 막 나오고 있는 사람을 보고서 그 말을 삼켰다.
"라드씨!"
"칼린. 릴로. 재밌는 자리를 놓쳤어."
라드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그리고 적당히 식탁의 빈자리에 앉아서 등을 기댔다.
"둘 다 아침은 먹었나? 수프가 조금 남았는데..."
그는 그렇게 말하며 뻗어 있는 륑게를 가리켰다. 칼린은 가면을 벗고서 라드에게 웃어 보였다.
"도대체 얼마나 마신 거예요?"
"하! 봤어야 됐는데. 갤러한이 그렇게 신나서 마셔 대는 장면은 본 적이 없다니까. 아무래도 저짝이 누워있는 푸르투가란 놈이 상당히 맘에 든 모양이야. 자리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게 하더군."
"다른 분들은 어디 계시죠?"
"핀이랑 도르베는 마실 기분이 아니라고 일찍 들어가 버렸고, 이리하는 평소처럼 마시다가 그냥 들어가버렸거든. 아스타는 나도 아직 못 찾았어."
그는 그렇게 말 하고서 잔에 남아있던 술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칼린과 릴로를 쳐다보았다.
"그래서... 릴로가 점수를 딴 거라고 생각해도 되는 건가?"
"... 아니란 거 아시잖아요."
칼린은 그를 향해 웃으며 난장판을 어떻게 정리할지 생각해 보았다.
"...일단 정리를 하죠. 두분 다 도와 주실 거죠?"
""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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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르베는 단 한숨도 자지 못했다. 아래층이 시끄러워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그 하룻밤동안 오감이 완벽하게 차단되어 있었다.
스트레스. 인정하기 싫은 사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현실. 그가 전쟁 때 상대했던 것은 인간이었고, 저들에게도 사연이 있다는 것.
피곤해서 몽롱한 머리를 잡고 도르베는 잠깐 심호흡을 하다가 창문을 열었다. 차가운 아침 공기가 그의 폐를 스쳐 지나갔다.
"...나갈까."
나즈막이 말하고서 그는 옷을 갈아 입었다. 그리고 몇 번인가 자신의 뺨을 치며 정신을 차린 뒤 최대한 당당한 얼굴을 만들었다.
이미 꽤 늦은 시간이다. 다른 동료들은 벌써 아침식사를 마쳤으리라. 전날 저녁의 상황을 몰랐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문을 열고 방을 나선다.
"...아스타?"
그리고 문 옆에 벽에 기대어 잠들어 있는 아스타를 보았다. 그녀는 팔을 늘어뜨리고 침까지 흘리며 달게 자고 있었다. 도르베는 그런 그녀를 가만히 보다가, 무심코 피식 웃었다.
"아스타. 왜 이런 곳에서 자는 거냐."
그리고 그녀의 앞에 쪼그려 앉아서 그녀의 볼을 잡아당겨 보았다.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손을 휘젓는 모습이 퍽 귀여워서 그 답지 않게 계속 장난을 치게 됐다.
"자기 방도 못 찾을 정도로 퍼 마신거냐. 멍청한 것."
그는 싱글대며 그 뺨을 계속 잡아당기다가, 그녀가 나시 한장으로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한쪽이 어깨까지 흘러내린 그 모습을 뒤늦게 깨닫고서 그는 얼굴을 붉히며 떨어졌다. 그리고 잠깐 헛기침을 하다가, 일어나서 자신의 방문을 다시 닫았다.
"자세한 건 깨면 들으마. 나 참, 심각한 고민을 못하게 만드는구나, 넌."
그는 그렇게 말하며 아스타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녀의 방까지 옮긴 뒤, 그녀를 침대 위로 올리고 이불을 덮어줬다.
"...아니, 어쩌면 심각하게 고민을 할 문제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잠든 아스타를 내려다보며 그렇게 혼잣말을 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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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는 밤 늦게까지 혼자서 훈련하는 나날이 계속되고 있었다. 마치 아직 자신이 부족하다는 듯 한계에 달할 때까지 단련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완전히 새로운 훈련을 해내고 있었다.
제삼자가 보기에는, 그녀는 혼자서 허공을 가르며 연습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어느 정도 검에 통달한 자가 본다면, 그녀가 가상의 누군가와 싸우고 있으며, 그 싸움이 사투에 해당되는 격렬한 것을 상정한 것이라고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그 가상의 상대의 움직임은 실제와 한없이 가까운 것이었다. 분명 그 상대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통찰을 반복해서 얻어낸 상상이리라. 그녀가 하고 있는 훈련은, 그 한번의 사투만을 위한 것이었다.
