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은 구름 -->
"이것들을 모두 배우라구요?"
필두가 한아름 안고 들어온 서책들을 서안 위에 올려놓자 화연의 표정이 한껏 구겨졌다.
"물론이지. 네 입으로 당당히 황후궁에 앉겠다 하지 않았느냐."
"으아아......."
여인치고는 상당히 서책을 즐기는 편이긴 하였으나, 저것은 제목만으로도 눈이 핑핑 돌아갈 만치 어려워 보인다. 게다가 맨 위에 어마어마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저 책은 또 무엇인가. 제왕학?
"폐하, 제왕학은 제가 왜 익혀요?"
"가만히 앉아 후궁에게 잔소리만 하는 줄 아느냐? 황제가 잘못된 길을 걸을 적에 유일하게 잡을 수 있는 이가 바로 황후다."
"그렇군요...."
입을 빼꼼히 벌리고 힘없이 중얼거리던 화연의 머리에 격려하는 듯한 손길이 톡톡 와 닿았다.
"어려서부터 신동이라 소문이 자자하였다며. 사내로 났다면 큰 일을 하였을거라며."
"그야 맞는 말이지만."
"그다지 어렵지 아니할 것이다. 나 또한 저것을 배웠으니, 영민한 네게는 더욱 쉽겠지."
약간의 거짓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제왕학이 어렵지 않을 리가. 현이 저것을 배울 적에는 스승 세 명이 그에게만 매달려 하루에 한 장이라도 나가면 다행이었다. 그들이 입을 모아 영민하시다, 걸출하시다 칭찬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폐하, 상서령 영감 들었사옵니다."
"모셔라."
상서령은 또 누구지. 호기심에 찬 화연의 시선이 열린 문으로 들어오는 노인을 향했다. 분명 처음 보는 얼굴인데, 또 어디서 많이 본 것 같기도 하고.
"인사드려라. 오늘부터 너를 가르칠 스승이시다."
"처음 뵙겠습니다, 미인마마. 정3품 상서령직을 맡고 있는 표 유한이라 하옵니다."
표 유현. 고개를 갸웃하던 그녀는 이윽고 그가 그 아리바리한 호부좌랑과 상당히 닮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현이 호부좌랑을 독대하던 날, 부친 이야기를 하였었지. 그 부친이 바로 눈앞에 있는 노인일 테다. 마음에 드는 결론을 도출해낸 화연이 방긋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반갑습니다, 스승님. 많은 가르침 부탁드리겠습니다."
지켜보던 현의 눈썹이 아주 약간 찌푸려졌으나, 두 사람이 눈치채기 전에 제자리로 돌아왔다.
"매일 조강이 끝나면 상서령이 여기로 올 것이다. 필요한 서책은 내 서고에서 가져가도록 해 두었으니 너는 그저 배우기만 하면 된다. 닷새에 한 번씩 내가 직접 시험을 보겠으니 그리 알고."
"닷새에 한 번... 이옵니까?"
닷새에 한 번요? 하고 소리를 지르려던 화연은 뒤늦게 옆에 사람이 있음을 깨닫고 황급히 어투를 바꾸었다. 저리 궁중 용어를 잘 사용할 수 있으면서 절대 쓰지 않는단 말이지. 무척이나 귀엽지 않은가. 콩깍지가 단단히 씌인 현의 눈에는 그녀가 하는 모든 것이 귀여워 보였다.
"너무 적으냐?"
"신첩이 불민하여 스승님의 수업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할 수도 있사옵니다. 또한 정무에 집중하셔야 하는 폐하의 금 같은 시간을 그리 자주 빼앗음은 도리가 아닐 것이니, 시험의 횟수를 열흘에 한 번으로 줄이시면 어떠하실런지요."
아주 구구절절 흠 잡을 데가 없구나. 현은 요 깜찍한 구미호가 사내였다면 아주 조정을 쥐락벼락했으리라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이레에 한 번. 더는 안 된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분명 깎을 것을 예상하고 부른 날짜가 열흘이리라. 만족한 듯 헤실헤실 웃으며 냉큼 끄덕이는 고개가 그 사실을 말해준다. 더 있고 싶다. 현은 집무실에서 그를 기다리는 대신들과 서류더미를 떠올리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지금 여기를 나가고 나면 석강이 끝나기 전에는 돌아오지 못할 터인데.
"상서령, 잠시 나가 계시오."
"예, 폐하."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자마자 현의 입이 화연을 향했다. 정확히는 새하얀 치아가 붉은 입술을 꽉 깨물어 버린 것이라, 다정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우우우우웅!"
화연이 바둥거리며 단단한 가슴팍을 두드렸으나 현은 그녀를 놓아주지 않고 더욱 꽉 안으며 계속해서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혀 끝에 비릿한 피맛이 느껴질 때까지.
"누가 웃으라고 했느냐."
"무슨 소리세요! 아, 아파!"
울상이 된 화연이 그를 노려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공부하라 하여 그러겠노라 했고, 시험치라 하여 그러겠노라 또 답하였는데 대체 이게 무슨 봉변이란 말인가.
"네가 상서령에게 웃어주지 않았느냐! 이렇게!"
현 또한 양쪽 집게손가락을 화연의 볼에 넣어 양 옆으로 늘리며 마주 목소리를 높였다.
"인사하라 하였지, 누가 웃어주라 하였느냐! 앞으로 웃는 것은 금지다!"
"그럼 화내면서 해요? 앞으로 매일 볼 사람인데!"
