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전 특별편] -->
"...습니다."
"뭐라고 했지?"
조금 전 행궁에서의 배치와 교대확인 등을 맡긴 수하가 돌아와 보고를 올렸다. 그러나 마음이 온통 다른 곳에 쏠려있던 흑운은 제대로 듣질 못하고 되물었으니, 수하가 멈칫하는 것도 당연했다. 적어도 십년 안쪽의 기억으로는 전혀 없는 일이었으므로.
"지시대로 배치하였고, 교대 주기를 한 시진 줄였다 말씀드렸습니다."
"아, 그래. 가봐."
"예. 대장."
1번 그림자가 사라지자 흑운은 작게 심호흡을 하며 평정심을 되찾으려 애썼다.
조금 전, 마주쳤을 때 목하가 건넨 미소가 문제였다.
겁간이었다. 정신을 잃은 여인을 짐승처럼 덮친 그날의 일은. 그런 자신에게 아무것도 모르고 웃어 보이는 그 얼굴을 어찌 마주할 수가 있을까.
허나 도망치듯 그녀를 외면하고 지나치는 순간 그 상처입은 얼굴이, 뒤돌아본 시선 안에서 들썩이던 어깨가 마음을 쥐어짜고 생각을 앗아갔다.
정신 차려야지. 고개를 숙이고 마른세수를 하던 그의 어깨를 누군가가 두드렸다.
"어찌 답이 없느냐."
"폐하."
"두 번은 부른 것 같은데."
현은 싱글싱글 웃는 얼굴이었으나 전혀 웃을 일이 아니었다. 개미새끼 하나 허용해서는 안될 황제의 호위에 구멍이 뚫린 것이다. 만일 지금 자객이 접근했더라면 그를 막아낼 수 있었을 것인가.
"신에게 벌을 내리소서."
즉각 검을 내려놓은 흑운이 현의 발치에 부복했다. 그림자가 정신을 놓는 순간 황제의 목숨은 경각에 달린다.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는 현이 벌을 내리지 않더라도 스스로를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벌... 그래. 내려야겠지."
현은 아까부터 흑운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두 번 불렀다는 말은 물론 거짓이었다. 모르는 이들이 본다면 얼음같은 무표정에 날카로운 눈빛 그대로였으나, 십수 년을 흑운과 한몸처럼 살아온 그의 눈에는 보였다. 바늘 끝만치 미미하게 풀어진 동공이.
자신이 본 것이 맞는지 시험하고자 거짓말을 해 본 것이거늘, 아무래도 정확히 본 모양이었다. 사내가 저리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연유라면 하나밖에 없지. 현은 피식 웃으며 왔던 길의 반대로 걸음을 돌렸다.
"따르거라."
"예."
당연히 귀비마마의 처소로 가시리라 예상은 하였으나, 그 처소에서 옥보는 미묘하게 구석진 곳. 목욕간을 향했다. 문틈으로 뿌연 수증기와 함께 여인네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새어나온다. 그 목소리 안에 흑운이 아주 잘 아는 여인의 웃음 또한 섞여 있었다.
"황제 폐하를 뵈옵니다."
문 앞을 지키고 있던 상궁은 난데없는 황제의 등장에도 놀란 티를 내지 않고 허리를 숙였다. 그러나 안에 있는 서 귀비와 궁녀들은 그 소리를 듣지 못한 듯, 계속해서 무어라 수다를 떨며 깔깔대고 있었다.
"열어라. 서 귀비와 함께 욕간할 것이니."
"예, 폐하."
급작스레 문이 열리자 안에 있던 궁녀들은 깜짝 놀라 몸을 가리랴, 황제께 예를 갖추랴 정신이 없었다. 더운물은 귀한 것이라, 웃전이 씻고 난 후에는 그 물로 궁녀들이 욕간을 한다.
게다가 소탈한 서 귀비는 데리고 있는 궁인들과 허물없이 지내는 터. 안에 있는 궁녀들은 얇은 속고의 차림으로 서 귀비와 물장난을 치느라 반 이상 젖어있는 상태였다. 새하얀 속고의가 질척하게 젖어 맨살이 노골적으로 비치었다.
"이리 갑자기 들어오시면 어찌해요, 폐하."
몸을 가린 서 귀비의 질책에도 현은 무어가 그리 재미있는지 싱글싱글 웃었다. 그러면서 몰래 서 귀비에게 두 사람만이 알 법한 눈짓을 던지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가 있거라. 시중은 되었다. 흑운, 밖에서 지켜라."
"존명."
즉각 돌아서는 흑운의 옷자락조차 보지 못하고 급히 옷을 챙기는 목하에게 서 귀비의 장난스런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아, 목하야!"
"네?"
"너도 밖에 있어. 내 필요한 것이 있을지 모르니. 나머지는 처소 정리를 좀 하고, 욕간 끝날 즈음 찻상 좀 준비해줘."
"예, 귀비마마."
한 목소리로 대답한 궁녀들이 우르르 빠져나갔다. 격식을 차리지 않는 행궁이라, 현은 평소의 흑룡포 대신 편안한 단령포삼 차림이었기에 벗어던지는 것도 쉬웠다. 문이 닫히기도 전에 옷을 벗어 선반에 대강 던져둔 그가 첨벙첨벙 욕간통으로 들어가자 사방으로 크게 물보라가 튀었다.
"좁아요, 폐하."
화연이 까르르 웃으며 그가 편안히 앉을 수 있도록 몸을 살짝 비켰다. 딱히 편안하게 앉을 생각이 없는 현에게 붙잡혀 덥석 안긴 것은 물론이었다.
