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씹어 먹고 싶다. -->
"아흐응, 좋아요, 폐하, 아흑!"
화연의 반응이 점점 격해짐에 따라 안에 들어가 있는 양물 또한 서서히 부풀어 오른다. 두 손가락 사이에 끼워진 음핵이 처음에는 살살 장난치듯, 그러나 곧 빠르게 양쪽으로 흔들렸다.
이미 충분히 달아오른 음핵은 몇 번 흔들기도 전에 절정하여 울컥울컥 음액을 토해내고, 그와 동시에 조금 전보다 더욱 꽉 조여진 속살이 살아있는 듯 꾸물대며 양물을 빨아들였다. 현은 이를 악물고는 매끄러운 다리를 더욱 넓게 벌려 거칠게 허리를 쳐올렸다.
"아, 아, 아흐윽, 아흑! 폐하, 폐하! 아하윽!"
처음보다 더욱 거센 쾌감이 화연의 온 몸을 땀으로 덮고 자극적인 교성을 뽑아내었다. 이제 현에게 배려 같은 것은 남아있지 않았다. 그저 본능을 위해 점점 더 빠르고 거칠게 양물을 꽂았다 빼기를 반복할 뿐. 땀에 젖은 손에서 허리가 자꾸 빠져나가는 것이 짜증스럽다. 현은 한 손으로 동그란 어깨를 꽉 잡고 자신을 향해 세차게 끌어당겼다.
"크윽, 윽...."
어찌할 수 없이 새어나오는 신음소리가 파정의 신호였다. 다시 한 번 화연의 안에 씨물을 잔뜩 쏟아낸 현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아직도 꺼떡거리는 양물을 뽑아내고 화연을 돌려세웠다. 감당할 수 없는 쾌감으로 덜덜 떨리는 자그마한 입술이 부드러운 입맞춤에 기다렸다는 듯 벌어지며 그의 혀를 받아 삼킨다. 두 사람이 한참동안 서로의 입 안을 탐색하는 사이, 바깥에는 이미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하... 너를 어찌할까."
이윽고 입술을 떼어낸 현이 한탄하듯 중얼거렸다.
"어찌하고 싶으신데요?"
"씹어 먹고 싶다. 칼로 토막내어 피 한 방울, 뼈 한 조각 남기지 않고 모조리 씹어 먹고 싶구나."
널따란 가슴에 얼굴을 묻으니 들이쉬는 숨결마다 깊게 배인 난향이 폐부로 스며든다. 체취만은 성군 그 자체구나. 화연은 그리 생각하며 웅얼웅얼 다시 물었다.
"씹어 먹으면, 그 다음은요?"
"다 먹자마자 나 또한 죽어야지. 허면 너는 죽어서도 영원히 내게서 떨어지지 못할 것이 아니냐."
**
가느다란 초승달이 곧 꺼질 듯 위태로운 빛을 뿌리는 늦은 밤. 현은 처리해야 할 두루마리들을 산처럼 쌓아둔 채 씨름하고, 화연은 침상에 엎드려 뒹굴뒹굴 서책을 읽고 있는 중이었다.
"하아아암."
화연의 하품소리가 점점 길어지자, 고개를 드는 법조차 잊은 듯 하던 현이 드디어 뒤를 돌아보았다.
"시각이 늦었다. 침수 들자꾸나."
"싫어요."
눈을 비비고 연신 하품을 하면서도 도무지 잘 생각을 아니한다. 현은 피식 웃고 두루마리를 대강 옆에 밀어둔 후 화연의 손에서 서책을 빼앗아 멀리 던져버렸다. 크고 똘망하던 눈이 반은 감겨 있는 것 같은데, 어찌 이리 고집을 부리는 것인지.
"잠을 자기가 싫으냐?"
"저 자면 월화궁 가시게요?"
현의 눈빛이 잠시 움찔했다. 화연을 재우고 나면 윤 재인의 처소에 찾아갈 계획이었으므로. 물론 좋아 가는 것은 아니었으나 엄밀히 말해 손가락이나 입술 정도는 대지 않나. 허나 그 모두가 결국은 화연에 의한, 화연을 위한 일일진데 어찌 이리 등에서 식은땀이 나는지 모르겠다.
"... 정말 가실 생각이셨나봐요?"
"아니, 그런 것이 아니다."
그리 말하는 현이 이마에 그런 것이라고 아주 선명하게 씌어 있다. 거짓말이라도 잘 하실 것이지. 한숨을 한번 내쉬고는 꼬물꼬물 침상에서 내려와 곁방으로 향하던 화연의 등이 와락, 넓은 가슴에 안겨들었다.
"정녕 아닌데, 무어라 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제가 조금 전 읽은 서책에 무어라 씌어 있었는지 아세요?"
"그것은... 통속소설이 아니냐."
화연이 그리 즐긴다던 서책은 결국 통속소설이었다. 황궁 서고에 그런 서책이 있을 것이라고는 그 서고의 주인인 현조차 상상하지 못한 일인데, 그 까마득히 높은 곳에 꽂혀있던 책을 무슨 수로 찾아낸 것인지.
"통속이야말로 모든 인생만사 진리가 담겨 있으며, 그 어느 성현도 헤아리지 못한 남녀간의 감정을 완벽하게 서술한 글입니다. 폐하께서는 한 번도 안 보셨나봐요?"
"그래서, 무어라 씌어 있었는데?"
"몸 가는 곳에 마음이 가고, 마음 가는 곳에 몸 간다고요. 허니 지금 폐하께서 가시는 곳에 폐하의 마음이 있다, 이 말이에요."
