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어서 도망치려고? -->
“일어서.”
반항할 생각도 들지 않을 정도로 머리가 멍해졌다. 뜨겁게 달아오른 몸이 애타게 지금 눈앞에 있는 사내를 원하였으니.
화연이 시키는 대로 비틀비틀 자리에서 일어서자 현은 그녀를 침상 기둥에 밀어붙이고 한쪽 다리를 들어올려 제 허리에 감았다. 그리고는 힘껏 양물을 박아넣고 추삽질을 시작하자 균형을 잡을 수 없는 화연은 어쩔 수 없이 현의 목에 팔을 감아 최대한 밀착하고 몸을 버티었다.
“아, 으흐흑…!”
꼿꼿이 선 유두가 딱딱한 가슴팍에 쉴새없이 비벼지고, 화연은 그 상태로 첫 번째 절정을 맞았다. 아득해진 정신이 채 돌아오기도 전, 현이 화연을 침상 위로 집어던졌다.
“엎드려.”
현의 명령에 화연이 떨리는 몸을 가누며 바닥에 손을 짚고 뒤로 돌았다.
“아으흣!”
방금 절정하여 아플 정도로 예민해진 옥문에 파고드는 양물을 피해 둔부를 앞으로 빼었으나 현은 작은 어깨를 붙잡아 힘껏 당겼다. 그러나 잔뜩 수축한 내벽은 거대한 그것을 채 받아들이지 못하고 다시 토해내었다.
“제대로 못 하지?”
철썩 철썩, 찹쌀떡마냥 뽀얀 엉덩이에 커다란 손자국이 몇 개나 새겨졌다. 꽉 닫혔던 질구가 고통으로 인해 힘이 풀리자 현은 그대로 화연의 어깨를 우겨잡고 양물을 뿌리까지 처박아 빠르게 추삽질을 해 댔다.
“아으읏! 아, 아, 아, 아앗!”
눈앞에 훤히 드러난 음부가 제 물건을 꽉꽉 물고 빨아먹는 모습, 질질 흘러나오는 액체와 움직이는 박자에 맞추어 앞뒤로 출렁거리는 젖가슴은 현에게 참을 수 없는 시각적 자극이었다. 현이 더 버티지 못하고 마지막으로 양물을 꾹 눌러 박으며 파르르 떠는 순간, 화연 역시 두 번째 절정을 맞으며 침상 위로 풀썩 쓰러졌다.
“하윽, 하….”
아직 양물을 빼내지도 않은 옥문에서 뿌연 액체가 뚝뚝 떨어진다. 현이 천천히 그것을 빼내고 화연의 몸을 바로 뒤집자 열락에 들떠 붉게 물든 얼굴이 그를 마주보았다.
“다시 묻겠다. 도망치려 하였느냐?”
“...네.”
“어째서.”
“폐하가 싫어서요.”
“하.”
헛웃음을 지은 현이 벌떡 일어나 아까 던졌던 단도를 찾아 집었다. 그 눈은 광기로 물들어 보이는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번뜩이고 있었다.
“그래, 도망해 보아라. 어디 한번 세상 끝까지 도망해 보아라.”
자신을 통째로 집어삼킬 듯한 그 표정에 화연의 정신이 돌아왔다. 현은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는 화연을 붙잡고 그 위에 올라타 단도를 고쳐 쥐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네 고운 낯에 칼자국을 내주마. 오직 내 앞에서만 고개를 들 수 있도록.”
새빨갛게 익은 유실이 파르르 떨었으나 쾌감으로 인한 것은 아니었다. 단도가 천천히, 그러나 세밀하게 움직일 적마다 화연은 이를 악물고 온 힘을 다해 고통을 삼켰다. 갈비뼈를 타고 방울방울 흘러내린 핏물은 점점 흥건해져 하얀 이불보를 시뻘겋게 물들였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고통이 어느 순간 뚝 멈추고, 이불에 칼날을 문질러 닦은 현이 바깥을 향해 나지막히 명했다.
