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63화 〉활공(滑空) (163/164)



〈 163화 〉활공(滑空)

미리 말 해둘게.

이 비행선이 바닥에 꼬라 박혀도  죽게 두지 않아.

그래도 할거야?

많이 아프고 힘든 방법이  거야.

... 어련할까.

괜한 걸 물어봤네. 좋아. 시작하자. 집중해.

걱정마. 내 서포트에 따라.

지금  몸은 전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있어.

준비해. 그 몸을 어떻게 사용하는 지 알려 줄게.

먼저 광배를 펼쳐.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등을 넓혀. 그 상태로 고정. 네 식대로 표현하자면, '등을 잠궈'.

숨을 끌어 모아. 최대한 많이 들어 마셔. 네가 인간이었을 때를 잊어. 네 폐가 수용할 수 있는 공기를 전부 끌어 모아... 갈비뼈가 벌어지는 게 느껴져? 네 몸에 집중해.

집중. 전신의 모든 감각을 놓치지 마. 바람이 네 머리칼을 스쳐 지나는 감각부터, 들이마시며 모든 뼈가 벌어지는 감각과, 폐가 부풀어 오르며 다른 장기들이 활성화되는 것까지. 뜨거운 것이 몸 안쪽으로 흐르고 있다는 이미지를 하며 내부의 감각에 집중해.

감각이 익숙해졌으면, 숨을 내 뱉어. 네 폐가 공기의 수용량에 익숙해지도록 만들어. 열 번이면 돼.  번만, 네가 할  있는 한계를 다 해서 호흡해. 몸에 흐르는 뜨거운 기에 집중해.  흐름이 점점 빨라진다고 생각하며, 점점 뜨거워지고, 뜨겁게 응축되어서... 그 길을 파악해내. 네 마관의 흐름을 인식해.

... 아홉, 열. 좋아. 준비는 끝났어.

상상해라. 네게 불가능한  없어.

피로 뭔가를 만들어내는 능력. 그 능력은 어디까지 쓸 수 있는 걸까?

떠올려, 전상민. 네 한계를 잊고 떠올려라. 피로 경도와 질감까지 바꿔가며 뭔가를 만들어내는 능력. 그게 네가 쓰는 것처럼 멍청한 가시와 검을 만드는 걸로 제한되는 걸까?

처음  마법을 사용했을 때를 떠올려라. 거대한 나무. 그 거대한 나무는, 전부  출혈에서 나온 거였어.  이후로 네가 그 정도로 크고 강한 한방을 만들어내지 못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지?

그 마법은 위험도 C급 따위가 아니야. 떠올려라. 무궁한 가능성을 떠올려. 지금 네게 필요한 건 뭐지?

등을 펼쳐. 견갑을 최대한 벌려. 상상하는 거다. 비약 하는 짐승을 떠올려.

넌 지금 사람이 아니야. 날카로운 손톱을 떠올려라. 뭐든 찢어발길  있는, 거대하고 살벌한 손톱을 떠올리는 거야.

다음은, 날개를 떠올려. 이 오만하고 뚱뚱한 씹새끼를 들어 올릴 정도로 거대한 날개를 떠올려. 넌 사람이 아니야. 거대한 괴물이다. 창공을 뒤덮어버릴 정도로 큰 날개가 필요한 거야.

암막이다. 태양을 가려내. 그 날개를 펼쳐.

#

칼린을 덮었던 피의 장막이 서서히 사라진다. 갤러한은  모습을 약 3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그저 바라본다.

라드가 남겨둔 것을 곧이곧대로 믿고 있지는 않았다. 다만, 확실히 의심 가는 것이 많았다. 특히 지금의 모습은 너무 이상했다.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불길한 모습이다. 더 이상 전과 같은 눈으로 보는 것이 불가능하다.

떨리는 몸을 붙잡고서, 완전히 장막에서 벗어난 칼린을 노려본다. 칼린은 그저 아무 반응도 없이 가만히 멈춰 있다. 숨까지 멈췄는지 등에 높낮이조차 생기지 않는다.

