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빨아 주십시오, 어마마마. -->
"같이 주무실래요?"
지금까지 일부러 그녀를 보지 않고 눈을 돌린 채 말을 이어가던 현이 흠칫 놀라 화연에게 고개를 돌렸다. 언제 이리 다가온 것인지, 조금씩 조금씩 당겨온 조그만 얼굴이 바로 눈 앞에서 그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무슨 말이냐! 것보다 빨리 떨어져라!"
얼굴에 와 닿는 숨결에 또 아래쪽에 피가 쏠린다. 정신없이 손을 휘저어 그녀를 떨어뜨린 현은 천장에 새겨진 용의 비늘을 세며 심호흡을 했다.
"제가 잠을 못 잘때면 어머니께서 늘 곁에서 토닥토닥 해주셨거든요. 제가 토닥토닥 해드릴께요."
"토닥... 토닥?"
"토닥토닥 모르세요? 이렇게, 토닥토닥."
화연이 고개를 갸웃하며 현의 팔을 두어 번 톡톡 두드렸다. 모르는 것이 아닌, 누군가 토닥토닥을 해주겠다고 말하는 것이 당황스러웠으나 굳이 그 말을 입 밖으로 내어놓지는 않았다. 방금 그의 팔에 와 닿은 작고 갸름한 손이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으므로.
"내가 또 네게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이미 폐하께 바친 몸이니 무슨 짓을 하시든 폐하의 결정이시지요."
"이제 그런 말은 금지다."
"어째서입니까?"
"이럴 때는 예, 폐하. 하는 것이다."
예, 폐하. 화연은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리며 조금 전 현이 가리킨 쪽문으로 걸어갔다.
"어디 가느냐?"
"예서 눈을 붙이시라기에."
"토... 인지 뭔지 해준다며?"
"싫으시다면서요."
"내가 언제 싫다 했느냐?"
"아, 그렇구나."
화연은 가던 걸음을 다시 돌려 현의 침상으로 올라가 누웠다. 월화궁에 있는 침상도 엄청나게 넓다 생각하였는데, 이것은 그보다 더욱 넓은 듯 하였다. 이리 넓은 곳에서 혼자 주무시니 잠이 올 턱이 있나.
화연은 그가 잠을 자지 못하는 이유를 제멋대로 헤아리며 포근한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 제 옆자리를 통통 두들겨 보였다.
"얼른 이리 누우세요. 제가 재워 드릴게요."
잠시 망설이던 현이 조심히 침상에 올라 화연과 조금 떨어진 곳에 누웠다. 자신이 황제의 침상에 처음으로 누운 여인이라는 것을 화연은 꿈에도 모르리라. 제 침상에서 여인을 품는 것이 내키지 않는 현은 부러 월화궁을 따로 만들어 그곳에서만 여인을 품었으니. 이런 식으로 파고드는 여인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터였다.
"폐하."
"왜."
"좋은 냄새가 납니다."
네게도 좋은 냄새가 난다. 이리 말하고 싶으나 현은 그저 입을 다물고 몸을 돌려 화연을 등지고 이불을 덮었다. 눈을 감고 천장의 용을 상상하는 그의 등에 따뜻한 것이 닿는가 하였더니 이내 규칙적으로 살며시 토닥, 토닥 두드린다.
신기한 일이었다. 그 작은 동작으로 인해, 방금까지 코로 밀려드는 화연의 체취에 스멀스멀 치고 올라오던 욕정이 가라앉으며 눈이 감기기 시작했으니.
"... 폐하?"
몇 번 두드리지도 않았는데 팔이 툭 떨어지며 규칙적으로 호흡을 내뱉는 현의 모습에 당황한 것은 화연이었다. 잠을 잘 못 주무신다더니 거짓을 말씀하신 것인가? 혹시 몰라 조용히 불러보았으나 이미 깊이 잠이 든 듯 현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잘만 주무시네."
화연은 이불을 끌어당겨 그의 어깨에 덮어놓고는 하품을 하며 눈을 감았다. 조금씩 조금씩, 정신이 아득해지며 이제 막 잠의 강에 빠져드려는 순간.
"으음."
현이 조그맣게 무어라 중얼거리며 몸을 돌려 화연을 끌어안았다.
"흡!"
놀라서 화들짝 잠이 깨버렸다. 살며시 눈을 뜨니 바로 눈앞에 살짝 벌어진 황제의 입술이 보인다. 분명 입도 맞추고 맨살도 부비고, 결정적인 것만 빼고 할 것 다 한 사이인데 어찌 이리 심장이 콩닥거리는지 모를 일이다.
그리 세차게 뛰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고개를 약간 들어 용안을 살피던 화연이 얕게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사내가 이리 생겼담."
가까이서 이리 차분히 살피니 참으로 잘났다. 반듯한 이마 아래 강인해 보이는 짙은 눈썹이 그렇고, 약간 옆으로 길어 부드러운 속눈썹이 덮힌 눈이 그랬다. 콧대는 칼로 벤 듯 오똑하고 그 아래 입술은 그린 듯 선이 또렷하니, 월화궁에서 본 그의 냉정한 모습은 도저히 찾아볼 수가 없었다.
