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62화 〉활공(滑空) (162/164)



〈 162화 〉활공(滑空)

됐어.

다 끝이야.

어찌되든 상관없어.

모조리 죽어라, 역겨운 것들.

신경이나  것 같아?

웃으면서 지켜볼 테다.

나도.

아무것도 몰랐던 나도 죽어버려라.

웃으면서 죽어 줄 테다.


분명- 그런 생각 중이지?

#

칼린은 비척비척 발걸음을 옮겼다. 딱히 목표가 정해진 발걸음은 아니었다. 그런 그가 가는 길이 기낭외피 방향인 이유는, 아마도 무의식 중에 가장  트인 곳을 찾으러  것일지도 모른다. 하다못해 무의식적으로 직접 터트리려고 하는 것일수도 있다.

패닉이  인파들에게 섞여서, 그의 동료들도 한 명씩 보인다. 시끄러운 비명소리들 사이로 그들이 갤러한을 욕하면서도 애타게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리하와 칼린의 이름도 부르고 있다.칼린은 거기에 답하지 않고 비틀거리며 그저 발걸음을 계속 옮긴다.

누구도 보고 싶지 않다. 동료들이건, 이리하건, 빌어 쳐 먹을 요나건,  누구도 보고싶지 않다. 그의 머리속을 덮어놓은 막이 벗겨진 느낌이다. 그러나 선명해진 정신은 그에게 두통만을 불러왔다.

불완전 연소되었던 감정들이 그의 가슴속을 갈기갈기 헤집는다. 현기증으로 마구 번쩍이는 시야를 양 손으로 헤 짚으며 더듬더듬 걸어가면서, 그는 찢겨 지는 듯한 가슴 통증에 다친 짐승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를 흘려 냈다.

마침내 기낭외피로 가는 문 앞까지 도달했을 때, 그의 가슴에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너무 세게 힘을 준 손가락이 그의 가슴에 파고들었기에 생긴출혈이었다. 강한 바람이 그의 손가락 사이사이로 스쳐 지나며, 서늘하게 그의 죄책감이 남긴 성흔을 질책했다.

억지로 깨문 어금니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린다. 그는 번쩍거리는 시야를 아예 포기하고 눈을 감는다. 그리고 천천히,  묻은 손으로 사다리를 붙잡아 오른다. 부디 그 누구도 자신을 찾지 않기를 바라며 완전히 그 비행선의 위까지 올라간다. 거기에는 아직도 자신과 그녀의 전투 흔적이 남아있다.

칼린은 그 흉터위로 털썩 주저 앉아 머리를 부여잡는다. 바람이 강하다.  새 없이 머리속이 터져 나가고 있다. 비명을 지르고 싶지만, 북받쳐 오른 슬픔이 그의 숨통을 막아 소리를 낼 수 없다. 눈물을 흘리고 싶지만, 메말라 버린 눈이 찢어질 것 같은 고통을 유발할 뿐이었다.

묻었던 감정들이 충격으로 하나씩 튀어나온다. 그가 감당할 수 있는 슬픔이 아니다. 그가 감당할 수 있는 중오도 아니다. 하다못해 그가 감당할 수 있는 후회조차 아니었다.

"하...아으우..."
어린애의 옹알이같은, 쥐어 짜인 듯한 목소리를 낸 후로는, 그는 그저 공기가 세어 나오는 듯한 고음밖에 뱉어 낼  없었다. 폐가 뚫렸던 아무개가 이런소리를 내며 죽어갔었다. 그는 죽인 사람들 얼굴을 하나하나 외우지도 못하는 살인마가 되어 평범하게 살고 있었다. 그런 생각들이 하나하나 떠오를 수록, 그의 손 끝에 힘이 들어간다.

마침내, 그는몸을 한껏 웅크리며 자신의 손가락을 날카로운 송곳니로 물어 뜯는다. 그리고 덜렁거리는 그 손가락들을 달달 떨며 자신의 가슴깨로 향한다. 잔뜩 웅크린 몸으로, 머리를 쥐어 뜯으며, 그의 오른손에서 약하게 빛이 난다.

