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 1 장 「소류타」 3 화 (4/15)

황제 폐하는 15세!

제 1 장 「소류타」

3 화

겨우 자기 방으로 돌아와 넓디넓은 침대에 누우려고 할 때 노크소리가 들렸다. 

「크리온 폐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그래……」

지친 목소리로 크리온은 대답을 했다. 

문이 열리고 들어온 것은 마이라이였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츠인드와 소류타가 들어왔다.

「……소류타!」

즉위이후 한번도 보지못했던 소꿉친구-시녀를 보자 축 늘어진 크리온의 몸에서 활기가 솟는 것 같았다. 

「어디에 있었어! 쭉 찾고 있는데!」

「쉬려고 하실 때 찾아와서 정말 죄송합니다. 크리온 폐하」

소류타 대신 츠인드가 목례를 하며 답했다.

소류타는 그 뒤에서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첫날이시라 그런지 폐하께서 상당히 바빠 보이셔서 이런 시간에 실례를 하게 됐습니다. 괜찮겠습니까? 폐하.」

「에……」

츠인드에 깊숙이 머리를 숙이자 크리온은 당황했다.

상당히 젊어 보이기는 했지만 츠인드는 48세이다.

10년 전에 크리온을 맡고 나서 크리온에게 정치나 세상사를 가르치고 검술까지 내려준 스승인 동시에 아버지였다.

때로는 꾸중하기도 하고 때로는 껴안아 주기도 했다.

그런 때는 전하도 폐하도 아니고 단순한 크리온이었다. 

그 츠인드가 타인들과 같이 서먹서먹하게 머리를 숙이고 크리온에게 발언의 허락을 요청하며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소류타는 얼굴조차 들지 않았다. 

「……알았어요 ..말하세요 아저씨 그렇게 하실 필요는……」

「그레인델벨트후작이라고 불러주십시오. 저는 폐하의 신하이자 한 군주를 섬기는 사람입니다. 특히 지금은 폐하께 알현을 위한 예의를 밟고 있을 뿐입니다 」

「아저씨……」

크리온은 방의 공기가 차갑게 식는 것을 느끼며 혼란스러운 쓸쓸함을 느꼈다. 

츠인드 가문까지인가.

가족과 다름없이 생각하고 있던 이 두 사람까지 스스로 멀어져 버렸다. 

정말로 나는 외톨이인 것이다. 

갑자기 흥분을 했다가 식어서인지 더욱더 지쳐버린 크리온은 무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알현을 허락한다.」

「감사합니다. 폐하. 가능하면 비밀스럽게 ……」

언뜻 마이라를 바라봤다.

또 비밀 이야기인가!

어차피 둘만 있게 되는 순간 쥬디카와 같이 제멋대로 부탁을 나열하기 시작할 것 같다.

이 사람도… 츠인드 아저씨조차도 결국 황제에게 아첨하고 싶어하는 귀족이라는 것인가… 

「…좋아요. 마이라, 나가 있어요.」

「그러나 폐하의 경호를 위해서라면 ……」

「괜찮으니까……괜찮으니까 나가 있으라는 말 못 들었나!」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크리온은 명령했다.

츠인드를 신용할 수 없다면 마이라도 마찬가지다.

경호 따위 있어도 없어도 상관없는 것이다. 

「그러면 실례하겠습니다」

고개를 숙이며 마이라가 나갔다.

문이 닫힐 때까지 크리온은 곁눈질로 츠인드를 보고 있었다.

인간이라는 것이 이처럼 쉽게 변할 수 있는 것인가 라고 낙담하면서. 

그런데 문이 닫히는 순간 크리온 깜짝 놀라야만 했다. 

소류타가 확 얼굴을 들며 랜스차지(Lance Charge)라도 하듯 크리온의 가슴에 다이빙해 왔던 것이다. 

「크리온님∼∼!」

「에엑!? 소류타?」

자신보다 키가 큰 소류타에게 밀리는 바람에 크리온은 간신히 균형을 잡으며 비틀거렸다.

그 앞으로 히죽히죽 웃는 츠인드가 다가왔다. 