곧 검을 멈춘 그녀는 흐르는 땀을 닦아내고서 자신의 성에 들어온 마차를 돌아보았다. 이 시간에도 상인의 마차를 부를 수 있는 것. 요나는 이런 사소한 것에서 권력이 왜 필요한지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그녀는 마차에 다가가 그 뒤 짐수레에 실린 것을 하나 집어 들어 보았다.
주먹보다 조금 큰 크기의 마정석. 그런 것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곧 마부가 내려 요나에게 말을 걸었다.
"절반만 먼저 보냈습니다. 누구에게 걸리지 않고 한번에 옮기기에는 너무 많은 양이라서..."
"상관 없습니다. 수고하셨어요."
그녀는 마정석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그렇게 말했다. 잠시 그것을 바라보던 그녀는 곧 시종을 불렀다.
"그걸 가져와라."
"네."
시종은 그렇게 말하고서 잠깐 자리를 비웠다. 잠시 후, 그 시종은 등에 뭔가를 매고서 달려왔다. 베낭에 어깨 윗부분으로 양 옆으로 조명이 달려 있는 듯한 기계장치였다.
요나는 그 시종이 맨 장치의 개폐구를 열었다. 그리고 마정석을 집어넣은 후 개폐구를 닫았다.
"사용해 보거라."
"넵."
시종은 그 장치의 양 옆에 달려있는 줄을 자신의 팔에 감았다. 잠시 후, 장치에서 무겁게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깐 그 소리를 내던 장치는 곧 조명에서 빛을 뿜어냈다. 요나는 그 빛을 맞으며 눈가를 가렸다. 따뜻하고 안정된 빛. 그녀가 느끼기에는 틀림없이 이것은 태양빛이었다.
"... 소형으로 만들던 것은 어떻게 됐지?"
"일주일 내로 완성시킬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마레경에게는 아직 뚜렷한 말이 없고?"
"...네."
요나는 입을 다물고 그 태양빛을 마주했다. 따스한 빛이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그녀는 이 태양빛에서 칼린의 존재를 연상해내고 있었다.
부끄러운 일이다. 지난 몇일간, 그녀는 자신의 실수를 직면하는 나날을 보냈다. 자신이 어디에서 실수했는지, 어디에서 오만했는지 하나씩 되짚으며 스스로를 저주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을 양분으로 스스로를 혹독히 몰아붙이며 환골탈태를 노렸다.
"... 알았다."
바뀌어야 한다. 8영주의 자리에서도, 그녀는 아직도 부족하다. 완전무결한 자리를 지켜야 한다. 마지막의 마지막에 칼린과 자신만이 있을 철옹성을 구축해야 한다.
모든 거친 일은 완성될 그 성만을 위해. 그녀는 자신의 각오를 다시 한 번 되새긴다.
"그걸 50개 만들어 두라고 전해라. 그리고 소형 발광기는 개발을 끝마치는 대로 대량생산할 준비를 하라고 전해."
"...알겠습니다."
시종은 팔에 감은 줄을 풀어낸 뒤 불 꺼진 장치를 들고 자리를 이동했다. 마부는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요나경. 실례지만 한 말씀드려도 괜찮겠습니까?"
"말하시오."
"지금은 마부로서 왔지만, 저도 어엿한 오로아나 상회의 행상인입니다. 전달업무를 부탁 받으면서 상회에서 그 어떤 설명도 듣지 못한 저로서는 조금 의문이 생기는 군요. 경제적으로 조금 무리하고 계시는 게 아닙니까?"
그는 담배를 꺼내 들고 요나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라티아쪽 장인들까지 동원해서 뭘 계획하고 계시는 겁니까?"
요나는 대답 대신 담배를 꺼내 들었다. 마부가 건내 준 성냥으로 그 불을 붙인 그녀는 연기를 빨아들이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곧 벨카의 확장지에 개간이 완료됩니다. 거기로 몰락하고 있는 바나루크의 마도공장들을 옮길 거예요."
"...그것도 돈이 들어갑니다만."
"그리고... 곧 큰 사건들이 벌어질 겁니다."
행상인은 요나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하늘에 높이 뜬 두개의 달을 홀린 듯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니 부디... 그 고삐나 꽉 잡으시길 바랍니다. 휘말리지 않도록 떨어져서 말이죠."
경고하는 그 모습은 소름 끼칠 정도로 요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