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전 특별편] -->
수많은 인원이 황궁에서 한참 북쪽에 있는 행궁까지 가려면 근 나흘이 걸린다. 선황제들은 해마다 여름이면 행궁을 찾곤 하시었으나 이런 쪽으로는 통 관심이 없으신 현 황제께서는 이번이 처음이시기에, 목하 또한 입궐 이후 이리 오랫동안 바깥에 있는 일은 처음이었다. 당연하게도 노숙 또한 처음이었다.
"목하야."
"예, 마마."
"나가서 시원한 물 좀 가져다줄래?"
병사들과 무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막사를 설치하는 동안 마차에 앉아 있던 목하는 서 귀비의 말에 바깥으로 나왔다. 바로 저쪽에서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가 들린다. 저쪽이구나. 수통을 챙겨 들고 물을 뜰 만한 장소를 두리번거리던 목하의 뒤에서 긴 그림자 하나가 드리워졌다.
"왜 나오셨습니까?"
"아, 깜짝이야!"
화들짝 놀라 떨어뜨린 수통이 땅에 닿기 전에 빠르게 잡은 흑운은 그것을 돌려주지 않고 목하를 내려다보며 했던 말을 반복했다.
"왜 나오셨습니까."
"마마께서 시원한 물을 떠다달라 하셔서요."
흑운이 이마를 아주 조금 구겼다. 가까이서 보지 않으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내다보지 말라고 창까지 닫아놨는데 나오긴 왜 나와.
"이제 나올 일은 저를 부르십시오."
그는 딱딱하게 말하곤 수통을 열어 미지근한 물을 쏟아버리고 새로운 물로 가득 채웠다. 그러면서도 마차를 벗어난 목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궁녀들만으로 가득 찬 월화궁에서는 전혀 생각해본 적도 없는 변수 때문이었다. 바로 수많은 사내.
자신의 밑에 있는 그림자들부터 황실 정예병들, 짐을 나르고 막사를 설치하는 하급 병사들까지. 궁녀들은 모두 이 많은 사내와 나흘간 이동하며 바로 근처에 있는 막사에서 잠을 잔다. 생각만 해도 온몸의 피가 끓어오르는 일이었다. 좋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안에만 있어서 너무 갑갑해요."
"참으십시오."
수통을 건네는 손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목하의 손가락을 적셨다.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핥으려 살짝 나왔다 들어간 혀끝을 본 흑운의 눈동자가 한순간 흔들린다. 그것을 눈치채지 못한 목하는 받아든 수통을 챙겨서 방긋이 웃었다.
"고마워요."
누가 볼세라, 재빨리 뒤돌아선 목하의 곁을 흑운이 먼저 빠른 걸음으로 스쳐 지나갔다.
"자시에, 여기로."
들릴락 말락 한 한 마디만을 툭 던져놓고선.
***
열 사람씩 끼어 자는 막사는 좁고 불편했으나 종일 걷느라 피곤이 쌓인 궁녀들은 눕자마자 각자 곯아떨어졌다. 마차를 타고 온 목하는 그 피로가 훨씬 덜했기에 자시까지 잠들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사실 심장이 너무 콩닥거리기도 하였고.
지금쯤이면 자시가 되었으려나. 조금 더 있어야 하려나. 고민 끝에 모두가 잠든 것을 확인하고 막사를 빠져나오던 그녀는 바로 앞에서 낯익은 궁녀와 마주치고 어색한 인사를 건네었다.
"아직 안 잤어?"
"너야말로 안 자고 어디 가는데?"
"잠시 소피 좀……."
"같이 가줘?"
"아니, 아니! 얼른 들어가 자. 곤할 터인데."
란이는 잠시 목하의 뒷모습과 그녀가 방금 나온 막사를 번갈아 보았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곧 소리를 죽인 발자국이 막사 사이사이에 숨어가며 목하를 좇았다.
궁녀들이 소피를 보는 장소와는 전혀 다른 방향이다. 무사님을 만나러 가는 것일까. 잠시 커다란 나무 뒤에 숨었다. 고개를 내민 란이는 거기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조금 전까지 냇가에 서 있던 목하가 감쪽같이 사라졌으므로.
"쥐새끼 한 마리를 달고 오셨습니다."
목하를 순식간에 나무 위로 끌어 올린 흑운이 뒤에서 그녀의 몸을 단단히 안았다.
