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제의 두 얼굴-94화 (94/152)

<-- 검은 구름 -->

자신이 깔고 앉은 양물이 꿈틀대며 계곡 사이를 부비고, 탁자 밑으로 들어가 보이지 않는 다리는 손 하나 정도는 충분히 왕복할 정도로 벌어져 있었다. 현은 신음을 억누르느라 입술을 꽉 깨문 화연의 표정을 만족스럽게 감상하며 축축하게 젖은 속곳 위를 손끝으로 반복해서 긁어내렸다.

"그게 좋다는 것이 아니라, 폐하...."

"그래, 경치가."

현이 둥글게 발기한 음핵을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양 옆으로 흔들었다. 흐윽, 화연이 숨을 삼키며 찻잔을 꽉 쥐었다. 경치고 뭐고 눈에 들어올 리가 있나. 수치스러운 가운데 온몸이 짜릿해지는 쾌감이 아래에서부터 치고 올라와 눈앞이 어질어질할 지경이었다. 그때였다. 누각 아래에서 얼굴이 새하얘진 상궁이 황궁의 법도를 어기고 달려온 것은.

"멈추어라!"

계단 바로 앞에서 호위병 둘이 상궁을 막아섰다. 현은 모처럼 마음에 드는 저녁 시간을 방해받은 것이 짜증스러웠으나 아무 말 없이 허벅지에서 느껴지는 화연의 떨림에만 집중했다.

"폐하를 뵈어야 합니다. 폐하! 제발 첩여마마를 봐주시옵소서!"

쯧, 드디어 현이 혀를 차며 궁녀 쪽을 돌아보았으나 비부를 희롱하는 손은 멈추지 않았다.

"폐하, 무슨 소리...."

"끌어내라. 주변에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해라."

단호하게 명한 현이 다시 화연을 올려다보며 싱긋 웃었다. 평온한 미소와는 다르게 정염이 가득한 눈에는 끈적한 의도가 뚜렷했다.

"괜찮다. 아무 일도 아니다. 너는 그저...."

푹, 속곳을 옆으로 제친 손가락 두 개가 깊숙히 찔러 들어왔다.

"나로 인해 기뻐하기만 하면 된다."

고개를 푹 숙인 화연의 얼굴이 능금마냥 새빨갛게 익었다. 주변의 궁인들이 모두 등을 돌리고 선 것이 아닌가. 그들의 행위를 눈치챈 것이 분명했다. 그는 곧, 저쪽 뒤편에 꼼짝도 하지 않고 선 흑운 또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있다는 것. 사내에게, 그것도 자신을 연모하는 사내 앞에서는 너무나 수치스러운 짓이었다.

"폐하, 제발. 침전으로 가요."

현은 모기만하게 속삭이는 화연의 목소리를 못 들은 체 하며 적당히 식은 찻잔을 들어 타는 목을 축였다. 양물 위로 느껴지는 묵직한 무게감이 자꾸 앞뒤로 움직이는 중이었다. 흠뻑 젖은 음부를 쑤시던 손가락으로 다시 음핵을 잡아 아까보다 더욱 과격하게 흔들어 본다. 평소라면 이 정도 만졌을 때 한두 번은 더 절정에 오르던 그녀였는데, 저녁 노을 아래서 궁인들에 둘러싸인 지금은 전혀 만족스럽지 않았다.

"여기서 한 번만 느끼면 침전으로 가마."

"폐하아."

울먹이는 목소리가 어찌 이리 귀여울까. 한 손으로 새빨간 뺨을 어루만지고, 한 손으로 축축한 속곳을 풀어 치마 밖으로 꺼내던 현의 미간이 못마땅하게 찌푸려졌다. 멀리서 체통도 없이 헐레벌떡 달려온 병부상서가, 누각 아래에 무릎을 꿇고 엎드리는 것이 아닌가.

"폐하, 소신이 이리 비옵니다! 불충을 벌하시고, 제발 윤 첩여마마께 용안을 한 번만 보여주시옵소서!"

팔랑, 현의 손에서 새하얀 속곳이 누각 밖으로 날아가 바닥에 엎드린 병부상서 부근에 떨어졌다. 화연은 정말 울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또한, 지금 상황이 무척이나 심상치 않다는 것 또한 깨달았기에 현의 품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을 쳤다. 그러나 현이 병부상서가 화연을 잡아가기라도 할 듯한 태도로 그녀를 더욱 꽉 끌어안았기에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여러 가지로 귀찮게 하는군. 물러가라."

"폐하, 제발, 소신의 청을...!"

현이 미간을 찌푸리고 턱짓하자 호위병들이 그를 붙잡기 위해 다가갔다. 화연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현의 얼굴을 살폈다. 약간의 짜증을 담은 눈초리와 뒤틀린 입매. 그 표정이 화연에게 확신을 심어 주었다.

"윤 첩여에게 무슨 일이...."

약간 목소리를 높여 현에게 묻던 화연의 말은, 호위병들에 의해 끌려가는 병부상서가 비명처럼 외친 소리에 의해 꼬리가 묻혔다.

"폐하, 제발! 제 여식의 마지막 청을 들어주시옵소서!"

***

"마마, 조금만 더! 정신을 놓으셔선 아니 되십니다!"

윤 첩여는 극심한 진통에 가려져 제대로 들리지 않는 상궁의 목소리를 잡으려 애쓰며 죽을 힘을 다해 버티었다. 혼절했다 깨어나길 세 번째. 이번에 혼절하면 다시는 눈을 뜰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그녀를 덮쳤다.

"마마, 머리가 보입니다, 조금만 더!"

