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어서 도망치려고? -->
“그만.”
착 가라앉은 목소리가 태후의 말을 잘라 끊었다.
“그 잘난 민 첩여는 어찌 함께 오지 않았습니까?”
“안즉 초기라, 무조건 누워 안정을 취해야 한답디다. 뭣하면 태의를 대동하여 후궁전으로 뫼시리까?”
이리도 당당한 모양새를 보아하니 회임이 거짓은 아니라. 허면 그 실낱같은 가능성을 뚫고 진실로 용종을 잉태하였던가, 그도 아니면 감히 황궁 안에서 부정을 저지른 것이었다. 현은 차라리 부정을 저지른 것이길 바라며 딱딱하게 말을 뱉았다.
“내탕금의 배도, 궁인도 과합니다. 허나 빼앗은 내탕금은 기존대로 내려주고 궁인들 또한 돌려주도록 하지요.”
“황상, 용종을 품은 여인에게 어찌…!”
“더 할 말은 없습니다. 소자 옥체 미령하니 나가보소서.”
“... 그러지요. 허면 나머지는 내명부 법도대로 처리하겠습니다.”
“예. 살펴가십시오, 마마.”
태후는 짐짓 인자한 듯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리 부정해 보아야 어쩌겠는가, 버리는 패라 생각하였던 민 첩여가 떡하니 회임을 한 것을. 환관 나부랭이를 끼고 떡을 치든 뽕을 치든, 이제 새로운 꼭두각시가 생기지 않겠는가. 황제궁 앞마당에 내려선 그녀는 아하하하, 날아갈 듯 통쾌한 웃음을 터뜨리며 사뿐사뿐 태후궁으로 돌아갔다.
***
우승상의 뱀 같은 동공이 조그만 환관의 몸을 훑었다. 고개숙인 옆얼굴이, 환관복으로 어설프게 가린 몸태가 영락없는 계집의 그것이로구나. 환관복 벗겨놓고 머리 내리면 꽤나 절색일 듯 하니, 아들이 그리 오매불망 목을 맬 만도 하였다.
“우승상, 뭐 할 말이 있는겐가?”
“아… 아니옵니다, 폐하.”
그의 시선을 못마땅하게 여김이 분명한 목소리. 봐온 세월이 몇 년인데 그것을 모를까. 후궁이라면 늦가을 화원에 열린 열매만큼이나 많건만, 그중 누구에게도 관심을 가지지 않던 그가 저 계집만은 굳이 저리 숨겨서 곁에 둔다. 바쁘게 굴러가는 그의 생각을 다시 심드렁한 옥음이 잡아 끊었다.
“무슨 일이 이리 많은가? 대체 경들은 시키지 않으면 하는 일이 없군.”
살얼음판같은 집무실의 공기 속에 모두가 고개를 탁자에 처박고 황제와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간 가장 일을 게을리한 이가 투덜거리고 있는 형국이었으나 또 무슨 트집을 잡히려고 고개를 들까. 이리트집, 저리트집 잡으며 대신들을 신나게 굴리던 현의 눈에 점점 아래로 떨어지는 화연의 고개가 들어왔다.
“그만, 다들 퇴청하시오.”
“황공하옵니다, 폐하!”
후다닥 두루마리를 정리하는 대신들 사이에서 우승상은 분명 보았다. 자리에서 일어선 황제가 꾸벅꾸벅 조는 환관의 어깨를 다정하게 쓰다듬어 깨우는 모습을. 우승상은 완전한 확신을 가지고 집에 돌아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생각에 잠겨들었다. 그리고 이튿날, 동이 트자마자 황궁으로 달려가 곧장 태후궁에 들었다.
“마마, 우승상께서 드시옵니다.”
“뫼셔라.”
얇디얇은 한 겹의 침의마저 흐트러져 유실이 봉긋 머리를 내미기 직전이고, 속곳조차 입지 않은 듯 언뜻언뜻 비치는 아래가 거무스름하다. 우승상은 못마땅하게 헛기침을 하며 예를 올리고 손짓으로 궁인들을 죄다 물렸다.
“의관을 정제하소서, 마마.”
“황상께서 문안도 아니 오시는데요, 무얼.”
“신이 보기 민망하여 그러하옵니다.”
“이 사람도 좀 편히 있으렵니다, 오라버니. 이리 일찍 입궁한 연유나 말씀하세요.”
이리 허술한 누이와 계획을 공유해도 되는 것일까. 우승상은 잠시 고민하였으나 곧 한숨을 내쉬고 용건을 끄집어내었다.
“근래 황궁에 도는 소문을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남색 말입니까?”
“예, 마마.”
왜 새삼스레 그 이야기를 꺼내냐는 듯, 태후가 어깨를 살짝 으쓱여 보였다.
“그 환관이 여인입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겝니까, 오라버님?”
“지난번 우리 은호의 친영날에 괴한들이 신부를 납치해가지 않았습니까. 황상이 그리한 것입니다. 또한 그 여인에게 환관복을 입혀 지금 밤낮으로 끼고 있습니다.”
조카의 신부가 납치당한 일도, 황제가 아낀다는 환관도 알고 있다. 허나 두 사람이 동일인물일 줄 누가 상상이나 하였겠는가. 연지를 바르지 않은 태후의 입술이 떨떠름하게 벌어졌다.
“... 황상께서 꽤나 귀여운 짓을 하였군요.”
“은혜를 모르는 일이지요. 지금 저가 오른 그 자리를 누가 만들어 주었는데.”
“그러게나 말입니다. 내가 얼마나….”
