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48화 〉참수자 (148/164)



〈 148화 〉참수자

긴장감이 돌고 있다. 약 50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 성을 둘러 싸고 있다. 원래 계획보다 조금 적은 수지만, 그 정도로도 충분할 것 같다는 디마코의 첩보였다. 잉여인원들은 에테롬 경호인원에 추가되었다.

하나 하나가 평범한 마을 주민들처럼 입고 있지만, 여기저기에 숨어 있다. 나무를 붙잡고, 바닥을 기면서, 들키지 않게 호흡을 정돈하고 있다. 그들은 전부 숙련된 전사들이다. 용병 짬이  자리수에 임박하는 자들도 있는 것이다.

둘둘이 나누어져 반은 후문 쪽으로 돌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성은 잠잠하다. 너무 적막해서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길게 까마귀 울음소리가 퍼져 나간다. 시간이 점점 다가온다.

"... 원래 성에 저렇게 사람이 없나?"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거야... 라드가 죽었어.  기밀유지를 위해 성 내에 인원들을 전부 뺀 거지. 저 쪽도 라드가 사고사했다는 조작을  끝내 놓으면 인원을 함부로 불러모을 수 없는 상태라는 거야."
"젠장, 아무리 그래도 말이야..."
"쉿."
8인 용병대. 에테롬의 긴급 소집으로 모여온 베테랑들. 그 중 리더인 휴이는 벌써 용병일만 12년을 해 왔다.그는 얌전히 고개를 숙여 성을 바라보다가, 자신의 눈 앞에 있는 지휘자들의 모습을 바라본다.

달의 역광으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지만, 누가 자신들을 이끌고 있는 지 정도는 알고 있다. 캘리건과 디마코. 그는 디마코와는 한  일을 같이 한 적이 있다. 분명 지난번에는 가면을 쓰고 있었는데, 맨 얼굴은 저렇게 생겼던 건가.

"들어간다."
작은 목소리로 디마코가 말하자, 모두의 몸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캘리건이 통신기를 향해 후문쪽 침투부대와 에테롬에게 상황을 전달하고 움직인다.

미끄러지는 듯 들어간 그들은 망설임없이 정문의 가드 둘을 죽였다. 도살자의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실력이었다. 서서히 정원을 흙발로 밟고 들어간 그들은, 가드 6명을 죽이고서 정문에 발각 없이 도착했다.

"정문 도착. 들어간다."
캘리건이 주위를 볼 동안, 10명의 부대원은 산개해서 은신한다. 그 동안 디마코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문을 소리없이 열어낸다. 문이 그 어떤 소리도 없이 조용히 열린다.

성의 정문으로 조용하게 들어가 또 각자 은신한다. 그 어떤 사용인도 보이지 않는다. 휴이는 조금 한산한  안쪽에 긴장을 조금 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아무도 없군."
"방심하지 마. 몸을 낮춰."
디마코가 그렇게 말하고서 시선을 보낸다. 휴이는 그런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신기한 듯 조금 다가가 몸을 낮춘다.

"... 날 기억할 지 모르겠군. 전에  번 만난  있는데 말이지."
디마코의 표정이 조금 일그러진다. 그는 조금 생각해 보는 듯 하다가 답한다.

"... 미안하군. 기억력이 좋지는 않아서."
"아니, 뭐. 생사를 넘나드는 끈끈한 전우애가 있던 건 아니었어. 다만, 가면을 벗고 있는  신기해서 말이야."
"원래 가면을 쓰고 다녔어?"
캘리건이 끼어든다. 디마코는 살짝 눈가를 찡그린다.

"지금이 수다 떨기 좋은 타이밍은 아닌 것 같군."
"입닥쳐. 난 아직 너 안 믿어. 것보다 후방부대에서 아직 연락도 안 왔잖아? 뭐 어때."
캘리건은 그렇게 말하고서 다시 고개를 휴이에게 돌린다. 휴이는 조금 웃으면서 답한다.

"그 때는 말이지, 올빼미 가면을 쓰고 다녔거든. 대체 얼굴이 어떻게 생겨 먹었길래 저런 가면을 쓰고 다니나 궁금했었지. 전쟁  이후로 소식 들은 게 없었는데, 설마 이렇게 가면을 벗고 만날 줄이야."
'후방 침투부대, 돌입 완료.'
"이런... 넌 날 따라와."
캘리건은 그렇게 말하고서 성의 입구에 있는 양갈래 계단 중 오른쪽으로 발을 옮겼다.