이 감정을뱉어야 했다. 모든 것은 증오가 되어 하나의 결론을 냈다. 모든 것의 원흉을 죽여야 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에게는 언제나 그랬듯, 자신이었다.

#

비행선 아래쪽으로 유리로 공사 되었던 바는, 처음부터없었던 것처럼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그 자리에는 고열로 이리저리 뒤틀리고 찌그러진 철골들만 앙상히 걸쳐져 있을 뿐이었다.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덜덜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배관들이 어지럽게 매달려 있다. 대부분 그 끝이 녹아 채찍처럼 휘둘리고 있지만, 가끔 뚫려 있는 것들은 정체를 파악할 수 없는 액체들을 끊임없이 뱉어 대고 있다.

폭발은  강력한 것이었다. 아래로 검은 연기를 뿜어 대며 생물체의 부러진 갈빗대처럼 앙상하게 철골들을 늘어놓은 비행선은,  이상 전의 위엄을 찾아낼 수 없었다.

그리고 그  갈라낸 양의 곱창처럼 모락모락 김을 흩뿌리며 출렁이던 배관들의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휘청이며 매달려 있는 것이 있다.

"... 미친 씨발, 진짜 내 입이방정인가?"
갤러한은 밧줄을  손이 하얗게 질질 정도로 힘을 주고 있었다. 그는 겨우겨우 비행선 어딘가에 밧줄을 걸어 놓는 것에 성공했다. 그 밧줄의 길이를 줄이며, 그는 초토화된 비행선의 모습을 다시 한번 돌아보았다.

"진짜 좆 될 뻔했구만..."
손으로 파고들어오는 듯한 밧줄의 감촉. 그가 라드에게서 회수한 것이었다. 유용히 쓸 날이 올  같아 챙긴 것이 정답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복잡한 기분이 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빠르게 감정을 정리하고, 그는 라드의 밧줄의 길이를 점차 줄여 나가며 자신이 매달린 곳으로 향했다. 강풍이 위협적이었지만, 만들어  올가미가  버틸 것 같지는 않았다.

그의 올가미는, 기낭외피 옆면 쪽의 사다리에 걸쳐져 있었다. 아무래도 정비사들이 사용하는 사다리인 듯 했다. 그는 사다리를 붙잡고서 그나마 생긴 안정감에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라도 생길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그는 자신의 허리띠를 풀어 사다리에 걸쳐 두었다. 그리고 근처를 두리번거리며 안쪽으로 들어갈 입구를 찾아보았다. 일단 안쪽의 상황을 어떤 식으로든 확인해야 했다. 술집 폭발은 사고가 아니었다.

"별 씨발..."
사다리를 타고 조금 올라가 올가미를 위쪽에 걸쳐 둔다. 그대로 주변을 살피는 중, 그는 사다리에 묻어 있는 핏자국을 발견했다. 그는 혼잣말을 멈추고 기낭외피의 위쪽을 올려다보았다. 피의 흔적을 보아, 오래된 것이아니다. 아직도 저 위에 누군가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칼을 챙기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그는 주머니에서 씹는 담배를 꺼내 들어 남은 것을 전부  안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허리 뒤에 달린 단검 케이스를 열어 두었다.

방금 전까지는 분명히 거친 바람소리밖에들리지 않았는데, 갑자기 사다리에 발을디딜 때마다 나는 철이 울리는 소리가 을씨년스럽게 느껴진다. 매케하게 올라오는 씹는 담배의 잔향을 코로 뿜어내고서 그는 사다리를 기어올랐다.

조심스럽게 고개를 뻗어 올려 몸을 드러내지 않고서 기낭외피 위를 살펴본다. 위에 깔린 바닥  가운데에 익숙한 형상이 웅크려 앉아 있다.

