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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두 얼굴-134화 (134/152)

<-- [외전 특별편] -->

밤새 몇 번이나 흑운을 받아들이고 또 눈뜨자마자 시달린 참이다. 그 몸으로 환궁하여 또 이런저런 일을 하였고. 곤하기 그지없는 목하는 소세를 하고 침의로 갈아입자마자 이불 속에 파고들었으나 쉽사리 잠은 오지 않았다.

"란아."

등을 보이고 누웠던 란이가 그 소리에 뒤로 돌아누웠다.

"손 괜찮아?"

"... 괜찮아."

새하얀 포가 싸매어진 손을 꼼지락대면서, 란이는 새카만 그믐밤에 감사했다. 마치 제 마음처럼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는 목하를 똑바로 보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그리 물어뜯다 또 지난번처럼 퉁퉁 부어서 고생하면 어쩌려고 그래. 무슨 일 있어?"

"언제 적 얘기를 하니?"

킥킥, 목하의 웃음소리가 어둠을 가르고 란이에게 스며들었다.

"너 손 못 쓰면 내가 고생하는거 몰라? 세답 해줘야해, 소세 시켜줘야해, 멱도 감겨줘야해. 암튼 너 딱지 떨어질 때까지 물 쓰지 마. 이 성님이 이번에만 도와준다."

대답은 하지 않았다.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목하는 침묵에 아랑곳하지 않고 손을 뻗어 란이의 머리를 다정하게 쓸었다.

"무슨 일인지 말해봐. 너, 요새 이상한거 알어?"

흑운은 란이와 친하게 지내지 말라 하였으나, 그는 란이와 제 사이를 모르기 때문이리라. 함께 울고 웃으며 지낸 세월이 얼마인데. 어둠을 더듬어 동무의 뺨에 손을 댄 목하가 흠칫 놀라 벌떡 일어났다.

"울어? 왜 울어. 누가 너 울렸어? 어느 기집애가 괴롭히던?"

"... 목하야."

차가운 뺨에 닿은 체온에 번쩍 정신이 든다. 무슨 짓을 한 거지. 힘겹게 일어나 앉은 란이가 목하를 더듬어 끌어안았다.

"도망쳐. 빨리."

"뭐? 무슨...."

제대로 반문할 사이도 없었다. 소리없이 열린 문으로 한 무리의 궁녀들이 들이닥쳤으므로.

도깨비불마냥 흔들대는 새하얀 등에 비친 란이의 얼굴이 눈물로 흠뻑 젖어 있다. 그것이 마지막 장면이었다. 입에 재갈이 물리고 시커먼 자루가 뒤집어씌워진 목하는 반항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끌려나갔다.

"너도 따라 오너라."

"저... 저는...."

"네가 증언을 해야 할 것이 아니냐."

싸늘한 염 상궁의 목소리가 란이를 옭아매었다. 거역할 수도 없었다. 금방이라도 란이를 잡아삼킬 듯 음산하게 일렁거리는 궁녀들의 그림자가 줄지어 복도를 지나간다. 그림자들은 조용히 처소를 빠져나가 가장 북쪽의 구석진 곳, 아무도 오지 않는 빈 전각으로 들어갔다.

"우읍! 읍!"

찌이익, 자루가 소름끼치는 소리를 내며 찢어졌다. 그 안에서 새하얗게 질린 얼굴의 목하가 정신없이 고개를 저었다. 늘 어머니처럼 따뜻하던 염 상궁이 차가운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외간 사내와 통정하였다는 발고가 들어왔다."

바둥거리던 팔다리가 그 자리에 얼어붙는다. 수십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으나 또한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런 그녀의 발치에 검은 옷 한벌이 툭 던져졌다.

"재갈을 풀어라."

하얀 재갈과 함께 잘려나간 머리카락 몇 가닥이 문틈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날아갔다. 자유로워진 입으로도 목하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누구의 것이냐."

어느 밤, 흑운이 얇은 침의 위에 덮어준 자신의 겉옷. 문갑 깊숙히 넣어둔 그것이 왜 여기 있을까. 황망한 시선이 궁녀들의 가장 뒤편, 눈물을 줄줄 흘리며 떨고 있는 동무에게 가 닿았다. 이것이었나. 친하게 지내지 말라던 흑운의 경고가.

어떻게 네가 나에게. 충격과 배신감으로 목하의 몸이 뻣뻣이 굳었다. 그녀를 냉엄하게 내려다보던 염 상궁이 다시 한번 추궁했다.

"누구의 것이냐 물었다!"

