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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화 〉성무장의 방문자 3 (3/148)



〈 3화 〉성무장의 방문자 3

양세현은 깜짝 놀랐다. 점창의 이대제자라면 십이혈마가 사라진 후 정참 장문 단명선이 운남, 광서, 광동 일대에서 점창파를 재건하기 위해 자질 있는 아이들을 거두어들여 공들여 가르친 제자들이다. 대부분 십 년 이상 점창의 무공을 수련했고 점창은 구대문파의 하나로   이상 수련한다면 대단한 경지에 이르게 된다. 그들은 이미 어느 정도의 수준에 이르렀고 흑사방 수준의 방파라면 방주급 인물이라 해도 그들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그런 점창의 이대제자들과 호각으로 겨뤘다면 상당한 무공을 갖추었다고 봐야 했다.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두원기가 끼어들었다.

“그럼 흑사방 뒤에 그들을 돕는 모종의 세력이 있다고 봐야겠구려.”


유헌백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실 정식으로 마주 상대해서 싸운다면 그들이 어찌 점창의 상대가 되겠소. 다만 그들은 소금 밀매나 외국과의 밀수로 먹고 사는 놈들이라 근거지가 뚜렷하지 않고 운남에서도 여러 군데 근거지를 만들어 어두운 곳에 숨어 있으니 사람이 적은 점창으로서는 상대하기가  귀찮은 모양이오. 더구나 점창엔 지금 사람이 별로 없지 않소이까.”

양세현과 두원기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 십이혈마가 처음 남쪽에서 출현하는 바람에 중원 무림의 정파들 가운데 가장 남쪽에 있는 점창파와 남해검문은 제일 심한 피해를 입었다. 문파의 중진은 사실상 전멸하고 젊은 인물들 중에도 단지 몇 명만이 살아남아 겨우 문파를 재건할 수 있었다. 십이혈마의 난리 때 중진이 되는 고수들이 사실상 전멸한 건 다른 명문 정파들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다른 문파들은 젊은 인물들 중에 상당수의 정예가 살아남아 사도백천을 중심으로 십이혈마에게 반격할  있었고 십이혈마가 사라진 뒤에는 각기 문파를 재건하는 중심이 된데 비해 점창과 남해검문은 젊은 제자마저 거의 전멸하고 남해검문에서는 너무 늙어서 싸움에 참가하지 못했던 장로 두 명과 제자 한 사람만이 겨우 살아남았고, 점창파에서는 남녀제자 각각 한 사람씩만이 살아남아 겨우 문파의 명맥만을 이을  있었다.

점창파 같은 대문파가 흑사방 같은 조그만 방파와 시비가 생긴 것도 바로 사람이 적은 게 가장  원인일 것이었다.


유헌백에게 여러 가지 강호 소식을 듣던 양세현이 얼굴에 웃음을 띠며 말했다.

“장로께서는 설마 그런 이야기만 알아보고 운아에 대한 얘기는 알아보지 않고 그냥 오신 건 아니겠죠?”

양세현이 아들 사도운에 대한 얘기를 꺼내자 유헌백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거기까지 가서 어찌 운아에 대한 소식을 알아보지 않게 왔겠소이까. 다만 운아는 이번에 남궁부인과 함께 화산파로 가는 바람에 직접 만나지는 못했소이다.”


십이혈마의 난리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은 말할 것도 없이 양세현의 남편 사도백천이었다. 그가 십이혈마의 공격에서 살아남은 각파의 젊은 고수들과 힘을 모아 마침내 십이혈마를 무찌를 수 있었고 그때 사도백천을 도와  공을 세웠던 이가 바로 현재의 무림맹주이자 남궁세가의 가주인 남궁석진이었다. 십이혈마를 무찌른 뒤 사도백천이 양세현과 결혼해 아들 사도운을 낳자 사도백천은 아들을 남궁석진의  남궁현아와 정혼시켰다.


그리고 두 해 전 양세현은 사도운이 열 살이 되자 아들을 남궁석진에게 보냈다. 남궁석진에게 무공도 배우게  겸 정혼한 남궁현아와 일찍 서로 친하게 지내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유헌백이 계속 말을 이었다.


“남궁부인의 사위 사랑이 정말 지극해서 요즘은 직접 무공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하루도 곁에서 떼어 놓지 않고 이번에 화산에 가면서도 데려갔다는구려. 근데 운아의 일이라면 우리보다 저기 있는 석주가 더 잘  것이오. 석주야! 부인께 운아의 일에 대해 말씀 드려라.”