「여∼ 아직 미숙하구나. 크리온. 황제라는 것이 그러면 안되지. 명령하는데 좀더 익숙해져야 할거다.」

「아저씨……」

소류타의 어깨 너머로 크리온은 츠인드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렇다면……연기였습니까?」

「우리들 입장이 조금 미묘해서 말이다」

츠인드는 고소를 지으면서 콧수염을 쓰다듬었다. 

「즉위한 황제의 후견인이 되면 주위에서 보는 눈이 바뀌지. 우리에게 아첨하면 뭔가 이득을 취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하는 사람에서부터 우리를 위험하게 보는 사람들. 단호하게 신하의 예를 취하고 너와 거리를 두지 않는다면 황제를 그늘에서 조종하려는 음모였다고 생각하기 쉽상이란다. 심하면 누군가에게 암살당할 수도 있으니 말이야.」

「그런 것입니까……」

「국의 때는 더 상황이 안 좋았지. 그 경우 나는 절대로 끼어들 수 없었다. …… 물론 지금은 다르지. 뭐든지 상담해주마. 」

「좋아요……」

크리온은 한숨을 내뱉었고 그런 그를 츠인드가 부드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힘들었는가 보구나.」

「그것은 이제……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주위에 의지할 사람도 없었고요.……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어요.」

「도망치고 싶다니 유감이구나. 사정은 어떻든 너는 이제 이 나라의 주인이다」

「…예」

크리온은 눈물이 날 것 같은 느낌에 눈을 비비다가 아까부터 쭉 그의 품에 안겨 있는 소류타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럼 소류타도 변심하지 않았구나.」

「변심이라뇨! 그런 일은 절대 없습니다!」

얼굴을 든 소류타는 화가 잔뜩 난 듯 소리쳤다. 

「계속 계속 걱정해왔습니다. 크리온님이 틀림없이 힘들어 하실거라고 ……」

「그럼 왜 지금까지 얼굴을 보여 주지 않은거지? 황제 즉위 전에도 충분히 시간이 있었는데.」

「이쪽에도 여러가지 사정이 있었습니다. 그레인델벨트 사건의 후속조치는 모두 저희 가문에서 해야했기 때문에 시간이 걸렸고 아버님이 왕도에 올라가기 위해서도 여러 조치가 필요했습니다. 게다가 성에는 성의 관습이 있어 황제 폐하의 돌보는 것도 식사담당 의상담당 욕실담당 청소담당 등 그 밖의 다양한 시녀가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기에 왔을 때는 제 거처도 없었습니다.」

「전례 장관에게 이야기를 할 때까지 너의 곁에 둘 수가 없었다」

「그런 것까지 그 할아…장관의 일입니까?」

「그 할아버지는 요컨대 힐발트성의 집사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으니 말이야. 하지만 이제부터는 안심하도록. 앞으로는 소류타가 계속 옆에 붙어있을 테니까. 」

「그러면?」

크리온이 반가워하자 소류타는 기쁜 듯이 웃었다. 

「네. 크리온 님의 침실담당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 방에 돌아오시면 언제라도 만날 수 있게 되었죠.」

「그런가! 정말 다행이구나……」

크리온은 다시 한번 소류타를 꽉 껴안았다.

이렇게 격렬한 포옹은 지금까지 한 번도 한 적이 없었지만 그만큼 쓸쓸했었던 것이다.

소류타도 저항없이 몸을 맡겼고 츠인드도 만족스러운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꿈같은 시간이 지나자 츠인드가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흠흠! ……감동의 재회는 이 정도에 그만하고 이제 슬슬 좀 진지한 이야기를 해야 할 때가 아닐까」

「…네.」

젊은 두 사람은 몸을 떼고 쑥스러워하는 듯한 웃음을 지었다.

소류타가 의자를 가져오자 크리온과 츠인드는 마주보고 앉았다. 

