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43화 〉참수자 (143/164)



〈 143화 〉참수자

요나의 수업은 확실히 리쿠르트의 수업보다는 부족했다. 그러나 요나도 그것을 알기에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이것저것 보충을 했다. 대표적인 것이 그녀의 풍부한 현장 경험이었다.

"이론상의 이야기이지만, 마관 자체를 확장시키면 마나의 최대 출력을 높일 수 있다. 한 번 본 적도 있지. 마관 확장제라고, 8년 쯤 전에 시중에서 돌아다니던 마약류가 있었다. 약간의 개량을 거쳐서 군용으로도 보급됐거든. 포션보다 부작용이 훨씬 커서 전쟁 중에도 급한 일이 아니라면 사용하지 않았었다."
이런 식으로, 그녀는 배우고 있는 상식에 약간의 트리비아를 섞으며 칼린의 흥미를 잡으려 했다. 그러나 칼린에게 그런 것이 크게 효과가 있지는 않았다. 그의 시선은 이세계를 떠나 있었기에. 요나의 가장 급선무는 그가 돌아가는 것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책을 덮었다.

"...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하지. 수고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래. 저녁식사가 끝나면 바로 나갈 것이다. 미리 채비를 끝내 두도록. 딱히 준비할  없겠다마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서 짐을 정리하고 칼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첫 수업은 만족스러웠나?"
"더할 나위 없었습니다."
이제는 단어선택도 고급스럽다. 그러나 가르치는 입장까지 되고 나니, 저 모든 것을 가르쳐 온 것이 리쿠르트라는 사실에 속이 쓰리다. 그녀는 그 욱신거리는 듯한 감각을 곱씹다가 자조적으로 웃었다.

"... 처음부터 내가 가르쳤다면 좋았을 것을..."
칼린에게는 더 이상 리쿠르트가 처음에 말했던 학구열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의 예상보다도 조용하게 진행된 수업은 어떻게 보면 그녀의 자업자득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일단 리쿠르트가 없다는 것과 칼린의 시간을 독차지할 수 있다는 것은 좋았다.

"오늘 저녁도 성찬이다. 간단히 준비하고 나오도록. 식당에서 기다리마."
천천히 바꿔가면 된다. 그의 경계심은 아직 그녀에게 향하지 않으니까 시간은 충분하다. 오늘 저녁에는 어디로 갈  따위를 생각하며, 그녀는 방을 나섰다.

#

그들이 발을 옮긴 곳은 광장이었다. 밤거리의 광장은 칼린이 처음 왔을 때와 많이 바뀌어 있었다. 칼린이 전에 살던 곳과 비견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밝은 가로등과 건물들의 조명들이 밤거리를 밝혀내고 있었다.

"많이 바뀌었지. 안 그런가?"
처음 왔을 때 까지 생각할 것도 없이, 칼린이 마지막으로  광장을 지났던 충족 사냥 전 때보다도 많은 발전을 보이고 있었다. 이 성장속도에는 과연 칼린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대체 어느정도 속도로 발전중인 건가요...?"
그 반응은 요나를 만족시키기에는 충분한 것이었다. 그녀는 화려해진 밤거리를 자랑스럽게 바라보며 말했다.

"조명(照明)기술이다."
"조명...?"
"새로운 광원기술을 찾아내던 도중에 여러가지 발견해서 말이야. 라티아와 협업해서 조명기구 공장을 설립하기로 했단다. 여러 개가 이미 개발되었지. 이 거리가 그 첫 시험대이고. 대학에서도 마법학의 연구와 함께 광원연구를 진행하고 있어."
"... 대단하네요."
"대단하지. 네가 온 곳도 금방 따라잡을 거다. 그럴  같지 않나?"
가볍게 농담을 던지고서 그녀는 조명을 올려다보았다.

"그냥 보여주고 싶었다. 이 밤거리는 네가 만들었다는 걸 말이다. 설령 전 인류가 너를 증오하고 적대하더라도, 난 네가 만든 이 풍경에 감사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 알고 있어요. 항상 고마워요, 요나."
"생색내려고 했던  아니다. 조금 더 활기차게 걸으라는 말이다. 곧 돌아갈 수 있는데 기쁘지 않은거냐?"
요나 답지 않은, 조금 억지를 끼운 격려. 평소의 품위는 없었지만 칼린에게는 그런 모습도 싫지 않게 다가왔다. 그는 웃으며 조금 혼란스러웠던 머리를 정리해 보았다.

