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성무장의 방문자 2
호주의 성무장과 낙양의 무림맹은 상당히 거리가 있는 편이지만 그래도 상당히 자주 연락을 주고받는 편이었다.
다만 이번에 무림맹에 갔던 것은 평상의 일상적 연락이 아니고 다른 볼일이 있었기 때문이었고 양세현의 생각으로는 보름이나 한 달 정도는 더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벌써 돌아왔다니 조금 의아했다.
“꽤 빠르게 돌아오셨구나. 그래 대청으로 모시고 두대협께도 연락드렸느냐?”
하녀가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바로 대청에 주안을 마련했고 총관영감님이 두대협께도 바로 알리러 갔어요.”
“웬 일로 이렇게 일찍 돌아 온 걸까?”
무림맹에는 자신의 아들 사도운이 가 있는지라 무림맹주 남궁석진과 그 아내 이하란이 직접 보살펴주는 아들에게 설마 그럴 리야 없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혹시나 아들에게 나쁜 소식이 있는 건 아닌가 싶어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했다.
아들 사도운은 처음에는 자신이 직접 무공을 가르쳐보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자기 친아들이라 그런지 아무래도 잘 가르쳐지지가 않았다. 때문에 아직 나이가 어려 조금 걱정은 되었지만 특별히 무림 맹주인 남궁석진에게 맡기기로 하고 무림맹으로 보냈다.
남궁석진은 자신의 남편 사도백천과 의형제사이로 친형제만큼 친하기도 했고 또 그 아내 이하란은 양세현과도 무척 친했다. 두 사람 다 성격이 좋은 편이라 아들을 맡기기에 편했고 더구나 모두 함께 십이혈마와 목숨을 걸고 싸웠던 동지라 누구보다 믿을 수 있었다.
또 남궁부부는 딸만 있고 아들이 없어 사도운이 태어났을 때부터 친아들처럼 귀여워했다. 더구나 남궁석진은 남궁세가의 직전을 이어 검술에 있어서는 죽은 사도백천을 제외하고는 더 나은 사람이 없었고 이하란은 화산파의 제자로 그 날카로운 검격은 천하의 일절이라 세상에서 아들을 맡기기에 이보다 더 적당한 곳도 없었다.
멀리 갔던 사람이 돌아왔으니 양세현도 급히 나가서 돌아온 사람을 마중해야 했지만 옷도 갈아입고 가야할지 아니면 수련하던 무복차림 그대로 나갈지 조금 망설였다.
남녀가 유별하니 일반적인 경우라면 옷도 갈아입지 않고 나간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지만 양세현도 그렇고 무림맹에서 돌아온 사람들도 그렇고 모두 거친 강호의 무인들이라 세속적 예의는 구애받지 않아 무복차림으로 맞이한다고 해서 예의를 따지는 경우는 없었다.
다만 양세현은 가슴이 크고 허리가 잘록해 몸매가 무척이나 두드러지는 미인이라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얇은 무복 차림으로 남자들 앞에 나서면 남자들을 심하게 자극할 수도 있었다.
양세현은 아들 사도운에게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우려에 옷을 갈아입지 않고 수련하던 무복 차림에 장검을 그대로 손에 든 채로 대청으로 향했다.
대청으로 들어서자 청성 장로 두원기가 방금 무림에서 돌아온 유헌백과 함께 웃는 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은 양세현을 보자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두 사람의 웃음 소리를 듣자 양세현 또한 아들 사도운에게 일이 생기진 않았다는 걸 깨닫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
“무림맹에서 조금 더 계실 줄 알았는데 유장로께서는 왜 이리 일찍 돌아오신 건가요?”
곤륜 장로 유헌백이 웃으며 포권하고 간단한 인사말을 건넨 뒤 말했다.
“처음엔 시간이 좀 더 걸릴 걸로 생각했는데 운이 좋았는지 무림맹에 도착하자마자 목적했던 일을 바로 마칠 수 있었소이다. 게다가 맹주가 전하는 말씀도 있어 알려드리고자 오래 머무르지 않고 바로 돌아왔소이다.”
청성 장로 두원기가 옆에서 너스레를 떨었다.
“아무리 전할 소식이 있었다고 해도 유장로의 돌아온 걸음이 지나치게 빠른 걸로 보아 아무래도 여기 호주에 새로 젊은 정인이라도 생긴 것이 아니지 모르겠소이다.”
두원기와 유헌백은 십이혈마의 난리 속에서도 살아남은 얼마 안 되는 인물 중에 속해 아직 쉰도 안 된 나이였지만 각기 자신들 문파의 장로 임무를 맡고 있었고 또 특별히 성무장으로 와서 양세현을 돕고 있었다. 양세현과 두원기, 유헌백 세 사람은 무림맹 강남지부 성무장의 수뇌라고 할 수 있었다.