월화궁. 게까지 생각이 미치자 화연의 얼굴이 붉어지며 아랫배에서부터 뜨거운 기운이 온몸으로 퍼져나간다. 거칠게 파고들던 혀와 젖가슴을 빨아들이던 감각, 그리고... 아, 미쳤어.
화연은 혼자 그 이상한 기분을 진정시키느라 가쁜 숨을 내쉬며 넓고 따뜻한 품으로 파고들어 힘들게 잠을 청했다.
***
"폐하, 기침하셨습니까?"
한 시진 후, 지밀인 전 상궁이 문 밖에서 고하였으나 침전은 묵묵부답. 늘 이 시간이면 일어나 계시었거늘,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폐하, 들어가도 되겠사옵니까?"
여전히 답이 없다. 이제 전 상궁의 속은 불안감으로 타들어갔다. 본디 답이 있기 전까지 들어가서는 아니 되었으나, 그녀는 목이 잘릴 각오를 하고선 조심조심 침전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
"마마님, 무슨 일입니까?"
침전 안으로 한 걸음을 내딛던 전 상궁이 다시 황급히 밖으로 나오며 문을 닫자 근처에 섰던 궁녀들이 불안한 듯 물어왔다.
"아무 일도 아니니라. 폐하께오서 모처럼 곤히 잠이 드셨으니 조수라 올 때까지 깨우지 말거라. 하고 이 침전에서 일어나는 일을 발설하는 자는 혀를 뽑고 눈을 파내어 까마귀의 밥으로 삼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자는 없을 것이라 내 믿는다."
선대황 시절부터 황제궁의 지밀로서 이런저런 침전의 일을 모두 보아온 그녀는 짐짓 엄한 얼굴과 무서운 말로 궁녀들을 단속했다.
세상에, 감히 황제의 침상에 환관 나부랭이가 누워 자고 있다니. 심지어 폐하께서 그자를 보물이나 되는 마냥 꼭 끌어안고 있다니! 망극하다, 망극하다 하여도 이리 망극한 장면은 처음 보는 것이다.
"헛!"
놀라기는 문득 잠에서 깬 현이 더하였다. 정말 잠이 들다니, 심지어 아주 깊게. 게다가 품에는 고목나무에 붙은 매미마냥 착 달라붙은 화연이 새근새근 잠들어 있기까지 하였다. 요물, 요물. 만일 화연이 마음을 먹는다면 황제를 재우고 시해를 할 수도 있고, 정력을 쭉쭉 뽑아내어 복상사를 시킬 수도 있지 않은가.
경국지색이 따로 있다던가, 나라를 기울게 할 여인이 세상에 존재한다면 바로 지금 품에 안겨 어린아이처럼 잠든 이 여인이다. 등에 소름이 쭉 끼쳤으나 어쩐지 그녀를 내칠 수가 없어, 현은 팔을 빼내는 대신 곱게 닫힌 눈꺼풀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 폐하?"
용케도 그 작은 접촉에 잠이 깬 화연이 눈을 뜨고 그를 보았다. 맑고 동그란 눈동자와 짙은 갈색의 눈동자가 첫 인사를 나누자마자 현의 남성이 또다시 요동치며 벌떡 일어선다. 이 눈, 이 눈이 문제다. 현은 생각할 틈도 없이 방금 자신을 부른 도톰한 입술에 혀를 밀어넣었다.
"하읍...."
잠들기 전 그토록 생각나던 그 감각이 입 안을 휘젓자 화연은 저도 모르게 현의 목을 끌어안으며 열심히 그 혀를 빨아당기고 타액을 삼켰다. 그 적극적인 반응에 더욱 아찔해진 현이 다급하게 그녀가 입은 환관복을 더듬어 단단히 묶인 매듭을 풀었으나 그 안에는 또다시 다른 매듭이 그를 맞이한다.
젠장, 고자들 옷 주제에 더럽게 많이도 싸매었구나. 현이 다시 그 매듭을 풀어헤치고, 이제 마지막 한 겹이 남은 그때.
"폐하, 조수라 드옵니다."
"... 젠장."
아쉬운 입술이 떨어지며 두 사람은 가쁜 숨을 내쉬었다. 행여 누가 들어올라, 화연이 풀어진 매듭을 찾아내어 대강 묶었으나 현은 그를 아랑곳하지 않고 전 상궁의 목소리에 대답했다.
"들이거라."
"폐하, 아직...!"
기겁하는 화연의 입을 현의 손가락이 막았다. 수라상을 들고 들어오던 지밀들은 그 장면을 고스란히 보았으나 노련한 상궁답게 아무것도 보지 못한 양 평소처럼 수라상을 내려놓고 기미를 마쳤다.
"이제 드시옵소서."
"수고했다. 나가 있거라."
"예, 폐하."
황제께서 수라를 하시는 동안 자리를 비우는 것은 무척이나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었으나 어찌하랴. 상궁들이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침전을 모두 빠져나가자 현은 다시 화연을 침상에 눕히고 입술을 빨아들였다.
"으읍, 읍...."
입이 막혔으니 말은 하지 못하고, 읍읍대며 그의 어깨를 애타게 두드렸으나 입맞춤은 멈추기는커녕 더욱 깊게 그녀에게 파고들었다. 그리고 아까 풀다 만 매듭을 거칠게 당겨 푸는 현의 귀에 아주 낯선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