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소류타」
1 화
「좋겠구나」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제방에 앉아 풀을 뽑으면서 크리온은 중얼거렸다.
연한 붉은색의 단의와 바지를 입고 있는 소년이다.
단의는 허리를 묶고 옷자락을 늘어뜨리고 있기 때문에 짧은 스커트같이 보이기도 했다.
부드러운 금발이 초봄의 바람에 살짝 휘날리고 있지만 성인처럼 길게 기르고 있지는 않았
다.
목뒤에서 귀 앞까지 반원을 그리며 가지런히 다듬어져 있는 것이다.
손발도 가늘다.
근육이 없어서 옷의 옷감이 넘쳐나고 있다.
허리에 매달린 찌르기 전용의 레이피어는 그의 완력으로 취급할 수 있는 최적의 무기일
것이다.
검이나 장창 같은 것은 어울리지도 않을 것 같았다. 그 몇 가지의 특징이 성 정체성을 애
매하게 만들고 있었다.
멀리서 본다면 소녀로 착각할 수도 있을 것 같은 모습이다.
「저런 큰배를 타고 악대나 무희를 구경하면서……」
맑은 코발트색의 눈동자로 멀리를 응시하면서 크리온은 중얼거렸다.
1리그정도 떨어져 그레인델 호수의 빛나는 호수면 위에 커다란 그림자가 떠있다.
그것은 배였다.
전체 길이 3백 야드에 이르는 거대한 방주이자 황제의 명으로 전국의 귀족을 모아 실었던
회의선이자 1주일간의 연회가 행해지는 초호화유람선.
아마 지난달 남방의 페리드 일족의 진공을 또 격퇴했기 때문에 축하하는 진그리츠 제국의
거대한 국력을 나타내는 기념식.
「틀림없이 맛있는 음식이 산더미같겠지. 」
「그것이 본심이군요」
크리온의 뒤에서 소녀가 말했다.
그의 시녀 소류타다.
「크리온님은 맛있는 음식에 관계되면 판단력이 없어져버리죠. 」
놀리는 말이었지만 악의는 없었다.
웃는 얼굴이 부드럽다.
매우 꾸밈이 없는 소녀다.
복장은 흰 에이프런과 소매를 부풀린 검은 블라우스와 스커트.
장신구라고 해봐야 머리카락을 고정시켜주는 레이스달린 티아라가 전부였다.
비단 같이 긴 머리카락은 칠흑같이 어두운 윤기를 발한다.
다리의 피부조차 타이츠로 숨기고 있다.
다양한 인종이 다양한 장식을 하는 이 나라에서는 수수한 부류에 들어간다.
그렇지만 절대 흠잡을 수 없는 예법을 익히고 있다.
동작 하나 하나가 그림이라도 그리듯 춤이라도 추듯 우아하고 부드럽게 움직인다. 얼굴도
같은 인상이다.
화장기가 거의 안 보일 정도로 희미하게 화장하고 있다.
하지만 애초에 그런 것이 필요 없는 피부다. 입술은 작고 콧날은 시원했다.
속눈썹은 길지만 주위에서 보기 힘든 큰 눈 덕분에, 천박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원래 나이보다 어른스러워 보이지만 여성적인 면에서는 아직 어리다.
꽃이라기 보다는 부드러운 꽃봉오리가 아침 이슬을 머금고 반짝이고 있는 것 같다.
청초(淸楚)라는 말로는 조금 부족하다. ― 그런 여성이다.
그의 일보 뒤에 서 있는 소류타에 크리온은 등으로 말했다.
「내가 황제라면 좋겠는데. 」
「나라가 뒤집히면요.」
「자격은 있잖아 나도 황족이라고 」
「황위 계승권 18번째죠.」
아주 가볍게 소류타가 쐐기를 박는다.
크리온은 찌푸린 얼굴로 말을 하지 않았다.
아직 15세 아이인 것이다.
2살 연상의 이 시녀에게는 어떻게 해도 이길 수 없었다.
「아∼」
크리온은 잔디 위를 뒹굴뒹굴 구르고 힘껏 기지개를 핀다.
「폐하도 나에 관해 잊고 있을걸. 정실이 아닌 첩의 왕자 게다가 어머니가 돌아 가신지도
오래됐으니……」
「나쁜상황이 아니에요. 궁정이라는 곳도 그렇게 좋지가 않다구요」
「뭐가? 」
「음모와 책략, 돈과 권력, 서로 미워하고 원망하고…… 크리온님이 철이 들기 전에 그 곳에
가는 것은 절대 허락할 수 없습니다. 아니 평생 가지 않는 것이 좋겠어요. 저도 그 곳에 대
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어느 정도 낌새는 알 수 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돌아가신 형님
들이 얼마나 되죠? 그 곳은 무덤이라고요」
크리온은 말없이 소류타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는 이 여성을 도저히 단순한 시녀로 대우할 수 없었다.