곁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송석주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운 아우의 이야기라면…….”


송석주가 뭐라고 막 말을 하려는데 어린 하녀 하나가 급히 뛰어와서는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대문 앞에  여인들이 찾아와서는 마님을 뵙고 인사를 드리겠다는데 글쎄, 글쎄…….”


하녀가 말을 심하게 더듬으면서 뭐라 말을 못하는 걸 보자 양세현이 의아해 하며 언성을 높였다.


“웬일이기에 그런 소란이냐. 손님이 왔으면 안으로 뫼시면 되지 않느냐.”

“그게 그러니까 그들이 마님께 드리는 예물이라는 걸 가져왔는데 그게 그러니까 그게…….”
하녀는 양세현의 재촉을 받고도 여전히 우물쭈물 시원하게 말을 못하고 얼굴이 새빨개진 채 입술을 달싹 그렸다.
양세현은 도대체 이 아이가 뭘 보고 이러나 싶어 막 뭐라고 말을 하려는데 바깥쪽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성무장은 원래 손님을 바깥에 세워두고 맞이하나요?”

젊은 여인의 맑은 목소리였다.

양세현이 깜짝 놀라 유헌백과 두원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유헌백과 두원기도 놀란 표정으로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성무장은 애초에 십이혈마의 본거지였던 곳이다. 십이혈마를 모두 무찌른 뒤에 사도백천이 성벽을 허물고 장원으로 바꾼 뒤에 자신의 거처로 삼은 곳이고 또 그 뒤에 사도백천이 살아 있을 때는 실질적으로 무림맹의 역할을 했기 때문에 일개 장원치고는 터무니없이 넓었다. 대문에서 이곳 대청까지만 해도 거의 사십 장(일 장은 대략  미터)이나 될 뿐만 아니라 중간에 담과 문이 여럿 있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똑똑하게 바로 옆에서 말하듯이 목소리를 전하는 것은 보통 내공이 아니었다. 양세현 자신이나 유헌백, 두원기라면 가능하겠지만 두 사람을 따라온 청룡당의 젊은 무사들은 비슷하게 흉내조차 내기 어려운 능력이었는데 밖에서 들려온  그들과 비슷한 나이 정도로 짐작되는 젊은 여인의 목소리였다.

양세현은 속으로 깜짝 놀라며 상대의 정체가 궁금해졌지만 상대가 누구든 간에 저쪽에서  수를 보였다면 이쪽도 한 수 보여야만 했다. 양세현이 내공을 담아 소리가 들려온 쪽을 향해 말했다.


“어디서 찾아오신 분인가요. 이쪽에 주인의 예를 묻는다면 그쪽도 당연히 손님의 예를 보여야 하지 않나요.”

처음과는 다른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저희는 혈신문(血神門)에서 왔답니다. 저희 문주께서 새로 강호에 출도하기 전에 명망 높은 성무장에 먼저 인사를 드리는  예의라고 하시며 예물을 바치라고 말씀하셔서 이렇게 찾아뵈었답니다.”

이번엔 더 어린 목소리였다. 애초에 들려온 소리도 무척 젊은 목소리라 의아했는데 이번에 들려온 목소리는 아예 어린 계집애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목소리에 담긴 공력은 앞서 들려온 목소리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았다.


양세현은 의아했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첫번 째 말한 여인은 그렇다쳐도 이번에 말한 이는 어린 계집애가 분명해 보이는데 도대체 어떻게 어린 나이에 이렇게 높은 내공을 가지고 있는 걸까? 설마하니 목소리만 어리고 실제 나이는 다른 걸까?’


양세현은 유헌백과 두원기를 바라보며 물었다.

“두 분은 혹시 혈신문이라는 이름을 들어보셨어요?”

두 사람이 고개를 저었다. 두원기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혈신문이라는 이름은 처음 듣소만 목소리를 들어보니 어린 여자아이 같은 데 어떻게 저 나이에 저런 내공이 갖춰졌는지 궁금하구려. 그런데 하필이면 문파 이름을 혈신문이라고 짓다니 정말 고약하구려.”


과거 십이혈마의 난리 이후 그들을 연상시키는 이름은 당금 강호에서 커다란 금기였다. 그런데 혈마(血魔)와 혈신(血神)은 너무 비슷하지 않은가.

양세현도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어린 고수들을 길러낸 혈신문의 정체와 그들이 가져온 예물이 궁금했다.