"차라리 화를 내면 되겠구나. 웃지 마라. 내 앞이 아니면 절대 웃어선 안 된다."
"진짜 성격 이상해."
화연이 피맺힌 입술을 댓발 내밀고 투덜거린다. 그 얼굴 앞에 현의 얼굴이 놓이자 움찔하며 입을 가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물지 않을테니 손 치워라."
누가 그 말을 믿을 줄 알고? 도리도리, 세차게 고개를 젓던 화연의 손이 억지로 잡아 내려졌다.
"손 아파요오."
"아."
울상이 되어 속삭이는 목소리에 현이 손을 놓았다. 화연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쪼르르 문을 향해 도망쳤다. 또 무슨 짓을 할지 어떻게 알아. 황급히 문을 열고 세 걸음을 더 도망칠 수 있었으나 그것이 한계였다. 갑자기 나타난 검은 그림자에 이마를 박고 바닥에 주저앉았으니.
"들어가십시오."
흑운은 그녀를 일으키는 대신 고개만 까딱해 보였다. 화연을 일으켜 데려가는 것은 뒤에서 따라나온 현의 일이었으므로.
"어딜 그리 도망가려고."
현의 손을 잡고 일어선 화연이 다시 몸을 돌렸다. 잠시 그 자리에 서서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흑운은 다시 원래 서 있던 복도 한켠으로 비켜섰다. 이제는 휘장 뒤에서 화연을 바라보는 일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그 사실을 아프다 해야 할지, 다행스럽다 해야 할지.
"진짜 안 깨물어요?"
내실로 돌아와서도 경계의 눈빛은 거둬지지 않았다. 깨물지 않겠노라 몇 번이나 약조한 뒤에야 현은 화연의 입 안에 혀를 넣고 마음껏 타액을 빨아마실 수 있었다. 하아, 달뜬 숨을 뱉어낸 그의 눈에 열락이 들끓었다.
"스승님... 기다리시는데."
"더 기다리라고 해."
마음껏 즐길 시간 따위는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다급한 손이 제대로 옷을 벗기는 대신 치맛자락만 걷어올리고 급히 속곳을 벗겨내 그 안을 더듬었다. 아직 젖을 생각이 없는 그 곳에 얼굴을 밀어넣고 혀로 핥아올린 현은 곧장 바지를 풀어 벌써 침을 질질 흘리는 분신을 꺼내 억지로 밀어넣었다.
"아파아...."
"조금만 참아라."
전혀 흥분하지 않은 내벽은 쉽사리 사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몇 번 허리를 뒤로 뺐다가 다시 밀어넣기를 반복하던 현이 얼굴이 약간 찌푸려졌다. 분명 인상을 쓰는 것 같은데 어찌 또 색정적인 것인지.
약간 붉어진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던 화연의 아래가 조금씩 젖어들기 시작하자 찌푸린 얼굴에 약간의 미소가 떠오르고, 동시에 보주가 뿌리 부근까지 깊게 침범했다.
"별미로구나."
"하아, 아... 무슨 맛인데요?"
몽롱하게 되묻는 말에 조금씩 천천히 움직이던 현의 허리가 별안간 빠르게 치닫기 시작했다. 양쪽 다리를 붙잡은 손에도 힘이 들어간다. 다급하게 시작한 정사는 그다지 오래가지 않았으나 화연은 그게 좋았다. 자신을 보고 현이 욕정한다는 사실이, 그 시뻘건 욕망이, 그녀의 반응을 신경쓰지 않고 오직 제 쾌감을 위해 움직이는 그의 표정이 좋았다.
"뜨겁고... 달다."
잠시 움직임을 멈춘 현이 속삭이고는 다시 허리를 쳐올리기 시작했다. 아흑, 풍랑을 만난 배처럼 아래위로 흔들리던 화연의 몸 안으로 들락거리는 남근이 제 몸집을 한계치로 부풀린다. 이내 쏟아져 나온 씨물이 음액과 섞여 바깥으로 흘렀다.
"세 번. 두 번만 더 하면 되겠구나."
"그러다 나 닳아 없어지겠어요."
이미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조수라도 거르고 두 번이나 화연을 안았건만, 정녕 하루 다섯 번을 채우고서야 이 구미호에게서 풀려날 수 있을 모양이다. 현은 소매 안에서 영건을 꺼내어 체액으로 범벅된 음부와 남근을 닦아내고 다시 의관을 바로했다. 화연은 그를 한 차례 흘겨본 뒤 스승이 민망한 냄새를 맡을까, 창을 열어 실내를 환기시켰다.
"공부 열심히 하고 있거라. 결과를 보아 사냥에 데려가 줄 것이니."
"사냥요? 나 활 못 쏘는데."
"내가 가르쳐 주면 되지. 숲에 쳐둔 막사에서 침수들고, 잡은 짐승은 통째로 구워 먹는다. 물론 술도 마시고. 가고 싶지 않으냐?"
막사에서 잔다니, 가고 싶지 않을 리가. 기대에 찬 눈동자가 반짝거리며 반드시 가고 싶다는 뜻을 현에게 강력하게 전했다. 기실 사냥대회란 본디 정5품이상 후궁들도 모두 따라가는 행사이나 화연이 그것을 알 리 없었다. 반드시 열심히 공부하여 시험에 통과하겠노라 마음먹은 그녀는 이 날부터 스승이 혀를 내두를 만치 공부에 매달렸다.
========== 작품 후기 ==========
연참이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