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것이다. -->
"모두 나가라."
"예, 폐하."
전 상궁과 이하 궁녀들, 필두까지 모두 물러갔으나 흑운만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흑운, 너도."
"... 존명."
몸을 가릴 생각도 없이 눈을 깜빡이던 화연의 시야에서 타락죽이 사라졌다. 그릇을 집어 든 현이 수저에 반쯤 죽을 떠서 앙다문 입술에 가져다 대었으나 그 입은 벌어질 생각이 없어 보였다.
"입을 벌리거라."
"먹지 않으면."
원했던 대로 입술은 벌어졌으나, 죽을 받아먹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상궁마마님도 죽이실 건가요?"
갈라진 목소리가 간절하게 묻는 말에 현이 이를 꽉 깨물었다. 이 상황에 고작 한다는 소리가 상궁 걱정이라니.
"그렇다."
굳게 다물려 있던 입이 벌어지며 그 틈으로 파고든 하얀 죽을 받아먹었다. 중간에 힘겨운 듯 고개를 돌리긴 하였으나 현이 다시 입에 들이미는 수저는 거부하지 않았다. 그릇에 반 넘게 차 있던 죽이 바닥까지 깨끗하게 비워진 후에는 현이 입에 대어주는 물도 한 모금 마셨다.
"너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만 내 말을 듣는구나."
무거운 목소리를 뒤로 한 채 화연이 다시 자리에 누웠다. 드러난 어깨에 자신의 손 모양대로 난 피멍이 선명한데, 이 미친 양물은 또 꿈틀대며 어서 이 안에 들어가자고 난리를 부린다. 현은 잠시 욕망과 이성 사이에서 갈등했으나 지금은 이성이 이겼다.
"밖에 있느냐."
"예, 폐하."
"탕약을 들여오너라."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듯, 명이 떨어지자마자 전 상궁이 탕약을 받쳐들고 들어왔다. 행동은 빠르고 입은 무겁다. 이런 이를 고작 죽 한그릇 먹이지 못했다고 정말 죽여버릴거라 생각한건가. 도대체 화연에게 자신이 어떤 존재로 비춰지고 있는지 알 만하여 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일어나 앉아라."
현은 먹기 좋게 식었는지 탕약을 입술에 대어본 후에야 그것을 화연에게 넘겼다. 쓰디쓴 맛에 얼굴을 찌푸리는 화연의 입에다 꿀에 절인 대추 한 조각을 넣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황제의 침상에 누워 황제의 수발을 받다니, 죽었다 깨어나도 꿈도 못 꿀 호사였건만 정작 당사자는 담담하게 용안을 바라볼 따름이었다.
"좀 더 자겠느냐?"
"왜 저를 후궁전에 보내시지 않나요?"
"뭐?"
"약조하셨잖아요. 이제 황은 입었으니 후궁전에 보내주세요. 아무도 찾는 이 없는 곳이라면서요."
"내게서 달아나려고?"
섬뜩하게 가라앉는 목소리와 달리 얼굴을 쓰다듬는 손길은 다정하다. 화연의 몸이 약간 당겨지며 피딱지가 앉은 입술 위에 부드러운 입맞춤이 닿았다. 아무런 저항도 없이 벌어진 치아 사이로 들어온 혀가 탕약의 맛이 남은 입 안을 조심스럽게 핥다가 밖으로 빠져나와 상처입은 목덜미 부근을 핥자 화연이 움찔하며 떨었다.
"네가 그 곳에 있다 한들 달라지는 것은 없다."
"저한테... 왜 이러세요?"
화연의 물음에 현이 잠시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왜 이러는 것이지. 잠시라도 화연이 보이지 않으면 불안하고, 화연이 누군가와 대화하는 것도 싫다. 만나는 것도 싫고, 눈에 보이는 것도 싫다. 잠시 고민하던 현은 가장 본능적인 욕구에 도달했다.
안고 싶다. 하루 종일 밤낮으로 안고 온몸 구석구석을 핥으며 몇 번이고 화연의 몸 깊은 곳에 파정하고 싶다. 지금까지는 화연을 처녀로 돌려보내 안온한 삶을 살게 해줄 생각이었으나 마지막 끈을 제 손으로 끊어버린 지금 그럴 수도 없지 않나.
"후궁... 이라."