“이름을 밝히셨는데 성무장이 어찌 손님께 무례하겠어요.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양세현이 안으로 들어올 것을 허락하자 소식을 가져왔던 하녀가 화들짝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 양세현뿐만 아니라 유헌백과 두원기 그리고 감히 끼어들지 못하고 옆에서 지켜보던 송석주를 포함한 젊은 무사들까지 도대체 저들이 가져온 예물이 무엇이기에 어린 하녀가 저런 호들갑을 떠나 싶어 궁금증이 더해갔다.

잠시 뒤 등에 장검을 짊어지고 가벼운 무복 차림을 한  명의 젊은 여인이 대청 앞 연무장으로 들어왔다. 열여덟이나 아홉 정도 되어 보이는 젊은 여인  명과 열네댓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 소녀였다.

양세현은 들어온 사람들이 목소리처럼 젊은 여인과 어린 계집애인 것을 보자 속으로 무척이나 감탄하며 말했다.


“어서 오세요. 제가 성무장의 안주인인 양세현이에요.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아들이 아직 어려 아직은 내가 성무장의 일을 맡아보고 있답니다. 그리고 혈신문에서 오셨다고 하셨는데 저는 과문해서 그런 이름을 처음 들어보는군요. 혈신이라는 이름은 혈마와 비슷해 보이는데 혹시 십이혈마와 무슨 관계는 없나요?”


양세현의 말에는 십이혈마와 비슷한 이름을 사용한 데 대한 힐난이 숨어있었다.

가운데 서 있던 젊은 여인들 중 하나가 말했다.


“소녀는 청아라고 합니다. 이번에 저희 혈신문이 강호에 출도하게 되어 문주님의 명을 받고 성무장에 예를 표하러 왔답니다. 문파의 이름에 대한 건 저희 같은 아랫것들이 어찌 알겠습니까. 다만 저희 혈신문이 생긴  이백 년이 훨씬 넘었다는 것만  따름이에요.”

양세현은 이런 어린 고수를 길러낸 혈신문의 정체가 궁금해졌지만 당장 궁금한 것은 다른 것이었다.

“그런데 예물을 가져왔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청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희 혈신문이 이번에 남쪽에서 진귀한 물건을 얻었답니다. 저희 문주님께서 특별히 성무장에 대한 공경의 표시로 바치라고 말씀하셨어요.”
청아가 고개를 돌려 바깥을 향해 소리쳤다.


“예물을 가져와요.”


대문 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잠시 후 예물을 실은 두 개의 가마가 중문을 지나 안마당으로 들어왔다. 가마 위에 놓인 혈신문의 예물을 보자 대청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모두 경악의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두 개의 가마는 각기 네 명의 건장한 장한이 어깨에 걸머지고 있었는데 가마는 어깨에 걸머지는 굵은 나무로 만든 손잡이 위에 넓은 널빤지를 얹어놓은 평교자로 다른 가마처럼 비를 막는 지붕이나 시선을 가로막는 사방의 벽이 전혀 없는 물건이었다.


그리고 가마 위에는 놀랍게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의 두 여인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발가벗은 두 여인은 가마 위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채 다소곳하게 앉아 두 손을 앞으로 내밀어 예물을 받쳐 들고 있었다.

대청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물론이고 양세현과 시중을 들던 하인들과 하녀들까지 너무 놀라운 모습에 한마디 말도 꺼내지 못하고 그저 입만 벌리고 바라만 보았다. 삽시간에 사방은 사람들의 숨 쉬는 소리만이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양세현은 혈신문의 예물보다 그것을 들고 있는 알몸의 두 여인에게 먼저 눈길이 갔다.

두 여인이 받쳐 든 예물에 얼굴이 가려 얼굴은 알아볼 수 없었지만 하얀 목에서 매끄러운 등을 거쳐 엉덩이로 흐르는 선이 언 듯 보기에도 거의 완벽한 몸매였다.

두 여인은 무릎을 가지런히 모으고 꿇어앉은 채 한 사람당 하나씩 예물을 올려둔 소반(小盤)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있었다. 왼쪽의 여인이 들고 있는 소반 위에는 장검 한 자루가 놓여있었고 오른쪽의 여인이 들고 있는 소반 위에는 푸른 옥으로 만든 종 하나가 놓여 있었다.

양세현은 두 개의 예물이 모두 정교하게 공을 들여 만든 도교의 법기(法器)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강호 문파들 중 도교에 기원을 가진 문파을 대개 저런 물건을 자기 문파의 상징으로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무림인들에게는 무척이나 익숙한 물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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