유헌백은 원래 잘생긴 미남인데다 젊어서부터 풍류객으로 유명했다. 다만 최근 들어서는 나이 때문인지 몰라도 그다지 염문을 뿌리지 않았는데 두원기가 그 점으로 농을 걸고 있었다.
양세현이 웃으며 뭐라고 말하려다가 유헌백을 수행해 무림맹에 다녀 온 젊은 무사들에게 생각이 미쳐 말했다.
“우리끼리 얘기만 하고 아이들을 그대로 세워뒀네요.”
대청 아래에는 유헌백을 수행해서 무림맹으로 갔던 무사들과 성무장에 남아 있던 젊은 무사들이 모두 모여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다 양세현을 보자 시립하고 있었다.
“모두들 먼 길을 다녀오느라 수고했는데 그렇게 서서 너무 예를 차리지 말고 어서 올라 오너라. 같이 식사라도 하자꾸나. 그리고 남아 있던 너희들도 오랜만에 만나 서로 반가울 테니 같이 올라 오거라.”
양세현의 허락이 떨어지자 젊은 무사들은 대부분 고개를 숙이고 분분히 대청위로 올라왔다.
양세현은 젊은 무사들이 뭔가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이고 얼굴을 붉히는 모습을 보며 자신의 옷차림 때문임을 깨달았다.
양세현은 원래 대단한 미인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거기가 몸매가 도드라질 정도로 발달해서 얇은 옷을 입으면 그런 몸매가 그대로 밖으로 드러났다. 양세현은 자신의 미모에 대해 자랑스러워하는 마음에 있었지만 자신의 미모가 사람들을 어떻게 자극하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사람들 앞에 나설 때면 항상 몸매를 전부 가리는 옷을 입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운아에 대한 소식이 궁금해 마음이 조급한 나머지 얇은 무복은 입은 모습 그대로 사람들 앞에 나섰으니 젊은 무사들이 얼굴을 붉히는 것도 당연했다.
양세현은 쑥스러워하며 대청으로 올라오는 젊은 무사들 중에 한 청년이 싱글벙글 웃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성무장의 무사가 아닌 걸 보고 유헌백을 따라온 무림맹의 젊은 무사라고만 생각했는데 어딘가 눈에 익은 얼굴이라 생각하며 자세히 살펴보다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아니 넌 석주가 아니냐. 네가 어떻게 여길 왔느냐?”
석주라 불린 청년이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조카가 이번에 새로 무림맹 청룡당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유장로님이 무림맹에 오신 김에 보고도 드리고 이모님께 용돈이라도 좀 얻어갈까 해서 따라 왔습니다.”
무림맹 청룡당은 무림맹에서 뛰어난 청년무사들을 모아놓은 곳이었다.
양세현이 웃으며 눈을 흘겼다.
“아니 네가 뭐가 예쁘다고 용돈을 준단 말이냐. 몇 년이나 보지 못했는데 네 넉살은 여전하구나.”
청년은 송석주라고 하는데 그의 어머니가 양세현과는 가까운 친척인데다 송석주가 어릴 때 양세현이 무공을 가르친 적도 있는지라 양세현과는 무척이나 친한 사이였다.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소년일 때에 보고 이제 완전히 장성한 뒤에 보니 첫눈에 바로 알아보지 못한 것이었다.
양세현은 송석주와 몇 마디 얘기를 나누고는 유헌백과 두원기에게 말했다.
“식사가 준비될 동안 대청에서 차라도 마시지요.”
성무장의 대청은 예전 사도백천이 살아있을 때 정파의 사람들과 회의를 하거나 손님들을 맞던 곳이라 상당히 넓은 편이었고 주위에는 많은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여러 개의 탁자가 놓여 있었다. 사도백천이 죽고 또 낙양에 무림맹이 새로 만들어지며 탁자들은 사용하는 일은 확 줄었지만 그렇다고 치워버리자니 대청이 너무 휑해지고 또 성무장의 이름 때문에 간혹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일이 있어서 그대로 놓아두고 있었다.
양세현, 유헌백, 두원기가 대청 중앙에 마련된 큰 탁자 앞에 앉자 송석주는 다른 성무장의 젊은 무사들과 함께 약간 떨어진 탁자 앞에 앉아서 자기들 끼리 이야기를 나눴다. 송석주는 비록 양세현과 친척이지만 배분이 달라 유헌백, 두원기 같은 장로들과 같은 자리에 앉을 수는 없었다.