"너만을 정녕 은애한다 하지 않았느냐."
"네 네. 이제 저 좀 놔주세요. 졸려요."
사실대로 말해야 하나. 그렇지 않아도 저를 미친놈이나 괴물처럼 생각하고 있는 화연이다. 회임한 여인을 해칠 생각이라 말했다간 그에게 돌아올 눈빛이 보지 않아도 알 만 하였다. 게다가 화연이 지난번에 다른 여인을 안는 것은 싫다 하지 아니하였던가. 잠시 갈등하던 현은 천천히 팔을 풀며 자그마한 뒤통수에 입을 맞추었다.
"금방 돌아오마. 기다리거라."
저벅저벅, 현의 발자국 소리가 멀어지다 결국 문 밖으로 사라졌다. 방에 들어가려던 화연은 그 문이 닫히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으나 그 자리에는 어둠만이 가득할 뿐, 사람의 온기 같은 것은 없었다. 쓸데없이 넓은 이 침전에 혼자 남는 것은 싫은데. 그래서 그녀는 있을 지 모르는 누군가를 가만히 불러 보았다.
"흑운 님, 계세요?"
"예."
모습은 보이지 않으나 목소리는 틀림없이 들려온다. 저 혼자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조금 마음이 놓인 화연은 방으로 들어가는 대신 주인 없는 침상에 풀썩 드러누워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이불에 배인 은은한 난향이 왠지 모르게 마음을 가라앉히는 기분이었다.
"폐하께서 어디 가시는거죠?"
"모릅니다."
침상을 데굴데굴 구르며 몸에 이불을 휘감던 화연의 몸에 무언가 딱딱한것이 부딪혔다. 꺼내어 보니 아까 현이 집어던졌던 통속소설. 높은 댁 도령이 남장을 하고 물건 파는 여인과 은애지정 나누는데 그 여인이 알고보니 원수의 집안이었다는, 흔하디흔한 내용이었다. 하필이면 왜 이것이 황궁 서고에 있었는지 모를 정도로.
소설 속 도령은 자신을 죽이려는 원수의 딸까지도 이리 은애하여 결국은 아들딸 낳고 잘 살건만, 천자는 또 다른 모양이다. 틀림없이 은애한다 해 놓고 저리 휙 가버리는 것을 보니. 심란해진 화연은 대강 넘기던 책장을 다시 덮어 옆으로 밀어놓았다.
"흑운 님."
대답은 없었으나, 틀림없이 그 곳에 있는 것을 안다.
"본디 천자란 한 여인에게 정착할 수 없는 건가요?"
"... 조금 그렇기도 합니다."
천 년 가까이 이어져 온 역사서에도, 구전으로 전해지는 야사에도 단 여인에게만 은애를 바친 황제란 거의 없다시피 하였다. 아니, 그냥 없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황제가 나서서 한 여인에게 정착하려 한다 해도 주변에서 달달 볶는 황실 어른들과 대신들이 그를 내버려 두지 않으니.
"조금 그런 건가요, 완전히 그런 건가요?"
"완전히 그러합니다. 지금까지 한 여인에게 정착하여 죽을 때까지 은애한 천자는 없습니다."
"그럼, 폐하께서 저를 죽을 때까지 은애하면요."
누워 있던 화연이 반 바퀴를 더 굴러 엎드린 채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이 휘장을 뚫고 자신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에 흑운은 잠시 눈을 감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처음이네요? 한 여인을 은애한 천자요."
***
"황제 폐하 듭시오."
이제는 곱게 꽃단장을 하고 황제를 기다리던 윤 재인의 얼굴 가득히 미소가 피었다. 현은 능숙하게 그려낸 웃음으로 그에 답하며 맞은편에 앉아 윤 재인의 얼굴을 손끝으로 쓸었다.
"나날이 고와지는구나."
"부끄럽습니다, 폐하."
가득 채워져 등불을 반사시키던 두 개의 술잔이 비워졌다. 그리고 그것이 탁자에 다시 안착하는 순간, 현이 웃음기를 지우고 하아,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무척이나 우울해 보이는 그의 표정에 윤 재인의 얼굴 또한 함께 어두워졌다.
"저... 폐하. 외람된 말씀이오나 어심이 번다하시옵니까?"
화연이었다면 폐하, 기분 안 좋으세요? 하고 물었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하자 현은 저도 모르게 다시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간신히 잡아 내려야 했다. 그리고 기분과는 달리 무거운 목소리가 그의 입술을 비집고 나왔다.
"네가 먼저 회임하였다면 좋았을 것을."
"폐하...? 무슨 말씀을...."
"아니다. 한잔 더 받거라."
투기란 상대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을 때 더욱 크게 타오르는 법. 이 짓도 두어 번만 더 하면 되겠구나, 현이 속으로 셈하는 동안 윤 재인은 복잡한 생각을 애써 감추며 그가 따라주는 술을 꿀떡꿀떡 받아 삼켰다. 민 첩여가 회임하였다는 소문은 들었다. 허나 폐하께서 저리 아쉬워함은 분명 저를 위한 것이 아닌가? 총애를 받음에 기뻐해야 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저 회임하지 못함에 슬퍼해야 할지. 윤 재인이 그리 갈팡질팡하고 있을 때,
"이제 자주는 오지 못할 것이다. 허니 기다리지 말거라."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이 그녀의 마음에 단단한 쐐기를 박았다.
"이제 신첩이 싫어지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