5살 때에 크리온은 성을 나와 서쪽 국경 지방인 이 그레인델벨트 후작령에 맡겨져 지난
10년 동안 그녀와 함께 이 곳에서 살았다.
그러니 그녀와 같이 궁정에 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그렇게 되려나 ……」
알겠다는 고개를 끄덕거려본다.
「하지만 최소한 활기찬 왕도의 음식만은 먹어보고 싶은데. 」
「힐발트보다 이 쪽이 음식도 물도 훨씬 맛있어요」
소류타는 생긋생긋 웃으며 말했다.
어떻게 하더라도 크리온은 소류타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리는 것 같다.
크리온은 쓴웃음 지으면서 방주로 눈길을 돌렸다.
그리고…… 발견했다.
「소류타……?」
「네?」
「저거 연기 아냐?」
두 사람은 수면의 거선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연기다.
거대한 도시와 같은 방주에서 적어도 4개의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요리 준비인가?」
「아니 그럴 시간이 아닌데요…… 게다가 부뚜막에서 저런 새까만 연기가 나올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 것도 4 곳에서 동시에……」
소류타는 갑자기 얼굴을 굳힌다.
「화재인가?」
「……그럼 큰일 아냐!」
크리온은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빨리 후작님께 알리지 않는다면 !」
「알린다고 해도 시간이 맞지 않습니다. 아버님은 계속 나루에 계셨어요. 어차피 그쪽이 더
가까우니 벌써 알아차렸을 겁니다!」
「그럼.. 그럼.. 우리들은 」
「특별히……할 수 있는 일이 없지요」
「그런…」
다시 한번 두 사람이 뒤돌아볼 때였다.
「쾅∼!!」
이번에야말로 잘못 볼 수도 없었다.
폭발의 불길이 거선의 선미에서 터져 나왔다.
「역시!」
고함을 지르는 크리온의 어깨를 소류타가 강하게 잡았다.
두 사람의 눈앞에서 몇 번이나 불길이 솟구쳤다.
갑판에서 뭔가 까만 점들이 후두둑 호수 위에 떨어지자 크리온은 신음했다.
「안돼! 몸을 던진다 해도……이 호수에는 오그니아가 있는데!」
「저 쪽도 그것은 알고 있을 겁니다」
이 곳이 회의 장소로 선택된 이유중의 하나는 식인어에게 노예를 던져주는 잔혹한 스펙터
클을 구경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것을 자신들과는 상관없는 하계라고 생각하며 웃고 즐기던 귀족들의 등이 불타오르며
변명할 구실도 없이 지옥으로 뛰어든다.
그제서야 겨우 나루에서 배가 나오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했다.
목조의 방주는 사상 최대의 횃불로 화하여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이 곳까지 열기가 도달하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거대한 불덩어리다.
그 불길 가운데에서는 제국의 머리를 맡는 수많은 귀족들이 불타고 있다.
「아……저기!」
소류타가 가리키는 곳을 크리온은 주시했다.
한 척의 작은 보트가 배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호수면에 자욱히 끼는 연기로 모습을 놓쳤지만 그 방향은 가장 가까운 나루터가 아니라
반대쪽 물가였다.
「누군지 모르지만 어리석네요. 그 쪽에는 배를 댈 수 있는 곳이 없는데 ……」
「그래도 배에 남아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낳지.」
크리온이 말한 대로였다.
두사람이 조용히 지켜보는 가운데 방주는 기울어져갔고 이윽고 천천히 수면 속으로 모습
을 감추기 시작했다.
거대하긴 해도 원래 항해용이 아니기 때문에 돛대도 망루도 없는 평평한 배이다.
덕분에 그것이 수면아래로 사라지기까지는 걸리는 시간은 어이없을 만치 짧았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나니 수면에 남아 있는 것은 조용히 퍼지는 파문과 바람에 휘날려 흔
들리는 연기의 자취뿐.
겨우 그 때서야 나루에서 나왔던 거룻배가 도착했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떠있어도 그들이 뱃전에서 손을 뻗어 구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오구니아는 극히 사납고 빠른 식인물고기였던 것이다.
「소류타……」
크리온은 소류타를 바라보았다.
너무나도 순식간에 일어난 사건이라서 어떻게 받아 들여야 좋은 것이지 몰랐다.