하녀들이 차를 가져오자 양세현이 물었다.
“그래 맹주가 보내온 전갈은 무엇이죠?”
유헌백이 말했다.
“특별히 대단한 것은 아니고 요즘 동창이나 금의위의 움직임이 활발해졌는데 조정 쪽에서 무슨 일을 벌일지도 모르니 조금 주의하라는 맹주의 당부올시다.”
양세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십이혈마가 망하고 십여 년간 조정은 무림의 일에는 일체 간섭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웬 일이죠?”
실제로 조정과 관부는 십이혈마의 난리 때 그들의 무공에 너무 큰 충격을 받아 무림인들이 벌이는 일이라면 웬만해서는 일체 간섭을 하지 않았고 설사 큰 사고를 저지르거나 관부의 일에 상당히 연루가 되어도 무림맹에 통보해서 처리해 주길 요구할 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들을 주의하라고 하니 양세현은 약간 의아해졌다.
유헌백이 말을 이었다.
“십이혈마의 난리 이전에는 우리 무림인을 그저 강호의 어중이떠중이로만 보고 안하무인으로 놀던 그들인데 최근 십여 년간 제대로 거들먹거리지를 못했으니 그들로서는 일개 백성에게 조정이 농락당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요. 하여간 최근 북경과 가까운 하북의 무림인들에게 예전 같이 협조하지도 않고 좀 야릇한 낌새를 보이고 있답니다.”
양세현이 말했다.
“설사 야릇한 낌새를 보인다고 해도 그들 중에 특별히 무공이 높은 자들이 없으니 그다지 우려할 건 없지 않나요?”
유헌백이 대답했다.
“솔직히 지금 조정에 대단한 무공을 지닌 자들이 있을 리 없지만 과거에도 동창이나 금의위가 위세를 떨친 적이 있으니 아주 무시할 수만은 없지요.”
“금의위나 동창에서 괜찮은 무공을 가진 자는 십이혈마의 난리 때 다 죽지 않았나요?”
유헌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렇긴 한데 맹주의 생각으로는 조금 주의는 해두는 게 좋을 듯싶다는 거 같소이다. 원래 안하무인이던 자들이 십여 년이나 무림인들의 눈치를 봐 왔으니 뭔가 수작을 부린다고 해도 이상할 거 없지 않겠소. 게다가 쓸 만한 무공을 가진 자는 없어도 군대를 동원할 수 있으니 아주 무시할 수는 없고요.”
양세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렇긴 하군요. 원래 음흉한 궤계에 능한 자들이고 권력까지 가진 자들이니 주의는 해두는 게 좋겠어요. 그런데 그건 그렇고 뭔가 새로운 소식은 없나요?”
유헌백이 대답했다.
“특별한 이야기는 들은 게 없고 요즘 북쪽의 오랑캐들이 조금 조용해졌다는 것과 광동에 흑사방이라는 조그만 방파가 있는데 이들이 갑자기 세력이 강해져서 운남으로 진출하면서 점창파와 시비가 조금 붙었다하오.”
북쪽의 오랑캐들이 시끄러웠다가 조용해졌다가 하는 것이 항상 있는 일이라 특별히 신경 쓸 일은 아니었지만 광동의 흑사방과 점창파가 시비가 붙었다는 건 좀 이상했다.
과거 사도백천이 살아 있을 때 양세현은 남편을 도와 강호의 많은 일을 처리해야 했고 최근에도 강호의 여러 가지 일들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강호의 사정에 무척 밝았다. 광동 흑사방 또한 양세현이 이름을 들은 적이 있는 방파였다. 양세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흑사방이라면 광동에서 소금을 밀매하거나 남만이나 서역을 상대로 밀수나 하는 조그만 방파 아닙니까. 염효(鹽梟 : 소금 밀매꾼)와 밀수꾼들이 모인 방파이니 숫자야 제법 되겠지만 무공은 보잘 것 없다고 들었는데 어찌 감히 흑사방 따위가 점창파와 시비가 붙는단 말인가요?”
두원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당연한 말씀이시오. 애초에 점창파도 그런 이유로 흑사방이 하는 일 따위는 무시하고 신경도 쓰지 않았는데 시비가 붙어 직접 싸워보니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오. 들리는 말에 의하면 흑사방주나 방도들의 무공은 여전히 별 것 아니지만 그들 중에 흑사방과 다른 복장을 한 사람들이 몇몇 눈에 띄는데 그들의 무공이 보통이 아니라 합니다. 점창의 이대제자 몇 명이 그들과 겨루어봤는데 제대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고 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