“먹과 물, 면포를 가져오너라.”
잠시 후, 진한 먹과 면포를 받쳐들고 들어온 필두가 저도 모르게 꿀꺽 숨을 삼켰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나신으로 길게 누운 채 앞가슴에서 피를 줄줄 흘리는 화연과 여기저기 흥건한 핏자국, 섬뜩한 미소를 물고 그녀를 내려다보는 황제의 오른손에 쥐어진 단도. 그 옆에서 꺼질 듯 위태롭게 타오르는 등잔불이 그 모든 장면을 더욱 기괴하게 만들고 있었다.
“폐… 폐하….”
“놓고 나가라.”
더 말을 잇지 못한 필두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현의 옆에 소반을 내려놓고 황급히 물러났다. 물에 적신 면포가 피를 닦아낸 자리에 담비털로 만든 최고급 붓이 시커먼 먹을 머금고 둥글게 원을 그렸다.
“으윽….”
“아프냐.”
대답은 없다. 잠시 후 현은 새로운 면포를 적셔 먹물과 피를 꼼꼼하게 닦아내었다. 뒤틀린 입가에 만족감이 함뿍 담기는가 싶더니 이내 붉은 혀가 나와 할짝, 상처 위를 핥았다.
“이제 어디도 못 가겠지."
현(賢). 왼쪽 가슴 위에 새겨진 글씨 위로 다시 핏방울이 점점이 샘물처럼 동그라이 솟았다.
***
“아버님, 서가 소저를 찾았습니다.”
퇴청하자마자 피곤에 절어 집으로 돌아온 우승상 앞에 다짜고짜 은호가 나타나 무릎을 꿇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황제가 납치해 쥐도새도 모르게 죽여버렸으리라 생각한 신부를 대체 어디서 찾았단 말인가?
“무슨 소리냐?”
“소자가 시전 나들이를 갔다가 외진 골목에서 홀로 정신을 잃었습니다. 헌데 저를 도와준 사내가 무척이나 수상하기에 얼결에 따라갔더니, 그이가 바로 소저였습니다.”
“사내가 도와주었다 하지 않았느냐?”
“예, 그이가 남복을 하고 있었습니다. 쫓기는 듯 무척이나 다급해하며 절더러 빨리 가시라고, 옆에 있다가 들키면 목숨을 잃는다 하였습니다.”
급박하고 억울한 당시 상황이 떠오른 은호의 눈가가 미세하게 떨렸다.
“헌데 숨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그이를 찾으러 온 자에게 잡혔습니다. 그 자가 분명 소저에게 폐하께서 기다리십니다, 이리 말하였습니다. 아버님, 도와주십시오."
앞뒤 사정을 들은 우승상의 미간이 한껏 일그러졌다. 남복을 입은 여인, 그녀를 빼앗아 간 황제. 남복, 남복이라. 무언가 찜찜하던 구석이 떠올랐다. 만일 황제가 그녀를 죽이지 않고 곁에 두었다면?
“... 환관.”
우승상이 씹듯이 중얼거렸다.
“예?”
“그 입은 의복이 어떠하더냐.”
“어두워 자세히 보이진 아니하였으나, 손에 닿은 감촉은 무척이나 고급 비단이었습니다.”
그 환관은 틀림없이 어딘가 낯이 익었다. 서씨 가문에서 보내온 함에 화첩이 들어 있었으니 낯이 익을 밖에. 이 능구렁이 같은 황제는 그를 우롱하듯, 바로 코 앞에 훔쳐간 며느리를 들이대놓고 있었던 것이다.
허나 어찌할 방도가 있으랴. 이미 가마째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다고 공표한 마당에 그를 무르고 내 며느리 내놓아라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무사히 살아있음을 위안으로 여기고, 그저 잊어라. 이미 손을 떠난 아이다.”