그렇지만 의지하고 싶은 대상인 시녀는 짧게 말했을 뿐이었다 .
「저택에 돌아가시죠. ……아버님으로부터 연락이 있을 겁니다」
그레인델벨트는 자연물이 풍부한 영지지만 그다지 넓지는 않았다.
그것을 반영하듯 저녁 식사에 나온 요리도 매우 맛있어 보이지만 검소한 것들이었다.
식당도 작아서 20명만 들어가도 꽉 차버리곤 했다.
다른 영지의 저택과 비교한다면 가난하다고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오늘은 그것조차 넓게 느껴졌다.
긴 테이블에 앉아있는 것은 크리온뿐 .
뒤에 시중을 들기 위해 소류타가 서있다.
다른 이들은 모두 그 대사고의 후속처리를 위해 나가 버렸다.
「이래도 좋은 걸까. 나만 한가하게 밥따위나 먹고 있고」
나이프를 움직이면서 크리온이 중얼거린다.
뒤에서 소류타가 매정하게 대답한다.
「화상으로 피부가 엉망이 된 사람의 시중을 들 수 있습니까? 아니면 환자나 구조원들을 위
해 밥을 만든다던지.」
「……사람에게 명령하는 것은 가능하지요. 황족이기까 」
「명령은 아버님과 오라버님만 해도 충분합니다.」
「그래 전혀 도움이 되지 않네. 어차피 식객이니……」
크리온의 손에 있는 나이프가 거칠게 놀려진다.
약간의 침묵 후 소류타가 부드럽게 다시 말을 꺼냈다.
「화내지 마세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은 아니에요. 」
「말한 것과 다름없지.」
「다릅니다. 그것은 도련님의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을 뿐입니다. 크리온님은 크리온님만의
역할이 있으니까요. 」
「뭔데? 다른 게 있어?」
소류타는 애매한 웃음을 띠었다.
아직 말할 수 없다.
소류타가 말을 않고 있으니 크리온이 뭔가 중얼거렸다.
「……군요」
「예?」
「나도 밥을 지어 퍼주거나 전령같은 일은 해도 괜찮잖아. 나에게는 입도 손도 다리도 있다
고.」
크리온은 초롱초롱한 눈길로 소류다를 쳐다봤다.
소류타는 속으로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귀족이 그것도 황실의 피가 흐르는 고위의 인간이 전장에 비할만한 재해의 땅에 나가 스
스로 사람을 살리는 일같은 것을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소류타가 알기로는 역사이후 그런 황족은 한 사람도 없었다.
단지 크리온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하지만 그렇게 때문에 소류타는 이 어린 주인을 좋아하고 있다.
하지만 좋아하고 있기 때문에 함부로 나가게 할 수 없는 것이다.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위험하기 때문이다 .
어릴 때부터 함께였던 소년에게 다시 한번 강한 사랑을 느낀 소류타는 위로하기 위해 소
년에게 손을 뻗어 어깨에 어루어 만진다.
「그 마음만으로 충분합니다. …… 구조는 다른 사람들에게 맡겨주세요.」
「…… 그렇지? 언제나 그렇게 이리저리 돌리면서 따돌리고 있어. 나는 궁정으로부터가 담
보로 잡고있는 물건이니까. 손상시키거나 하면 후작은 교수형이야. 그러니까 소중하게 생각
하는 거겠지.」
「다릅니다! 우리들 모두는 크리온님을 좋아하기 때문에 걱정하고 있는 겁니다!」
외치듯이 말하는 소류타를 쳐다보던 크리온은 곧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럼 앉아 있어.」
「예?」
「그 정도 괜찮잖아. 아랫사람으로서 동석할 수 없다라는 구차한 변명은 하지 말고. 후작도
레그논경도 없잖아…… 」
「……예……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쓴웃음 지으며 소류타는 크리온의 옆자리에 허리를 얹었다.
크리온이 머리를 기울이자 상냥하게 껴안아 준다.
나는 아이구나 라고 크리온은 생각했다.
소류타의 가문은 열심히 일하고 있고 내가 나가봤자 아이가 하는 정도밖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거추장스럽기만 할 것이다.
알고 있었지만 떼를 썼다.
그런 자신을 소류타는 아무 말도 하지않고 위로해 준다.
크리온도 소류타를 좋아하고 있다.
어릴 적부터 쭉 누이와 같이 좋아하고 있었다.
크리온은 귀족이기 때문에 보통 사람에게 명령할 수 있다.
그렇지만 소류타들만은 달랐다.
그들은 명령해도 움직이지 않았고 때로는 크리온을 꾸짖을 때조차 있었다.
