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화 〉곤륜파의 제자들 1
第 六 章 곤륜파(崑崙派)의 제자들
1.
강소명은 조심스럽게 풀을 헤쳤다. 풀이 누운 모양으로 보아 무언가 지나간 자국이 분명했지만 사람이 아닌 짐승이 지나간 자국일 수도 있었다. 강소명은 조심스럽게 다시 풀을 헤쳤다. 사람이 지난 자국이든 짐승이 지나간 자국이든 잘못하면 흔적이 사라져 버릴 수도 있었다.
풀을 살짝 걷어내자 무언가에 짓밟힌 흔적이 있었다. 그러나 아직 사람이라고 단정하기는 일렀다. 강소명은 흔적을 지나 약간 앞으로 나갔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지나간 것이 분명하니 앞쪽에도 자국이남아 있을 것이다.
과연 자국이 있었다. 이번에는 조금 더 강한 흔적이었다. 강소명은 몇 발 더 앞으로 나갔다. 흔적들이 계속적으로 나타났다.
강소명은 고개를 들어 자신이 찾은 자국들의 거리를 가늠해 보았다. 하나하나 거리를 가늠해보자 강소명이 발견한 사실이 분명해졌다. 그가 찾은 것은 짐승이 아닌 사람이 지나간 자국이 분명했다. 그것도 평범한 인간이 아닌 무공을 익힌 인간, 무림인이었다.
무림인이 지나갔다고 해서 강소명이 찾던 것이라는 보증은 없었다. 하지만 강소명이 찾은 자국은 분명 여섯 시진을 절대 넘기지 않은 것이다. 강소명은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주위를 다시 둘러보았다. 길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장소였다.
강소명이 흔적을 찾기 바로 직전에 아무 상관도 없는 무림인이 여기를 지나갔을까.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럴게 생각하는 것보다는 이 흔적을 남긴 무림인이 강소명이 찾는 것과 연관되었다고 생각하는 쪽이 훨씬 합리적일 것이다.
강소명은 흔적의 주변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이런 일은 목적한 것을 찾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끈기와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는 관찰력, 사람이 어떻게 걷고, 달리고, 움직이는가 하는 사람의 동선에 대한 통찰력이 중요하다. 강소명은 다행히 이 모두를 가지고 있었다.
강소명은 주위를 둘러보고 자신이 찾는 것이 있을만한 지점을 네 군데 정도로 보았고 과연 예상은 틀리지 않고 그가 추측한 세 번째 지점에서 찾던 것을 찾을 수 있었다.
흙바닥에 앞부분 절반 정도만 찍혀 있는 조그만 발자국이었다. 강소명 이 발자국이 자신이 찾던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지만 하나 정도 더 찾아 보다 증거를 명확히 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가 예측한 지점에서 다시 두 번째 발자국을 찾았다. 강소명은 찾던 것을 찾은 것이다. 강소명의 사모, 곤륜파의 장문부인 유월련은 여기를 지나간 게 확실했다.
강소명은 품에서 짧은 피리를 꺼내 입으로 가져갔다. 소뿔을 깎아 만든 자기 새끼손가락 정도의 물건이지만 잘만 사용하면 동료들과 연락하고 간단한 의사를 주고받기에 충분한 물건이었다.
두 번은 짧게 한 번은 길게, 흔적을 찾았다는 뜻이다. 잠시 뒤 저 멀리에서 피리 소리가 났다. 강소명이 보낸 신호에 화답하면서 동시에 강소명의 신호를 다른 이들에게 전해주는 신호였다.
사모의 흔적을 찾기 위해 상당히 넓게 퍼져있었지만 경공이라면 강호 어느 문파에도 뒤지지 않는 곤륜파였다. 강소명의 곁으로 다른 여섯 명의 곤륜제자가 모두 모이는 데는 극히 짧은 시간이면 충분했다.
강소명이 미처 느끼지도 못했는데 어느 틈에 도착했는지 대사형 조원형이 물었다.
“흔적은 확실해?”