"디마코, 넌 왼쪽으로 올라가라. 나머지는 알아서 산개해."
"통신기 넘겨. 너네 쪽이 후방부대를 먼저 만날 테니까."
"씹... 알았어. 가져가. 그래서 그... 네 이름이 뭐지?"
"휴이."
"휴이. 디마코에 관한 이야기 좀 더 해봐. 뭐 건덕지만 있으면 에테롬씨한테 일러야지, 씨발새끼."
잠깐 대화를 멈추고 산개해서 계단을 올라간다. 오른쪽 홀로 통하는 벽에 몸을 기대고서, 캘리건은 지도를 펼쳐 본다. 요나의 방은 이대로 한 층 더 올라가면 있다. 디마코가  방향에는 영주실이 있다.

"디마코와 별로 사이가  좋은  같군. 하지만  자식, 실력은 진짜야."
"헤, 어느 정돈데."
"저 놈 옷에 피가 묻는 걸 본 적이 없어. 대단하더군. 누가 접근하기도 전에 전부 죽여버리는데..."
둘의 대화가 잠깐 멈춘다. 뭔가가 스쳐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예민해진 감각은 사소한  까지 전부 잡아낸다. 소리가 들린 곳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아무 것도 없다.

"...그런데?"
"동시에 진짜 이상한 놈이었어. 올빼미 가면에, 말도 절대로 안했거든. 보통 필담으로 대화했지. 목소리는 처음 들어. 난 그래서 댁과 디마코가 친한  알았거든."
"입에 걸레물고 다니는 앤데. 다른 애랑 착각한  아닌가?"
"글쎄. 저놈도 전쟁을 겪었으니 바뀌어도 이상할 건 없잖아?"
"잠깐. 저놈이 전쟁을 어떻게 겪겠어. 전범인데 말이야."
"뭐? 전범?"
"몰랐어? '천변만화'잖아. 첩자출신인 새끼라고."
다섯은 거기까지 말하고서 층개수를 올라간다. 계단을 올라왔지만, 아직도 시종은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 디마코가 '천변만화'라고?"
"첩자출신이잖냐. 진짜 같이 싸웠던 것 맞아?"
점점 더 작은 목소리로 잡담하다가, 요나의 방 앞쪽에서 둘은 대화를 멈춘다. 숨소리를 한계까지 줄이고서, 총으로 무장한 세명이 요나의 방  앞쪽으로 슬금슬금 이동한다. 그리고-



문을 향해 총이 세 발 발사된다. 고요한 성의 정적을 총성이 깨부순다. 나머지 셋은  문을 발로 차 열어 몸을 굴리며 들어가 바로경계자세를 취한다.

그러나 그녀의 방은 비어 있었다. 캘리건은 긴장을 풀지 않으며 그의 짧은 도축칼을 이리저리 돌리며 사주경계를 시작한다.

"... 없나?"
"영주실에 있나 보군."
"젠장! 디마코 새끼, 점수 따겠군. 그럼 우린  남창인지 창녀인지를 죽이러 가자고. 총성이 울렸으니 슬슬 서둘러야 해."
캘리건은 혀를 차며 곧바로 움직이려 했다. 휴이는 그런 그를 따라가며 조금 생각하다가, 그를 향해 말했다.

"잠깐... 말할 수 있는 틈에 말 해야겠어. 뭔가 이상하군."
"뭐? 뭔데."
"디마코가 천변만화라고?"
휴이의 얼굴은 의문으로 가득 있다.

"디마코는 분명하게 '절멸자'야... 칼날을 날리는 마법을 사용했지. 전범이라니, 그런 이야기 들은 적도 없어."
캘리건의 서두르던 발걸음이 멈춘다.

#

요나는 달빛을 등지고 책을 일고 있었다. 옆에는 집사 대리가 허리를 피고 서 있었다. 그러나 그의 몸은 분명히 떨고 있었다.