그리고 지위도 금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크리온은 그들을 좋아하는 것이다.
황족의 권위가 통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은 역으로 말하면 그들도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신분을 내세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겸허하고 아름다운 마음인가?
그런 사고방식 자체가 귀족에게는 드문 것이었다.
보통의 귀족은 신하가 반항하면 화를 낸다.
신하가 평민과 친하게 지내면 벌을 내릴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크리온도 특이한 황족이었다.
스스로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지만.
그렇지만 크리온은 알고 있다.
명령에 충실히 따르는 여자에게는 없는 소류타의 따스한 마음을. 충성이 아니라 애정을
받는 기쁨을.
마음을 진정시키는 따스함 덕분에 크리온은 곧 냉정하게 생각할 수 있게되었다.
「소류타……」
「네」
「앞으로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해?」
크리온은 소류타의 에이프런에 뺨을 부비면서 중얼거렸다.
「저 사고로 틀림없이 많은 귀족이 죽었어. 어쩌면 아버님도 」
「……」
「진그리츠는 큰 나라이지만 최근에는 조금 불안해. 국경에서는 아직 싸우고 있는 군단도
있어. ……조금 변화가 생기는 것이 아닐까?」
「일어나겠지요」
소류타가 대답한다.
조금의 변화 정도가 아니다.
총명한 그녀는 자신들에게 아주 큰 변화를 몰고 올 경우를 알고 있었다.
사실은 그것이 그녀가 크리온과 같이 저택에 남아있는 가장 큰 이유였다.
어쩌면……
그 때 갑자기 정문 쪽이 시끄러워지자 두 사람은 얼굴을 돌렸다.
기다릴 것도 없이 20대의 잘생긴 남자가 나타났다.
소류타가 소리를 지른다.
「오라버님!」
「식사 중이었나? 미안하지만 잠깐 멈춰줘야겠어.」
남자는 소류타의 친오빠 레그논·츠인드였다.
그렇지만 그는 나루에서 구조 작업을 지휘하러 떠난 지 얼마되지 않았었다.
소류타는 자리에서 일어나 뛰어갔다.
「어떻게 돌아온거죠? 가다가 중간에 돌아온건가요?」
「사고현장까지 갔다가 돌아온 거야. 여기 까지 오는데 10분 정도밖에 걸리더군.」
「10분이라고요! 말을 달려온다고 해도 30분은 걸리잖아요!」
「아니, 돌아올 수 있어. 에피올니스는 빠르잖아.」
「에피올니스……」
그 말을 두 사람이 이해하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그 침묵 중에 레그논의 뒤에서 한 사람의 인영이 나타나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20대 중반의 부드러운 미모의 여성이었다.
그렇지만 그 시선은 매우 가늘게 날카로웠다.
온 몸에는 스태크 살모사가 화려하게 새겨진 갑옷을 입고 있었다
「니센 대장, 이 분이 크리온 전하. 그 옆이 제 여동생의 소류타입니다」
레그논의 소개를 듣자 그 여성은 입을 열었다.
「처음 뵙습니다 전하. 에스피아 질공기단(疾空騎 ) 제 1 연대장 마이라·니센입니다. 급
한 상황 때문에 제대로 예의를 갖추지 못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질공기단이!」
놀란 크리온이 외쳤다.
거조를 몰고 하룻밤에 3백 리그를 날아가는 천공기병.
왕도에 상주하는 최정예 부대다.
그 기사단의 연대장급 인물이 긴급히 나타났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긴급한 사태인 경우
다.
「그렇다면 역시……」
굉장히 꺼림직 하다는 듯이 소류타가 말을 흐렸다.
마이라는 수긍의 뜻을 보였다.
「황제 폐하께서 승하하셨습니다」
「―!!!」
멍하니 말도 없이 서 있는 두 사람에게 마이라는 담담히 알렸다.
「사고소식은 사고직후 왕도에 도착했습니다. 즉시 긴급국의가 열리고 방금 전 결론이 났기
때문에 제가 왕도로부터 날아온 것입니다.」
「겨...결론이라면 ……」
쉰 목소리로 말하는 크리온에게 마이라는 조용히 말한다.
「크리온 전하 왕도에 돌아와 주시길 바랍니다.」
「내가? 왜?」
「지금 수도에 남아 있는 자는 하급귀족과 평민들뿐입니다 」
적어도 1천명의 귀족이 타고있던 배의 사고를 마이라는 간단하게 표현했다.
그리고 공손하게 머리를 숙였다.
「전하――진그리츠 황가의 혈통을 이어받을 수 있는 분은 오직 전하뿐입니다 」
그것은 소류타가 가장 두려워하고 있던 말이었다.