“아버님!”
바닥에 엎드려 아버님을 부르짖는 은호의 마른 등짝에 서책 한권이 날아가 부딪혔다.
“네 어찌 이리 철이 없다더냐. 이 아비가 어찌 해주랴, 황상을 찾아가 그 여인 내 아들 것이니 내놓으라 하겠느냐!”
궁녀로 들어있다 하면 차라리 손쉬운 일이다. 차피 황후가 없는 지금 내명부의 수장이 우승상의 누이라, 궁녀 하나 둘 들이고 냄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수고도 필요치 않으니.
허나 환관으로 숨어들었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그 대쪽같은 신임 환관장이 그를 어찌 빼줄 것이며, 빼준다 하더라도 황제가 곁에서 떼어 주겠냔 말이다. 속이 뒤집어지는 일이지만 사실이 그러했다.
“물러가거라. 다시는 그 아이의 일을 입에 담지 말거라.”
얼음장마냥 차가운 목소리가 비틀거리는 은호를 문 밖으로 쫓아내었다. 아비의 말 틀린 점 하나 없음에도 원망은 어쩔 도리 없이 무럭무럭 자라나 그의 동공을 뒤덮었다. 화연은 분명 겁에 질려 있었고 도망치려 했다. 혼례 치르지 않았으나 그녀는 틀림없는 제 신부일진데, 어찌하여 돌려받을 수 없단 말인가. 은호는 괴로이 신음하며 양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
“경들은 대체 뭐 하는 자들이야! 이런 작은 일 하나 알아서 처리하지 못하는가!”
현이 집어던진 두루마리들이 집무실 탁자에 어지러이 흩어지며 대신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언제는 사소한 일 하나하나 보고하라 하시어 놓고는 어찌 트집이신가. 속으로는 그 환관이 또 보이지 않는 것과 관련있음을 알고 있으나 불똥이 튈까 두려워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화, 황공하옵니다, 폐하!”
“황공, 황공, 황공! 입만 열면 그 소리밖에 할 줄 모르지!”
와장창, 애꿎은 탁자를 부서질 듯 걷어찬 현이 그대로 옷자락을 탁 털고 밖으로 사라지자 숨죽이던 대신들은 그제서야 다죽어가는 얼굴로 의자 위에 축 늘어졌다.
“이러다 말라죽겠소이다. 차라리 매일 야근할 적이 좋았소.”
“내 말이 그 말이오. 이리하면 이리했다 역정, 저리하면 저리했다 역정….”
세상에, 과중한 업무가 그리워지는 날이 올 줄이야. 그들의 짐작대로 모든 원인은 서 환관이었다. 그녀가 도망치다 그림자에게 붙들린 지 닷새. 조가비처럼 꾹 다문 입술은 아주 가끔 물을 한 모금 마실 적 말고는 열리는 법이 없으니, 현이 이리 미쳐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내가 잘못하였다. 이거 한 입만 먹어 보아라, 응?”
싹싹 빌어가며 입에 수저를 갖다 대보아도,
“네가 이 죽 올린 아랫것들을 정녕 죽이고 싶은 게로구나? 당장 앞에 끌어내어 목을 쳐야 먹을 것이냐!”
무서운 말로 겁박을 해 보아도,
“네 맘대로 하여라. 굶어 죽던지 말던지.”
무심한 체 해 보아도. 화연은 정녕 굶어 죽을 생각인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곡기 끊은 것은 화연인데, 어찌 나날이 더욱 수척해지는 것은 황제인가. 오늘도 집무실에서 괜한 노화를 내고 돌아와 보니 쪽방에 오도카니 앉은 화연 앞에 놓인 죽그릇은 그녀의 눈빛처럼 싸늘하게 식은 채 떠먹은 흔적이 없었다.
“죽어서 도망치려고?”
========== 작품 후기 ==========
연참이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