귀찮은 권력싸움에 휘말리고 생명의 위협을 받는 자리. 게다가 가장 내키지 않는 것은 현이 부르거나 찾아가지 않는 한 화연을 만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불안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동안 누군가가 채어갈까봐, 그 마음에 누군가 파고들까 무섭고 두려웠다.
"으읏."
무척이나 부드럽게 핥아내렸음에도 불구하고 피가 맺힌 유실은 찌릿하는 통증을 가져다 주었다. 현은 입술을 떼고 이불을 걷어올려 몸 구석구석을 자세히 관찰했다.
환하게 비쳐드는 햇살 아래 씨물로 범벅된 몸이 남김없이 드러나자 화연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붉게 달아오른다. 그를 눈치챈 현이 손바닥으로 눈을 가려주며 속삭였다.
"눈을 감아라. 아무 짓도 안 하마. 보기만 하겠다."
깨물리고 빨려 곳곳에 붉은 상처가 남은 몸은 좀 덜했다. 며칠 전까지만 하여도 깨끗한 분홍빛이던 옥문은 보기에도 안타깝도록 시뻘겋게 부어올라 하루종일 안기는커녕, 손도 대지 못할 지경이었으니. 현은 다시 이불을 들어 화연의 몸에 덮어주고 바깥을 향해 나직하게 명했다.
"목욕물과 약을 준비해라. 다 되거든 전 상궁이 오고, 그 누구도 가까이 오지 않도록 지켜라."
"예, 폐하."
"폐하! 아니되옵니다!"
열심히 뒤를 쫓아오며 아니되옵니다를 외치는 필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현은 그대로 조그만 몸을 품에 안은 채 목욕간으로 향했다. 흑룡포는 자그마한 화연에 비해 무척이나 넉넉하여 머리까지 폭 감싸인 그녀는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고 그대로 텅 빈 목욕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필두는 문 밖을 지키고, 뒤를 따라 들어온 흑운은 말없이 문을 바라보고 서자 현은 조그맣게 움츠린 화연을 천천히 따뜻한 물 속에 내려놓았다.
"아읏."
벌겋게 부어오른 음부가 물에 닿자 따끔한 통증에 화연이 몸서리쳤다.
"조금만 참아라."
다정하게 토닥이는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긴 하였다만, 아픈 것은 아픈 것이다. 계속해서 움찔대는 화연을 완전히 물 속에 내려놓았을 때 현의 이마는 땀과 수증기에 범벅되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현은 그대로 흰 비단 수건을 집어들다 말고 다시 내려놓았다. 본디는 비단 수건에 팥과 녹두로 만든 가루를 묻혀 씻는 것이나 물만 닿아도 아파하는 아이를 어떻게 그것으로 씻길 수 있을까. 현은 상의를 벗어 흑룡포 옆에 대강 놓아두고 화연의 뒤편에 서서 맨손으로 동그란 어깨부터 조심스럽게 물을 끼얹었다.
“아픈가?”
도리도리. 화연이 살짝 고개를 젓자 커다란 손이 귀 부근을 섬세하게 문질러 씻고는 잇자국이 남은 목덜미를 지나 여인네다운 곡선을 그리는 어깨까지 내려왔다. 힘을 주면 툭 부서질 것 같군. 현은 그리 생각하며 한 손으로 오목하게 들어간 빗장뼈 위를 손끝으로 훑었다.
“제가 하겠습니다.”
“몸도 성치 않으면서 무엇을 한단 말이냐.”
“제 몸은 폐하 때문에 성치 않은데요.”
부드러운 손놀림에 순간적으로 풀어진 마음이 그만 본심을 내뱉았다. 흠칫하며 뒤를 돌아본 화연은 밤사이 황제가 바꿔치기되었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밖에 없었다. 황제가 성을 내기는커녕, 아주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그녀의 코끝에 아주 살짝 입을 맞추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내가 씻겨 주어야지.”
말을 하면서도 손은 부지런히 움직여 물에 반쯤 잠긴 젖가슴까지 내려왔다. 현이 스치기만 해도 통증이 이는 유실을 건드리지 않도록 조심하며 살이 연한 겨드랑이부터 아래위로 쓸고는 몰캉한 살덩이 위에 커다란 원을 그리자 화연이 숨을 몰아쉬었다.
그녀는 아까부터 귓가를 스치는 뜨거운 김이 수증기라고 생각하였지만, 실은 자신을 자제하기 위해 크게 내쉬는 현의 숨결이었다.
“어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