「크리온도 이제 황제의 임무가 여러 가지로 대단하다는 것을 알았겠지? 맛있는 것만 먹으면서 놀 수 있는 일이 아니란다.」

「네」

「내정 외교 군무 등등 제국의 일은 다양하지만 지금의 제국은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있지. 이 나라는 지금 너덜너덜하다.」

「너덜너덜……입니까?」

「그렇다. 시들기 직전의 거목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간단히 말한다면 선황 폐하의 실정이란다. 그런데 나머지 귀족들은 대부분 이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병을 앓는 나무는 먼저 잎을 떨어뜨린다고 힘들고 괴로워하는 것은 평민들이기 때문에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다 」

「……괜찮습니까. 그런 말해도?」

「너이기 때문에 말하는 거다. 밖에서는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일이지. 그러면 쓸데없이 적만 늘리게 되니까. 그 이슈나스경처럼 말이다.」

「렌다크 남작 말입니까」

크리온은 정말로 수완가라는 느낌이 드는 날쌔고 용맹스러운 장년 귀족의 얼굴을 생각해 냈다. 

「그럼 그는 현 상황을 잘 알고 있습니까?」

「그래. 그는 상당히 유능하니까. 하지만 그 상태로는 귀족들과 싸우는 것만으로도 힘을 다 써버릴 거다. 그는 선황폐하 때부터 그랬다. 정책의 문제점을 거리낌없이 지적하고 발언자 앞에서 그의 의견을 가차없이 짓밟았지.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런 한직으로 쫓겨나서 지금 살아 있는 거지만...」

「아저씨도 ?」

「내가 10년 전 국경 지방의 그레인델벨트령에 봉해진 것은 왜라고 생각하는 거냐?」

「…… 역시 쫓아 버린 거군요.」

「그래. 하지만 덕분에 이렇게 장수하고 있지. 역시 사람의 운명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더구나.」

잠깐의 빈 공중을 무심히 바라보던 츠인드는 곧 이야기를 되돌렸다. 

「렌다크는 활용할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 평민의 문관들 중에서도 실력가는 있단다. 그들을 아군으로 만드는 것이 내가 해야할 첫 번째 일이다.. 그렇지만 크리온 지금의 너로서는 감당하기 힘들 거다. 」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는 거죠?」

「너는 아직 황제로 보이지 않아.」

츠인드는 엄격한 눈으로 크리온의 얼굴을 쏘아보았다. 

「렌다크가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은 황제의 강대한 권위이다. 그것을 주지 않는다면 그는 움직이지 않을 거다. 아니 못하는 거지.」

「그러나 그런 것은!」

크리온은 엉겁결에 소리를 질렀다. 

「무리가 아닙니까? 나는 지금까지 사교계에 나갔던 적도 없고 국의에 참가한 것도 없다고요. 무엇을 어떻게 부탁하면 좋을지……」

「일일이 부탁하지 않아도 된다. 정책은 그냥 전부 맡겨버려라. 사실 그대로 말한다면 그 누구도 너에게 실무 능력 따위는 기대하지 않는다.」

쓸모 없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았지만 크리온은 반론도 못하고 얼굴을 붉혔다.

확실히 15세의 아이에게 나라가 운영할 수 있는 능력 따위를 기대할 만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국의 때에 몸에 사무치도록 느꼈던 사실이었다. 

「말 한대로 필요한 것은 권위다. 즉 무슨 말을 하고도 얼굴에 철판을 깔고 거만하게 앉아 있을 수 있는 자신감 말이다. 나도 영주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사람의 위에 선다는 것은 반은 잘난 체를 얼마나 하나에 달린 것이다 」

「 물론 그게 심하면 폭군이 되죠. 그러나……크리온님이라면 절대 그런 걱정은 들지 않는군요.」

소류타의 위로가 가슴에 사무치는 듯 했다.

「그러나 권위라고 해도 ……어떻게 하면 황제다운 거죠? 대를 이으면 되는 건가요??」

「대를 잇다니?」

묘한 얼굴을 한 츠인드에게 크리온은 허둥대며 설명했다. 

「낮에 쥬디카에게 말했거든요. 대를 이을 왕자를 생산하는 것이 제왕의 임무라고…… 정치적인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플 지경인데 그런 것까지 따라 붙으니」

성급한 말이라고 비웃음 당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 츠인드는 진지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것은 나도 생각하고 있었다.」

「예?」

「특별히 갑자기 아이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아니지만 ……크리온? 하나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

「네.」

「너 여자를 안아본 적 있냐?」

「딸꾹!……그…」

크리온은 얼굴이 새빨갛게 돼버렸다.