"쥐…. 요?"
"동료들을 조심하십시오."
얼굴은 정확히 보지 못했으나 궁녀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그는 조금 주의해야겠다 생각하면서도 끌어안은 몸을 더듬어 앞섶을 헤쳤다. 저녁부터 쉼 없이 끓어오르던 정염이 터져버리기 직전이었기에 그 움직임은 평소처럼 부드럽지 않았다. 가슴을 찾지 않는 손은 이미 치마를 걷고 곧장 탱탱한 허벅지를 탐하고 있었다.
"저, 여긴 너무……."
거친 손길이 치맛말기를 억지로 비집어 한쪽 가슴을 꺼내자 당황한 와중에 몸은 야릇하게 달아오른다. 그러나 여기는 나무 위가 아닌가. 그것도 너무 높은.
"조금만."
어쩐지 침착함을 잃은 것 같은 흑운이 급작스럽게 닿은 밤바람에 벌써 빳빳해진 유두를 굴리며 귓불을 잘근잘근 물었다. 거기서부터 번져온 쾌감은 순식간에 비부까지 닿았다.
"여긴 너무 무서운데……."
"... 하아."
이성의 끈을 잡으려 작게 내쉬는 한숨마저 뜨겁다. 이제 막 음란하게 움직이려던 손이 다시 치마 밖으로 빠져나왔다.
"꽉 잡으십시오."
대강 다시 옷을 여며준 흑운이 목하를 안고 일어섰다. 나뭇가지를 아슬아슬하게 밟고 있었으나, 그 가벼운 몸놀림만 본다면 여기가 땅인 듯 착각할 정도였다. 두 사람의 체중이 높은 나무 위에서 한 번에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음에도 발소리조차 나지 않는다.
빠르게 냇물을 건너 어두운 숲 사이로 들어간 그는 갑작스레 목하를 내려놓고 입술을 삼켰다. 사납게 파고든 혀가 여린 속살을 구석구석 핥아가며 거친 숨결을 불어넣었다. 옷 위로 풍만한 젖가슴을 제멋대로 비틀던 흑운은 그 옷을 찢어버리기 직전에서야 자신이 제어되지 않고 있음을 깨닫고 황급히 입술을 떼어내었다.
"아. 제기랄, 항아님."
갈라지는 목소리로 낮게 욕설을 뱉어보지만 욕정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넣고 싶다. 이 여인에게. 옷 안에 갇힌 양물이 일어서서 그녀를 향해 달려가려 한지도 꽤 오래. 아무래도 훈련이 부족한 모양이었다.
"이만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본능과는 전혀 다른 말을 하느라 감았다가 천천히 뜬 그의 눈에서 시뻘건 욕정이 이글거렸다. 그것을 바라보던 목하가 갑자기 느슨하게 매어진 치마 매듭을 쑥 잡아당겼다. 흑운이 말릴 틈도 없이 매끈한 다리가 달빛 아래 드러나고, 치마폭은 융단마냥 풀 위에 흐트러져 깔렸다.
"뭐 하는 짓입니까."
제 손으로 벗었지만 새빨갛게 물드는 얼굴을 어찌할 수는 없었다. 당당하게 굴고 싶었건만. 목하가 고개를 숙이며 웅얼거렸다.
"하고 싶으시잖아요."
누구 때문에 참고 있는데. 흑운은 차마 그녀를 똑바로 보지 못하고 하늘을 향해 심호흡한 후 긴 겉옷을 펼쳐 목하를 감싸 안았다. 언제 어디서나 이 여인을 안고 싶었으나, 반대로 아무 데서나 안고 싶지는 않았다.
"저의 욕심을 채우고자 항아님을 찬 곳에 눕힐 수는 없습니다."
"난……."
난 괜찮아요. 눕혀. 눕히라고. 눕히기 싫으면 엎어. 이 갑갑한 사내의 멱살이라도 잡고 흔들면 속이 시원하겠다. 그러니 목하가 목구멍까지 나온 그 말을 꾹꾹 눌러 넣은 것은 정말 초인적인 노력이라 할 수밖에.
그래, 아직 가마수두라를 완전히 익히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그 기술들만 익힌다면 이 쓸데없는 신념을 무 자르듯 잘라버릴 수 있으리라. 목하는 가장 최근에 공부한 내용을 떠올리며 안겨있던 가슴을 밀어내고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항아님."
"가만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