"... 그럼, 벨카를 즐기게  주시죠, 영주님."
"... 오냐! 내게 맡겨라!"
조금 활기를 띈 칼린의 목소리에 요나는 다시 입가를 들어 올렸다. 어제같은 분위기를 다시 내기는 힘들 것을 알고 있다. 당장 오늘 아침에 리쿠르트가 떠났으니까. 그렇다면 그년을 잊을 정도로 즐거운 매일을 만들어 주면 된다.

"분수를 향해 가보자꾸나. 그 주변에 아름다운 등불들을 달아 놨어. 몇개는 빛에 색도 입혀 보았다! 스테인드 글라스처럼 빛이 나지... 그래! 색이 있는 빛이라고 하니 떠오르는군. 마레경이 이번에 아이디어를 하나  냈는데 말이다,"
요나는 사춘기 남자애같은 방식으로 칼린을 안내했다. 그것이 그녀가 아는, 유혹이라 하기에도 부끄러운 것이었지만, 유일하게 이성을 유혹하는 방법이었다. 그래도 그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지금 순간을 이용해 최대한 칼린과 가까워지고 싶었다.

"우리가 탈 비행선말이다. 그냥 비행선이 아니거든. 초호화 객선이다! 8영주의 특권이 여실하게 드러나는 과학기술의 집합체 와도 같은 물건이지. 글쎄 마레경이 거기 외벽에도 홍보물을 붙인다고-"
그리고, 그녀의 최선을 담은 노력이 산산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폭음이었다.

#

"... 가끔 느끼는 거지만, 내 여자친구님은 행동력이 너무 좋단 말이지."
갤러한은 그렇게 말하며 어느새 짐정리가 끝난 리쿠르트의 방을 보았다. 성에서 쫓겨난 직후, 그녀가 발을 옮긴 곳은 소금부대가 숙박하는 여관이었다. 그녀는 그 곳에 머무르며 벨카 대학을 다니기로 결심했다.

"확신이 들었다면 행동으로 따라야죠. 행동하지 않는 지혜는 어느 짝에도 쓸모가 없답니다."
그녀는 땀을 닦아내며 갤러한을 향해 웃어 보였다. 그리고 술잔을 하나 갤러한에게 들이밀며 즐거운  외쳤다.

"자 그럼, 새로운 나날을 위해 건배!"
갤러한은 그 술잔을 어색하게 붙잡고서 팔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조금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저기, 리쿠르트... 지금 여기 분위기가 그렇게 좋지가 않아서 말이야... 건배는 조금 자제하는 게..."
리쿠르트도 다른 부대원들의 상황을 대강 파악한 상황이었다. 모두들 갤러한의 여자친구가 이 곳까지 찾아오자 한 명씩 방에서 나와 인사했으나, 소니아와 핀은 완전히 얼굴색을 잃은 상태였고, 륑게는 어딘가 부루퉁해져 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릴로는 평소와 같이 천박했고 이리하는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그냥 조용히 마시자고. 어때?"
"... 제가 조금 경솔하긴 했네요. 죄송합니다. 조금 들떠서..."
"아니야! 저 바보들은 잊고 둘이서 조용히 마시자구. 물어보고 싶은 것도, 말하고 싶은 것도 많아..."
갤러한은 그렇게 말하고서 그녀의 침대 위로 앉았다.

"그나저나, 짐이 그렇게 많지도 않은데 왜 굳이 각방을 써? 아예 같은 방으로 앗싸리 잡아버리지."
"안돼요. 부대가 사용하고 있는 숙소에 외부인이 들어온 것도 특수 케이스인데, 연인이 같은 방까지 사용하게 한다니. 말도 안되는  잖아요."
"말이 안될 건 뭐야."
"문란해진다는 겁니다! 저도 아쉽지만 이게 맞는 거예요."
그녀는 살짝 웃으며 갤러한의 이마를 가볍게 틩겨냈다. 그리고 술을 한 모금 들이마셨다.