방금 전 욕실에서의 사건을 생각해 낸 것이다. 

「알고 있다고 해야하나……」

「뭐?」

츠인드가 얼굴을 들이대는 동시에 크리온의 의자가 흔들렸다. ―― 그 의자는 소류타가 꼭 잡고 있었다. 

「아니 꼭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뭐라고 말해야할지 ……」

「어떻게 된 것인데 말 해보렴.」

「조금 전 욕실에서. 시녀들에게 강요받아서……」

「안은 것인가?」

「아뇨!」

크리온은 있는 힘을 다해 머리를 흔들었다.

그러자 그런가 하며 츠인드가 몸을 뺀다. 

「사실 그대로 껴안아 버려도 상관이 ――」

라고 말을 꺼내던 츠인드는 문득 자신의 딸에게 눈을 돌렸다. 

「아니, 잘 모를 때에는 손을 대지 않는 것이 현명할 것 같다. ……그것으로 좋다」

「아.」

그래서 끝났던 것일까 라고 생각하고 크리온은 수긍했다.

그렇지만 츠인드는 계속 말을 이었다. 

「내가 생각하건대 너에게는 황제로서의 자격 이전에 한 사람의 남자로서도 부족한 면이 있는 것 같은데.」

「……아」

「알고 있는 거냐?」

「아……아니, 약간……」

「그런가…」

츠인드는 가볍게 한 숨을 쉬었다. 

「내 생각에는 그것이 벽에 부딪쳐 있는 이 사태를 어떻게든 풀어나갈 실마리가 될지 모른다고 생각해서 내가 여기에 온 거다」

「……」

「우선은 그것이 끝나고 나서 나머지 이야기를 계속하자꾸나. 지금의 너에게는 정치나 그런 이야기를 할 여유가 없는 것 같다.」

그렇게 말하며 츠인드는 일어나자 크리온은 당황했다. 

「잠깐만요. 아저씨! 벌써 돌아가시면 어떻게 해요?」

「나에게는 그레인델벨트 후작으로서의 일도 있단다.」

「그렇다 해도……」

「뒤의 일은 소류타로부터 듣도록 해라. 잘 가르쳐 줄 거다.」

「아, 소류타는 남는 겁니까.」

「기뻐하는 기색이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구나. 절대 자장가같은 것을 들려주기 위해 남기는 것이 아니다」

「네.」

크리온이 고개를 끄덕이던 짧은 사이에 츠인드는 소류타와 시선을 나누었다.

만감을 담고 있는 아버지의 눈길과 결의를 굳히는 딸의 얼굴. 

그렇지만 뒤에 서 있는 소류타의 얼굴표정을 크리온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문 쪽으로 다가가 손잡이에 손을 댄 츠인드는 지나가는 말처럼 무심하게 입을 열었다. 

「그리고 또 하나. 크리온? 그 때 방주가 가라앉는 동안 보트가 탈출한 것을 소류타와 같이 보았다고 했니?」

「예?」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당황했지만 크리온은 수긍했다. 

「예. 확실히 봤습니다」

「그것은 누구에도 말하지 말거라.」

「왜죠?」

「구조 활동의 결과 뭍으로 끌어올린 인간과 죽은 인간의 수를 합하면 정확하게 승선한 인원수와 똑같단다.」

「……무슨 뜻이죠?」

「보트로 도망쳤던 인간은 명부에 실려 있지 않았다고 말한 거다」

「예?」

「나머지는 소류타에게 부탁했다 . ―― 그럼. 크리온폐하 실례하겠습니다」

깨끗한 이별의 말을 남기고 츠인드는 밖으로 나갔다.

문이 닫히기 전에 마이라가 방안으로 얼굴을 내밀어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한번 문을 닫았다. 

남아 있는 크리온은 잠시 츠인드의 말을 곱씹어 보고 있었다. 

아무리 어리다해도 그러한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둔감하지는 않았다.

이윽고 크리온은 소류타를 뒤돌아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러면……배에 몰래 침투했다가 도망나온 사람인가? 」

「그렇습니다.」

「그럼 그 사고는 절대 화재 따위가 될 수 없는……」

「예. 파괴 공작과 대규모 암살일 겁니다.」

「그것은……」

크리온의 얼굴이 파래졌다.