곧, 그는 가슴을 피고 심호흡하기 시작했다. 갤러한은 그의 등 밖에 보이지 않았기에, 그저 그가 정신을 차린 것인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러나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지금 그는 확실히 칼린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저건 무해한 칼린이다. 몇 번이고 우릴 구해냈고, 사람을 사랑하는, 멍청할 정도로 순한 도련님이다.  동료이며 내 여자친구의 학생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더 이상 100퍼센트가 아니다. 1프로의 의심이 세어 나온다. 그는 그 자리에서 손가락 끝부터 조금씩 움직이며 조금 힘겹게 입을 열어본다.

"칼린, 정신 차려!"
닿지 않았을 리 없다. 꽤  목소리를 냈었다. 그러나 답하지 않는다. 그저 심호흡을 반복한다.두려움이 피로를 만들어내고, 피로는 짜증을 유발한다.

"말을 하란 말이다!"
마지막 희망을 담은 말이다. 평소의 칼린으로 돌아와 아무렇지도 않게 평소처럼 멍청하고 태평한 말을 해주면 된다. 그럼 무조건 다시 재고해 볼 것이다. 아니, 과연 지금의 그가 그럴 수 있을까. 혼란스러워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답이 없다면 다음은 간단하다. 칼린의 가까이로다가가, 그가뭐하고 있는지 앞에서 보면 된다. 무겁게 묶인 발걸음을 이끌고, 저 역풍을 견뎌내며 다가가면 된다. 이럴 때가 아니다. 지금이라도 그를 붙잡고 비행선 내로 들어가 구조 작업에 참가해야 한다.

"씨발... 씨발!"
욕설을 내뱉으며, 갤러한은 자신의 뒤로 침을 한번 뱉어 내고 발걸음을 옮겼다. 3미터, 2미터, 1미터. 어느새 인가 자신이 칼린의 검간을 계산하고 있음을 신경 쓰며, 갤러한은 자신이 틀렸기를 간절히 빌었다.

칼린이 등을 넓게 펼친다. 상체가 기괴하게 부풀어 오를 정도로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뱉는다. 그 모습은, 칼린의 평소 모습을 아는 갤러한이 봐도 심하게 징그러운 모습이었다.

마치 벌레의 꽁무니가 부풀어 오르는 듯한 팽창. 그의 겉옷이 찢어질 수준이었다.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것이다. 세찬 바람소리 사이로 그의 호흡이 뚜렷하게 들려온다.

칼린의 옆까지 다가왔다. 남은 것은 단 한걸음. 한걸음만 더 내딛으면, 칼린의 정면을 보고 말을 걸  있다. 칼린은 갤러한을 눈치채지 못하고 그저 숨을 쌕쌕 몰아쉬다가, 곧 견갑을 펼치고 짐승 같은 자세를 취하기 시작한다.

마지막 망설임이다. 갤러한은 그 모습을 보고서, 흑과 백을 가리기 위해 가로막는 벽을 발로 차내듯 발걸음을 뗐다. 그리고 마침내 칼린의 정면을 마주했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인생 최악의 선택이었다.

#

쉬고 싶어.

바다에 가고 싶다.

누워서 자고 싶어.

아무 생각도 하기 싫어.

아무 선택도 하기 싫어.

내가 받아들이기에는 하나 하나가 너무 커.

비행선 안에 모두가 죽어 마땅한가?

요나는 알고 있었어.

전부 알고 있었다고. 나한테 계속 숨겨 왔잖아.

내가 이걸 봤을 때 어떤 반응을 할지도 알았던 거야.

이게 미친 짓인 걸 알고 있던 거라고.

다들 알고 있던 거겠지. 상식이 어떤 지는 몰라도, 저걸 허용하고 있었겠지. 아는  모르는 채, 알고도 견뎌낸다, 이딴말이나 뱉으면서.

생각해 보면 나도 똑같네.

나도 추한 개자식이니까. 난 눈을 감고 해선 안될 일들을 해왔어.

 죽어버리는  맞는데.

내 손에 닿는 건 죽게 두고 싶지 않아.

생각해보면  병신같네. 지금의 난 뭐든 할 수 있었는데.

직면해라.

모든 좆같은 상황을 직면해라.

저 개 돼지들을 구하되, 저들과 같은 길은 가지 마라.

내가 조금 더 힘들면 된다 이거 아니야.