"그래서 말하고 싶으신  아마... 요즘 연락이 뜸했던 이유와 성에 찾아오지 않은 이유. 그렇게 두가지인가요?"
"아니, 뭐... 그 두개는 따지고 보면 하나의 이유거든. 그러니까 그 말은 일단."
그는 양 손날을 세워 마치 짐덩이를 옮기는 듯한 동작으로 팔을 움직였다.

"나중에. 오케이?"
리쿠르트는  우스꽝스러운 손동작에 조금 웃음을 터트리고서 갤러한에게 더 붙었다.

"그러면 뭐부터 이야기할까요? 저도 할 말이 너무 많은데."
"그럼 일단 그거지... 아직 설명을 못 들어서 그러는데."
갤러한은 주머니에서 씹는 담배를 꺼내 조금 만지작거리다가, 만일에 대비해 그것을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고 리쿠르트에게 고개를 돌렸다.

"성에서 쫓겨났다는 게 무슨 소리야?"

-

리쿠르트는 최대한 짧고 간결하게 아침에 있던 일을 설명했다. 그녀의 의견을 완전히 배제하고 일어났던 일들만 나열하듯 말했다.

"... 정말 칼린이 네가 필요 없다고 했다고?"
 말에 담긴 것은 의문이나 실망감 따위가 아니었다. 어딘가 예상했다는 듯한, 하지만 믿고싶지 않았다는 듯한 어조가 분명하게 내포되어 있었다. 리쿠르트는 그런 걸 놓칠 정도로 둔감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응수하고서 갤러한의 손을 잡았다.

"뭔가 알고 계시는 군요."
갤러한은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얼굴을 이리저리 구겨 대다가, 곤란한듯 리쿠르트의 눈을 피하고서 조용하게 입을 열었다.

"... 아직 확신할 수는 없는 정보야."
"들려주고 싶지 않나요?"
"말해 줄 거야. 하지만 그 전에, 네 생각이 듣고 싶어."
그는 리쿠르트의 손위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리쿠르트는 그 손을 내려보다가 피식 웃었다.

"제 생각은 전과 같아요. 칼린은 지금 스스로 생각할  있는 상태가 아니에요."
"그 말은?"
"그는 지금 스스로 사고하는 방법을 잊었어요. 분명 힘들었던 거곘죠. 그리고 그 틈을 '누군가'가 파고든 거구요. 갤러한, 당신의 생각도 저와 얼추 비슷한 건가요?"
그가 할 말은 그런 류의 이야기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코 따로 볼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는 다시 한번 고뇌하다가 리쿠르트와 눈을 마주쳤다.

"리쿠르트. 지금이 마지막 기회야."
"네?"
"난 더이상 칼린과 영주에게 관여되고 싶지 않아. 너도 계속 그쪽에 관여되면 위험해 질 거야. 이제 깨끗하게 그쪽에서 손 털자."
"갤러한?"
"영주는 우리 생각보다 더 미친년이야. 칼린도... 아직 확신은 못하지만, 뭔가 있어. 우리가 관여해서는 안될 일이야... 제발."
리쿠르트는 갤러한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  뒤에는 공포까지 숨어 있었다. 그는 확실하게 뭔가를 알고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그럼에도 그녀는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갤러한, 저는..."
조용해진 방 안에서, 리쿠르트가 자신의 각오를 말하려 할  였다.

어디선가 폭음이 크게 울렸다.

#

"젠장, 무슨 상황이냐!"
요나는 칼린과 함께 폭음이 난 방향으로 빠르게 발을 옮겼다. 그리고 행인하나를 거칠게 붙잡아 상황에 대해 질문했다. 그녀의 눈은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여, 영주님? 왜 여기에...!"
"말이나 해! 무슨 일이 벌어진 거냐!"
그녀는 이성을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불쌍한 행인은  모습에 겁에 질려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저, 저도 잘...!  현장에 있던 것이 아니라서...!"
폭발이 일어난 곳은 공장이었다. 밤에 공장 근처를 지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여기 모인 사람 대부분이 이 폭음을 듣고 몰려온, 공장 근처 쪽에서 거주하고 있는 조금 가난한 사람들이리라. 요나는 혀를 차며 그 공장을 올려다보았다.

