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제의 두 얼굴-141화 (141/152)

<-- [외전 특별편] -->

“아…. 아…. 이게…. 도운 님…….”

말랐다고 생각했던 눈물이 다시 솟구친다. 덜덜 떨리는 손끝으로 피를 닦아내 보지만 도운의 얼굴에 남은 상처는 또렷하기만 했다.

“이제 그 어떤 여인도 부인에게서 저를 빼앗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허니 그리 불안해 마십시오. 도운이 목하를 안고 토닥거리며 속삭였다. 검게 썩어들어간 마음 틈새로 그 목소리가 차분하게 스며든다.

어깨에 떨어져 내리는 핏방울로 인해, 목하는 비로소 도운의 고통을 뼛속 깊이 깨달았다. 정인의 아픔이 상대에게는 얼마나 큰 고통이 되는지. 자신이 도운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준 것인지.

“미안, 미안해요.”

“제가 더 미안합니다. 모든 일이 제 탓입니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목하는 그대로 한참을 도운에게 안겨 울었다. 밤새도록 이어질 것 같던 울음이 멈출 때까지, 도운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오늘부터 등청하지 않아도 됩니다.”

목하가 끅끅대며 고개를 들어올렸을 때였다. 커다란 손으로 얼굴 가득한 눈물을 닦아준 도운이 사흘간 바빴던 이유를 한 마디로 전했다.

“오늘부터요?”

“예. 칠 일간 휴가를 받았습니다. 가고 싶은 곳이 있으십니까?”

“일단 이거부터 치료하고 말해요.”

혼자 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도운은 잠자코 목하에게 물수건과 고약을 건넸다. 서투르지만 꼼꼼한 손길로 상처를 닦고 약을 바른 그녀는 그래도 안타까운 눈빛을 그곳에서 떼어내지 못했다.

“이건 너무했어요.”

작게 책망하는 목하에게 차분한 물음이 되돌아왔다.

“아직도 부인께선 제가 빛나 보이십니까?”

“네. 많이요.”

도운이 고개를 약간 기울여 목하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시신의 그것처럼 꺼져가던 동공이 다시 똑바로 자신을 응시한다. 그것만으로도 얼굴에 영원히 남을 길다란 상처는 가치가 있었다.

“저 또한 그렇습니다. 지금의 그대가 눈부시도록 빛나 보입니다.”

“.., 말 진짜 잘해.”

두 사람의 입술이 다시 겹쳐졌다. 서로를 탐하는 호흡이 짙어지며 혀끝을 타고 타액이 왕복한다. 조금 전까지 거칠게 목하를 밀어붙이던 도운은 이제 평소의 무뚝뚝하면서도 다정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내일은 저자에 가요. 갖고픈 물건을 모조리 사 주세요.”

도운의 입이 목덜미를 매끄럽게 핥아내리는 것을 느끼며, 목하가 한숨처럼 읊조렸다.

“예. 그리하겠습니다.”

도운이 단단하게 감싸고 있던 등이 피로 얼룩진 침상 위에 뉘어졌다.

“모레는 산에 가고 싶어요. 계곡가에 앉아서 맛있는 거 먹을래요.”

“다 드셔야 합니다.”

“내려올 때는 가마 안 타고, 도운 님께 업혀서 내려올 거에요. 제 다리가 되어주신다 약조하셨으니까.”

“올라갈 때도 업어드릴 수 있습니다.”

“그건 싫어요. 가마 옆에 따라오는 도운 님이 보고 싶어요.”

여름 행궁의 연못에서 몸을 던진 이후, 목하는 처음으로 미래를 말하고 있었다. 그것이 상처 난 도운의 마음을 감싸고 기쁨을 불어넣었다.

“옆에 딱 붙어 가겠습니다. 창을 열면 바로 볼 수 있게끔.”

여름날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마냥 맑은소리가 피로 물든 방 안에 가득히 울렸다. 그 소리를 들은 도운 또한 싱긋 웃었다. 조금 부어오른 옥문 위를 매끄럽게 왕복하던 선단이 조금씩 안으로 들어섰다.

“또 해요?”

“싫으십니까?”

“아니. 좋아요.”

만족스러운 대답을 얻은 도운이 힘을 주어 남근을 푹 박아넣었다. 씨물로 질척하게 젖은 내벽은 아까보다 훨씬 쉽게 그것을 받아 삼켰다.

