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제의 두 얼굴-32화 (32/152)

<-- 네가 묶어라. -->

"우웅. 간지러워요."

기절하듯 잠들었던 화연은 뒷덜미에 얼굴을 파묻고 지분거리는 현의 입술에 눈을 감은 채 바르작거리며 깨어났다.

"더 자거라."

"벌써 깼는데. 그리고 배고파요."

일어나자마자 밥을 찾는 화연이 기특은 하다만, 황제가 눈뜰 적에 이미 이놈 또한 함께 일어난지라 아침나절부터 회가 동하는 것을 어찌할까. 허나 잠시만 눈 감고 있거라, 하며 슬금슬금 다리 사이로 손을 넣어보니 아직도 도톰하니 부은 꽃잎이 느껴진다. 게다가,

"폐하. 이제 그만 기침하소서. 곧 조수라 드옵니다."

이놈의 궁인들은 왜 쓸데없이 이리도 부지런한가. 현은 짙은 눈썹을 못마땅하게 찌푸리며 다시 제멋대로 흐트러진 화연의 머리카락 속에 얼굴을 숨기고 봉긋한 젖가슴을 더듬어 쥐었다. 꾸역꾸역 조수라 들고 조강가야 하는 현실을 외면하듯이.

"폐하. 들어가옵니다."

"되었다. 기침하였느니."

아무리 숨고 숨어도 전 상궁의 목소리는 각다귀마냥 따라와 기어코 귓구멍을 파고든다. 현은 한숨을 푹푹 내쉬며 아직도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는 화연의 정수리에 쪽, 입을 맞추고는 몸을 일으켰다.

"소셋물 들이라 하겠다."

"네... 에? 잠시만요!"

느릿한 대답과 함께 비몽사몽 눈을 뜨던 화연이 화들짝 놀라 일어나자 그 목소리에 이미 침상에서 벗어나 문을 향하던 현이 멈추어 뒤를 돌아보았다. 조금이라도 늦게 눈을 떴다가는 그대로 문이 열리고 말았으리라.

헌데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당당하게 나가던 황제가 돌아서는 그 모습이 참으로 보기가 민망하다. 그을린 듯한 구릿빛 피부에 목은 길고 넓은 어깨는 각이 잡혔으며, 탄탄하게 솟은 가슴팍과 논두렁마냥 구비구비 선이 또렷한 복근 아래로는 어젯밤 그리 침을 질질 흘리던 양물이 불끈 서 있기까지.

게다가 옥체 곳곳에 남은 붉은 흔적들은 모다 그녀가 새긴 것들이다. 그러고 나가시게요? 화연은 그만 손으로 얼굴을 가려버리며 웅얼거렸으나 어찌 손가락 사이는 은근슬쩍 벌어져 있는 것인가.

"허면 어쩌고 나가야 하느냐?"

"옷, 옷!"

손틈새로 현의 몸을 훔쳐보던 화연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것은 바닥에 제멋대로 흩어져 있는 의복들. 본래 바닥에 흩어질 일도 없는 옷들이거니와, 일단 바닥에 떨어진 이상 천자의 손으로 그것을 도로 주워 입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현은 그저 피식 웃고는 군말없이 옷더미를 뒤져 속의대를 대강 주워입는 것으로 화연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되었느냐?"

"네."

아후. 화연은 현이 나가는 것을 확인하고는 밭은 숨을 내쉬며 얼굴을 가렸던 손으로 황급히 손부채질을 했다. 볼거 다 보고 물고 빨고 다 한 사이에 새삼스럽기 그지없으나 침상에서 보는 것과 저리 적나라하게 일어선 모습을 보는 것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리고 일어선 편이 훨씬... 색정적이었다.

"어디 불편하십니까?"

직접 소셋물과 영견을 들고 안으로 들어서던 전 상궁이 고개를 갸웃하다 그저 작게 웃었다. 창이 없는 자그마한 방에 어지러이 흐트러진 옷가지와 얼룩진 이불, 진한 음액의 냄새는 격정적이던 지난밤을 그대로 그려내고 있으니 그것이 부끄러워 저리하시리라.

"아니... 아니어요. 제가 할께요."

영견에 더운물을 적시는 전 상궁의 손을 화연이 잡아세웠다. 늘 밤새 시달린 다음날 아침이면 호화스럽기 그지없는 황제의 목욕간에 앉아 전 상궁의 손길에 몸을 맡겼으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씨물이 범벅되어 말라붙은 음부를 남의 손으로 닦아내다니. 아무리 황궁의 법도에 무지하다지만 귀족가의 여식으로서 그리할 수는 없음이 아닌가. 게다가 상대는 나이 지긋한 상궁마마님이시다.

"허면 속히 닦으시어 이 의대로 갈아입고 나오십시오. 폐하께서 기다리십니다."

