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은 구름 -->
황성에서 가장 큰 저택. 모든 건물이 삼 층으로 이루어진 이 사합원은 본디 전 우승상이었던 하씨 집안의 재산이었으나 이제 그들의 모든 가산과 함께 몰수되어 황제의 소유였다. 현이 대문을 바꿔 달고 그 안에 다시없이 호화로운 세간들을 채워 현 대승상인 서 이흥에게 하사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딸 하나 잘 키워 아주 벌떡 일어섰구먼, 벌떡 일어섰어."
그 앞을 지나던 보부상 하나가 혀를 내두르며 으리으리한 집을 아래위로 훑었다. 불과 한 달 전만 하더라도 귀신이라도 나올 듯 을씨년스럽던 저택은 장 하나 짜기에도 손떨리게 비싼 갈참나무로 태산같은 대문을 달고선 황제가 하사한 사병들로 담을 쭉 두르고 있었다.
"자네 거시기도 벌떡 일어서야 할 텐데, 안 그런가?"
"하, 우리 마누라만 보면 섰던 것도 드러눕네그려."
보부상의 너스레에 지나던 사람들까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서 귀비가 그리 천하절색에 명기라던데. 글쎄, 불알 없는 환관놈들까지 고년 궁뎅이만 보면... 헉!"
싱글벙글 웃으며 동료의 등을 두드리던 보부상이 갑자기 멈춰서며 침을 꿀꺽 삼켰다. 담장을 지키고 섰던 사병 둘이 달려와 한 명은 그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한 명은 포승줄을 꺼내는 것이 아닌가.
"뭐, 뭐요! 갑자기!"
"황실을 능멸한 자는 즉결 처분하라는 황명이다."
어디에 사는 누구인지, 신분은 무엇인지, 아무도 묻지 않았다. 그대로 금부로 끌려간 보부상은 피떡이 되도록 매질을 당하고 나서 짐짝마냥 문밖에 내쳐지고, 소식을 들은 가족들이 달려와 울부짖었으나 소용없었다.
비단 사병들만이 감시하는 것이 아니었다. 황명을 받고 변복한 병사와 그림자들이 백성들 사이에 섞여, 혹여라도 그들이 서 귀비에 대해 삿된 말을 입에 담는 순간 번개처럼 그들을 끌고 사라지는 것이다. 황제에 대해서는 무슨 말을 해도 괜찮았으나 그것은 되려 더 반발심을 키워나갔다.
민심이 갈수록 흉흉해지는데는 서 귀비의 오라비인 서 언주 또한 한몫하였다. 그렇잖아도 술에 취해 서 귀비를 욕한 농민 하나가 끌려간 터라, 분위기가 유달리 좋지 않은 날이었건만.
"어? 잠깐, 너."
"예? 저 말입니까?"
언주의 손끝이 가리킨 여인은 기녀가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양민의 옷, 그 중에서도 조금 더 좋은 옷을 입은 이 객잔의 여식이었건만 이미 벌겋게 달아오른 그에게는 딱히 중요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리 앉아 술을 좀 따라보거라."
이미 서너 명의 기녀들이 그의 시중을 들고 있었으나 영 마음에 차지 않던 차였다. 그 와중에 풋풋하게 꽃내 나는 처녀가 종종걸음으로 옆을 지나가고 있으니, 색다른 찬에 어찌 구미가 동하지 않겠는가. 언주의 입꼬리가 만족스럽게 휘었다.
"송구합니다, 손님. 저는...."
"앉으라고!"
노비도, 기녀도 아닌 멀쩡한 아녀자를 대낮에 희롱하면서도 언주는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 굴었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처녀가 그 자리에 서서 어물거리자 언주가 눈썹 사이를 구기며 그녀의 손목을 잡아 낚아채었다.
"이리 보니 더 어여쁜데."
"고, 공자님. 놓아주세요. 저는 기녀가 아닙니다."
"기녀가 아니면 더 좋지. 데리고 와."
씩 웃은 언주가 뒤에서 그를 호위하던 사병에게 처녀를 밀쳤다. 사병은 잠시 망설였으나, 눈썹 사이를 찡그리며 그를 노려보는 언주의 눈빛에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번쩍 들어 어깨에 얹고 객실로 올라갔다. 뒤늦게 객주와 아내가 주방에서 뛰쳐나왔을 때는 이미 문이 닫힌 뒤였다.
"공자님, 저, 저는...."
"가만히만 있으면 팔자가 피는데, 왜 그리 겁을 먹는 것이야?"
성급하게 바지춤을 끌러내리던 언주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둥글게 몸을 만 처녀는 더욱 움츠러들었다. 눈앞의 사내가 서 귀비의 오라비라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다. 입에 담기만 해도 금부로 끌려가 불구가 되도록 맞고 나온다는. 도저히 반항할 생각도 할 수 없는 그녀의 눈에서 서러운 눈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네가 만족스러우면 애첩으로 들어앉혀 주마. 알았지?"
