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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두 얼굴-142화 (142/152)

<-- [외전 특별편] -->

“이거 다 드셔야 오늘 나갑니다.”

도운이 꿩고기를 가늘게 찢어 목하의 수저 위에 올려놓았다. 겁박하듯 말하는 목소리가 진지하기 짝이 없었다. 목하가 몇 저분을 맛나게 먹는 것을 보고서야 그 또한 수저를 들고, 두 개의 그릇은 이내 깨끗하게 비워져 찬모를 뿌듯하게 해 주었다.

“마님, 의대를 가져왔어요.”

목하의 시중을 드는 벼리가 바깥에서 고해왔다. 그녀 또한 조금 들뜬 듯 가벼운 목소리였다.

“들여라.”

도운이 목하 대신 대답하고선 한쪽 벽에 비스듬하게 기대어 섰다. 그 태도가 전혀 자리를 비킬 것 같지 않아 보였기에 벼리는 잠시 멈칫하며 목하를 돌아보았다. 목하 또한 난감한 얼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저, 잠시 나가 계시면 안 돼요?”

“안 됩니다.”

안 되는구나. 목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체념한 듯 팔을 내밀었다. 저렇게 단호하게 안 된다고 한 뒤에는 웬만해선 꺾을 수 없으니. 아주 불편한 얼굴로 도운과 목하를 번갈아 보던 벼리가 한숨을 쉬며 목하가 입고 있던 침의를 벗기고 소셋물로 얼굴과 목을 닦아내었을 때였다.

“잠깐.”

무어가 그리 불편한지, 미간을 점점 좁히던 도운이 성큼성큼 걸어와 벼리에게서 영견을 빼앗아 들었다.

“내가 할 테니 나가 있거라.”

“나으리, 그는 아니 될 말씀입니다!”

“나가 보래도. 가서 마님 타실 가마나 좀 살피거라.”

망측함에 홍시가 되어버린 벼리가 문밖으로 사라지자 그제야 도운의 표정이 반듯하게 펴졌다. 허나 몸을 닦고 새 의대를 입히는 솜씨는 서투르기 그지없어서, 목하는 까르르 웃으며 그이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렸다.

“이게 뭐야. 어느 세월에 나가요?”

“시간 많습니다.”

조금 많이 느리긴 하였으나 어쨌든 도운은 목하에게 옷을 완벽하게 입히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머리까진 그에게 너무나 어려운 과제였기에 결국 벼리를 다시 불러야만 했다.

그녀가 머리를 올리고 입술을 홍화빛으로 물들이는 사이 옆방에서 옷을 갈아입은 도운이 다시 문을 열었다. 언젠가 그녀와 처음 저자에 나갔을 때 입었던 푸른 원령포삼. 그때 샀던 가락지가 목하의 두 번째 손가락과 도운의 가슴 위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갑시다.”

그때와 같은 말투로 같은 말을 하며, 도운이 목하를 안아 들었다. 폭신한 비단 방석이 깔린 가마 안에 그녀를 내려놓고 손등에 입을 맞춘 후 휘장을 치자 가마꾼들이 동시에 가마를 번쩍 들어 올린다.

목하가 창을 열고 바깥세상을 구경하는 동안 도운은 한 걸음 앞서 나가며 습관적으로 주변을 살폈다. 그의 눈이 날카롭게 어딘가를 주시한 것은 저자에 가까워져 지나는 사람들이 점점 불어나기 시작한 삼거리에서였다.

“창 닫습니다.”

밑도 끝도 없이 쪽창을 닫아버린 도운이 가마꾼들을 재촉했다. 목하는 무슨 일이냐 묻고 싶었으나 닫히는 창 사이로 언뜻 스쳐 지나간 그의 표정이 무서울 정도로 굳어 있었기에 그럴 수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창이 열렸을 때, 도운은 언제 그랬냐는 듯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돌아와 그녀를 보고 있었다.

“부인의 눈길을 붙잡는 것은 무엇이든 사 드리겠습니다.”

“전부 다요?”

“전부다.”

그것이 헛말이 아님을 증명하듯 가마 뒤에서 따라오는 두칠이의 팔은 이내 색색의 피륙과 패물, 온갖 서책으로 가득 찼다.

큰 키에 흉흉하게 그어진 칼자국, 섣불리 말을 걸기도 어려운 위압감의 사내가 그리 여인네의 물건을 죄다 사들이는 일은 꽤나 신기한 구경거리라. 지나는 이들의 시선이 모두 도운에게 집중되었으나 그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실례하겠습니다.”

별안간 가마를 멈춰 세운 도운이 휘장 안으로 손을 쑥 집어넣었다. 정확히는 곱게 펼쳐진 다홍빛 치맛자락 속으로.

“뭐 하세요!”

“좀 만집시다.”