책을 넘기던 그녀는, 눈을 떼지 않으며 입에 담배를 물었다. 집사 대리가 허리를 숙여 불을 붙이려 하자 요나는 눈치를 주며 거절했다.

"... 내 불은 내가 붙이겠다."
집사대리는 덜덜 떨리는 손을 붙잡고 억지로 팔을 내렸다. 그는 미칠 것 같았다. 요나는 괜찮다고 했지만, 분명 방금 큰 소리가 들렸다. 총성을 들어본 적 없는 그였지만, 그 소리가 어딘가 불안한 것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칼린은 이 방에 없다. 발소리가 가까워지는게 들려온다.

"... 정말 괜찮은 겁니까?"
"아무 문제없다고 했다."
요나는 또, 이런 식으로. 책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그저 괜찮다고 할 뿐. 그는 창 밖을 바라보며 경비병들이 무사한 지라도 확인하고 싶지만, 요나의 태도가 워낙 강경하기에 꼼짝할 수 없었다. 고요한 방에서, 담배가 타 들어가는 소리를 묻을 정도로 크게 침 삼키는 소리가 울린다.

그리고, 곧 복도로 울리는 구둣발소리가 들려온다. 집사대리는 이제 울상이다. 또각 거리는 발걸음이 방의 앞을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곧, 발소리가 멈춘다.

침착한 노크소리가 들려온다.

집사대리는 있는 힘을 전부 끌어 모아 숨소리까지 참아낸다. 그런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요나가 소리를 높인다.

"들어 오거라."
그녀는 아직도 책을 손에서떼지 않았다. 조용하게 문이 열리며, 좁은 틈새로 긴 손가락이 뻗어 나온다. 그리고 전신에 피를 칠갑한 남자가 하나, 검을 들고 들어온다.

"아...아아아..."
집사대리는 결국 버티지 못하고 엉덩방아를 찧는다. 피칠갑을  남자는 흙발로 서서히 요나에게 다가온다. 한 걸음 씩, 길고 푸르게 빛나는 검을 흔들며 다가온다.

"...왔는가, '천변만화'."
"오랜만입니다, 요나... 아, 실례..."
그 남자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얼굴의 피를 닦아냈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얼굴을 한번 쓸어내렸다. 그러자 마치 얼굴이 녹아 내리듯 떨어지기 시작했다.

"무, 무무무무, 무슨...!"
집사대리는 울고 있었다. 운 좋게도 아무도 그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녹아 내린 얼굴 뒤로, 주름이 깊은 노인네의 얼굴이 드러난다. 수염은 사라져 있었지만, 잘못 알아볼  없는 얼굴이었다.

"주인님을 뵙습니다. 무탈하셨는지요."
"수고했다, 알레프."
"에...? 에? 집사장님?"
"호들갑 떨지 마세요. 그렇게 가르쳤습니까?"
엄격한 말투까지 알레프의 그것이었다. 하지만 집사 대리는 도저히 상황을 이해할  없었다.

"아니, 어떻게... 뭐가...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죠?"
"'천변만화' 알레프. 전범이었던 자를 우리 아버지가 거두었지. 더 설명이 필요한가?"
"그 반응은 낙제점이네요."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하는 둘의 모습에 집사대리는 정신이 나갈  같았다. 그 불쌍한 남자는 거칠게 숨을 몰아 내쉬며 어떻게든 진정하려고 노력해 보았다. 안도감이 그의 몸을 감싸왔다.

"일단 다섯명은 제대로 처리했습니다. 나머지는 정말 칼린군에게 맡겨도 되는 건가요?"
"문제없지. 그나저나... 잡담이 길군."
"실례. 저도 나이가 든지라."
알레프는 그렇게 말하고서 검을 고쳐 쥐고 다리가 무너져 심호흡하고 있는 집사대리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집사대리는 조금 안정돼서 풀린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 정말 안전한 거였군요."
"사실 그런 걸 생각할 필요 없지. 우린 그저 주인의 뜻을 따르면 됐다네."
"하하하... 이런 때 까지 참..."
집사대리가 털털한 웃음을 뱉었다. 긴장이 풀려 눈이 감겨왔다. 그러나, 그는  방 안이 아직도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다는 걸 깨달았다.

