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3화 〉유월련 2 (33/148)



〈 33화 〉유월련 2

2.

유월련은 자신의 앞에서 달려가는 두 사람을 뒤쫓았다. 어두운 밤이라  사람이 자신들의 뒤에 누가 따라온다는 사실을 눈치 채기는 어려웠다. 유월련도 워낙 밤눈이 밝아 이 정도 거리에서 추적이 가능한 것이지 다른 사람이라면 웬만한 고수라고 해도 두 사람 뒤에 훨씬 가깝게 붙어서추적해야 했을 것이다.

두 사람의 경공은 평이했다. 두 사람 다 한 걸음에 칠팔 척 정도를 뛰어가는데 경산대호가 자신보다 실력이 떨어지는 다른 사내의 경공에 맞추는 거 같았다.

두 사내는 한참이나 관도를 따라 달려가더니 나지막한 언덕과 산이 보이는 지점에서 관도를 벗어나 달리디가 어느 나지막한 언덕을 넘어갔다.

언덕 너머에는  명의 여인과 네 명의 사내가 두 사내가 오는 걸 기다리고 있었다. 경산대호가 여인을 향해 말했다.

“그 객점에 유월련이 묵는 걸 확인했소.”

여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고 있어요. 저렇게 뒤에 따라 온 걸요.”

두 사람은 여인의 말을 듣자 깜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두 사람이 앞서달려가고 유월련이 몰래 뒤를 따르는 사이에 시간이 새벽에 가까워져 조금씩 여명이 비치고 있었고 두 사람도 유월련의 모습을 알아   있었다.

유월련이 성큼성큼 앞으로 몇 걸음 앞으로 다가가서 말했다.

“그대가 날 발가벗겨서 종으로 삼겠다는 여인인가요?”

스무 살이 채 안 되어 보이는 젊은 여인이 생글생글 웃으며 대답했다.

“네, 전 혈신문의 청아라고 한답니다. 부인을 홀딱 벗겨서 내 시중을 들게 하려고 계획을 꾸몄답니다.”

유월련은 청아가 너무 뻔뻔스럽게 대답하자 오히려 당황했다. 그리고 청아가 말한 혈신문이라는 이름에도 강한 거부감을 느꼈다.

‘혈신은 혈마와 이름이 너무 비슷한데  여자가 무림여고수들을 발가벗겨서 종으로 삼고 있다는 점도 그렇고 설마 십이혈마와 연관이라도 있는 걸까? 이들이 십이혈마와 관련이 있다면 쉬운 상대가 아니겠구나.’

유월련이 청아 옆에 서 있는 자신이 추척해 온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사람은 유월련이 자신들을 바라보자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낫고 청아주위에 서 있던  사람도 그들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유월련이 짐작했던 대로 청아 옆에 서 있던 네 사람도 경산방의 방도로 경산육호의 나머지 네 사람인 듯싶었다.

유월련이 대형이라 불리던 사람에게 물었다.

“그대는 경산대호가 맞나요? 나머지 분들은 경산육호의 나머지 다섯 분이 맞고요?”

경산대호는 무림에 위명이 자자한 곤륜판의 유월련이 삼류 방파의 수장에 불과한 자신의 별호를 알고 있자 유월련의 안목에 탄복하며 말했다.

“예. 소인이 경산방의 방주를 맡고 있는 손일이라고 합니다. 첫째로 태어나기도 하지만 이름도 그냥 일(一)입니다. 뒤에 있는 사람들은  아우들이 맞습니다. 강호의 친구들이 우리를 경산육호라고 과분하게 불러주고 있습니다만 감히 부인처럼 고명한 분께 그런 과분한 이름을 자처하겠습니까. 그저 소인을 손일이라고 이름을 부르시거나 손가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유월련은 손일이 겸손하게 처신하는 대답을 듣고 그가 제법 유능한 인물이라고 생각하며 말했다.

“그대들 경산방은  여자를 편들어 저희 곤륜을 적대하는  맞나요?”

