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전 특별편] -->
“처소 가서 기다리고 있어. 내 폐하를 좀 만나 뵙고 올 테니.”
“네, 마마.”
그래도 이리 털어놓고 나니 훨 낫다. 목하는 귀비 마마를 모시게 되어 참말 다행이라 생각하며 처소로 돌아가고, 서 귀비는 곧장 황제궁으로 향했다. 낮것상 물릴 시간이니 침전에 계시리라. 그녀의 생각대로 현은 오수를 들기 위해 편안한 차림으로 막 침상에 눕는 중이었다.
“귀비 마마께서 알현 청하시옵니다, 폐하.”
“서 귀비가? 들라 해라.”
어쩐 일로 먼저 침전에 찾아왔을까. 현은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고 일어나 앉았다. 그런 주군을 새삼스럽게 보던 흑운이 두 사람이 침상에 머물 적이면 늘 그러하듯 뒤쪽 비밀통로로 빠져나감과 동시에 문이 열리고, 어딘지 굳은 표정의 화연이 들어섰다.
“연통을 보내지. 내가 갈 것인데.”
“아니, 그게 아니에요. 폐하, 목하가 울면서 돌아왔는데, 혹시....”
누가 들을라. 목소리를 조금 낮춘 화연이 현에게 딱 붙어 앉았다.
“그 분께 다른 정인이 있나요? 항 소저라던데.”
“그럴 시간이 어디 있느냐.”
“그렇죠? 헌데 그 소저 주려고 패물을 한가득 샀대요.”
현이 미간을 살짝 좁혔다. 패물, 패물이라면.
“내가 전낭을 주었다만. 그 아이 눈길이 세 걸음 이상 머무는 물건은 죄다 사라고.”
“하나도 안 줬다는데요?”
“무거워서 안 줬다던데. 나중에 주려고.”
“그럼 항 소저는 뭐지?”
“그건 모르겠다. 일단 여기까지 왔으니 오수 들고 가거라.”
대충 대답한 현이 화연을 낚아채어 침상에 눕혔다. 오수 들고 가라는 말은 핑계일 뿐, 이미 손은 능숙하게 치마를 풀어내고 소담한 가슴을 주무르고 있었다. 남의 연애사도 재미있지마는 역시 가장 재미있는 일은 이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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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가?”
“나... 나, 잠시 소피 좀.”
선잠을 깬 란이는 응,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돌아누웠다. 몰래 빠져나가려던 목하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조심조심 침의 위에 겉옷을 걸치고 살그머니 처소를 벗어났다. 귀비께서 저어기 구석, 빈 전각으로 가라 하시었겠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게. 등불조차 없이 어둠을 짚어가던 목하의 입을 익숙한 손이 살그머니 막아 눌렀다.
“실례하겠습니다.”
처소에서 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던 흑운은 나직하게 속삭이고는 목하를 안아들었다. 아무래도 길이 어둡다. 그에게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보통 사람들에게는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쩌면 핑계일 수도 있었다. 그냥, 그녀를 안고 싶었을지도.
“뭐에요.”
차갑게 말해야 하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속상하다. 빈 전각의 창이 없는 방에는 이미 촛불이 환히 밝혀져 있었다. 그 옆, 동그란 탁자에 놓인 목함이 그 빛을 받아 반들반들 윤이 났다.
“낮에 드리지 못했습니다.”
“뭘요?”
“이것들.”
흑운이 아까부터 그녀의 시선을 강탈하던 목함을 집어 내밀었다.
"어...?"
새침하게 뚜껑을 연 목하의 눈이 커졌다. 낯익은 패옥과 비녀, 색 고운 연지에 향낭까지. 죄다 낮에 그가 샀던 물건들이었다.
“이거... 정인 주려고 사셨다고....”
“예.”
저렇게까지 놀랄 일인가. 흑운은 대답하면서도 의문스러웠다.
“그게 저예요?”
“예.”
기껏 정인이라 말했던 일은 잊은 모양이었다. 서운했지만 겉으로 티는 나지 않는다. 그 자그마한 서운함마저도 눈앞에서 패물을 하나하나 꺼내보는 목하의 웃음에 눈 녹듯 사그라들었으므로. 그의 주군은 옳았다. 선물 안겨주는 사내를 마다할 계집은 없다더니, 사실이었던 것이다.
선물 안겨주는 사내. 게까지 생각이 미친 흑운의 가슴이 싸해졌다.
“좋으십니까?”
“네. 너무 좋아요.”
그런 줄도 모르고. 목하가 미안함 반, 민망함 반을 섞어 애교스럽게 미소를 보내었으나 흑운은 여전히 싸늘한 얼굴이었다. 선물 안겨주는 사내를 마다하지 않는단 말이지. 그렇다면 곧 다른 사내가 선물을 주어도 저리 웃는다는 뜻이 아닌가.
“앞으로는 좋아하지 마십시오.”