"... 칼린?"
이런 상황이다. 분명 반가워야 했다. 그러나 기낭 외피 위에서 몸을 한껏 웅크리고 이상한 신음소리를 내며 스스로를 끌어안고 있는 그의 모습은, 반가운 감정보다도 수상한 감정을 유발시켰다. 갤러한은 조심스레 사다리를 오르고서  발짝 칼린을 향해 내딛었다.

"... 너 왜 여기 있냐?  쪽 상황은 어떻고?"
목소리가 들릴 정도의 거리에 다가온 듯 했지만, 칼린은 대답하지 않았다.갤러한이 있는 것 조차눈치채지 못하고 낮게 신음소리를 뱉어 대고 있었다. 사람이 낼 소리가 아니다. 듣기만 해도 참혹해지는 병든 괴물의 흐느낌이다. 갤러한의 손은 자신도 모르게 허리 뒤에 있는 단검의 손잡이로 향하고 있었다.

"... 품 안에 감싼 건 뭐야. 칼린. 대답해라."
꽤 단호하게 말하고서, 그의 등 뒤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언제라도 움직일 수 있도록 몸에 탄력을 줄 수 있는 낮은 자세를 유지하며 대기한다. 칼린은 뭔가를 끌어  듯 품 속에 손을 숨기고 있다. 그게 뭔지 알기 전에는 그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신뢰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때 였다. 칼린의  속에서 아주 약한 빛이 세어 나오고-

"?!"
5개의 반투명하고 붉은 가시가 그의 등을 찢어내 관통하여 나온 것이다. 갤러한은 크게 놀라 두 걸음 정도 뒷걸음질 치다가 정신을 차렸다.

"저 병신이 무슨 짓을...!"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던가. 실수로 머리보다 몸이 더 빠르게 움직여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갤러한의 발이 가까스로 멈췄다.

"무슨... 짓을..."
피가 멈추지 않는다. 말 그대로, '멈추지 않는다'. 옷을 적시는 수준이었던 피가, 점차 그 주변을 적실 수준으로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역겨울 정도로 불길한 장면이었다. 갤러한은 하던 말을 멈추고 천천히 뒷걸음질쳤다. 칼린의 피는 점점 넓게 퍼져 나간다.

그리고, 의식을 잃은 듯 꼼짝도 하지 않는 칼린의 주변을, 마치 하나의 생물체가 먹이감을 삼키듯 감싸 들어가기 시작했다.

#

칼린은 눈을 떴다. 긴 잠에서 깨어난 듯한 기분. 드물게도 상쾌한 정신이다. 각성된 정신이 오히려 익숙하지 않아진 그는 머리를 잡고 조금 주변을 둘러보았다. 끝없이 펼쳐진 흰색 모래사장이었다.

"여긴..."
"안녕?"
그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얼을 타고 있자, 옆에서 그와 똑 닮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고개를 돌려보니, 거기엔 선글라스를 낀 칼린이 파라솔 아래로 누워 코코넛을 마시고 있었다.

"넌...? 여긴 어디지? 내가  여기 있어?"
"난 개념체고, 여긴 공간이야. 네가 왜 여기 있는지는 뭐... 여기서 말할 필요가 있을까? 바캉스야, 즐겨!"
"... 뭐라고?"
"설명한다고 네가 알아먹을 수 있는 건 몇개 없다는 거지! 일단 거기에 편히 기대 보라고. 따뜻하게 데워져서 기분 좋아."
칼린과 똑 닮은 그것이 칼린을 약하게 누른다. 칼린은 얼떨결에 거기 있는 해변가 의자에 등을 기댄다. 정면으로 파도가 왔다갔다하며 시원한 바람이 그의 머릿결 사이사이로 흐른다. 확실히, 편해지는 풍경이었다.

"편하지? 나름 신경 썼어."
"편하긴 한데... 역시 상황 설명이 필요해."
"지금껏  모험을 지켜보고 있었지."
그것은 그렇게 말을 시작했다. 그리고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조금 내려 칼린과 눈을 마주쳤다. 붉고 투명한 눈이 보석 같다.

