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0화 〉곤륜파의 제자들 4 (30/148)



〈 30화 〉곤륜파의 제자들 4

4.

마을을 떠나 한동안 계속 길을 따라 달려가던 강소명이 갑자기 몸을 멈추어 앞을 바라보더니 재빨리 앞으로 달려갔다. 길이 큰 관도로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원형을 포함한 모두가 속으로 우려했다. 관도는 무수한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장소라 땅도 단단하고 또 수레바퀴 자국이나 말발굽 자국 등 무수한 사람들의 흔적이 있어 아무리 강소명이라도 흔적을 찾기 쉽지 않을 것이다.

강소명은 관도로 들어서자 길을 살피며 천천히 나아갔다. 산길에서 흔적 뒤를 쫓을 때와는 비교도   정도로 느렸다. 강소명이 느린 속도로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관도를 걸어가더니 고개를 주변을 살피다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더 이상 못 찾겠어요.”

강소명의 추적술은 곤륜파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강소명이  이상 흔적을 찾지 못하겠다고 말한 이상 이젠 곤륜파의 어느 누구도 찾을  없다는 뜻이었다.

모두들 서로 얼굴만 바라보며 한참이나 망설이다가 결국 조원형이 말했다.

“막내 사제가 흔적을 찾지 못한다면 우리는 말할 것도 없다. 일단 관도를 따라 계속 가보는 게 좋겠구나. 가다보면 뭔가 보일 지도 모르고 사람들에게 물어볼 수도 있을 거다. 게다가 날도 어두워지고 있으니 이대로 여기 머물러 봤자 아무 소용없지 않겠느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고 관도를 따라 달리는데 강소명은 계속 울고 있었다. 모두들 강소명이 사모 유월련을 얼마나 따르는지 잘 알고 있었다. 아무래도 사모에 대한 걱정과 흔적을 찾을  없는 책임감이 어우러져 초초함을 감출  없는 것 같았다.

홍소연이 강소명의 손을 잡고 다정하게 말했다.

“막내 사제 너무 초조해 하지 마. 어차피 여기 길이라고는 하나뿐이니 계속 가다보면 뭔가 찾을 수 있을 거야. 지금 막내 사제만이 사모님을 찾을 수 있는 희망이야.”

“하지만 사모님, 사모님이…….”

“사모님에 대한 막내 사제의 걱정은 다들 잘 알아. 하지만 여기서 막내 사제마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남은 한 가닥 희망의 끈도 사라져버려. 그러니 막내 사제는 반드시 정신을 다잡아야 해.   알겠어?”

강소명은 고개를 끄덕이고겨우 울음을 멈췄다.

한참을 그렇게 달려가니 객잔 하나가 나왔다. 이 관도를 지나는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하기 위해 만든 객잔이었다.

조원형이 말했다.

“이미 날이 어두워졌으니 오늘은 여기서 묵고 내일 새벽에 다시 길을 가야겠다. 밤중에 길을 가다가는 있는 흔적도 못보고 놓쳐버릴 수도 있으니까.”

조원형은 객작에 들어가 방을 잡고 음식을 주문하는 등의 일을 하고는 말했다.

“때가 때이니 만큼 남녀의 예의만을 따질 때가 아닌  같구나. 둘째 사매는 막내 사제와  방에 묵도록 해라. 지금은 혼자서 자다가 무슨 변이 생길지도 모른다. 나머지 사제들은 모두 나와 같은 방에 묵도록 하자.”

조원형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강소명을 제외한 모두는 대사형 조원형이 변이 생길 수 있다는 핑계로 홍소연이 강소명을 잘 달래주도록 같은 방에서 자도록 했다는 걸 알  있었다. 다행히 강소명은 아직 나이가 어려 홍소연과 같은 방에서 잔다고 해도 특별히 꺼릴만한 일은 아니었다.

조원형은 음식이 나올 때까지 객잔 사람들에게 다가가 이것저것 물어보고 돌아왔다.

“이것 골치 아프게 되었어. 일단 사람들에게 뭔가  게 없는지를 물었지만 아무도 이상한 광경 같은 것은 보지 못했고 무림인이 지나가는 것도 보지 못했다고 하는 군. 게다가 여기까지는 외길이었지만 요 앞에서는 바로 길이 나누어져 큰 길만 해도 세 갈래 나누어지고 또 중간에 나눠지는 샛길이 많아 다 헤아리기도 어렵다고 하는 구나.”