나 그거 잘해.

#

한껏 움츠린 몸에, 양 손은 입가에 닿아 있다. 붉게 물든 눈이 불이라도 뿜어내 듯 잔상을 남긴다.

 닫은 입은 이가 훤히 드러나 보인다. 그 이빨은 손에 든 것을 끝없이 잘근잘근 깨물고 있었다.

아니, 손에  것이 아니라, 그가 깨물고 있는 것은 그의 손가락 그 자체였다. 자신의 양 손가락을 씹어 대며, 잔뜩 상기된 눈으로 정면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의 열 손가락은 완전히 갈려 있었다.

인간에게는 있을  없는 이빨이 드러나 보인다. 입가는 한껏 치켜 올라가 있다. 그것은 분명 웃음 짓고 있는 얼굴이었지만, 웃음보다는 짐승의 위협에가까운 모습이었다.

한걸음,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친다. 두 걸음, 그만 뒤로 넘어져 버리고 만다. 생각하고 있던 모든 것을 잊었다. 경계심조차 잊고 그저 얼이 나가버렸다. 그리고 칼린은, 그런 갤러한도 보이지 않는지 그저 자신의 손가락을 계속해서 씹어 댔다.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지는 모른다. 칼린이 자신의 손가락을 찢어질 때 까지 씹어 댄다면 말리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확실히 말할  있었다. 지금 저것은 칼린이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저게 칼린이었다, 가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른다.

망가진 손가락을 축 늘어 놓는다. 출혈이 심하다. 핏방울이 바람에 흩날린다. 그리고 그의 손가락에서, 붉고 투명한 손톱이 길게 뻗어 나온다. 평소의 칼린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원초적이고 야만적인 마법 활용이었다.

그는 길게 뻗은 손톱을 양 어깨의 견갑골로 향한다. 그리고 날개뼈 아래로 천천히 손을 가져다 댄다. 마치 뒤에서 누군가 잡아당기고 있는 듯한 웃음을 지으며 몸을  낮춘다.

그의 길고 날카로운 손톱이 날개뼈 밑의 부드러운 살을 파고 들어간다. 그대로, 그는 자신의 견갑을 뽑아낼 기세로 들어 올린다.

등이 벌어진다. 찐득한 소리를 울려내며, 그의 날개뼈가 뜯어지며 펼쳐진다.

살점이 뭉쳐 뜯겨지며 광배까지 완전히 들어진다. 옷이 찢어진 상처에 피와 함께 말라 붙으며 끔찍한 몰골이 된다. 그러는 동안에도, 칼린의 표정은 한 끝도 바뀌지 않는다.

그 벌어진 틈으로 피가 솟구쳐 나온다. 여행으로 잔인한 광경에는 잔뼈가 굵었던 갤러한이지만, 완전히 등을 들어낸 자의 정면을 보는 것은 그에게도 역겨운 일이었다.

손가락과 등에서 타고 흐른 피가 비행선의 기낭외피를 적셔 내려간다. 동시에, 마치 부풀어 오르듯 그의 피가 위를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등에서 가시가 자라나는 듯. 아니, 가시보다는-

"-날개..."
등에서 뻗어져 나오는 그것은, 천천히  크기를 키워간다. 기낭외피를 적신 피가 굳으며 벨카호의 갑충 같은 검정 빛을 적신다. 마치 검붉은 손이 벨카호를 쥔 듯한 형태가된다.

펼쳐진다. 칼린의 날개가 자라나며, 하늘을 뒤덮는다. 독수리가 그 날개를 뽐내는 듯 점점 넓어진다.

칼린의 등을 넘어, 비행선의 몸체를 넘어, 기낭외피를 넘어서- 계속해서 팽창해 나간다. 칼린은 그것을 뽑아 내기라도 하는 듯 기괴하게 몸을 움찔거리며 계속해서 날개를 키워 나간다. 마침내 그것이 하늘을 뒤덮는다.