강소명이 손으로 자신이 발견한 흔적들을 가리키며 자신이 발견한 점들을 설명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발견한 사모의 발자국을 가리켰다.
“예, 여기 풀을 밟은 자국들은 누군지는 몰라도 분명히 무림인들이 지나간 흔적이에요. 무공 수준은 알 수 없지만 보폭으로 봐서 경공술은 상당한 수준이에요. 저기에 대로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언덕 쪽에서부터 넘어와 저쪽으로 간 걸 보면 뭔가 사람 눈에 띄길 원하지 않은 거 같아요. 사모님은 이들의 뒤를 쫓은 거 같아요. 저 언덕을 넘어 올 때는 나무를 밟으며 왔지만 여기는 나무가 없어서인지 여기 발자국을 남겼어요. 저기 발자국을 보시면 바깥쪽이 안쪽보다 조금 더 패여 있죠. 우리 곤륜파 경공을 사용하면 저런 흔적이 남아요. 그리고 저기서 여기까지의 보폭으로 봐서 사모님이 틀림없어요. 한 걸음에 이 정도 넓이 뛸 수 있는 곤륜파 사람은 사부님, 사모님과 몇 분 사백님그리고 우리 이대제자 중에는 대사형과 둘째 사저뿐이죠. 이게 대사형이나 둘째 사저가 남긴 흔적이 아니라면 사모님이 남기신 게 분명하겠죠.”
처음 물음을 던질 때는 대사형 조원형뿐이었지만 강소명이 설명을 마쳤을 땐 다섯 명의 제자들 모두가 모여서 그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강소명의 설명에 조원형뿐만 아니라 다른 곤륜제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강소명의 추적술은 곤륜파 사람이라면 모르는 이도 없고 의심을 가지는 이도 없었다.
조원형이 강소명의 설명을 듣고 말했다.
“확실히 앞서 말한 흔적들은 보폭으로 봐서 상당한 경공술을 가진 자가 분명하군. 우리 곤륜파 경공의 발자국이 이렇게 남는다는 건 방금 알게 됐지만 확실히 우리 경공은 발 바깥쪽에 힘을 조금 더 주는 편이지.”
둘째 사저 홍소연이 말했다.
“그럼 사모님이 앞서 가는 자들을 따라간 게 분명하군요. 그런데 왜 우리에게 말씀도 않으시고 혼자 오신 걸까요?”
조원형이 말했다.
“글쎄 우리가 자고 있어서 깨우기 싫었을 수도 있고 뭔가 일이 급박해서 그럴 틈이 없었을 수도 있지. 내 생각에는 그냥 가볍게처리할 수 있는 일로 보고 혼자 가셨다가 시간이 걸려버린 건지도 모른다 싶군.”
다른 제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셋째 사형 도헌명이 말했다.
“그럼 사모님이 이들 앞서 가던 무림인들이 뭔가 꾸민다는 걸 알고 이들을 쫓아간 게 분명하다는 얘기인데 막내 사제 시간은 언제쯤인지 알 수 없을까?
강소명이 고개를 저었다.
네째 사형 당천우가 말했다.
“아무래도 사모님이 뭔가 일을 처리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모양인데 혹시 우리가 따르는 걸 모르시고 다른 길로 객잔으로 돌아가시진 않으셨을까요?”
홍소연이 고개를 저었다.
“막내 사제가 우리와 함께 있으니 우리가 따르고 있다는 건 짐작하실 걸.”
강소명을 제외한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원형이 말했다.
“하여간 흔적을 따라가서 사모님을 만나 뵈면 이유를 알 수 있겠지. 막내는 계속 흔적을 찾아보아라.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혹시 위험한 일을 겪고 계실지도 모른다.”
셋째 도헌명이 웃으며 말했다.
“에이 사모님이 무공이 얼마나 고강하신데 위험한 일을 당해요.”
“물론 네 말도 맞지만 뭔가 독이나 암수에 당한다면 사모님의 무공이 아무리 높아도 어쩔 수 없는 거지. 그러니 매사에 조심해서 나쁠 게 없다는 거지.”