그 목소리가 목하를 아찔한 낭떠러지 앞으로 밀어붙였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그의 안위를 위협하리라. 무거운 바위가 가슴 위에 얹혀 심장을 짓눌렀다. 자신을 향한 궁녀들의 시선이 뭇매처럼 와 박혔다. 목을 조르고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모릅니다."

고개를 떨구기가 무섭게 매서운 손길이 그녀의 턱을 틀어쥐었다. 시선을 돌리지도 못하게 강한 힘으로 목하의 턱을 그러쥔 염 상궁이 돌연, 회유하듯 태도를 바꾸었다.

"말해라. 말하면 조용히 덮겠다."

거짓이었다. 그럴 리가 없었다. 어리숙한 무수리를 다루듯 그녀를 속이려 하고 있었다. 강한 악력에 턱이 아려왔다.

"내금위의 사람이냐? 혹은 환관이더냐?"

거듭된 추궁에 목하는 살며시 입 안의 살을 깨물었다. 아릿한 통증이 태연함을 가장하여 말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모릅니다."

"모른다?"

거칠게 턱이 놓여지고, 뒤를 돌아본 염 상궁이 란이를 향해 눈짓했다.

"네 아는 것을 말해라."

좀 전보다 더욱 희게 질린 낯은 몰아붙여져 거세게 추궁 당하는 당사자보다도 창백하고 파리했다. 란이가 떨리는 손을 움켜쥐고는 울먹이며 애걸하듯 염 상궁을 바라봤다.

"사, 상궁마마님...."

"내 처소에 와 고했던 것을, 다시 한번 말해라."

염 상궁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자비라고는 느낄 수 없는 차가운 태도였다.

"말하지 않으면 너 또한 처벌하겠다."

후텁지근한 한여름밤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는다. 쏴아아, 바깥에서 요란한 소나기가 일시에 쏟아지며 메마른 땅을 두드렸다. 목하가 눈을 감았다. 바닥에 빗발치는 소리는 점점 더 크게 고막에 울려왔다. 마치 이 안에서 들리는 모든 일과 비명소리를 그대로 집어삼켜 내보내지 않겠다는 듯.

"저, 목하가, 밤마다 처소를 빠져나가... 짐 안에... 사내의 옷이...."

두서없이 더듬거리는 란이의 눈에서도 소나기가 후둑후둑 떨어졌다.

"증좌도, 증인도 명명백백하구나. 끝까지 입을 열지 않으려느냐."

입을 꾹 다문 목하가 바닥을 향해 시선을 떨어뜨렸다. 그 모습을 싸늘하게 내려다보며 염 상궁이 차갑게 일갈했다.

"아무래도 순순히 입을 열지 않을 모양이로구나."

그녀의 말뜻을 알아챈 궁녀들이 하나 둘 몽둥이를 손에 쥐었다.

"재갈을 물려라. 말을 하고 싶어질 때까지 매우 쳐라."

다시 단단한 재갈이 비명을 막았다. 머리에 검은 천이 씌워지기 직전, 목하는 고개를 들어 란이를 바라보았으나 란이는 그러지 못했다.

"읍, 으읍!"

누구도 입을 열지 않는 침묵 속에서 자비없는 몽둥이가 여린 몸 위로 쏟아진다. 그 둔탁한 소리는 요란한 빗소리에 막혀 문 밖까지 전해지지 않았다. 살이 터지고 피가 흐르며 새하얀 침의가 시뻘겋게 물들었으나 목하는 입을 열지 않았다.

"목하야, 말해! 말하라고, 너 그러다 죽어!"

그 모습을 바라보던 란이가 견디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아 비명처럼 외쳤다. 그 날카로운 울부짖음은 낡은 문을 뚫고 복도까지 메아리쳤다.

"입 다물지 못하겠느냐."

"말해! 목하야, 말해! 너 죽는다고!"

염 상궁의 엄한 목소리에도 란이는 더욱 소리높여 외쳤다. 제발 이 소리를 그가 들어주길 바라며.

"저 아이도 재갈을 물려라."

사납게 뻗쳐드는 궁녀들의 손을 피한 란이가 정신없이 바깥으로 내달렸다. 후회가 물밀듯 가슴을 치고 올라온다. 그녀를 잡으려는 두어 명의 발소리와 낡은 마룻바닥이 삐걱대는 소리, 요란한 소나기 소리가 한데 섞여 조용한 전각을 불길하게 뒤흔들었다.

"꺄아악!"

========== 작품 후기 ==========

연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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