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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두 얼굴-29화 (29/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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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조금 전까지 눈앞이 캄캄해지는 쾌감을 선사하던 황제의 손이 갑자기 움직이지 않는다. 애가 탄 윤 재인은 다시 살며시 눈을 떴다가 화들짝 놀랐다. 여인을 그리 뜨겁게 주무르던 사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치 냉정한 표정. 지금까지 그녀를 애무하던 이가 다른 사람이었다 해도 믿었으리라.

"아, 불을 꺼다오."

윤 재인이 눈을 뜬 것을 깨달은 현이 다시 입가에 미소를 띄우며 속삭였다. 의문을 지우지 않은 채 불을 끈 침상에는 어둠이 찾아들고, 무엇도 보이지 않는 암흑은 다시 비부로 파고들어 옥문을 찌르는 손가락에 윤 재인을 집중하게 만들었다.

"하으읏... 폐하...."

젠장. 오늘은 꼭 황은을 주어야 하는데 양물이 반응하지 않는다. 현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상황에 난감해하면서도 일단은 손가락 두 개로 질구를 찔러가며 시간을 벌기 시작했다. 화연은 곁에 있기만 해도 미친 듯이 욕정이 일어 도저히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였는데.

"읏."

그때, 머릿속에 떠오른 화연의 나신이 어둠 속에 뿌옇게 떠오르며 축 처져있던 양물이 번뜩 고개를 들었다. 심지어 지금 침상 위에서 꿈틀대는 여인이 화연인 듯한 착각마저 든다. 현은 낮은 신음을 뱉으며 여인의 다리를 벌리고는 그 안에 양물을 세차게 박아넣었다.

"아읏! 폐하! 하앙...."

점점 빨라지는 추삽질에 따라 여인의 교성도 점점 높아졌다. 상상 속의 화연이 아래에서 붉은 입술을 벌리고 풀린 눈으로 현을 바라본다.

폐하, 폐하...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귓가를 울리며 늘씬한 다리가 허리 위로 감겨온다. 은애합니다, 폐하. 하읏. 화연의 고백에 드디어 보주가 최고조로 흥분한 순간.

"크윽... 연아...."

현은 자기도 모르게 화연을 부르며 질구에서 양물을 빼내지 않고 그대로 파정했다. 주르륵, 구멍에서 씨물이 축축하게 흘러나오듯 윤 재인의 눈에도 한 방울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지금까지 황제가 품은 이는 자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황제로서 할 일을 마친 현은 짐짓 다정한 체 그녀의 머리를 한 차례 쓸어 주고는 궁녀의 손에 뒤처리를 맡기고 문 밖으로 사라졌다.

***

"언제 잠들었느냐?"

서둘러 침전에 돌아온 현이 쌕쌕 잠든 화연의 이불귀를 여며주며 전 상궁에게 나직히 물었다. 이리 금방 잠이 들다니, 많이 곤하기는 한 모양이로구나.

"나가시고 얼마 되지 않아 잠이 드셨습니다."

"별다른 일은?"

"저, 그것이...."

아씨가 눈물을 보였다는 사실을 고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은 길지 않았다. 별다른 일을 물으셨다면 그에 답하는 것이 자신의 일이니까.

"탕약을 드신 후 갑자기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어찌 우시는지는 모르오나, 곧장 여기로 들어와 침상에 들어오시더니 쭉 울다가 잠이 드셨사옵니다."

현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지자 전 상궁은 눈치껏 허리를 숙여 인사를 올리고는 문을 닫고 나갔다. 화연이 내뱉는 숨소리는 무척이나 작았으나 현에게는 마치 방 안을 가득 채우는 듯 느껴진다.

왜 울었을까. 그럴 만한 이유를 하나씩 짚어보던 현의 머릿속에 무언가 기분좋으면서도 찜찜한 생각이 떠올랐다. 지난번 월화궁에 데려갔을 적에 화연이 무척 좋지 않은 표정으로 돌아오지 않았나. 이번에도 필시 월화궁에 간 것을 눈치채고 운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네가 싫다면 가지 않으마."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은 현의 속삭임에 대답하듯 화연이 하아, 작은 숨을 내쉬며 바로 누웠다. 그 바람에 젖혀진 이불 속에서 드러난 하얀 침의가 유혹적이다. 조금 전에는 그리 여인을 벗겨놓고 이리저리 주물러도 딴 생각만 하던 양물이 그것을 보자마자 벌떡 일어서는 것이 느껴졌다.