천명 가까운 인간을 망설임 없이 죽인 누군가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절대 개인으로 가능한 일은 아니다.

집단이, 조직이 ――아마는 국가가 그 뒤에 있을 것이다. 

소류타가 또한 뒤를 이었다. 

「그 정도의 인원을 죽인 이상 동기는 작은 원한이나 재산 등이 아닙니다. 아마 진그리츠 제국 그 자체의 전복이 목표였겠지요. ……그렇다 라고 하면 크리온님이 살아남았던 것은 적들에게 있어 오산. 폐하의 목숨도 위험하십니다.」

「그래서 아저씨가 말 하지 말라는 것인가. ……나는 다음 대상자인 황제에다가 음모의 목격자까지 겸하면...」

「그리고 용의자입니다」

크리온의 등골이 오싹했다. 

「용의자?」

「이 사건으로 가장 이득을 보았던 것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대신 황위를 차지한 새 황제. 

「나지……」

「더군다나 장소는 크리온님의 세력 범위라고도 할 수 있는 그레인델벨트. 영주는 크리온 님과 가족과 다름없는 츠인드 가문. 의심받지 않는 쪽이 이상할 겁니다」

「즉 음모와 관계없는 사람들에게도 나는 적 취급당할지도 모른다는 것인가? 」

「그. 아니, 오히려 진범은 그런 의혹이 생기는 것을 원했을지도 모릅니다. 의심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지.」

크리온은 이마를 지긋이 눌렀다. 

머리가 뜨겁게 증발하는 것 같았다.

붕괴직전의 정부, 나를 무시하는 신하들, 토린제들의 야비한 의도 그리고 거대한 음모와 생명의 위험.

어느 것 하나만 있어도 제대로 견디기 힘든 난제들이 머리 속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일단 앉으십시오. 마실 것이라도. 」

크리온이 침대에 허리를 걸치자 소류타가 한쪽에 놓인 선반 쪽으로 다가갔다. 

「물로 하시겠습니까?」

「아니 술.」

「아쿠아 윙트가 있습니다만 ……크리온님 술은…」

「마셨던 적은 없지만 지금이 마셔야 할 때가 아닐까?」

소류타가 갖고온 글라스를 크리온은 단숨에 비워버렸다.

독한 증류주였다.

그렇지만 머리가 터질 것 같은 느낌 덕분에 취기가 들어갈 여유가 없었다. 

「소류타 이리로.」

「네.」

소류타는 조용히 크리온의 옆에 앉았다.

그녀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면서 크리온은 중얼거렸다. 

「나 어떻게 하면 좋을까」

「……」

「황제가 이렇게 대단하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어. 음모이라든가 정치이라든가 대를 이어야한다던가 전부다 내 힘에 부치는 것 뿐이야. 도대체 이전 황제들은 어떻게 한 거지? ……」

「……」

「소류타는 자나고드의 넓은 방에 들어갔던 적이 있어? 국의의 압력이 굉장하더군. 내 말한 한마디로 제국이 움직인다. 대만원의 짐마차를 낭떠러지 옆에서 혼자서 끌고 가는 것 같았어. 한 발자국만 헛디뎌도 9천만의 국민 모두가 떨어지고 만다. 그것을 생각하니 숨도 쉴 수 없을 것 같더라고.」

「……」

「소류타?」

위로를 기대하며 크리온은 시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렇지만 거기에는 언제나 그 상냥한 검은 눈동자는 없었다.

소류타는 상당히 불쾌한 듯 무표정한 얼굴로 방구석을 노려보고 있다. 

「왜 그러는 거야?」

「……응석부리시는 것은 다 끝내셨습니까?」

「응석이라고?」

「예. 응석이지요. 시녀인 저에게 이야기한다고 특별히 해결되지도 않는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이 응석이지 무엇이겠습니까? 」

「그런… 화내지 마 . 단지 나는 잠깐 네 위로를 받고 긴장을 풀었으면 해서-」

「위로 받기를 바라신다고요?」

소류타는 분명히 크리온을 노려보았다.