태후의 입가에 가소로운 미소가 떠올랐다. 그냥 두면 형제들에게 죽임당할 어린 황자를 황제로 만들기 위해 저가 어떤 세월을 보내었는데.
지금으로부터 십수년 전, 안즉 앳된 티를 벗지 못한 그녀가 황후로 올랐을 적의 이야기다. 젊은 시절 꽤나 잘났었다던 황제는 혼례를 올리고 보니 이미 징그러운 중늙은이였고, 어린 황후는 바로 그와 초야를 치러야만 했다. 합환주를 한 입에 털어넣은 황제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에게 손짓했다.
“이리 가까이 오시오.”
주춤주춤 다가온 황후의 혼례복이 한 겹씩 벗겨져 나갈 적마다 황제의 주름진 눈꺼풀에서는 욕정 대신 권태로움이 흘러내렸다. 무릇 황제와 황후의 합방에는 정해진 법도가 있으나 이미 세 번째 황후를 맞이하는 판에 그런 법도따위 무슨 소용이 있을까. 결국 황제는 귀찮은 듯 남은 옷을 찢어발기다시피 대강 벗겨낸 후 자신 또한 훌훌 옷을 벗고 침상에 드러누웠다.
“대강 하고 주무십시다, 황후.”
황후는 잠시 눈을 감고 배운 것들을 떠올렸다. 전국 팔도의 이름난 기녀들을 죄다 모아 몇 년간 연마한 방중술을 지금 제대로 해내야만 한다. 시원한 물 한 모금을 머금은 입안에 양물을 물자 황제가 움찔 놀라는 것이 느껴진다.
자신감을 얻은 그녀는 손으로 부드럽게 양물을 쥐고 목젖까지 밀어넣으며 조금씩 물을 삼켰다. 꿀꺽 꿀꺽, 물이 식도를 지날 적마다 황제가 길게 숨을 몰아쉬는 소리가 잘 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하아….”
양물에 솟은 핏줄 하나하나를 혀끝으로 더듬던 황후가 입안 가득 양물을 품고 아래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움직임이 점점 빨라질수록 황제의 숨소리 또한 빨라진다. 그가 충분히 흥분하자 황후는 몸을 일으켜 천천히, 그러나 농밀하게 옥체를 타고 앉아 비부 전체에 양물을 끼워 허리를 움직였다. 아흐윽, 붉은 입술에서 부끄러운 신음이 새어나오자 양물에 불끈 힘이 들어간다. 그간 갖은 방법으로 성감을 키워온 음핵이 꿈틀대며 애액을 쏟아내 그것을 흠뻑 적셨다.
“하앙, 폐하….”
어린 신부의 애닳는 부름에 결국 황제는 더 참지 못하고 그녀를 잡아 눕혔다. 곧장 안쪽으로 쳐들어온 성난 분신에 의해 시뻘건 핏물이 비단 금침에 얼룩지며 감당키 힘든 통증이 황후를 덮친다. 참아야 한다. 황후는 비명 대신 연습해온 교성과 함께 아래의 고통을 잊으려 제 젖가슴을 쥐어짰다. 그 모습이 더욱 자극적이었던 듯, 황제는 꼿꼿한 유두를 사납게 빨아들이며 배려라곤 없는 거친 추삽질을 이어갔다.
기대하지 않았던 초야에 맛본 황후의 아랫도리에 푹 빠진 황제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황후궁을 들락거렸으나 후사는 잉태되지 않았다. 아무리 기름진 밭이라 하여도 다 늙은 씨앗은 싹을 틔울 여력이 없으니. 그녀는 궁여지책으로 대신들과 입을 맞추어 가장 어리고 만만한 현을 황태자로 밀었다.
그리고 황태자가 십이 세가 되던 해, 황제가 붕어했다. 강건하던 보주가 어느 날부턴가 일어서지 않게 된 것도, 그러다 결국 황제마저 일어나지 못하게 된 것도. 그간 황후궁에서 조금씩 술에 타서 먹인 독이 원인이라는 사실은 오직 이제 태후가 된 황후와 그 오라비만의 비밀이었다.
그렇게 용상 뒤에 발을 내리고 앉아 정권을 틀어쥐었던 순간, 태후는 태어나 가장 큰 쾌감에 사로잡혔다. 허나 그 누가 알았을까. 그 어리고 순하던 현이 실은 발톱을 숨긴 호랑이였음을.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황제는 대신들에게 끊임없이 일거리를 쥐어주는 방식으로 그들을 길들이며 나날이 성군의 면모를 갖춰갔다. 구역질 나는 밤들을 참고 견딘 기나긴 인내였건만 그 열매는 턱없이 적었다. 그리하여 새로운 열매를 준비하는 지금, 복병이 나타난 것이다.
“위험합니다. 그 계집이 덜컥 황자라도 잉태하게 되면 말짱 헛이 아닙니까.”
오라비의 말에 과거의 상념이 깨어진다. 태후는 늙은이 특유의 냄새와 그가 요구해오던 온갖 수치스러운 행위들이 몸에 들러붙은 기분을 애써 떨구었다.
“그렇군요. 황상의 총애를 받는 여인이라니, 우리 쪽 사람이었다면 좋으련만.”
“회임한 민 첩여가 있지 않습니까. 소인이 용한 무당을 불러다 아들낳는 굿을 치르겠나이다.”
“그래요. 허면 그 환관인지 여인인지는 어찌 처리할지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둘의 생각이 일치한 것을 확인한 우승상은 말이 나올라, 서둘러 나와 정전으로 향했다. 등청 시각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