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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두 얼굴-136화 (136/152)

<-- [외전 특별편] -->

"우세요?"

작게 고개를 저었다. 차라리 울 수 있다면 눈물로 사죄하겠다. 탐하지 말아야 할 것을 건드린 죄를 엎드려 빌겠다. 그러나 빌어먹을 그림자의 삶은 한 방울 눈물조차 흘리는 법을 몰랐다.

"아윽."

조금 움직여 보려던 목하가 인상을 찌푸렸다. 마치 자신이 아프기라도 한 듯, 함께 미간을 찌푸린 흑운이 이불 자락을 토닥였다.

"아프실 것입니다.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네. 목하는 간신히 중얼거리며 다시 고통을 참기 위해 심호흡을 했으나 그것은 사그라들기는커녕 점점 더 크게 밀려왔다. 그녀의 이마에서 차가운 식은땀이 송글송글 솟아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태의녀를 모시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낮은 목소리가 그나마 고통을 덜어가는 느낌이었다. 목하는 눈을 깜빡여 대답을 전하고 시야에서 멀어지는 흑운의 옷자락을 쫓았다.

"다리가... 너무 아파요."

흘리듯 덧붙이는 말에 돌아서던 흑운이 입 안을 깨물었다. 여린 점막이 찢어지고 혀끝에 비릿함이 느껴졌다. 누군가 쥐어짜는 심장을 애써 가누며 비틀대는 걸음으로 복도를 지나갔다.

그를 본 궁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무어라 수군거렸으나 관심은 두지 않았다. 그저 그 수군거림이 목하를 향하지 않기만을, 그녀의 귀에 들어가 마음을 찢어놓지 않기만을 바랄 뿐.

그네들에게 털끝만치도 주지 않은 흑운의 시선은, 지금 저 멀리서 이쪽을 향해 오고 있는 태의녀만을 똑바로 향하고 있었다. 조금 빠르게 움직인 발이 그 앞에 멈추어 섰다.

"지금 모시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지금 막 깨어났습니다. 고통이 심한 듯 보입니다."

잠시 가지고 온 약재들을 헤아려 보던 태의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일찍 깨어났군요. 약재방에 가서 내 일러주는 약재들을 좀 가져다 주세요."

그녀가 말하는 약재명들을 찬찬히 새겨들은 흑운은 정중하게 목례를 올린 뒤 약재방을 향해 사라지고, 작게 한숨을 내쉰 태의녀는 곧장 목하에게로 갔다. 이 가엾은 연인을 어찌할까, 속으로 안타까움을 삼키며.

**

”흑운.“

나직한 부름에 어디선가 나온 그림자가 부복했다.

”네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아느냐?“

”황명 아닌 자의로 움직인 것. 폐하의 호위와 태의녀를 사사로이 부린 것. 감정에 휘둘린 것입니다.“

탁, 탁, 검붉은 팔걸이를 규칙적으로 두드리던 현의 손가락이 멈추었다.

”며칠 새 많이도 저질렀구나.“

”소신을 벌하시옵소서.“

”이번에야말로 그래야겠다.“

두 사람뿐인 집무실에 침묵이 무겁게 깔렸다. 제 오른팔을 내려다보는 현의 마음처럼.

”황궁에 귀환하는 시점을 기준으로 네 흑운직을 삭탈하고 직속 호위부에서 제외한다. 후임을 지정하여 업무를 인계하라.“

”예, 폐하.“

그림자가 그림자 부대에서 제외됨은 곧 죽음을 뜻한다.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흑운이었음에도 대답은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현은 몸 일부가 잘려나가는 허전함을 느끼며 잠시 그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잠시 후, 다시 흑운을 내려다보는 현의 손에는 목패 하나와 서류 몇 장이 들려 있었다.

”받아라.“

두 손으로 그것을 받아 펼쳐 든 흑운의 눈동자가 아주 조금 흔들렸다.

”네 이름과 성, 그리고 집이다. 이제 정2품 위장군으로 양지에서 짐을 보필하라.“

”존명.“

잠깐 흔들렸던 눈동자조차 순식간에 제자리를 찾고, 돌아오는 대답마저 딱딱하기 그지없다. 조금 더 격한 반응을 기대하던 현은 내심 실망하였으나 겉으로 티는 내지 않았다. 사실 저 정도면 나름대로 격한 반응일 터이니.