날개가 아니었다. 그 누구도 하늘을 뒤덮어낸 그것에 날개를 연상해  수 없으리라. 마침내 하늘까지 뒤덮어버릴 정도로 커진 그것은, 날개 같은 형편좋은 것이 아니었다. 갤러한은 칼린이 만들어낸 그늘 속에서 두려움과 경외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것은 암막이었다. 극장의 커튼이었다. 하늘이라는 무대를 가려버리는 버건디색의 커튼이다. 칼린이라는 새로운 막을 시작해내기 위해, 이전 막을 닫아내는 것이었다.

그 막을 타고, 비행선은 느리게 활공한다.

#

"칼린... 칼린!"

요나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완전히 풀어헤쳐진 옷에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서 그저 이리저리 미친듯이 그를 찾고 있었다. 급한 와중에 비행선 내로 안내방송까지 했지만 칼린의 응답은 없었다.

그녀의 본분 따위는 잊은 지 오래였다. 그녀를 붙잡고 살려 달라느니 앵기는 귀족들을 손과 발로 쳐내며, 그녀는 그저 끝없이 비행선 안쪽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녀가 가장 걱정하고 있는 것은 엔진실에 관한 것이었다. 누군가 '전지'들을 전부 죽여 놓은 것이다.

어느 정도 범인이 짐작갔다. 혼자서 몇 천번이나 모의대전을 해온 요나가 그것을 착각할  없다. 형편없는 검실력을 압도적 신체능력으로 커버하는 형태의 상흔. 요나가 그걸 착각할 리 없었다. 하지만 제발 착각이었으면 하고 빌고 있었다.

비행선 안에서 확실하게 무게가 느껴 지기 시작한 것은, 그녀가 다시 방송실로 발걸음을 옮길 때 였다.

아비규환이 펼쳐졌다. 혼란속에서 아직 살아남아 있던 귀족들은 서로를 부둥켜안거나 비명을 지르며 울부짖는 등 각자의 방식으로 절망을 표현해 냈다. 그 중에는 평정을 잃고 감히 8영주를 모욕하기 시작한 자들도 있었다.

이리저리 파이프가 터져 기름냄새가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이미 주방 쪽에 화재가 벌어져 불도 옮겨 붙는 중이었다. 승무원들은 대부분이 죽어버려 화재진압을 하기에 역부족한 인력이었다.

요나를제외한 8영주들은 자신의 종자들을 데리고 그 불을 진압하고 있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비행선의 낙하가 시작되자 그것도 힘들어 졌었다. 군인출신인 요나는 상황을 통제하는데에 도움이 되야 했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젠자아아아앙!!!!"
거칠게 근처에 있던 객실의 문을 쥐어 잡아 뜯는다. 붉게 물든 두 눈에는 이미 지성이 보이지 않는다.  객실 내부를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확인한 요나는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그래봤자 계속 똑같은 비행선 내부를 빙빙 돌 뿐이었다. 혹시나 엇갈린 게 아닐까, 라는 희망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다음 객실의 문고리를 붙잡은 그 순간이었다. 창문 밖이 계속 어두워지는 가 싶더니, 갑자기 비행선 내부의 중압감이 안정화되는 것이다. 마치 추락을 멈춘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감각에 모두가 혼란에 빠졌다. 패닉은 멈췄으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곧, 빠르게 정신을 차린 자들부터 천천히 창문 쪽으로 다가가 밖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요나는 그 모습에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이 모든 현상에 칼린이 관여되어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녀는 창에 옹기종기 붙어있는 귀족들을 거칠게 밀어내며 밖을 보았다.

어두웠다. 뭔가 거대한 것에 그늘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 만으로는 상황을 파악할  없었다. 그녀는 비행선의 창을 부셔버리고 고개를 내밀어 빼냈다.

하늘에 장막이 덮여 있었다. 커튼같은 것이 비행선의 위로 펼쳐져 있었다. 완전히 태양을 가려내고 있어 색을 추정해내기힘들었지만, 약하게 투과되는 빛으로 그 장막이 버건디 색을 띄고 있다는    있었다.

"... 안돼..."
비행선이 안정을 찾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이제 전부 창가 쪽으로 몰려와 밖을 쳐다보기 시작한다. 요나는 자신이 있는 창가로도 다가오는 사람들을 지나쳐 가, 벽에 기대 털썩 주저앉아 머리를 부여잡았다. 재앙이었다.