"... 에?"
눈을 떠보니, 알레프는 검을 들고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집사대리는 천천히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용서하게. 자네는 너무 많이 알아버렸거든."
"네? 네?"
"주인님이 하시는 일 말이야. 너무 많이 알고 있단  일세. 이제는  정체까지 알고 있지."
"잠깐, 잠깐만요...! 알레프씨!"
그는 뒷걸음질 쳤다. 살기 위해 풀린 다리를 억지로 움직여 보려다가, 오히려 쥐가 나서 뻣뻣하게 굳기 시작했다. 그는 상체를 이리저리 뒤틀면서 몸을 뺐다. 마치 그러면 도망칠 수 있을 것처럼.

"아무에게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게요! 제발! 시골로, 시골로 귀양하겠습니다! 혼자서 평생 숨어 살게요!"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란  알잖나... 주인님의 방식을 봐 왔을 거야. 봐왔지 않은가."
"하지만, 하지만 저는, 제발...!"
집사대리는 몇 번인가 허공을 젛으며 다리를 버둥대다가, 곧 영주를 향해 몸을 굴려 기어갔다.

"주인님! 제발! 제발 살려 주십시요! 두배로 헌신하겠습니다! 제 입을 꿰매 버려도 좋습니다! 영주님! 저는 장님에 벙어리입니다!!"
요나는, 책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저 불쾌한 듯 의자를 옆으로 조금 치웠다. 대답으로는 충분한 것이었다.

"아... 안돼! 제발!"
그의 유언은 그것이었다. 알레프의 검이 허공을 가른다. 달빛을 받아 은빛 선이 잠깐 잔상으로 남아돈다. 깔끔하게 뒷목이 갈라져간다. 피가 끓는 소리와 함께, 공기가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몇 번 뻣뻣하게 몸을 굳히던 그는 곧 완전히 숨이 멎었다.

"... 주인님, 전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이런 방식은 위험합니다. 언젠가 이 충실한 노인네에게도 칼을 겨누실 겁니까?"
"내가 죽으라고 한다면 불복종할 것이냐?"
"어쩔 것 같으신 가요."
"하, 괜한 걸 물어보았군."
요나는 가볍게 웃고서 책을 덮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문 앞으로 걸어 나갔다.

"패닉룸에 가 있으마. 전부 정리하면 그쪽으로 오도록."
"알겠습니다. 조심히 가시길..."

#

"킄킄... 이게 그 창놈의 방인가?"
제퍼만이 탁음을 강조하듯 웃으며  앞에 멈춰 섰다. 라모스는 그런 그를 보며 조금 몸을 움츠리면서 답했다.

"너, 너무 방심하지는 마세요오... 이, 일단, 소금부대원이니까, 가, 강하, 할 거라구요..."
"스튜핏! 라미, 이 하찮은 것... 본좌가 분명히 말 하지 않았던가. 저 문 너머에는,  8개월 전에는 옷도 못 입던 미천한 것이 있을 뿐이라고..."
극적이라고 말하기에는 어딘가 어설프다. 무게를 잡으려는 말투이지만, 배우지 못한 떠돌이가 그런 말투를 사용해 봤자  멍청해 보일 뿐이었다. 제퍼만의 말투는 그런 것이었다.

"게다가... 본좌의  '모든 걸 녹이는 다크 핸드'와 모든 굳히는 '라이트 핸드'가 있다...  겁먹는 거지?"
"그...그게, 질 것 같다는 게 아니라 그냥... 전... 걱정되어서..."
"본좌를 걱정해? 카캇! 스튜핏! 그런 생각할 시간에 들어갔다면 남창을 셋은 죽였을 것이다!"
그렇게 말하고서, 제퍼만은 문고리를 부드럽게 붙잡았다. 곧 문고리가 녹아 들어가며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분명 영주가 아껴서 이것저것 소문을 부풀렸겠지... 별명이 참수자라니...! 나보다 멋지잖아! 편애로 만들어졌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조각가도 충분히 멋있다고생각해요오..."
"'라미'따위가  알겠나. 크킄... 이럴 때도 냉철한 분석... 본좌는 정말 멋있군."
문고리를 녹여내고서, 둘은 옆으로 조금 비켰다. 10명  6명의 병력이 문을 향해 총구를 들이댔다.