손일은 유월련이 바로 청아와 결탁한 책임을 물어보자 당황했지만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희처럼 티끌 같은 삼류방파가 어찌 감히 천하의 곤륜파를 적대하겠습니까. 다만 저희 같은 하오문의 무리는 그저 힘에 억눌려 식솔에게까지 위험이 닥치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유월련은 손일이 식솔이 인질로 잡혀 자신들로서도 어쩔 수 없다는 변명을 하자 청아를 돌아보며 말했다.

“당신 수하들이 경산방 식솔들을 잡고 있나요?”

청아가 여전히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어머나 전 붙잡고 있지 않답니다.  수하들이라고 해봤자 홀딱 벗고  시중을 드는 계집애들 몇 명뿐이고 그 애들을 경산방에 남겨두고 왔을 뿐인데 홀딱 벗겨놓은 계집애 몇 명이 무슨 대단한 위협이 되겠어요. 오히려 주무르고, 핥고, 빨고, 씹질 빼고는 걔네들이 훨씬 많이 당했는데 무슨 위협이 되겠어요.”

유월련은 청아가 씹질이라는 천박한 단어를 사용하자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돌려 청아의 말이 사실이냐는 눈길로 경산육호를 바라보았다.

경산육호 중에서 다섯이 모두 눈길을 돌려 외면하는 모습을 보며유월련은 청아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경산방주 손일만이 유월련을 바라보며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제 수하들이 청아선자의 시종들을 희롱한 건 사실입니다만 그 여자들은 전부 제 수하들은 말할 것도 없고 저보다도 훨씬 뛰어난 고수들이었습니다. 오히려  여자들이 그렇게 희롱하는 것을 거부하지 않으니 제 수하들이 꼴에 사내라고  목숨 아까운 줄도 모르고 함부로 행동하는 것이고요. 아무리 무공이 고강하다고 해도 지극히 아름다운 여인들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주변에서 돌아다니고 또 그 몸을 만지고 희롱해도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하면 강호의 거친 사내들이 어떻게 행동할지 부인도 아실 것 아닙니까.”

유월련이 청아와 경산방주 손일의 말을 들으니 상황이 정말 해괴하기 이를 데 없었다.

아름답고 날씬한 강호무림의 여고수들이 옷을 전부 벗은 알몸으로 경산방도들을 인질로 잡았는데 인질로 잡힌 사내들이 인질을 잡고 있는 자들을 오히려 희롱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유월련이 무예를 익히기 시작한 이래 이런 해괴한 상황은 듣도 보도 못한 것은 물론이고 그런 일이 가능하다는 상상조차  본 적이 없었다.

유월련이 너무나 희한한 상황에 생각을 채 정리하지 못하고 있을  청아가 말했다.

“우리 애들이 밥도 해주고 있어요. 그야말로 보지에 자지를 박는 거 말고는 전부 다 해주고 있다고요. 걔네들이 전부 다 처녀막을 가진 처녀들이라 박는  금지하고 있지만 그거 말고는  해주고 있어요.”

점입가경이었다. 정말 어느 쪽이 인질이고 어느 쪽이 인질범인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유월련은 상황이 아무리 해괴하다고 해도 그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청아의 시종이라는 여자들이 아무리 나긋나긋하게 경산방의 방도들을 돌봐주고 있다고 해도 손일이나 경산육호가 혈신문의 명령을 거역하는 즉시 바로 그들의 목을 잘라버릴 것이다.

유월련은 등에 짊어진 장검을 뽑아 청아에게 겨누며 말했다.

“내 검을 먼저 받아보고 이야기를 계속하는  어떨까요.”

청아는 유월련이 자신을 향해 장검을 꺼내들어도 손뼉을 치고 웃으며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부인은 처녀가 아니라 제 시종을 삼을 수는 없겠네요. 우리 혈신문에서는 처녀가 아닌 애는 시종으로 삼지 않는답니다. 그럼 뭐가 좋을까? 아 암캐가 좋겠어요. 홀딱 벗고  발로 기어 다니면서 멍멍 짓고, 물건을 던져주면 주워오기도 하고, 쥐나 다람쥐 같은 걸 잡기도 하고,  수캐랑 흘레도 붙고요.”

유월련의 장검에서 푸른 기운이 대여섯 자나 뻗어 나와 청아의 목으로 향했다. 청아는 유월련이 쏘아낸 검기가 자기 목으로 다가오는 데도 생글생글 웃으며 그저 몸을 피하기만 했다.

