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제의 두 얼굴-67화 (67/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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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둘 다다. 둘 다 여인을 품어라. 그리고 내 것에는 한 치의 관심도 두지 마라."

"주군!"

"내 앞에서 하기 싫으면 입 닫아라."

기녀의 손에서 흘러나오는 비파 선율은 아름다웠으나 분위기는 앞에 놓인 탁자보다도 딱딱했다. 현의 명에 따라 술잔은 계속해서 채워지고 또 비워졌다.

이윽고 병이 비었을 때 흑운은 처음과 같은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진중하던 눈초리에 불쾌함이 가득하고, 은호는 이미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간신히 정신을 가누고 있었다.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두 사람을 구경하던 현의 입가에 그제서야 삐딱한 미소가 떠올랐다.

"내실로 모셔라. 그냥 나왔다가는 경을 칠 줄 알거라."

"주군의 곁을 비울 수 없습니다."

"너 말고도 많이 따라왔다. 뭣들 하느냐. 빨리 모시래도. 아, 각자 여인을 품었다는 증좌를 가져와야 할 것이다."

"예, 나으리."

언뜻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분이시다. 기녀들은 이 낯선 분위기에서 달아날 수 있는 것에 만족하며 각자 두 사람의 팔을 잡고 내실로 인도했다. 이제 누가 보아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인상이 구겨진 흑운이 마지막으로 현을 돌아보았으나, 여유롭게 눈썹을 까딱하며 손에 든 술병을 높이 들어보이는 주군의 모습만이 마지막 시선에 담길 따름이었다.

"이쪽으로 오시어요, 나으리."

간드러지는 음성과 문 닫는 소리가 섞여 울려퍼진다. 기녀가 이끄는 방으로 들어간 흑운은 일단 침상에 앉았으나 마음이 내킬 리가 없다. 물론 그도 사내이다. 그것도 아주 건강한. 다만 욕구를 푸는 일보다 억누르는 일에 더욱 익숙할 뿐. 게다가 현과 마찬가지로, 흑운이 품고 싶은 여인 또한 한 사람밖에 없었다.

"멈춰라."

눈앞에서 옷을 벗어내리는 기녀의 행동에 흑운이 흠칫하며 손을 들었다. 옷을 벗다 만 기녀는 그의 옆에 앉으며 애원하듯 무릎에 손을 얹었다.

"행수 어르신께서 저 분의 심기를 거스르면 죽은 목숨이라 하셨습니다. 제발요, 나으리...."

젠장. 흑운이 고개를 숙이고 마른세수를 했다. 건장하고 묵직한 사내가 당황하는 그 모습이란, 지금까지 닳고 닳은 방탕한 사내들만을 숱하게 만나왔던 기녀로서는 참으로 탐나는 먹잇감이었다.

"소녀가 죽는다면 마음이 편하시겠습니까?"

유혹적인 목소리와 함께 끈적한 손길이 흑운의 옷섶을 헤치고 들어온다. 그는 그림자였다. 먹고 죽으라는 명에 망설임없이 일제히 환약을 삼키던 그림자들과 같은. 그리고 충심이 뿌리깊이 세뇌된 그림자에게 있어 황제의 명은 절대적이다.

흑운은 눈을 감고 길게 숨을 내쉰 뒤 팔을 늘어뜨렸다. 실제로 여인을 가까이 한 적은 없되, 침상 뒤에서 지켜본 일 또한 셀 수 없다. 이 뒤가 어찌 흘러갈지는 지나칠 정도로 잘 알고 있었다.

"빨리 끝내라."

"어찌 그리 냉정하십니까, 나으리."

간드러지게 속삭이는 여인의 손이 능숙하게 옷을 풀어내다 말고 흠칫 놀라 멈추었다. 질 좋은 비단옷 안에서도 한껏 근육을 뽐내고 있던 사내의 몸은, 막상 벗겨보니 온통 흉터와 생긴 지 얼마 안 된 상처들로 뒤덮여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기녀가 손끝으로 상처를 피해 가슴 근육을 쓸어내리며 물었으나 고개를 저쪽으로 돌린 흑운은 대답 대신 그녀의 옷을 무성의하게 벗겨내렸다. 무언가 사연이 있는 듯, 먼 곳을 보는 그의 눈빛에 기녀의 숨이 살짝 가빠진다. 사내의 얼굴을 부드럽게 잡고 제 쪽으로 돌려 천천히 입술을 가까이 가져갔으나 굳게 다문 입은 그녀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구순을 열어 주시어요, 나으리."

"쓸데없는 짓 마라."

흑운은 파리를 내쫓듯 고개를 탁 털어 그 손을 떼어내었다. 언젠가 펄펄 끓는 신열에 신음하던 화연의 입에 물을 머금어 흘려주었던 그 날이, 흑운에게는 처음이자 마지막 입맞춤이 될 것이었다. 냉랭한 반응에 자존심이 상한 기녀는 포기하지 않고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실례하겠습니다."

"뭘... 윽."

흑운이 눈썹을 찌푸리며 작게 신음했다. 그때까지 그저 잠잠하던 남근이 난생 처음 뜨겁고 몰캉한 감촉을 마주하는 순간 제멋대로 깨어나 몸부림치고 있었다. 사내가 목석같으면 목석같을수록, 그가 보이는 반응은 여인에게 더 큰 흥분을 가져다 준다. 기녀는 단단하게 일어선 남근을 한 손으로 가볍게 쥐고 한 손으로 고환을 어루만지며 계속해서 혀를 놀렸다. 상처투성이의 손이 이불을 꽉 그러쥐었다.

"그만. 그만."