뭐래는거야. 기껏 줘놓고 좋아하지 말라니. 목하가 되묻기도 전에 흑운은 보이지도 않는 동작으로 그녀의 입술을 훔쳤다. 섞이는 숨결 사이로 가벼운 풀잎 향기와 무거운 사내의 체취가 섞여들었다.
“하아....”
언제 어떻게 보아도 속을 알 수 없는 사내가 유일하게 눈빛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목하는 그 눈빛이 좋았다. 냉정함을 놓아버리고 그저 본능으로 이글대는 짐승같은 눈빛. 짐승이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는 손길로 목하의 어깨에 걸쳐져 있던 겉옷을 옆으로 밀어놓고 침의를 풀어내려다 멈칫했다.
“해도 됩니까?”
격정적인 입맞춤과 곧 이어질 쾌락에 대한 기대로 부풀었던 목하의 동공에 짜증이 깃들었다.
“묻지 마요. 제발 묻지 좀 말고 그냥 해.”
어떠한 검도 베어내지 못하던 무복이 가녀린 여인에 의해 힘없이 벗겨져 떨어졌다. 어떠한 무사도 쓰러뜨릴 수 없었던 흑운의 몸도 그 여인의 손길 한 번에 침상 위로 쓰러졌다. 흑운에 비해 턱없이 작은 여인이었으나 위에서 부딪혀오는 입술만으로도 충분히 그를 함락시킬 수 있었다.
“나도, 해도 돼요?”
"예."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목하는 아래에 깔린 사내의 몸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아주 가끔 찌푸리는 것으로 간단한 감정을 표현하는 이마와 눈썹을 어루만지고, 손끝으로 반듯한 콧대를 타고 내려와 꾹 다물린 입술을 만진다.
할짝, 예상치 못하게 나온 혀가 손가락을 가볍게 건드렸다. 잠깐 맛본 것으로 성이 차지 않는 것일까. 흑운이 목하의 손목을 쥐고 긴장한 손가락을 하나하나 핥았다. 길고 날카로운 눈으로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미치겠다. 목하는 침을 꿀꺽 삼키면서도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리곤 네 번째 손가락에 뜨거운 혀가 감겼을 때 몸을 숙여 그 혀를 가로채었다.
위에 앉은 보람도, 먼저 입을 맞춘 보람도 없이 주도권은 넘어갔다. 그는 한 손으로 목하의 머리를 가볍게 당기며 쉼없이 타액을 나누고 한 손으로는 목덜미부터 시작해 척추 마디를 하나하나 짚어 내려왔다. 그의 손끝이 닿는 부분은 분명 등인데 거기서부터 피어오르는 짜릿함은 몸의 중심까지 꾹꾹 누르는 것만 같다. 부끄러움도 잊은 목하가 치마를 사이에 두고 단단한 복근에 닿은 음부를 비비자 흑운이 미간을 살짝 좁히며 허리께를 누르던 손에 힘을 주었다.
"아...."
저도 모르게 터져나온 신음은 흑운을 다급하게 만들었다. 그는 곧장 바지를 풀어 내림과 동시에 거칠게 목하의 허리를 잡고 들어올려 속곳 끈을 당겨 던진 후 그대로 내려꽂았다.
"하읏!"
핏줄이 도드라진 양물이 그녀의 체중만큼 깊숙히 옥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저릿한 통증에서 벗어나려는 목하의 움직임은 그에게 쾌감만을 선사해 줄 뿐이었다. 잠시 눈을 감고 숨을 몰아쉰 흑운이 천천히 눈을 떴다. 몸을 덮은 치맛자락을 걷어올리니 탱탱한 허벅지 사이로 제 것과 결합되어 있는 음부가 보였다.
그는 허리를 쳐올리는 대신 엄지손가락으로 음모를 헤치고 연한 살점 사이에 숨은 구슬을 지그시 눌렀다. 은밀한 근육이 물결치며 잔뜩 흥분한 양물을 주물럭거린다. 목하는 탄탄한 가슴팍에 손을 짚은 채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그의 손놀림에 따라 내벽을 조이고 허리를 들썩거렸다.
"아, 아흑!"
사정없이 아래를 꿰뚫은 이물질로 인한 통증마저 사라지고, 집중적으로 만져진 음핵에서 퍼져나온 찌릿함이 온몸을 지배했다. 흑운이 조금 더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였다. 열서너 번이나 흔들었을까. 그의 가슴팍에 힘껏 손톱을 박아넣은 목하가 바르르 떰과 동시에 아래에서 뜨거운 액체가 왈칵 쏟아졌다. 잠시 더 손가락을 누르고 있던 흑운은 그 떨림이 잦아들었을 때에야 손을 거두어 질척한 음액을 핥아 삼켰다.
"항아님은...."
늘 딱딱하던 목소리가 어쩐지 나른하게 들리는 것은 기분 탓일까.
"저를 미치게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