"더 좁았으면 좋겠는데."
흠뻑 젖어 있으나마나한 속치마가 현의 움직임에 따라 물 속에서 춤을 춘다. 촉촉하게 물기를 머금은 몸은 조금의 손길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새 일어선 보주가 맨살에 묵직하게 비벼졌다.
"이러면 나 언제 씻어."
"좀 더러워야 씻는 보람이 있지."
길고 유려한 손가락이 지분지분 움직여 윗가슴에 붙어있던 꽃잎을 떼어냈다. 등에 맞닿은 현의 가슴에서 근육의 움직임이 느껴진다. 한 손을 내려 골반을 잡고 한 손은 가슴을 쥐어 옷 안에 감추어진 유실 부근을 희롱하던 현이 뽀얀 목덜미를 입에 물었다.
"하아...."
새하얀 목덜미 곳곳에 새빨간 흔적이 새겨지고, 골반을 잡고 자신 쪽으로 화연을 끌어당기던 손은 꽉 다물린 허벅지 안쪽으로 옮겨갔다. 힘을 주지 않아도 손끝으로 천천히 긁어내리다 보면 다리가 벌어진다. 지금처럼.
"근래 내게 좀 소홀해지지 않았느냐?"
산호초마냥 하늘거리는 거웃 사이를 헤치고 속살을 찾던 현이 속삭였다.
"제가요?"
"너 말고 누가 있을까."
하늘거리던 거웃이 현의 손바닥 안으로 감추어졌다. 손바닥에 가볍게 눌린 음핵이 붉게 단 입술에서 신음을 밀어내었다. 그 소리에 현은 결국 더 이상의 전희를 포기했다. 그렇잖아도 가벼운 화연의 몸은 물 속에서 들어올리기가 더 수월하다. 그는 능숙하게 옥문에 선단을 맞추어 천천히 밀어넣었다.
"아흑, 폐하...."
속치마 위로 부드럽게 풀려있던 유두가 도드라져 현의 손끝에 잡혔다. 그가 단정하게 다듬어진 손톱 끝으로 그 위를 긁어내리자 찌릿한 쾌감에 내벽까지 조여들어 양물을 오물오물 씹었다.
"이리 좋아하면서 딴 생각만 하고."
위에 앉은 화연이 허리를 앞뒤로 움직였다. 그때마다 감겨드는 속치마가 현과 화연의 몸을 함께 간질였다.
"폐하가, 아흣, 더 좋아하면서."
내벽 안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기둥에 머리가 새하얘지면서도 따박따박 말대꾸를 해 본다. 뭔가 지기 싫은 기분이었다. 그런 그녀의 허리를 꽉 잡은 현이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네 것이 이리 꽉 물고 있는데?"
천천히 움직이던 허리가 현의 손에 붙잡힌 채 파도를 일으키며 세차게 흔들렸다. 현의 말대로 남근을 꽉 물고 오물거리는 내벽은 그것을 놓을 생각이 없는 듯, 거친 움직임에도 빠지지 않았다.
"아, 아흑, 아, 폐하, 아흐윽!"
철벅거리는 물소리와 쾌락에 젖은 교성이 문틈 사이로 흘러나와 앞을 지키고 선 두 사람의 귀에까지 적나라하게 들려온다. 아무렇지 않아야 했다. 눈앞에서 지켜본 행위가 얼마이고 또 보았던 여인들은 몇인데.
그러나 흑운은 저도 모르게 내려놓은 손끝을 허벅지에 박아넣으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지금 남근이 단단하게 일어선 연유가 안에서 들려오는 야릇한 소리 때문인지, 서너 걸음 옆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목하 때문인지. 역시 둘 다인 것 같다. 저 교성 속에서 목하의 벗은 몸을 상상하고 있으니.
그가 인내심과 싸우는 동안 계속해서 들려오던 교성은 점점 높아지고, 어느 순간 뚝 끊겼다. 목하에게는 들리지 않았으나 흑운은 안에서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를 또렷하게 들을 수 있었다. 음탕하지만 애정이 넘치는, 그런 노골적인 속삭임들을.
"밖에 있느냐."
"예."
"곧장 침소로 갈 것이다. 환관장을 제외하면 근처에 누구도 있지 못하게 하거라. 너 또한 마찬가지다."
"존명."
안에서 옷이 사락대는 소리와 침소로 통하는 쪽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이어졌다. 안에서 기척이 사라졌음을 확인한 흑운이 목욕간을 열었다. 가득한 수증기 속에서 희미하게 느껴지는 정사의 냄새.
흑운은 안으로 들어가는 대신 목하가 뒷정리를 하러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지 않으려 애썼으나 그다지 보람은 없었다. 당연히 궁녀가 해야 할 일인데, 그녀가 다른 사내의 흔적을 만지는 일이 너무 싫다.
주군을 다른 사내라 생각하다니. 모순된 혼란 속에서 그의 걸음은 빨려들듯 목욕간 안으로 향했다.
"나가 계십시오."
"왜요?"
"제가 하겠습니다."
병 주고 약 주는거야, 뭐야. 목하는 그의 말을 들은체 만체 욕간통의 마개를 뽑기 위해 몸을 숙였다. 그 손을 잡아 멈춰세운 흑운이 조금 더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또 말을 안 들으십니다."
"내가 무사님 말을 왜 들어요."
그리 대답하면서도 목하의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단단하게 일어선 중심이, 아직 채 마르지 않은 옷 위로 밀착되어 엉덩이골을 적나라하게 누르고 있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