"... 안돼..."
불패의 전사, 불굴의 요나. 전장을 나온 뒤로 그녀에게 유약한 수식어는 단 한번도 붙어  적이 없다. 대중에게 약한 모습을 절대로 보이지 않았기에 그런 위압감과 인상을 남겨둘  있던 것이다. 꺾이지 않는 모습이 그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었다.

그런 그녀였음에도 지금 상황은 강한 모습을 드러낼 수 없었다. 유능한 그녀이기에  수 있었다. 지금 이 상황이 부를 다음 일들이 보였다.

"아아, 칼린... 안 된단 말이다..."
무겁게 짓눌러 오는 절망감에,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

교주는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추락하기 시작한 벨카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애초에 홍보용으로 만든 비행선이라 그럴까, 창공 한가운데에서 천천히 추락하는 그것은눈에  띄었다. 특히 비행선 외부에 달린 홍보용 메시지에 불이 붙은 것이 상황의 을씨년스러움과 아이러니함을 더했다.

"... 다들 적어도 죄를 속죄하기를."
그녀는 그렇게 중얼대고서 역십자를 고쳐 쥐었다. 곧 그녀의 근처로 이리하가 다가왔다.

"... 혼자 오셨군요."
질문의 뜻은 명확한 것이었다. 그러나 분명히 유감도 담겨 있었다.

"... 예. 거절당했어요."
이리하는 그렇게 말하고 교주의 옆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같이 비행선을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사람보는 눈은 틀리지 않았어요."
"... 확실한 성자였습니다. 하지만 난세에 성인(聖人)은 만들어지는 것이더군요... 정신이 완전히 망가졌어. 그릇이 아니었어요.제 선택을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교주님. 그는 끝까지 어느편에 설지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이리하는 전혀 실망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그가 뭔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무대는 굳이 자신의 교단이 아니라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분명 우리도 찾아내지 못한 새로운 길을 만들어낼 겁니다."
"그럼 우리 임무가 실패할 거란 말인가요?"
"말하기 죄송스럽지만, 아마도."
"... 뭐가 당신에게 그 정도의 확신을 주는 겁니까? 제가 본 그는 그냥 이리저리 휘둘릴 뿐인 인물이었어요."
"그가 드디어 현실을 봤습니다. 전 그를 알아요. 더 이상 휘둘리려 하지 않을 겁니다."
그녀의 눈에는 신뢰가 가득했다. 교주는 그런 그녀와 떨어지는 비행선을 번갈아서 바라보다가, 곧 머리를 쓸어 넘기고 코트를 걸쳐 입었다.

"... 타이즈만 입고 있기에는 춥네요. 저도같이 봐도 되겠습니까?"
"부디. 기적의 현장이  겁니다."
둘은 잠깐동안 그렇게,그저 조용히 비행선이 떨어지는 것을 바라본다. 곧,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지며, 텐트 안에있던 신도들도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한 명씩 밖으로 나온다. 이리하와 교주의 주변으로 몰려들기 시작한다.

"저건 도대체..."
"맙소사..."
"... 허단디알테스타만..."
각자 다른 말로 표출되었지만, 표현하고 싶은 감상은 모두 같았다. 칼린이 뭔가 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리하 조차도 눈 앞의 광경에 압도당하고 있었다. 그녀는 헛웃음을 터트리고 서는 자신도 모르게 조금 젖어버린 눈가를 훔쳤다.

"... 이게 네 길이구나."
교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그녀는 곧 무릎을 꿇고서 손을 모았다.

"당신이 맞았어요,이리하..."
부르르 떨리는 몸은 추워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어딘가에 튕기듯 몸을 움찔대며, 그녀는 환희에 젖은 목소리로 그저 하늘만을 바라보며찬가라도 부르듯 외쳤다.

"모든  알고서 절망하고서도, 그럼에도 저 구더기들을 살리려는 겁니까! 저렇게, 자신의 모습을 완전히 드러내면서까지 죄인을 포기하지 않으시려는 겁니까!"
울부짖음이었지만, 비탄으로 인한 탄식이 아닌 환희의 찬가이다. 흥분으로 가득 젖은  목소리는 색정적이기까지 했다.

"저 분이야 말로 난세의 봉화이고 우리의 성자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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