"젠장, 하필 이런 때에...!"
"영주님, 일단 뭐라도 하죠!"
칼린은 그렇게 말하며 요나를 지나쳐 가려 했다. 요나는 그와 함께 공장으로 발을 옮기다가 문득 뭔가를 떠올리고서 발을 멈췄다.

"영주님?"
그런 그녀의 모습을 이상하게 보는 칼린에게, 요나는 고개를 돌려 말했다.

"여기서 기다리거라."
"네?"
"아니, 이 자리를 벗어나라. 인근에서 대기하고 있어."
이해할 수 없었다. 칼린이 보기에는 공장 폭발은 꽤 큰 사건이었다.  자신을 두고 가려는 것 인가.

"하지만 영주님..."
"내 명령에 '하지만'이 있다고 가르쳤느냐!"
불을 등지고서 그녀는 역정을 냈다. 칼린은 그 모습에 조금 흠칫했다가 곧 고개를 숙였다. 그래. 그녀의 명령에 답을 하면 안되는 것이었다. 대체  그런 말을 한 건가.

"... 죄송합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금방 돌아가마."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서 거칠게 정장 상의를 벗어 던졌다. 그리고 불길을 향해 발을 옮겼다. 칼린은 그런 요나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곧 등을 돌려 맞은편 공터 쪽으로 발을 옮겼다. 그녀의 명령대로 폭발한 공장 현장이 보이지 않는 곳까지 자리를 벗어난 칼린은 가만히 자신이 했던 일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 질문하면 안돼.'
그는 그렇게 되뇌이면서 담배를 한개피 꺼냈다. 그리고 붉게 타올라오는 연기를 멀직이에서 지켜보며 평소와 같이 생각을 비우는 것으로 안정을 찾으려 했다. 그 때 였다.

"아이고!"
근처에서 조금 높은 옥타브의 비명이 들려왔다. 칼린이 그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보니, 무거운 짐가방을 매고 있는 여성 하나가 넘어져 있었다. 그녀는 조금 꼬물대며 바닥에 엎어져 있다가, 곧 몸을 일으키며 무릎을 털어냈다.

"하... 짬처리나 시키고 말이야..."
그리고 놓쳤던 노트를 다시 주워들어 소중한  먼지를 털어 대다가, 곧 자신을 지켜보고 있던 칼린과 눈을 마주쳤다. 곧 그녀는 칼린을 처음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는 것처럼 그저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칼린은 이제 그 반응이 익숙했다. 그는 다시 고개를 화제현장으로 돌려 무심하게 담배를 피워 댔다. 그러나 그녀는 조용히 지나갈 생각이 없는지 칼린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조, 좋은 밤이네요! 그, 아가씨...? 총각?"
횡설수설하면서도 머리를 정돈해 가며 칼린에게 다가온 그녀는, 헷갈리는  호칭을 바꿔 대다가 반응이 없는 칼린에 불안해진건지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초, 총각 맞나요?"
"... 무슨 용건이십니까."
칼린은 조금 귀찮아서 일부러 차갑게 말했다. 그러나 반응을 한  마냥 기쁜 것 일까. 그녀는 자신의 노트를 앞세우며 한달음에 거리를 좁혔다.

"남자분이셨군요! 이야, 정말 아름답게 생기셔서 저도 모르게 헷갈렸어요! 반가워요! 벨카의 수습기자 페이크라고 합니다!"
칼린은 그녀를 한번 훑어보았다. 양갈래로 땋은 갈색 머리, 화장기 없는 수수하고 깔끔한 얼굴. 요나나 이리하같은 미인은 아니었지만 단정하고 귀여운 상이었다. 등에 짊어진 것은 카메라였나. 그는 그렇게 판단하고서 다시 고개를 돌렸다.

"제게  걸지 말아주세요."
칼린의 말을 듣기는 한 걸까, 그녀는 짊어지고 있던 카메라를 내리고서 그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붙었다.

"이야, 벨카에 이렇게 아름다운 분이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혹시 배우 지망생 분 이신가요? 잠깐이라도 좋으니 취재해도 될까요?"
칼린은 얼굴을 약간 찡그렸다. 그녀의 행동은 그가 아는 누군가를 연상시켰다. 딱 마레와 판박이다. 담배를 거칠게 빨아 넘기고서, 그는 고개를 돌렸다.