“눈 뜨십시오.”

도운이 꼭 닫힌 채 속눈썹을 파르르 떠는 목하의 눈을 쓰다듬었다. 정중한 어투였으나 굳이 목하가 아니라도 명령인 듯, 또는 세뇌인 듯 낮게 울리는 목소리를 거부할 수 있는 이는 없을 것이다.

열락에 들뜬 시선이 자신을 향하자 도운의 눈가가 가늘게 휘어졌다. 그 아름다운 미소에 목하가 넋을 잃은 사이 군살이라곤 없는 허리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승천하는 용의 그것처럼 완벽한 근육이 크게 위아래로 왕복하고, 등허리에서 흐르는 땀방울과 함께 도운의 호흡도 점점 진해졌다.

“하, 흐읏…….”

깊고 무겁게 움직이던 허리가 점점 빠르게 치달을수록 도운의 어깨에 박힌 손톱 또한 깊게 들어가 패인 자국을 남긴다. 목하의 머릿속이 툭 끊어지며 높은 교성이 자지러졌다.

그 달콤한 소리가 참을 수 없이 도운을 재촉하고, 내벽이 조금 전과 비할 바 없이 남근을 꽉 조여 씨물을 게걸스럽게 삼켰다. 그녀의 안에서 살아있는 듯 꿈틀대는 남근이 후희를 즐기는 동안 목하는 땀에 젖은 도운의 등을 다정하게 쓸었다.

“침상이 엉망이니, 제 방에 가서 주무셔야겠습니다.”

“진짜요?”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목하를 두고 일어난 도운이 제멋대로 흩어진 속의대를 탁탁 털어 대강 걸쳤다. 그리고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온 그의 손에는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대야와 영견, 하얀 약초 주머니가 들려 있었다.

“눈 감으셔도 됩니다.”

옆에 의자를 끌어다 놓고 뜨거운 물에 주머니를 담근 도운이 목하의 눈을 쓸어내렸다.

“싫어. 보고 있을래요.”

“그러시든가.”

물에 넣은 약초가 곱게 우러나며 방 안을 향기로 가득 채웠다. 훤히 드러난 나신이었건만 그가 향기로 닦아내는 손길은 담백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땀과 피, 체액으로 범벅돼 있던 몸이 촉촉한 물기를 머금었다.

보고 있겠다던 말이 무색하게도, 도운이 가느다란 종아리를 닦아낼 즈음 목하는 아주 평온하게 눈을 감고 쌕쌕 잠들어 있었다.

**

“벌써 깨셨습니까?”

목하가 반짝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옆에서 팔을 괸 채 그녀를 내려다보는 도운의 얼굴이었다. 이보다 더 완벽한 아침이 있을까. 목하는 배시시 웃으며 팔을 뻗어 그의 목을 감싸 안았다.

“언제 일어났어요?”

“조금 전에.”

“나 깨우지.”

“자는 얼굴이 어여뻐서.”

목하가 꼭 안아 당긴 도운의 얼굴에 입맞춤을 퍼부었다. 밤사이 딱지가 앉은 상처 부위만 제외하고.

“한데 왜 말이 조금 짤막해진 느낌이죠? 어제부터 그래.”

“짤막하면 안 되나?”

도운이 피식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자 목하의 귀가 발갛게 물들었다. 이런 말은 마음의 준비가 좀 되었을 때 치고 들어와야 하는 것 아닌가.

“나으리, 아침상 다 되었습니다.”

마침 바깥에서 들려온 찬모의 목소리에 목하는 동당 대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도운이 벗은 상체를 일으키자 놀란 목하가 침상에 짚은 손목을 잡아당겼다.

“그러고 나가시게요?”

“아. 옷 입겠습니다.”

대강 걸친 얇은 속의대가 마음에 들지는 않으나 이쯤에서 만족하기로 한다. 찬모의 손에서 직접 소반을 받아든 도운이 그것들을 탁자에 정리해 놓고 목하를 침상에 앉혔다. 고소한 죽과 정갈한 나물 반찬, 짭짤하게 졸인 꿩고기. 평소와 그다지 다를 바 없는 아침상이었으나 훨씬 맛있어 보였다.

“이거 다 드셔야 오늘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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