"네 안에서, 네가 하던 모든 일들을 지켜보고 있었다고."
"그래?"
"그럼.  위기상황마다  도운 것도 나야."
그것은 그렇게 말하고서 가볍게 두 번 박수를 친다. 동시에, 장소가 일변한다. 그들은 이제 도서관 안에 들어와 있었다. 높이도, 길이도 끝이 없는 도서관. 책장에는 무한히 많은 책이 꽂혀 있다. 그것은 근처에 있는 책을 대충 뽑아 들어 선글라스를 머리 위로 올리고 읽기 시작했다.

"위기상황?"
"그래. 기억하지는 못하겠지만. 이것저것 건드리면서 도와줬다고."
"... 네가 뭔데?"
"뭐라고 부르고 싶어?"
한번 주르륵, 펼친 책을 훑고서 그것은 책을 소리가 나도록 세게 덮었다.

"말했다 시피 난 개념체야. 이름이 굳이 필요하지 않지. 날 인과에서 벗어나 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인과 그 자체라고 부를 수도 있어. 날 시스템에서 벗어나 있다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시스템  자체라고도 부를 수 있지. 네가 날 뭘로 부르던, 난 그게 되어   있어."
칼린의 등 뒤로 인기척이 느껴진다. 칼린이 고개를 돌리자, 거기에는 어느새 자리를 이동한 그것이 어깨 동무를 걸쳐오고 있다.

"자,뭐라고 부를래?"
"... 네 호칭이나 정체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건 알 것 같아."
"그것도 정답이지! 플러스 5천점!"
"5천점?"
"신경 쓰지마! 다음은 네가 어디에 있는 거냐, 그런 질문이었지..."
그는 칼린에게서 떨어져, 허공에 엉덩이를 기대 앉듯 허리를 빙글 돌려 풀썩 힘을 뺀다. 그리고 곧,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진다. 그걸 자각했다고 생각한 순간, 이미 그들이 있는 곳은 초록이 우거진 숲의 한가운데였다. 그는 다가오는 반딧불이를 손가락으로  쳐내며 말을 이었다.

"여긴 공간이야."
"무슨 공간..."
"개념상으로만 존재하는 공간이지. 네 정신세계. 어떤 곳이든 될 수 있고, 어떤 곳도 될 수 없어. 이 순간에도 현실의 시간은 계속해서 흐르는 중이지. 말해봐, 상민아. 뭐하다가 여기에 왔는지 기억나?"
칼린은 그의 말에 주변에 굵게 뻗어 내린 나무 뿌리들을 살펴보며 그 근처에 앉는다.

"... 기억나."
"말해봐."
"죽으려 했어."
"살벌해라!"
너스레를 떨며 웃고서, 그것은 손가락 사이에서 담배를 휘릭 하고 꺼낸다. 불이 붙어 있는, 뚱뚱한 시가담배이다. 그것은 그 시가를 칼린에게 건내 주었다. 칼린은 그걸 받아 피기 시작한다.

"네가 그렇게 침착한 이유는 이곳이 네 정신속이라 그런 거야. 내 간섭이 있는 것도 큰 몫을 취하겠지만."
"비행선은 계속 떨어지고 있는 건가?"
"그렇지. 시간의 흐름은 다르지만, 이러는 중에도 계속 낙하 중이야.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하고 전부 죽을 껄?"
"그런가."
"그렇지. 이게 네가 원하는 거였지?"
그것이 다리를 꼬고 칼린에게 고개를 숙여 질문해 온다. 칼린은 시가담배를 물고서 두꺼운 나무 줄기에 등을 기대고 연기를 뱉어 낸다.

"... 그러네.  죽어버리면 좋겠어."
"진짜로?"
"응."
"난 너이기도 해. 나에게 거짓말은 안 통하지."
칼린이 눈을 감았다 뜨니, 그가 앉아있는 곳은 극장의 객석이었다.  한가운데에, 오직  만이 덜렁 앉아 있는 상태였다. 무대에는 버건디색의 두꺼운 장막이 닫혀 있는 상태이다.