"너무 귀찮게 하지 마세요. 그 이상 다가오지 마세요. 제가 할 말은 그것 뿐 입니다."
가면을 벗으면 바로 이 꼴이다. 가면이 없으면 그는 소금부대의 칼린조차 아니다. 그렇다고 지금 가면을 꺼내 쓰자니 '칼린의 가면 뒤'의 소문이 바뀌는 것이 걱정되어 가면을 다시 집어 쓸 수도 없다.

"까칠한 오라버니네! 하지만 첫눈에 반해버려서 말이죠! 조금이라도 취재하게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 대신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저 화제에 대한 거, 조금 알고 있어요!"
그 말에 칼린의 표정이 바뀐다.  인지 모르겠지만 그는 그 화제를 신경 쓰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요나가 이쪽으로 자신을 보낸 것은 그것에 관한  생각하지 말라는 은연중의 경고였을 것이다. 그는 잠깐 고민하다가 고개를 살짝 돌렸다.

"... 뭔가를 아신다구요?"
"네! 지난주부터 기자들 사이에 돌던 찌라시가 하나 있는데, 그거라도 괜찮으면 말해  수 있어요!"
이걸 질문해야 하는가. 내가 알아도 되는 진실인가. 그의 머리속은 혼란스럽게 빙빙 돌다가, 곧 유혹을 넘기지 못하고 담배를 바닥에 던져 꺼냈다. 그리고 한걸음 더 그녀에게서 물러난  입을 열었다.

"... 질문은  거리를 유지하며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까칠하긴! 그것도 좋네요! 그럼 먼저... 이름부터?"
"제 이름은..."
그는 잠깐 고민하다가 적당히 가명을 떠올려 냈다.

"카... 캐.. 캘런입니다."
"캘런씨, 무슨 일을 하시나요?"
"떠돌이입니다."
"아하! 떠돌이셨구나! 벨카에 오신지는 몇일이나 되셨죠?"
"오늘 잠깐..."
"잠깐 오셔서 주무실곳을 찾다가 이 폭음을 듣고 오신 건가요?"
"네, 뭐..."
그녀의 어림짐작 덕분에 대답은 상당히 편했다. 그녀는 이것저것 노트에 적어 대며 계속 질문해 왔다.

"떠돌이를 하기에는 정말 아까운 외모시네요! 아! 뭐라 하는 건 아니에요! 그럼 캘런씨, 좋아하는 여성 타입은?"
"... 장난치시는 건가요?"
"아이코, 문득 사심이! 죄송합니다! 다음 질문! 마도 방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갑작스럽게 들어온 질문에 칼린은 숨을 들이 마셨다. 그는 마도 방식이라는 걸 자세히 모른다. 그저 마나를 운용해 공장 또는 기계를 움직이는 방식이라는 것 정도밖에 모른다.

"그건..."
"그건?"
"... 대답하고 싶지 않습니다."
섣불리 답했다가 그녀가 이상한 것을 눈치채면 큰일이다. 마도 방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니, 어떻게 들어도 어딘가 가시가 숨어져 있는 질문이었다. 칼린이 그 질문에 답을 피하자,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조금 숙였다.

"그런가... 뭐! 이해합니다! 함부로 부정하기 힘든 주제죠! 뭐니뭐니 해도, 저 화제도 마도 방식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일으켰다는 찌라시가 있으니 말이죠!"
"네?"
"마도 방식을 반대하는 조직이 있는데,  조직에서 마도 방식으로 운영되는 공장이나 설비, 기구들을 폭파시키고 다닌다고 하더군요! 벨카도 이번에 칼타코 조약으로 공장 수가 급증했으니까 말이죠!  타겟이 되겠구나... 하고, 기자들은 어느정도 예상 중이었답니다!"
칼린이 전혀 이해하지 못할 말들을 뱉어  그녀는 천진난만하게 웃고서 노트를 넘겼다.

"다음 질문! 나이는 어떻게 되시는지..."
"잠깐... 잠깐만요. 그러니까 지금 화제가 어떤 조직에 의한 계획범죄라는 건가요?"
"? 아뇨, 그냥 그런 소문이 돈다고 말할 뿐이예요... 확답은 안되죠."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서 조금 이상한 듯 칼린을 쳐다보았다. 칼린은 곧 평정을 되찾고 머리를 감싸며 다시 담배 곽을 꺼내 들었다.