홍소연이 물었다.

“그럼 가까이에서 흔적을  찾으면 앞으로 어떻게 하죠?”

“행운만 믿고 무턱대고한 길만 따라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일단 패를 둘로 나누어 길 하나씩 더듬어 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셋으로 나눌  있다면 좋겠지만 그러기엔 우리 숫자가 너무 적어. 일단 넷째 사제가 말주변이 좋으니 여기 남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상대로 탐문을 해보고 나와 둘째 사매, 막내 사제가 한 패가 되어 길 하나를 수색하고 나머지 셋째, 다섯째, 여섯째 사제가  패가 되어 다른 길을 수색하기로 하지. 일단 하루 길을 수색하고 뭔가 찾은 게 있든 없든 다시 돌아와서 그날 찾은 것을 알려주고 만약 찾지 못하면 다시 다른 길을 찾는 식으로 하는 수밖에 없겠어. 시간이야 많이 걸리겠지만 지금으로선 이렇게 하면서 뭔가 걸리기를 바라는 수밖에 다른 방법은 떠오르지 않는군.”

확실히 지금으로서는 조원형이 말하는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은 생각나지 않았다. 모두 고개를 끄덕이는데 조원형이 다시 말을 이었다.

“실제로 내가 기대하는 건 그보다는 다른 쪽이다. 방금 물어보니 이 객잔은 이 주변을 지나다니는 사람은 거의 대부분 이용하는 객잔이고 또 여긴 술맛이 좋아서 이 인근의 사람들이 주루로 이용하기도 한다는구나. 여기서 기다리며 주변 소문을 들어보면 반드시 얻어지는 게 있지 않을까 싶어.”

모두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조원형이 말하는 걸 알아들었다. 칼을 찬 무사들이 발가벗긴 여인을 끌고 가는데 눈에 띄지 않을 리가 없다. 더구나 그 여인이 유월련 같은 미인이라면 더욱 그랬다.

오늘 그들이 한 짓을 보면 분명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일을 벌일 것이고 반드시 소문이 날 것이다. 조원형은 그것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다만 그 발가벗겨져서 끌려가는 여인이 자신들의 사모이니 누구도 감히 입을 열어 말하지 못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입에 올리지 못하는 아니 감히 마음속으로 상상하는 것조차 꺼려지는 것이 있었다. 감히 곤륜파의 장문 부인을 발가벗겨서 사람들 앞으로 끌고 다니는 놈들이다. 사모 유월련 같은 아름다운 미인을 옷만 벗겨버리고 그냥 놔둔다고 생각하는  우스운 일이었다.

아직 어려서 남녀 간의 일에 대해 무지한 강소명을 제외한 여섯 명의 사형제는 모두 사모가 이미 십중팔구, 아니 백이면 백 더럽혀졌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내가 모두 여섯이었으니 어쩌면 그들 여섯이 전부 돌아가며 사모를 욕보였을 지도 모른다. 이제 그들은 사모가 그저 몸이라도 다치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었다.

*

다음 날 일찍부터 움직였지만 예상대로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낮에는 모두 흔적을 찾으러 나가고 넷째 당천우가 주루에서 주변의 소문을 들어봤지만 딱히 걸리는 이야기는 없었다. 그렇게 사흘이 지나갔지만 아무 소식이 없었다. 모두 낙담을 하고 돌아와 저녁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고 있는데 객잔으로 들어오던 손님 둘이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어허 그러니까 내가 봤다는  아니고 조삼, 이칠, 만두 장사 송 뚱보 모두 같은  봤다고 하더라니까.”

“자네가 그놈들 거짓말에 넘어간 거지. 백주대낮에 마시장에 여자가 홀딱 벗고 나타나다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년 전 십이혈마가 날뛰던 시절에야 사파 놈들이 정파가 쇠약하고 관부가 간섭을 못하는 틈을 타서 그런 해괴한 일들을 많이 벌였지만 십이혈마가 사라진 이후에야 누가 감히 그런 짓을 벌인단 말인가.”