타이르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지만 이미 징그러운 손은 빠르게 처녀의 옷을 벗겨내어 새하얀 젖가슴을 이리저리 주무르고 있었다. 타인의 손길에 전혀 익숙하지 않은 유실이 딱딱하게 일어서자 언주는 만족스러운 듯 그것을 양 손으로 한쪽씩 잡고 장난치듯 쭉 당겨 보았다. 수치심에 혀라도 깨물 듯한 표정도 마음에 든다. 유두를 당긴 손을 아래위로 흔들자 평범한 용모에는 이질적인 풍만한 젖가슴이 파도처럼 흔들거렸다.
"공자님, 제발... 저는 양인입니다. 이리 함부로...."
"알았으니까 다리나 벌려."
빨갛게 일어선 유두를 입에 물고 빨다가 손끝으로 튕겨보기도 하며 실컷 가지고 놀던 주언은 이제 그마저 질린 모양이었다. 그녀를 침상에 눕혀 억지로 허벅지를 벌린 뒤 촉촉히 젖은 속살을 감상하기 시작했으니.
"흑, 흑...."
주언이 거침없이 옥문을 범하고 안을 휘젓자 결국 가련한 처녀는 얼굴을 가린 채 울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젠장, 시끄럽게. 그는 짜증스럽게 중얼거리며 손가락을 빼고 그대로 좁은 내벽에 제 양물을 욱여넣었다.
"아악! 아파... 읍!"
생살이 찢어지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던 입을 이불 자락으로 틀어막은 언주는 그대로 허리를 강하게 쳐대기 시작했다. 역시 기녀들의 것과는 전혀 맛이 다르다. 눈을 감고 헉헉대며 강하게 조이는 내벽을 즐기다가 처녀의 몸을 접어버릴 듯 다리를 번쩍 들고 위에서 뿌리까지 박아넣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울음과 살이 철썩대며 부딪히는 소리는 문을 뚫고 바깥까지 선명하게 전해진다. 눈앞에서 생떼같은 여식을 빼앗긴 객주의 아내가 결국 정신을 잃고 혼절했다.
"이 미친놈, 대낮에 양인 처녀를 겁탈하다니!"
퇴청하는 길에 뜻밖의 보고를 들은 서 이흥은 한달음에 달려와 불같이 화를 내며 아들에게 닥치는 대로 물건을 집어던졌다. 진중한 큰아들과 다르게 늘 골칫덩이였던 작은아들이 기어이 사고를 친 것이다.
명색이 황제의 신하로서 등청도 하지 않고 기녀를 끼고 앉아 술이나 퍼먹는 것은 이미 포기했다. 헌데 양인을 겁간하다니, 해도 너무하지 않은가.
"첩으로 들이면 되잖습니까!"
아버지의 노화에도 주언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되려 소리를 지르며 집을 나갔다. 그가 밤낮으로 기녀를 끼고 다니며 제 마음에 들지 않는 이들에게는 가차없이 폭언과 주먹질을 퍼붓고 부녀자를 희롱하니, 주언의 행실에 대한 상소가 하루가 멀다하고 황제에게 올라갔다. 비록 현이 그것을 펼쳐보지도 않고 내던져 버릴지라도.
***
황제가 구미호에게 홀려 총기를 잃었다는 소문은 수많은 억압을 피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황후 책봉식이 치러질 즈음에는 이미 기정사실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침전에 틀어박힌 화연은 그 무엇도 알지 못했다. 현이 멀쩡하던 황후궁을 때려부수고 어마어마한 국고를 들여 새로 짓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그녀와 가장 가까운 측근들도 입을 다물었다. 회임한 여인은 그 무엇에도 신경쓰지 않으며 그저 마음 편하게 태교나 하고 먹고 싶은 음식 먹고, 그리 지내야 하는 법이니.허나 서 이흥은 고민 끝에 결국 황제의 윤허를 받아내어 여식을 찾아갈 수 밖에 없었다.
"아버님!"
후궁이 침전에서 대신들을 맞을 수는 없는 일이기에, 그녀는 흑운을 대동하여 월화궁으로 갔다. 모처럼 황제궁을 나온데다 아버님과 큰오라버님까지 만난다니. 한껏 기분이 좋아 나비처럼 다가오는 그녀를 본 두 사람의 얼굴에 웃음기가 번지다가 이내 딱딱하게 가라앉는다. 화연이 몸에 입고 걸친 모든 것들이,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귀한 것들이었기 때문에.
"귀비마마를 뵈옵니다."
"안에서 기다리시지, 어찌 바깥에 계십니까. 얼른 드세요. 소소야, 다과상은 어찌 되었느냐?"
"준비해 두었습니다, 귀비마마."
정갈하게 차려진 찻상을 사이에 두고 잠시 아무런 말도 오가지 않는다. 화연 또한 아버님과 오라버니가 평소와는 달리 입 열기를 망설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소녀에게 무어 하실 말씀이 있으세요, 아버님?"
막상 햇살마냥 빛나는 여식을 앞에 두니 말이 탁 막힌다. 초조하게 찻잔을 들어 마시는 이흥 대신, 큰오라비인 엽이 난감한 듯 말문을 열었다.
"귀비마마, 황제폐하를 좀 말려 주십시오."
"폐하를요?"
이 미친놈이 또 무슨 사고를 친 것일까. 화연이 고개를 갸웃했다.
========== 작품 후기 ==========
연참이지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