조원형이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사실 나도 사모님께 무슨 일이 생길 거라곤 생각하지 않아. 다만 빨리 사모님을 찾고 싶다는 거지.”
강소명이 앞서 가며 흔적을 찾고 다른 여섯 모두 강소명의 뒤를 따랐다.
강소명은 한 번 흔적을 찾아내자 이어지는 흔적을 찾는 것이 대단히 빨랐다. 주위를 슬쩍슬쩍 살피면서 성큼성큼 앞서 나가는 게 거의 경공을 펼쳐 달려가는 속도였다. 강소명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조금 떨어져서 뒤를 따르는 다른 제자들의 눈에는 아무런 흔적도 보이지 않는지라 강소명이 맞게 가고 있는 것인지 의심이 들 지경이었다.
곤륜의 다섯째와 여섯째 제자는 쌍둥이로 형은 육전, 아우는 육만이라고 했다.
다섯째 육전이 강소명의 뒤를 따르며 말했다.
“막내 사제의 추적술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저렇게 달려갈 때 보면 정말 바로 찾고 있는 게 맞나 싶어요.”
다른 제자들이 모두 얼굴에 웃음을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강소명의 추적술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드는 건 모두가 몇 번이나 겪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곤륜파는 강호의 명문대파로 곤륜파의 사람들은 단순히 무공만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의술이나 기타 여러 가지 강호 생활을 하려면 필요한 기술들도 전수되고 있었는데 그중에선 추적술도 있었다.
강소명은 곤륜제자 가운데 가장 어리지만 어찌된 일인지 추적술에 있어서는 곤륜파 전체를 통틀어 가장 뛰어났다. 아주 어려서부터 신기하게 그런 모습을 보이더니 열두 살이 되면서 부터는 사부 현중우나 사모 유월련조차 그에게 미치지 못했다.
언제가 조원형이 사모 유월련에게 그 이유를 물었던 적이 있었다. 유월련의 대답은 강소명은 관찰력이 뛰어난데다 더불어 감각이 다른 사람에 비해 유달리 예민한 것 같고 이쪽으로 뭔가 천성적으로 타고난 것 같은데 사모인 자기도 잘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렇게 한참 달려가는데 갑자기 지형이 바뀌었다. 지금까지는 거의 풀만 우거지고 여기저기 몇 군데 낮은 관목 정도만 보이던 지형이었는데 그게 갑자기 바위투성이 지형으로 바뀌었다.
갑자기 지형이 바뀌자 강소명이 갑자기 멈춰서는 바닥을 살폈다. 그렇게 바닥을 약간 더듬어 보다가 몇 번 고개를 둘러 주위 지형을 살피더니 다시 속도를 내었다. 다만 바위투성이 지형이 풀이 자랐던 곳보다 흔적을 찾기 어려운지 지금까지보다는 약간 속도가 떨어졌고 때때로 잠시 멈추어 서서 주위를 둘러보며 혼잣말을 하곤 했다.
“그러니까 여기서 뛰어서 저 바위를 밟고 그리고는 아 저기 있구나.”
강소명이 혼잣말을 하면서 몸을 날렸다. 다른 제자들에게는 아무런 흔적도 보이지 않는지라 그저 고개를 저으며 뒤따를 뿐이었다.
시작은 오늘 아침 객잔에서였다. 보통 사모와 함께 객잔에 묵을 때면 사모가 먼저 일어나서 자기들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날 아침은 어찌 된 일인지 그들이 하나둘씩 일어나 식당에 나와 차를 마시고 수다를 떨고 있는데도 사모가 보이지 않았다.
피곤해서 늦잠을 주무시는가 싶었는데 아침식사가 나올 때까지 사모가 나오지 않자 둘째 홍소연이 사모가 묵은 방으로 찾아가 보았다. 그리고 잠시 뒤 홍소연이 달려와서 사모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다들 급히 사모가 묵었던 방으로 달려갔고 유월련이 묵었던 방에는 유월련의 물건 몇 개가 그대로 남겨져 있었지만 신발과 장검이 보이지 않았다.