곤륜제자 모두 귀가 번뜩 뜨이는 얘기였다.

“그러니까 그놈들에게만 들었다면 나도 그놈들이 공짜 술이라도 얻어먹으려고 음담패설을 하는구나 생각했겠지. 하지만 그날 마시장에 들렀던 놈들이 전부 같은 소릴 하더라고, 왜 그 말장사하는 하씨 영감네 하인들 있잖아 그 하인들도 전부 같은 얘기를 하더라고. 하씨 영감은 못  거라도 본 것처럼 혀를 차면서 술을 마시고 그 하인들은 주인  듣는 곳에서 술을 마시면서 그날 본 걸 가지고 마구 자랑을 해대더라고. 그날 따라 안개가 깔려 있었는데 안개 속에서 잡자기 엄청난 미인이 완전히 빨가벗고 나타났다더라고 그리고 그 여자가 마시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팔려고 묶어놓은 말들을 매만지고 했다더라고. 그리고는 하인놈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더라고 그런 미인은 생전 처음 봤고 여자 사타구니에 거웃이 하나도 없어서 여자 갈라진 그 부분까지 전부  보이더라고…….”

더 들을 필요도 없었다.

조원형이 술을 마시며 떠들어대는 그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저 실례합니다. 저희는 무림맹의 명을 받고 음적들에게 납치된 여인과 음적들을 쫓고 있는 무사들입니다. 방금 얼핏 들은 얘기로는 방금 얘기하시던 게 바로 그 음적들의 소행이 아닐까 싶군요. 혹시 그 마시장이 어디인지 좀 알려주시겠습니까.”

등에 장검을 짊어지고 있는 무림인으로 분명해 보이는 청년이 묻자 말하던 자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에, 하지만 벌써 사흘 전 얘기입니다. 이미 사라진 지 오래일 건데요.”

“행적을 좆는 건 저희의 일이고 저희들은 놈들이 어디로 갔는지 그것만 알면 됩니다. 마시장이 어디에 있는 지만 알려주시면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하긴 그렇겠군요. 여기서 꽤 먼 곳이지만 찾기 어려운 곳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왼쪽 관도를 따라 쭉 가다가…….”

사내가 말하는 곳은 백 리가 넘게 떨어진 곳이었고 마시장은 아침이 되어야 열린다고 했다. 하지만 곤륜제자들은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곧장 짐을 챙겨 길을 떠났다.

이미 날이 어두워졌다지만 다들 높은 무공을 익힌 몸인데다 달도 밝고 길도 넓은관도로만 가는 거라 특별히 장애가 되지는 않았다. 주루에서 사내가 알려준 대로 마시장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곤륜제자들이 마시장에 도착하는 데는 한 시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마시장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규모가 컸다. 비록 날이 어두워져 오늘의 마시장은 파시한지 오래되었고 말들은 대부분 우리와 마구간에 들어가 잠을 자고 있었지만 주위에는 말을 팔거나 사러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주루와 식당을 겸한 큰 객잔이 여럿 있었고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아무리 곤륜파가 경공으로 유명하다고 해도 백 리가 넘는 길을 급하게 달려오느라 다들 피곤하기 이를  없었지만 지체할 수가 없었다. 곤륜제자들은 주루 한 곳을 골라 사흘 전에 있었던 일에 대해 목격한 사람을 찾았다.

조원형이 주루에서 한가보이는 듯한 사람  명을 붙잡고 물었다.

“저희는 어떤 음적을 잡기 위해 무림맹에서 파견된 무사입니다. 얼마 전 여기 여인 한 명이 옷을 전부 벗은 채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희가 추적하는 무리가 아닌가싶어 여쭙겠는데 혹시 아는 것이 있으십니까?”

조원형이 마시에 나타난 발가벗은 여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붙잡고 질문했던 사내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주루 이곳저곳에서 웃음소리가터져 나왔다.

조원형이 붙잡고 물었던 사내도 웃으며 대답했다.

“보기는 여기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봤지요. 우리야 여기 머물면서 계속 말을 파는 사람들이니 당연히 봤고 그날 말을 사러 왔던 사람들도  봤습니다.”

주루에서 술을 마시던 수많은 사람들이 마치 기다리기도 했다는 듯 분분히 그날의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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