<마지막으로 물어볼 게. 정말로 비행선에 있던 전원을 죽이고 싶어?>
"그 질문에 답하면 뭐가 바뀌어?"
<모든게 바뀌지.>
객석 뒤의 사이렌을 통해 그것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칼린은 어느새 시가담배가 사라진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역겨웠어."
<그래?>
"다들 그렇게 평온하게 살면서, 가족을 아끼고 동료를 위하면서, 그러면서 사람이 도구로 전락되는 꼴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기고 있었어."
<그래서?>
"... 나까지  행위에 동참하고 있었고.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이 아니야."
<그래서 전부 죽일 거야?>
잠깐, 극장에 침묵이 퍼진다.  답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것은 칼린의 속을 읽고 있었기에.

칼린은, 어꺠를 떨며 흐느끼고 있었다.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거기에서는 마음껏 흘릴  있었다.

"... 그래도..."
 떨군 고개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나온다. 조금 침착해지니 오히려 더 울기 쉬워졌던 걸까. 그의 감정은 엉망으로 뒤엉켜 스스로도 알 수 없는 것이 되었다.

"... 그래도... 내 앞에서 죽게 놔두고싶지는 않아... 그냥 그렇게는 못 두겠어... 그냥 죽게 둘 수는 없단 말이야...!'
<그야 그렇겠지. 넌 그럴 수 밖에 없어.>
서서히, 극장의 암막이  옆으로 열리기 시작한다.  극장이 환호성과 박수갈채소리로 가득 메워진다. 칼린은  소음속에서 고개를 완전히 떨구고 흐느끼고 있다.

<넌 저렇게 잔혹하고 미개한 자들이라도 구할  있는 상황이 오면 망설이지 않겠지. 알고 있다고!"
서서히 커튼이 열리며, 사이렌과 무대 위에서 목소리가 겹쳐 들려 온다. 그것은 무대 위에서 요염하고 찬란하게 미소 짓는다.

"하지만... 이제 늦었어. 전부 죽을 거라고..."
"늦지 않았어."
"더 이상 방법이 없어..."
"네가 전부 구할 수 있어."
"... 어떻게?"
"무대 위로 올라와!"
그것이 칼린을 향해 손을 뻗는다. 시끄러웠던 함성과 박수가 멎고, 극장에는 고요만이 남는다.

"무대... 위로?"
"종막이야, 상민아. 미안, 이번엔멋진 말은 못 떠올렸네!"
칼린은 느리게 일어나 서서히 무대에 다가간다. 그것이 무릎을 굽혀 계단 옆으로 자리를 이동해, 올라오는 칼린을 향해 고개를 숙인다.

"내가 뭘 하면-"
"넌 이제 주인공이야."
박수갈채. 환호성. 둘을 향해 장미꽃들이 날아온다. 무대 위의 조명이 찬란하게 둘에게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저항하고, 맞서 싸워. 피를 토하며 부조리에 저항해! 널 구속하는 모든 것들을 찢어 발겨!이 세상을 사랑할 수 없다면, 네가 세상을 바꿔라! 전상민에서 벗어나! 이제 칼린이 되어라!"
점점 밝아져 오는스포트라이트가 칼린의 시야를 감싸온다. 시끄러워지는 환호가 그의 청각까지 차단시켜온다. 폭력적일 정도의 빛. 환호. 영광.

"내가  뒤에 있어... 이건 계약이야. 힘을 빌려주지. 그걸로 네가 하고 싶은 걸 해!"
"난-"
"모두를 구해! 방법은 내가 지시해 줄게!'
그것은 그렇게 말하고서, 칼린의 등을 무대 아래로 떠민다. 칼린의 몸에 낙하감이 엄습해 온다. 그의 등은 극장 바닥에 닿는  없이 끝없이 떨어져 간다. 낙하하고, 낙하하고, 낙하해서-

어느새, 그는 검정색 연기를 뿜어내며 추락하는 비행정의 위에 서 있다. 혼란스러운 머리가 상황을 다시 읽어 내기 전에, 그의 머리속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얼 탈 시간 없어. 시간이 촉박해. 준비는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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