목하가 기겁하였으나 도운은 침착하게 그 속에 감추어진 발을 찾아 한번 쥐어 보고는 손을 다시 빼내었다.

“한데 뭘 그리 놀라십니까?”

“아, 아니. 나는 이런 데서…….”

“무슨 생각을 하셨기에.”

“가던 길이나 마저 가요!”

앙칼진 손이 휘장을 탁 치고는 안으로 쏙 사라졌다. 흐릿하게 보이는 그림자가 양손으로 얼굴을 감싼다. 도운은 피식 웃고는 다시 원래 있던 위치로 돌아가 목하가 바라보는 물건들을 사 모으는 데 집중했다.

**

“도운 님, 매일 안 나갔으면 좋겠다.”

다음날도 도운의 품에서 눈을 뜬 목하가 꿈꾸듯 중얼거린 말이었다. 도운은 그러겠노라 말해주지 못하는 자신을 책망하며 말없이 창백한 뺨을 손끝으로 쓸었다.

“채비시키겠습니다. 좀 더 누워 계십시오.”

늘 누워 있는데. 목하는 방을 빠져나가는 도운의 뒷모습을 보며 그리 생각했다.

언제나 분주한 궁인 중에서도 목하는 유난히도 재게 움직였다. 호기심 많고 가만히 있기 싫어하는 성격 탓이기도 했고, 천성이 부지런한 탓이기도 했다.

하여 수많은 무수리 사이에서 윗전들의 눈에 띄어 궁녀로 진급하는 것도 빨랐다. 서 귀비와 상궁마마님들이 그녀를 어여뻐한 연유 또한 작은 덩치로 이곳저곳 헤집어 가며 열심히 일하는 것을 눈여겨보았기 때문이었다.

만일 그 밤으로 다시 돌아간다 하여도 도운 님을 구하고 다리를 잃으리라. 허나 그 전, 훨씬 전으로 돌아간다 하면 처음부터 도운 님을 마음에 담지 않으리라.

목하가 더듬어 올라가는 과거에서 뭘 그리 빨빨거리고 돌아다니냐며 타박 주던 동무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오르다가 이내 지워졌다. 때마침 도운이 직접 아침상을 가지고 들어왔기 때문에.

“다른 산은 안 되겠습니까?”

한 저분을 뜨기도 전에 도운이 영 마뜩잖은 듯 물어왔다.

“그곳은 풍경이 아름답기는 하나 산세가 험하고 바람이 찹니다.”

“알아요. 나 어릴 적에 그쪽에 살아서, 나물 캐러 많이 다녔어요.”

더 할 말이 없는 대답에 도운은 더 말리지 않았다. 언월산은 황성에서 가까움에도 산세가 험한 탓에 인적이 드물어 여유롭다. 그다지 내키지는 않으나 목하가 가고 싶다는데 어쩌랴.

그는 아침상을 물리고 어제와 같이 목하에게 옷을 입혀준 뒤 두칠이가 끌고 온 말갈기를 무심하게 쓸어내렸다.

“가자.”

가마에 앉아 말 등에 반듯한 자세로 앉은 도운을 바라보던 목하가 손을 들어 그의 뒷모습을 쓰다듬었다. 언젠가 꼭 저리 말에 올라 황제 폐하를 호위할 적에, 모든 궁녀가 선망의 눈길로 그를 훔쳐보았더랬다. 그 많은 여인 중 왜 하필이면 저였을까.

전방을 주시하던 도운이 고개를 돌려 자신에게 묶인 목하의 시선을 마주했다. 그 많은 궁녀 중 누구도 보지 못했을 그의 미소를 바라보던 목하 또한 해사하게 웃는다. 그래. 저 미소 하나면 되었다 생각하며.

“너는 예서 말을 돌보고, 벼리만 따라와라.”

산 아래에 도착하자 도운이 말고삐를 두칠에게 건네었다. 험한 산이라, 말을 타기보다는 걸어 오르는 편이 수월한 까닭이었다.

곱게 물든 단풍은 장관이었다. 붉은빛, 노란빛, 초록빛과 그 중간 어딘가. 그 모든 빛깔이 제멋대로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를 그려내고, 낙엽들은 어디선가 졸졸 흐르는 물소리를 악공의 연주 삼아 춤을 추며 날아다닌다.

목하는 가마의 휘장을 걷고 그 풍경과 바로 옆에서 가마와 속도를 맞추어 걷고 있는 도운을 눈에 담았다. 그의 곁에서 손을 잡고 함께 걸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녀의 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도운이 손을 들어 가마를 멈춰 세웠다.

“내리십시오.”

“여기서요?”

“저 안쪽이 계곡입니다.”

가마 안으로 들어온 팔이 목하를 낙엽마냥 가벼이 안아 들었다.

“그대와 둘만 있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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