이 미친 아랫도리 같으니. 안 된다. 조금 전, 후궁에게 황은을 주면서부터 이상하게 찜찜하고 미안하지 않았나. 허니 그리 곤하여 울다 잠든 화연을 깨울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 잘 자거라."

이마가 동그마니 예뻐서 입맞춤만 하고 돌아설 생각이었는데. 생각과는 다르게 이마에 닿은 입술은 용감하게 미끄러져 살짝 벌어져 있는 입술에 닿았다. 조금만이면 괜찮겠지. 그렇게 조심스레 밀어넣은 혀끝에 말캉한 혀와 달콤한 타액이 느껴지자 이제는 손까지 슬금슬금 올라가려 한다.

그것을 애써 제어하며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살살 그 타액을 핥아 삼키던 현이 문득 이상한 기분에 눈을 뜨고는 흠칫 입술을 떼어냈다. 바로 눈 앞에, 검고 동그란 눈동자가 아주 또렷하게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아... 깼느냐?"

"어떻게 안 깰 수가 있겠어요."

기실, 아까 전 상궁이 나가던 문소리에 이미 잠은 달아났다. 자신이 깼다는 사실을 알면 또 발정난 짐승마냥 달려들 것이 뻔하니 자는 척 하기로 마음먹었을 뿐. 허나 아주 조심스럽게 입맞추어 오는 현의 태도에 그 표정이 궁금하여 살며시 뜬 눈 앞에, 여인네보다 고운 속눈썹이 내려앉아 있는 모습이 신기하여 계속 보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평소의 거친 행동과 다르게 지금의 입맞춤은 무척이나 달콤하고 부드러워 무섭거나 싫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래, 처음 그를 보았던 그 때와도 같은 느낌이었다.

"이제 가려고 했다."

월화궁 다녀오시더니 욕정이 풀리신 모양이다. 그리 생각하니 또 무언가 속상한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 현이 후궁을 깔고 다정하게 속삭이며 추삽질을 하는 장면을 떠올리자 속상함은 곧 가마솥처럼 부글부글 끓어올라 그를 마구 패고 싶은 기분까지 들었다.

짐승이야? 밤마다 그리 해놓고도 또 다른 여인까지 품고 싶어? 그러려고 다른 방에 자라 했어? 지금 나가면 또 어느 후궁을 찾으려고. 복잡하게 꼬이는 생각 속에서 화연은 저도 모르게 손을 들어 일어서는 현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좋았어요."

"... 뭐?"

뜬금없는 고백에 이번에는 현이 당황할 차례. 아까 마음껏 흘린 눈물 때문인가, 아니면 조금 전 부드러운 입맞춤 때문인가. 그것도 아니면 지금 유난히 바보같아 보이는 황제의 모습 때문인가. 화연은 마음의 벽 하나에 금이 가는 것을 느끼며 잡고 있는 옷자락을 힘주어 잡아당겼다.

"이건 좋았다고요. 또 해주세요."

대답 없이 가까워진 입술에서 힘을 주지 않은 혀가 부드럽게 입 안으로 파고들었다. 누구인지 모르는 그 후궁에게 이렇게 했겠지. 그런 생각이 들자 화연은 그 여인의 흔적을 완전히 없애버리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끼며 현의 목을 두 팔로 감아 용감하게 입술을 헤집었다.

"하아, 화연아."

전에 없이 적극적으로 부딪혀오는 반응에 달아오른 손이 거칠게 침의를 풀었다. 그러나 그때, 현을 집어삼킬 듯 달라붙던 입술이 거짓말처럼 떨어지며 화연이 뒤로 살짝 몸을 빼었다.

"아프게 할 거죠?"

막상 또 이 미친놈의 눈빛이 변하니 무섭고 싫다. 허나 싫어요, 라고 했다가는 또 미친놈이 되어 달려들 것을 뼈저리게 잘 안다. 그리하여 대신 던진 물음에 현이 답을 망설였다.

이 미친 살결만 보면 이성이란 것이 사라지고 본능과 가학성, 주체할 수 없는 소유욕만이 남아 그를 움직이는 것이지, 진심으로 아프게 할 생각은 전혀 없었으니. 현은 몸을 떼고 옷을 훌훌 벗어 거기에 매달린 긴 끈을 잡아 뜯었다.

"자."

"이건 왜요?"

"네가 묶어라. 묶여 있으면 아프게 하지 못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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