항상 깊고 부드러웠던 눈이 활활 타오르는 듯 했다.

「그것이 황제되시는 분이 하실 말씀이십니까?」

짝! 황제의 방에 메마른 소리가 울려 퍼졌다. 

크리온은 멍하니 뺨을 눌렀다.

별로 아프지는 않았으나 불이 붙은 것처럼 뜨거웠다.

꾸중들었던 적은 종종 있었지만 이렇게 손찌검을 당한 것은 처음이었다. 

크리온에게 무슨 말을 한 틈도 주지 않고 소류타는 시퍼런 얼굴로 떠들어댔다. 

「정치를 할 수 없다고요? 대를 이을 수 없다고요? 그런 문제 아무리 생각해도 어쩔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저쪽에서 원하고 있는 것은 결단입니다! 생각할 시간 따위는 없습니다.! 뒤가 어떻게 됐든 우선은 나아갈 수밖에 없는 겁니다! 정치 따위는 적당하게 정하고 척척 명해버리면 그만입니다! 대를 잇는 것 따위도 시가지에 나가 마음에 드는 여자아이를 찾아 성으로 데리고 들어오셔서 그냥 쓰러뜨리면 그만인 것입니다!! 아니! 그 자리에서 쓰러뜨린 다음 나중에 성에 데려오셔도 되겠군요!!」

「??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남들이 뭐라 하면 어떻게 할건데!」

「누구도 뭐라 하지 않습니다. 단지 진그리츠가 망하고 사생아들의 산이 쌓일 뿐이겠죠!」

「그..그런... 잠깐... 소류타……」

갑자기 변해버린 시녀의 태도와 난폭한 설교에 크리온은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렇게 간단하게 말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나라가 망하면 수많은 사람이 죽을지도 몰라. 그런 나라를 아무 책임감 없이 그냥 내 맘대로 하라고!?」

「그렇습니다. 책임 따위는 질 필요 없습니다」

소류타는 크리온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말을 하고 있었다. 

「어차피 크리온님께서는 어떻게 된다해도 본전 아니십니까? 제국이란 한 사람의 인간이 짊어지기에는 너무 무거운 의무이기 때문에 실패할 수도 있는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해도 잃어버리는 것은 겨우 제국 하나입니다. 설사 모든 것이 사라졌다고 해도 크리온님께는 저희들이 있습니다. 몸 하나만 들고 그레인델벨트로 야밤 도주해버리면 그만입니다. 원래의 생활로 돌아오는 거죠! 」

「소류타……」

크리온은 깨달았다.

소류타도 왕관의 무게를 알고 있는 것이다.

아무도 자신의 고충을 모를 거라고 불평만 늘어놓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것은… 그래도… 아무리 그래도 내 마음대로 막 해도 상관없다는 거야?」

「전에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황제가 되고 싶으시다고.」

소류타는 약간 어조를 부드럽게 하며 말했다. 

「그런데 정말 황제가 되셨죠. 크리온님이 원하시는 대로입니다. 진수 성찬은 먹고싶은 만큼, 금화는 대형 짐마차 가득, 옷은 매일 1회용, 주위에는 늘 미인의 산, 지루하게 되면 이웃나라를 공격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인간은 모두 사형. …… 말 그대로입니다. 그냥 제멋대로 하시면 되는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나 천사나 악마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최악의 경우 야밤도주를 한다해도 그 고급 차 그림 무늬의 외출복은 남지 않습니까.」

크리온은 웃음을 터트렸다.

소류타는 황제의 권력을 씹다 버린 껌 딱지처럼 말하고 있었다.

그런 말을 듣고 보니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굉장하군. 소류타」

「괜찮으십니까?」

「소류타쪽이 황제에 더 가까운 것 같아.」

「칭찬받으려고 한 말이 아닙니다. 어차피 전부 크리온님이 하실 일 아닙니까!」

「알았어요. 알았어.」

화내고 있는 소류타의 어깨를 치며 크리온은 자지러지게 웃었다. 

「그래. 맞아.. 원래 내 나라가 아니지. 황제를 해서 잘되면 횡재한 것이고 잘 안돼서 도망쳐도 비싼 차 그림 무늬 외출복은 건지는 거지.」

「하지만 그러기 전까지는 분발하셔야합니다.」

「음. 그래∼」

크리온은 웃음을 가라앉히며 두 손을 꼭 쥐었다. 