쥐고 있던 손에 힘이 꽉 들어간다.
하지만 지금 쥐고 있는 손은 더 이상 버려진 왕자가 아니게 된 손이었다.
-----------------------------------------------------------------
「의장병 기창!」
동정장군 데지에라·진피어스의 구령과 동시에 양익 8백 명의 근위병단이 일제히 창을 비
스듬히 들어올린다.
십 야드의 장창에 붙들어 매진 칠흑의 조기가 무겁게 아래로 드리워진다.
자신을 둘러싸 만들어진 창의 터널.
빛나는 창날을 하늘로 향하고 절대의 충성을 맹세하는 제국 최정예병들.
크리온은 그 사이를 떨리는 다리로 걸어간다.
근위병의 벽 뒤에는 3만에 달하는 인원이 몇 백개에 달하는 열을 이루고 있었다.
32개의 보병병단, 8개의 고속기병단, 2백명의 정식사제, 3백명의 무관, 5백명의 문관. 가슴
에는 검은 색의 조장이 흔들리고 6만개의 눈은 즉위한 황제에게로 쏠려 있었다.
크리온은 화려한 융단으로 만들어진 길을 따라 제단으로 오르는 층계에 발을 올렸다.
1개의 단(좌우 길이 약 10.9m, 면적 300평)이 5야드 간격으로 늘어져 있는 13개의 단을
오르고 커다란 단상에 놓여져 있는 큰 바위 같은 8각의 황위전에 도달하고 나서야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신관의 인도에 따라 제단에 다가가 그 위에 받쳐진 황금술잔을 들어올렸다.
그것을 머리 위에서 스스로 기울이자 수녀원의 여성직자들이 곱게 키워온 거룩한 포도주
가 머리 위로 흘러내렸다.
동시에 위대한 신관 킨로호레윈 49세가 비통한 목소리를 울렸다.
「중원의 사자, 북해의 대어 가제스 산을 답파한 용사, 위대한 황제 제만트4세가 이후라신의
품에 안기게 되도다! 애도하라 만백성들이여!」
가슴에 손을 대고 군중들이 몸을 숙여 절하자 장엄한 포성이 하늘 드높이 울려 퍼졌다.
길고 긴 포성이 끝남과 동시에 다시 한번 대종사가 외쳤다.
「――그리고 새로운 왕에게 맹세하라! 진라의 피는 끊어지지 않았으니 계약에 따른 충성
을! 경배하라 만백성들이여!」
부스럭대는 소리의 물결이 넓게 퍼져나갔다.
모여있는 3만에 달하는 인원이 가슴에 새로운 재질의 옷감을 대어 조장을 가리고 근위병
단이 창의 기를 바꿔 들고 아까와는 달리 창대를 하늘높이 수직으로 들어올렸다.
금빛과 은빛으로 짜여진 새로운 기가 왕궁을 가로질러 거대한 길을 만들며 바람에 펄럭거
렸다.
대신관이 크리온에게 호화찬란한 황금의 관을 건네줬다..
머리를 숙이지 않는 크리온은 손을 뻗어 그것을 받아 스스로 머리에 썼다.
그리고 몸을 돌려 군중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좌우에 섰던 대신관들과 장군들이 외쳤다.
「여기에 새로운 황제 크리온 1세의 즉위를 알린다! 이후라의 신의 축복이 있으라! 축하하
라 만백성들이여!」
「전군 새 황제페하께 환호! 우-레-·크리온!」
「우-레-·크리온!」「우-레-·크리온!」「우-레-·크리온!」
환성이 폭발했다.
3만의 인간이 올리는 외침이 광대한 광장을 뒤흔들었다.
동서 1500 야드에 달하는 왕궁의 성벽에 그것이 메아리치고 지진과 같은 울림이 사람들의
머리를 흔들었다.
그 머리 위를 질공기단 4백기의 에피올니스가 기하학적인 피라미드 대형을 만들어 황제의
머리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 위를 가로질렀다.
크리온은 한 손을 들어올렸다.
사람들은 더욱 더 환호했다.
올려진 황제의 손이 흔들리고 있었지만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단지 한 사람… 한 사람만을 제외하고는.
「이제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크리온은 불안하게 눈동자만을 옮겨 힐발트 왕궁을 뒤흔드는 군중을 둘러보았다.
물론 소류타의 작은 얼굴은 찾을 수 없었다.
단지 도망치고 싶을 만큼 많은 사람들의 얼굴만 보였고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거대한
환성만이 있을 뿐이었다.
-------------------------------------------------------------------
황제 폐하는 15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