제자들 모두 유월련이 자신들을 깨우지 않고 뭔가 일을 처리하러 나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은 제자들은 부랴부랴 유월련을 찾아 나섰지만 객잔 주위는 워낙 사람의 왕래가 잦아 강소명도 바로 유월련의 흔적을 찾지는 못했다. 곤륜제자들은 흩어져서 흔적을 찾기로 했고 그렇게 거의 한 시진을 해맨 끝에 당연하다는 듯이 강소명이 유월련의 흔적을 찾아내었다.
바위투성이 길을 계속 따라가다 보니 조금 넓은 평지가 나왔다. 앞서가던 강소명이 갑자기 소리쳤다.
“엇 잠시만 기다려요. 여기 다른 흔적이 있어요.”
조원형이 물었다.
“무슨 흔적이냐?”
강소명이 흔적을 살피며 대답했다.
“여러사람이 더 있었던 흔적이에요.”
“몇 명인지 알 수 있겠어?”
“그러니까. 하나, 둘, 셋, 넷, 어라 여자도 있는 것 같네요. 발 크기가 작아요. 아니면 덩치가 작은 남자일 수도 있지만, 아, 아뇨 여자가 확실해요. 발걸음의 모양새가 덩치 작은 남자나 어린애가 아니고 여자예요. 그러니까 모두 남자 네 명에 여자 하나 모두 다섯이네요. 그러니까 사모님이 추적해 온 발자국 두 명 분까지 합쳐서 모두 일곱이에요.”
조원형이 그런 점까지 찾아내는 강소명의 추적술에 속으로 감탄하며 물었다.
“그럼 우리가 쫓아온 자와 여기 있던 무리가 한패 같으냐?”
“그러니까 여기 흔적을 봐서는……, 으음 그러니까, 예 분명히 한패거리 같아요.”
“어디로 간 거 같으냐.”
“여기서 서로 합류해서 그러니까……, 저쪽으로 갔네요.”
강소명이 몸을 날리고 다른 제자들은 그런 강소명의 뒤를 따랐다. 다시 한참을 가는 가운데 다시 조금 넓은 평지가 나왔다. 조금 전의 평지보다는 조금 넓은 곳으로 나무는 없고 풀만 깔린 곳이었다. 강소명이 주위를 둘려보다가 며 뭔가를 발견한 듯 말했다.
“어라 저기 저 바위 위에 뭔가가 있어요.”
다른 제자들도 급히 강소명이 가리키는 곳으로 달려갔다. 뭔가 천 조각을 돌로 눌러놓은 것이었다. 혹시 독 같은 것이 있을지도 몰랐다. 대사형 조원형이 물건을 살펴보려는 강소명을 제지하고 조심스럽게 숨을 멈추고 돌을 걷어내고는 검 끝으로 그것을 천천히 들어보았다.
다른 곤륜제자들도 모두 숨을 잠시 멈추고 조원형의 동작을 바라보았다. 조원형의 검 끝에 물건이 딸려 올라왔다. 푸른색의 옷자락이었다.
홍소연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듯 날카롭게 소리쳤다.
“사모님 옷이야.”
조원형의 동작을 지켜보던 다른 곤륜 제자들도 모두 숨이 멎은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조원형이 검으로 들어 올린 푸른색으로 된 여인의 옷자락이 대단히 눈에 익었다. 홍소연의 외침대로 바로 자신들의 사모 유월련이 입고 있던 옷이었다.
그리고 옷자락 아래에는 여인의 속옷인 붉은 색 배가리개와 속바지가 놓여있었고 신발과 버선까지 놓여있었다. 속옷과 버선이야 몰라도 신발은 무척 눈에 익은 것이었다. 사모 유월련의 신발이 분명했다.
곤륜제자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그 옷자락들을 바라보고 고개를 들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 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모 유월련은 여기서 옷을 전부 벗어버린 것이 분명했다. 사모 유월련이 뜬금없이 여기서 옷을 갈아입을 리는 없었다. 사모 유월련은 여기서 발가벗겨진 게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