「어떻게든 해내겠어. 국의에서 터무니없는 말을 듣거나 갑자기 질문을 받는다 해도 이제는 당황하지 않겠어.」

「……하실 수 있으십니까?」

「물론.」

「정말로요? 렌다크경이나 귀족들과도 당당하게 맞서실 수 있으십니까?」

「물론이라고.」

크리온은 조금 의아스럽다는 얼굴로 뒤돌아보았다. 

「할 수 있다고 말했어. 소류타」

소류타는 꼼짝하지 않고 크리온의 얼굴을 응시하고 있다.

크리온에는 그녀의 표정에서 떠오르는 뜻을 알지 못했다.

긴장하고 있으면서도 뭔가를 결의하는 얼굴.

뭔가를 기대하면서도 무서워하고 있는 얼굴.

풍부한 인생경험을 가진 남자라면 알았을지도 몰랐다. 

자신의 전부를 바치려고 하는 여성의 얼굴. 

「크리온님……」

「응?」

「아버님이이 말씀 하셨던 것 기억하십니까?」

「……어떤 것?」

「어떻게 분발한다 해도도 크리온님은 아직 한 사람의 남자로서의 자신도 없다고 하신 말씀요. 아직 아이라고 하셨죠.」

「아이라고 말하지 않았어.」

「아니요. 아이입니다.」

딱 잘라 말한 후 갑자기 작은 소리로 소류타는 중얼거렸다. 

「그러니까…그러니까… 제가 어른으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에? 무-」

계속된 의문의 말은 중간에 삼켜져버렸다. 

소류타가 크리온의 목을 끌어안고 입술을 가져간 것이었다.

약간 우울해진 소녀의 입술로부터 열이 전해져 왔다.

그녀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 하다가 숨이 멈추었고 크리온도 호흡을 멈추었다. 

호홉이 멈추자 잠시동안 시간이 멈추는 듯 했다…

심장이 멈출 만큼 대담한 키스 후 소류타는 얼굴을 떼고 진지하게 말을 했다.

「크리온·크딜렉트·진라 왕자 전하. 저를 통해 여자를 아십쇼. 그리고 크리온 황제 폐하가 되어 주십시오.」

「그것은… 소류타!」

방 한쪽 구석에 걸려있는 그림 속의 짐승이 말을 한다 해도 이 정도로 놀라지는 않았으리라.

놀라 잠시 동안 말도 못하던 크리온은 외쳤다. 

「그런!!……만약 한다 해도 우리들 약혼을 하고 나서…아니 츠인도 아저씨의 허락도- 」

「아버님도 인정해 주셨습니다. 제가 부탁했습니다.」

소류타가 바라보는 정열적인 눈을 보자 크리온의 뇌리에서 욕실의 시녀들의 몸이 다시 떠올랐다.

「소류타……너도 황제의 첩이 되고 싶은 거야?」

「다릅니다.」

소류타는 단정하게 머리를 고정시키고 있던 리본을 풀며 단호하게 말했다. 

리본이 풀어지며 소류타의 풍성한 머리가 길게 풀어졌다. 

갑자기 방안에서 욕실보다 더욱 강하면서도 은은한 향이 퍼지는 것 같았다.

「그런 것은 바라지 않습니다. 저는 크리온 님의 시녀로도 충분합니다. 대신 이 성에서 크리온님의 전부를 알고 있는 단 하나뿐인 시녀. 그러니까 이것은 ……크리온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주기 위한 시녀 밖에 가능하지 않는 의식이라고 생각하십시오. 단지 그것만…… 대를 잇기 위한 것이나 약혼에 관한 것은 생각하지 마시고…」

「의식이라고 ……소류타는 아직 소녀라고. 그런데 자신의 몸을 그렇게 하찮게… …」

「예. 하찮다고 생각하십시오. 하지만 저는 폐하께 아첨하고 부귀를 얻으려는 생각따위는 하고 있지 않습니다. 아마 저 이외에 그런 시녀는 없을 것입니다.」

「있지 않겠지. 있지 않겠지만… 그렇게 자신을 멸시하듯이 말하면 즐거워? 소류타가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

소류타의 어깨를 잡은 크리온은 문득 알아차렸다.