다행히 전 상궁이 순순히 수건을 건네고 밖으로 나가자 화연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푸스스 흘러나왔다. 더운물에 몸을 푹 담그고 씻고 싶은데, 이제 조수라 들어온다니 그를 먹고 나면 벌써 조강 들어갈 시간이다.

오늘 잠행 나가자 한 것을 폐하께서 잊으시면 좋겠는데. 허면 흑운의 손을 빌어 황궁으로부터, 황제로부터 도망쳐 어머니께 돌아갈 수 있을 터이다. 그런 생각들을 하며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가니 맛있는 냄새가 후각을 자극하며 뱃속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먼저 아니 드시구요."

"네가 없으면 입맛이 돌지 않는구나."

눈치 보아하니 이미 기미까지 끝난 모양이다. 서둘러 자리에 앉아 저분질을 시작하려던 화연의 시선이 문득 옆을 향했다. 무어가 그리 좋은지, 현이 입꼬리에 대롱대롱 웃음을 매달고 그녀를 부담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광기가 없을 적의 그는 객관적으로 보아 상당히 잘 생긴 편이건만 웃기까지 하니 더욱 잘났다. 어쩐지 가슴이 간질간질한 느낌에 화연은 괜히 새침하게 고개를 돌리고 물 한 모금을 꿀꺽 삼켰다.

"허면, 저 없어지거든 수라 안 자시려구요?"

무심코 내뱉은 말이건만, 따스하던 현의 눈빛이 순식간에 서늘해진다. 위험하다. 이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미친놈이 될 모양이었다. 화연이 다급하게 수습하기도 전에 현이 우악스럽게 틀어쥔 양 어깨에 새로운 멍이 생겼다.

"없어진다고?"

"아니... 만약에, 제가 죽을 수도 있고, 또 어디 납치당할 수도 있고...."

"만일 그리 된다면 말이다."

현은 여전히 여린 어깨를 부서질 듯 틀어쥔 채 고개를 낮추어 번뜩이는 눈동자로 화연을 꿰뚫었다.

"그곳이 어디가 되었든 찾아간다. 혜국의 모든 병력들을 소요하여 너를 찾아내고, 너를 죽이거나 납치한 자는 내 손으로 갈가리 찢어 죽인다. 그 늙은 환관놈처럼."

그 눈빛은 커다란 뱀이었다. 아니, 용이었다. 화연을 통째로 칭칭 감아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드는. 다정함과는 거리가 먼, 속에서부터 긁어올린 거친 목소리가 한 마디 한 마디를 씹어 뱉았다. 소름끼치게도 그 말은 의심할 바 없는 진심이었다.

"... 왜요?"

"내 것이니까."

낳고 키워준 것은 부모님인데 다짜고짜 제 것이라니, 날강도도 이런 날강도가 천지에 또 있을까. 게다가 따지고 보면 다른 집안에 시집가던 신부를 낚아채어 침전에 가두었으니, 날강도라 하여도 할 말이 없을 것이었다.

화연은 억울하였으나 일단 아픈 어깨를 빼내는 일과 미친놈의 정신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일이 더 급하니 그저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그를 달래었다.

"안 죽고 안 갈게요. 그리고 아파요."

"아."

현은 그제서야 자신이 또 화연의 몸에 상처를 입힌 것을 알고는 다급히 손을 풀었다. 어깨를 살며시 풀어내려 보니 또 손자국이 시뻘겋다. 화연은 현이 미안하다는 말 대신 하얀 쌀밥 한 저분 푹 떠서 입에 넣어 준 것을 냠냠 받아 먹으면서도 흑운을 생각했다. 과연, 그가 저를 탈출시키고 나면 무사히 살아 있을 것인가.

"이것도 먹거라."

현은 그 속을 모르고선 그저 넣어주는대로 쏙쏙 받아먹는 화연이 귀여워 제 수라는 들 생각도 아니하고 바쁘게 수저를 움직였다. 그 망극한 장면에 발을 동동 구르던 필두는 결국 용기를 내어 폐하, 소인이 먹여드리겠나이다. 하다가 무시무시한 눈빛에 그만 기가 죽어 꼬리를 돌돌 말아버린다.

허나 필두의 용기가 아주 헛은 아니었다. 딴 생각에 빠져 입만 벌리던 화연이 현실로 돌아와 수저를 쥐었으니.

"제가 먹을게요."

"어깨가 아프지 않느냐."

"괜찮아요."

자기 밥 자기가 먹겠다는데 왜 이리 서운한겐지. 현은 미련 가득한 눈으로 화연의 손에 쥐어진 수저를 바라보다가 내키지 않는 저분질을 시작했다. 다음에 반드시 의자에 꽁꽁 묶어놓고 한입한입 떠먹이리라 속으로 결심하며.

========== 작품 후기 ==========

바로 뒷편 연참이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