”그 궁녀도 함께 출궁하여라. 재가를 허하여 주겠다.“

”예.“

”그뿐이냐?“

현의 심중을 살피려는 듯, 흑운이 잠시 고개를 들고 그를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소신, 미욱하여 폐하의 심중을 헤아릴 수 없나이다.“

”이리 관대한 처분에 할 말이 그뿐이냔 말이다.“

내 입으로 말할 수도 없고. 현이 작게 투덜거리며 등받이에 기대어 턱을 괴었다. 그러면서도 눈은 무언가를 기대하며 흑운의 입을 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무척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한 흑운은 필사적으로 주군이 원하는 답을 찾으려 하였으나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아, 저 답답이. 그 궁녀는 대체 저런 사내의 어디가 좋은 것일까.

”말을 하란 말이다. 네 지금 느끼는 감정을. 감정에 휘둘렸다 하지 않았느냐.“

바늘 끝도 들어가지 않을 것처럼 빈틈없는 눈빛이 잠시 눈꺼풀 뒤에 가리워졌다 드러나기를 반복한다. 그리 몇 차례 눈을 깜빡인 흑운이 이윽고 결심한 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감읍…. 합니다?“

”그렇지!“

자기도 모르게 무릎을 탁 치던 현이 괜스레 민망해져 흠흠, 하고 고개를 돌렸다. 엎드려 절 받아놓고 이렇게 뿌듯할 수가.

”할 말 끝났으니 물러가 있거라.“

”예, 폐하.“

일어서는 흑운에게 조금 가라앉은 옥음이 날아들었다.

”감당할 수 있겠느냐? 평생을 책임져야 할 것이다.“

”예. 신의 몫입니다.“

단호한 대답에 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의심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걱정이 되었을 뿐.

”가서 한번 들여다보고, 반 시진 안에만 돌아오너라.“

”존명.“

**

“금일은 어떻습니까.”

소리 없이 문을 열고 들어오던 흑운이 일어나 앉은 목하를 보고 물었다. 모르는 사람이 듣는다면 놀랄 정도로 딱딱한 어투였으나 목하는 그 속에서 한없는 걱정과 연민을 찾아낼 수 있었다.

“많이 아프지 않아요.”

“... 다행입니다.”

흑운이 마시라며 입가에 대어 준 탕약 그릇은 따뜻했다. 먹기 좋게 식혀 왔겠지. 인상 한번 찌푸리지 않고 그 쓰디쓴 약을 모두 마신 목하의 입에 자그마한 당과 조각이 쏙 들어왔다.

“누우십시오. 태의녀께서 졸음이 올 것이다 하셨습니다.”

목하가 다시 눕자 흑운은 따뜻한 물에 영견을 적셔 얼굴과 목, 손을 닦아 주었다. 크고 거친 손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섬세하고 부드럽게. 발도 닦아 주어야 하는데. 잠시 얌전히 덮인 이불을 바라보던 그는 영견을 다시 대야 속에 담그고 꺼내지 않았다.

“이리 자주 자리를 비워도 돼요?”

“예. 윤허 받았습니다.”

아직 피멍이 채 가시지 않은 손이 힘겹게 흑운의 손을 쥐었다.

“폐하께선…. 좋은 분이세요.”

“그렇습니다.”

따스한 체온과 눈빛을 조금 더 느끼고 싶은데 몰려오는 약 기운에 자꾸 눈이 감긴다. 목하는 작게 하품을 하며 잡은 손에 깍지를 꼈다. 잠든 사이 어디 가지 말라는 듯.

“곧 출궁입니다. 평생을 지켜드릴 것이니 마음 놓고 주무십시오.”

비몽사몽 간에 들리는 목소리가 꿈인지 현실인지도 구분이 가지 않는다. 깍지 낀 손에 힘이 풀리는가 싶더니 그대로 목하의 고개가 툭 떨어졌다. 평온하게 이어지는 숨소리를 확인한 흑운은 잠시 그렇게 깍지를 낀 채로 목하를 내려다보다 방을 나갔다.

서 귀비가 태의녀를 뒤에 딸리고 미끄러지듯 들어온 것은 그로부터 한 식경이 조금 지난 후였다.

“보시게.”

목하가 깊이 잠든 것을 확인한 서 귀비가 눈짓하자 태의녀가 이불 아래쪽을 살그머니 들어 올렸다. 얇은 침의 밑으로 시커멓게 멍이 든 다리가 드러났다. 발목의 맥을 짚고 손끝의 감각으로 이곳저곳을 살피던 태의녀는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젓고선 다시 이불을 원래대로 덮었다.

========== 작품 후기 ==========

연참이다. 울지 말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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