소류타는 이를 악물고 있었다.

그것은 울기 시작한 직전의 얼굴이었다. 

어깨도 흔들리고 있었다.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담담한 말에 숨겨진 소류타의 두려움을 크리온은 두 손으로부터 사무치게 느꼈다.

지금까지 그녀에게는 무서운 것이 없는 것 같았다.

어릴 때 그레인델벨트 저택의 첨탑으로부터 내려오지 못하고 있던 고양이를 구하러 탑을 기어올라갈 때조차도 그녀는 전혀 흔들리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정말로 무서운 것은 믿고 있는 사람에게 미움받을 우려가 있는 말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크리온은 직관적으로 그것을 깨닫는다.

소류타는 아까 그 시녀들과는 다르다.

황제라고 하는 신분을 가진 자신이 아닌 그냥 나 자신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 받고있다. 

함께 있던 10여 년의 세월 가운데에서 이것만큼 소류타를 가깝게 느꼈던 적이 없었다.

크리온은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진지한 목소리로 소류타에게 속삭였다. 

「소류타 내 왕후가 되어 주지 않을래?」

「그것은 안됩니다!」

소류타는 심하게 고개를 저었다. 

「저는 단순한 시녀입니다. 게다가 작디작은 그레인델벨트 후작의 딸인 제가 크리온님의 왕후가 되는 것은 정말 위험합니다. 아버님의 입장이나 크리온님 자신의 공정함을 의심받을 겁니다」

소류타는 단호한 눈빛으로 크리온을 바라보며 말했다. 

완고한 거절의 말이 정반대의 본심을 숨기기 위한 말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뜻은 절대 굽혀지지 않으리라는 것이 크리온에도 전해졌다.

그렇지만 지금만큼은 소류타의 마음을 듣고 싶었다. 

「소류타 군이 말한 것이 맞아. 그러니까 정말에 진심으로 묻고 있는 거야. 나는 소류타를 좋아해. 소류타도 정말은 내 왕후가 되고 싶은 거지?」

그것이 굳건한 제방에 바늘구멍을 뚫었다.

바늘구멍은 손구멍이 되고 손구멍은 더욱 커져 제방을 허물어 버렸다.

크게 뜨여진 소류타의 눈동자로부터 커다란 눈물방울이 뚝뚝 흘러내렸다.

크리온이 펼쳐진 팔 안에 소류타는 몸을 날려 안겨왔다.

그리고 크리온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먹이는 소리로 외쳤다. 

「크리온님을 좋아합니다! 가능하다면 크리온 님의 아내가 되고 싶었습니다!」

「소류타……」

「그러나 크리온님은 이미 저만의 크리온님이 아닙니다. 쥬디카장관이 말했던 것처럼 황제의 피를 많은 여성으로 나누어주지 않으면 안됩니다. 앞으로 크리온님은 많은 여성들의 사랑을 받을 겁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겁니다. 그러나…그러나 그것이 저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그래. 소류타! 나도 너를 가장 좋아하고 있어.」

「그렇다면 증명해 주세요! 그것만큼은 참을 수 없습니다. 크리온님의 최초의 상대가 다른 여성이라는 것은!」

크리온은 마음을 정했다. 

소류타는 자신의 전부를 주는 것에 비해 너무나 작은 요구를 하고 있었다.

현재의 자신으로서 좀더 큰 것을 줄 수 없는 이상 그것만이라도 들어주고 싶었다. 

「소류타……너를 안아도 돼?」

얼굴을 홱 들어올린 소류타가 울어서 새빨갛게 된 눈과 뺨으로 크리온을 단호하게 꾸짖었다. 

「제가 허용할 일이 아닙니다. 크리온님이 그냥 저를 안는 겁니다. 욕망을 가진 한 사람의 남자인 황제의 권위와 힘으로 저를 범하시는 겁니다!」

「……소류타를 범한다……」

스스로에게 최대한 차갑게 말하려는 크리온의 말을 듣고 소류타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