으윽, 영견을 문 입술 사이로 고통스런 신음이 비어져 나온다. 제발, 조금만 더. 가쁜 숨을 몰아쉬던 윤 첩여의 눈앞이 새카맣게 물든다. 그리고 드디어 그리 기다리던 힘찬 울음소리가 피비린내 가득한 산실을 쩌렁쩌렁 울렸다.

"으앙, 으앙, 으앙!"

바싹 마른 입술에서 두툼하게 접은 영견이 툭 떨어졌다. 그렇지 않아도 창백한데다 실핏줄이 터져 곱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윤 첩여가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감축드리옵니다, 마마! 건강한 황자마마이십니다!"

"아기를... 보여다오."

품 위에 자그마한 갓난아기가 올려졌다. 손가락만한 심장이 콩콩대며 뛰는 것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윤 첩여의 눈꼬리에서 눈물 한 방울이 툭 떨어져 베개 위로 흘렀다.

"폐하를 닮았구나... 폐하가... 뵙고 싶다."

마지막으로 눈앞에 맴도는 이를 찾은 윤 첩여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희미하게 멀어지는 정신 속에 방금 본 아기의 얼굴, 부모님의 얼굴, 아우들의 얼굴, 그리고 지아비가 차례로 스쳐 지나갔으나 잡을 수는 없었다.

"아이고, 마마! 마마! 눈을 뜨십시오, 마마!"

"저리 비켜 보시오!"

상궁을 밀치고 나와 서둘러 맥을 짚은 태의가 눈썹을 찌푸리고 고개를 살며시 저었다. 기쁨으로 가득 차야 할 영광스러운 날이었으나 궁인들의 입에서는 통곡만이 흘렀다.

"틀렸소. 피를 너무 많이 흘렸어. 몇 시진을 버티지 못할 것이오."

눈물 범벅이 된 상궁이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내달렸다. 불쌍한 첩여마마, 마지막 가는 길 소원을 들어 드려야지. 진통이 왔다, 난산이다, 피가 쏟아진다 아무리 고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황제폐하시지만 한 번은 와주시지 않겠는가. 마마께서 죽어가시는데. 허나 환관들에게 물어물어 찾아간 누각에서 그녀를 맞이한 것은 서 귀비를 소중하게 품고 앉은 황제와 호위병의 차가운 칼날이었다.

***

"제 여식의 마지막 청을 들어 주시옵소서!"

"폐하."

화연의 목소리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무슨 소리예요?"

"가자. 침전."

"조 환관, 그대는 알고 있겠지? 말해 보세요!"

말 한번 제대로 섞은 일 없되, 적어도 병부상서가 저리 침착함을 잃고 황제의 면전에서 소리를 지를 사람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게다가 마지막 청이라니. 설마.

"소인은 황명이 떨어지기 전에는...."

"진통이 왔다더구나. 피를 많이 흘렸다던가."

필두 대신 현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새파랗게 질린 화면이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전히 뒤돌아 선 궁인들의 등이 일제히 자신을 향해 비난을 쏟아내는 것만 같다. 황제를 홀린 년, 나라 말아먹을 년, 경국지색, 경국지색. 침착을 잃은 시선은 한 바퀴를 돌고 다시 현에게 가서 멈추었다.

"가요. 당장. 윤 첩여에게 가요."

"화연아."

"가자고! "

"서 귀비!"

짝, 뺨을 치는 소리와 함께 모든 궁인들이 할 말을 잃고 망극하여 바닥에 엎드렸다. 뺨을 맞은 이는 화연이 아니었다. 현을 위협하기에는 턱없이 작은 손으로 있는 힘껏 올려친 용안에 발간 손자욱이 남았다.

"정신 차리세요, 폐하. 제발."

"... 예서 있었던 일을 발설하는 자는 목을 치겠다."

현은 그 순간에도 옥체에 감히 손을 댄 화연부터 챙겨야만 했다. 맞은 사람은 그저 그렇게 담담한 눈빛으로 내려다보는데, 때린 사람은 제 손을 움켜쥐고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 허나 그것도 잠시, 소맷부리로 눈물을 쓱쓱 닦아낸 화연이 누각 아래를 향해 외쳤다.

"연을 대령해라, 당장! 폐하를 뫼셔라!"

가고 싶지 않았다, 정말. 어린 시절 줄줄이 죽어나간 형제들이 다시 눈앞에 보이는 것만 같아서. 결국 화연이 낳은 황손과 황위를 놓고 대적해야 할 아기를, 후원 모퉁이에 쪼그리고 앉아 돋아나는 새싹을 쓰다듬던 윤 첩여를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도망쳤다. 현이 쉴 곳, 현이 가진 유일한 것, 그만의 월화궁으로. 그럼에도 죄는 기어이 예까지 쫓아와  그를 다시 월화궁 밖으로 끌어내렸다.

"함께 가다오."

오늘따라 유난히 차갑던, 유난히 불안하던 눈동자가 화연을 향해 속삭였다. 명이 아니었다. 차라리 애원에 가까웠다. 연에는 오르지 않았다. 화연이 그의 손을 꽉 붙들고 후궁전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제발, 죽지 말아 달라고 속으로 되뇌이며. 턱까지 차오른 숨이 헐떡대며 산실 앞까지 닿은 순간,

"아이고, 마마! 마마!"

"첩여마마!"

"으아앙, 으앙!"

터져나오는 궁인들의 통곡과 그 틈을 날카롭게 후벼파는 갓난아기의 울음소리가 두 사람을 맞았다. 윤 첩여는 끝내 그리도 연모하던 사내를 마지막으로 보지 못한 채 떠났다. 충격에 빠진 화연도, 순간적으로 비틀대는 그녀의 몸을 받쳐든 현도 아무런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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