"파이어."
제퍼만이 짐짓 목소리를 깔고 손가락을 튕긴다.  신호와 함께, 6명의 총구에 불이 뿜어진다. 한발씩 따로, 돌아가면서, 쉬지 않고 쏜다.

18발 정도가 나갔을까, 제퍼만은 과열돼서 붉어지는 총구들을 보고서 사격중지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너덜너덜한 문짝을 조용히 앞으로 밀어냈다.

"들어가."
제퍼만은 그렇게 말하고서 라미를 붙잡는다.

"보스는 마지막에 입장이다. 이런 것까지 알려줘야 한다니..."
"...그, 감사합니다?"
라미와 제퍼만은 문 밖에서 자신의 병력들이 돌입하는 것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안으로 발을 옮겼다. 방 안은 연기가 자욱했다.

"어우... 콜록! 너, 너무 과하게 쏜 것 아닐까요?"
"이정도로  갈겼으니 살아 있기는 힘들겠지... 여기 있었다면 말이야. 그나저나 엄청난 연기로군."
병사 하나가 그렇게 말하며 목에 두르고 있던 천을 올렸다. 12발이나 안쪽에 쏴 갈겼으니 당연한 걸까,  연기는 방 안에 가득 차 이미 연기라는 느낌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 정도면 안개구만. 밀가루 포대라도 쏴 맞혀버렸나..."
"... 안개?"
제퍼만의 표정이 바뀐다. 진지한 눈이 된다. 방 안의 연기. 창문은 닫혀 있다. 하지만 그는 봤다.

방금 분명히, 이 연기인지 안개인지가 뭉치듯 움직였다.

"이런 씨발! 라미! 나와!"
"네?"
라모스가 제대로 답하기도 전에 제퍼만이 움직였다. 라모스의 뒷덜미를 잡고 끌어 나오고서, 그는 문을 닫았다. 그리고 빠르게 옆으로 빠지기 시작했다.

"잠깐, 잠깐만! 제프씨?"
"여기서 닥치고 대기해라...!"
한편, 방 안에 남은 병사들은 갑작스러운 지휘관의 이탈에 얼을 태웠다. 제퍼만은 병신이다. 그들도 그를 진지하게 따를 생각은 없었기에, 그저 시체를 찾는 데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그의 시체가 있을 만한 곳을 뒤져보는 중이었다.

"우- 우욱?!"
병사 하나가 목이 틀어 막힌 듯한 소리를 내더니, 얼굴이 보라색으로 질리며 바닥에 쓰러지기 시작한다.

"뭐야! 괜찮아?"
 명이 그를 향해 달려가다가 또 넘어진다. 그리고 그도 똑같이, 목을 부여잡고 바닥을 구르기 시작한다.

그게 시작이었다. 작은 방안은 금새 비명소리로 가득 차게 되었다. 제퍼만과 라모스는 문 옆에서 그 소리를 들으며 경계태세를 구축해냈다.

"제퍼만씨...! 이건 대체!"
"들어가지 마! 저건 위험하다... 본좌의 '제프센스'가 그렇게 말했어!"
하찮은 이름이었지만 성능은 확실했다. 지옥을 굴러다니는 듯한 아비규환소리가 이어지다가, 천천히 사그라 들기 시작했다. 곧  아래로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전부 죽었다고...?"
"이 멍청이! 피해!"
피가 천천히 흘러나와 라모스의 발 끝에 닿으려할 때였다. 제퍼만이 라미를 밀어내며 손을 내밀었다. 거의 동시에, 흘러나온 피가 솟구쳐 오르듯 날카롭게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가시처럼 뻗어나온 그 피는 제퍼만의 목을 노리다가 그의 손에 녹아 내렸다.

"꺄악! 뭐야! 대체 뭐야!"
"진정해... 1000년에 한번 있는 일이다. 본좌의 예상이 틀렸어!"
문의 뚫린 구멍 너머로 안개가 새어 나온다. 거대한 존재감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여기저기 뚫려 너덜너덜해진 문은 이미 열어서는 안될 봉인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감이, 압도적인 무언가를 대치하고 있다고 소리치고 있다.

이제 둘 다 알고 있다. 저건 총으로 생긴 연기 따위가 아니다.

"저 문너머에 있는 새끼,성가실 것 같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