그 어떠한 고통에도 내뱉은 적 없는 말이 자기도 모르게 새어나왔다. 바닥에서 일어선 기녀가 살며시 그의 다리 위에 올라탔다. 벌려진 음부가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양물에 적나라하게 비벼지자 이미 달아오른 그녀는 더 이상의 전희를 포기하고 손을 아래로 넣어 남근을 꼭 쥐었다.

이 어설픈 반응으로 보아 이 사내의 첫 여인은 틀림없이 자신이었다. 큰 키에 오랜 세월 다져진 근육, 사내답고 진중한 생김새와 건장한 양물까지 죄다 갖춘 사내의 처음이라니. 그 사실만으로 그녀에게는 전희가 필요치 않았다.

"잠깐."

남근이 기녀의 몸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직전, 흑운이 거칠게 그녀의 허리를 잡아 멈춰세웠다. 역시 전혀 내키지 않는다. 그러나 명이다. 흑운은 천천히 제 무릎 위에서 내려놓은 기녀를 다시 제 다리 사이에 앉혔다. 이번에는 침상을 그러쥐는 대신 기녀의 뒷머리를 살짝 쥐었다.

"이렇게만."

단호한 목소리가 더는 그녀에게 여지를 주지 않음을 여실히 나타내었다. 기녀는 아쉬움을 삼키며 입 안에 꽉 차는 남근을 물었다. 손으로는 표피를 당기고 기둥을 자극하며 혀는 부드럽게 그 끝을 감고 핥았다. 문득 아래를 내려다본 흑운의 눈 앞에서 여인의 붉은 입술이 제 것을 정성스럽게 빨고 있다. 긴 속눈썹 위에 화연이 겹쳐 보인다. 현에게 깔려 음란하게 몸을 뒤트는 순결한 나신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리고 지금 그 위에서 정신없이 허리를 쳐올리는 사내는 주군이 아닌 자신이 되었다. 꽉 다문 잇새 사이로 낮은 신음이 새어나온다. 흑운이 다급하게 기녀의 머리채를 뒤로 당기는 순간, 강하게 뿜어져 나온 씨물이 그녀의 얼굴과 몸에 흩뿌려졌다.

"... 하아."

크나큰 쾌감 뒤에 허무함과 자책감이 한숨 소리에 섞여 흘렀다. 여인의 혀가 정성스럽게 남근 끝에 남은 씨물을 핥았다. 흑운은 입술을 깨물며 그녀를 밀어내고 바닥에 흩어진 옷을 헤집어 손바닥만한 속곳을 집어들었다.

"이건 내가 가져가겠다."

흑운은 빠르게 옷을 입고 소매 안에 그것을 아무렇게나 챙겼다. 빨리 현의 곁으로 가야만 한다. 그러나 그가 서둘러 들어간 별실에는 텅 빈 술병만이 쓸쓸하게 나뒹굴고 있었다.

***

"환관장님."

"아직이십니다."

침상에 파묻힌 채 이리저리 뒤척거리던 화연이 필두를 불렀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냉정했다.

"시각이 얼마나 되었죠?"

"아까 물으셨던 그대로입니다."

화연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푹신한 이불을 솜주먹으로 퍽퍽 내리쳤다. 나간지가 언젠데 아직도 돌아오질 않는다. 게다가 언뜻 보니 함께 나간 흑운도 무복 아닌 평복 차림이라, 두 사내가 그리 차려입고 어딜 갔단 말인가?

필시 사내들끼리 유흥을 즐기러 갔다는 확신이 들며 배신감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믿었던 흑운마저 폐하를 말리기는커녕 함께 신이 나서 나가는 꼴이란! 기실 흑운은 전혀 신이 난 적이 없었으나, 적어도 지금 화연에게는 그리 느껴졌다.

"아, 진짜! 들어오기만 해 봐!"

"들어왔다."

갑자기 벽 쪽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깜짝 놀란 화연의 눈이 평소의 배는 커졌다. 그대로 비밀 통로에서 빠져나온 현은 두 팔을 활짝 벌리고 비틀비틀 침상으로 다가와 그녀를 폭 끌어안았다.

"필두야, 술상 봐오너라."

"폐하, 이미 취하신 듯 하옵니다."

"황명이다, 황명! 술 가져와!"

"... 술냄새."

화연이 숨을 참으며 몸을 비틀었으나 현은 물러나기는커녕, 커다란 강아지마냥 그녀의 젖가슴에 얼굴을 부비며 웅얼대기 시작했다.

"화연아아."

"뭐 하시는 거예요!"

앙칼지게 그를 밀어내는 화연과 조금이라도 더 얼굴을 부비고 싶은 현 사이에서 작은 몸싸움이 일었다. 그러나 술 취한 사내의 힘을 당해낼 수 있을 리 없다. 화연의 몸이 침상 꼭대기까지 밀려 올라갔을 때, 구원과도 같은 소리가 문을 타고 넘었다.

"폐하, 술상 들이옵니다."

"오, 그래. 술, 술!"

언제 화연에게 달라붙었냐는 듯, 현이 벌떡 일어나 침상에서 내려갔다. 그러나 열린 문으로 들어온 것은 술상만이 아니었다.

"폐하. 어찌 먼저 가시었습니까?"

언뜻 보면 나갈 때와 같은 차림의 흑운. 그러나 단정하던 옷이 약간 구겨져 있는 것을 화연이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네가 너무 늦었지 않느냐아. 우리 화연이가 기다리는데."

"최대한 일찍 끝냈습니다. 여기, 챙겨오라 명하신 증좌이옵니다."

흑운이 소매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현에게 내밀었다. 반사적으로 손을 내민 현은 제 손바닥 위에 놓인 물건을 보고는 술이 확 깨는 것을 느끼며 그것을 다급하게 품 속에 집어넣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 그거, 뭐예요, 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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