"... 27살이예요."
"정말요? 솔직히 20대 초반 정도 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요염함은 농익은 매력같은 거였군요!"
"뭡니까, 그게."
"자, 그럼 마지막 질문!"
칼린은 담배에 불을 붙이며 기자를 노려보았다. 기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칼린을 보며 웃었다.

"당신은 노예입니까?"
"...네?"
그리고 파격적인 질문을 뱉었다.

"이리저리 끌려 다니기만 해. 당장 닥쳐올 괴로움이 두려워서 계속 자신을 속이지. 이게 맞다고. 내가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고. 치마폭이 따뜻하고 편해서 자신이 벌여온 일을 다시 생각해 보려고 하지도 않아. 그저 벌어진 일로 넘길 뿐. 괴로움이라는 감각 자체를 벗어나기 위해 완전히 생각과 감정을 닫아버렸지. 그래서 묻는 겁니다."
칼린의 눈이 서서히 붉게 물들어 간다. 담배를 쥔 손이 가볍게 떨린다. 지금 듣고 있는 말이 현실인지 아닌지 분간할 수가 없다.

"당신은 노예입니까."
다시한번, 선포처럼 떨어지는 질문에 칼린은 조용히 물고 있던 담배를 떨군다. 환청인지 현실인지 알 방법은 없다. 그러나. 그러나 그 질문은 칼린의 정곡을 찌르고 있었다. 그는 손에 힘을 줘서 출혈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칼린!"
요나가 다가왔다. 그녀는 칼린에게 달려오다가 곧 기자의 존재를 눈치채고 시선을 돌렸다.

"... 누구냐?"
칼린은 그제서야 조금 정신을 차리고서 자신의 주먹을 펼친다. 그 기자는 요나와 칼린을 번갈아서 바라보다가 활짝 웃는다.

"이야, 영주님! 캘런씨, 영주님과도 아는 사이셨던 겁니까? 일개 모험가가 아니었었나요?"
"누구냐고 물었다."
"아, 죄송합니다! 페이크라고 합니다! 일개 신임기자입니다!"
그녀는 활기차게 웃으며 요나를 향해 경례했다. 그러나요나는 표정을 풀지 않고서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와 무슨 대화를 했느냐."
"아뇨, 그냥 너무 잘생기셨길래 무심코  걸어봤을 뿐이고... 영주님 관계자인줄 알았더라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겁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화제 취조나 하러 왔을 뿐입니다!"
그 싹싹한 대답에 요나는 아직도 납득가지 않는  얼굴을 일그러트리다가, 곧 칼린을 향해 다가가며 말했다.

"... 가자. 기다리게 했구나. 이상한 여자까지 꼬이고..."
"아니, 저 그래도 캘런씨랑  유익한 대화를 했는걸요... 그렇죠, 캘런씨?"
그녀가 헤실대며 칼린에게 다가온다. 칼린은  모습에 바로 피를 뽑아내 검을 만들어 그녀의 목에 가져다 댔다.

"다가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는 심하게 혼란스러웠다. 그 질문. 진실이었는지 환청이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식은땀까지 흘려 대며, 그는 검을 쥔 손에 힘을 줬다. 기자는 그런 그의 경계에 많이 놀란  뒤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죄, 죄송합니다!"
진심으로 겁에 질린 듯한 모습에, 칼린은 자신이 또 사고를 쳤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황급하게 검을 다시 집어넣고서 요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 괜찮다. 아무 문제 없어."
요나는 불안한 듯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칼린에게 다정하게 말한 뒤, 그의 어깨를 잡고 방향을 꺾었다. 그리고 아직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기자에게 말했다.

"오늘 네가  것. 취재한 것. 전부 잊어라. 오늘은 아무 일도 없던 것이다."
"네...! 네! 죄송합니다!"
바짝 엎드려서 파르르 떨고 있는 그녀를 보고서, 요나는 불쾌한 기분을 숨기지 않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혼자 두면 '나의' 칼린에게 저런 잡것까지 추파를 던지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니 점점 기분이 나락으로만 빠져들어갔다.

오늘은 요나에게 그렇게 유쾌한 날이 되어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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