유월련은 몸을 피하는 청아를 좇으며 몇 번이나 장검을 휘둘렀다. 그때마다 새파란 기운이  끝에서 뿜어져 나왔다.그리고 그 파란 기운에 닿는 것은나무나 바위를 가리지 않고 모조리 잘려나갔다.

옆에서 구경하고 있던 경산육호는 놀라서 황급히 몸을 피했고 경산방주 손일은 유월련의 무공이 자신이 상상했던 수준보다 월등히 높은데 놀라 입을 다물  없을 정도였다. 강호에서 꽤나 굴렀다는 자신도 검기라는 게 있다는 말만 들었지 실제로 검기를 보았다는 사람을 만난 적도 없었는데 지금 자신의 눈앞에서 바로 그 검기가 사방으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유월련은 십여 번 장검을 휘두른 후에 움직임을 멈추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검 몇 번을 휘둘렀다고 호흡이 거칠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청아의 유연한 움직임에 놀라 대응방법을 생각해야만 했다.

‘저 청아라는 계집애는 얼굴로 봐도, 하는 말투와 행동으로 봐도 아직 스무 살도 안  것 같은데 저렇게나 무공이 대단하구나. 오늘은 쉽지 않겠는 걸.’

유월련은 심한 불안감을 느꼈다.

무인에게 속도는 가장  무기다. 내공이 강한 것, 아니면 단순한 힘이 강한  그리고 정교한 초식 모두 무기가 되지만 속도만한 무기는 아니다.

아무리 힘이 세고, 내공이 강하고, 초식이 정교해도 속도가 훨씬 빠르면 무조건 진다. 하지만 인간이 낼  있는 속도는 한계가 있고  한계가 내공이나 신체조건 등에 의해 정해지기 때문에 내공과 외공 그리고 초식을 연마하는 것이다.

그런데 방금 청아가 보여준 빠르기는 유월련의 예상을 뛰어넘은 것이었다. 지금은 자신의 장검을 피해 도망만 치고 있지만 만약 그 속도로 공격을 해온다면 유월련으로서는 막을 자신이 없었다.

유월련이 불안해하며 다음 대응을 고민하고 있을 때 청아가 다시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부인. 저희 문주님이 부인께 전하라고 명하신 서찰이 있는데 잊어먹고 드리지 못했네요. 그러니 싸우기 전에 이 서찰부터 먼저 읽어보세요.”

청아는 말을 마치며 바로 유월련을 행해 종이봉투 하나를 던졌다. 종이로 만든 팔랑거리는 봉투인데도 불구하고 바람에 흔들리지도 않고 유월련을 향해 곧게 날아갔다.

유월련은 청아가 서찰을 받아 봉투를 열어 안에  종이를 꺼냈다. 그 뒤 바로 봉투를 멀리 던져 버리고 종이에 든 내용을 읽었다. 청아가 던져준 서찰에 무슨 수작을부려놓았을지도 모르고 그 봉투에 그 수작이 들어있을 가능성이 있어서 였다.

유월련은 서찰을 읽다가 처음에는 깜짝 놀라더니 잠시 뒤 얼굴을 붉히기 시작했고 마지막 부분을 읽을 때는 화를 내면서 가지고 있던 장검을 휘둘러 서찰을 가루로 만들어버렸다.

유월련이 화난 얼굴로 다시 청아를 공격하려는 데 청아가 말했다.

“부인, 저희 문주님이 부인이 화를 내시면 이렇게 말하라고 하시더군요. 현중우와의 십 년 간의 결혼이 행복했느냐? 곤륜파 장문부인이라는 명예가 네 쾌락보다 더 소중한 것인가? 시중의 예교가 네 행복보다  소중한가? 라고요.”

청아의 말을 들은 유월련은 청아를 공격하려던 움직임을 멈추고 큰 충격을 받은  몸을 떨기 시작했다. 그리고 뭔가를 깊게 고민하는 표정을 짓듯이 갑자기 청아를 향해 물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되죠?”

청아가 깔깔 웃으면서 말했다.

“그거야 먼저 홀딱 벗어야지.”

청아의 말을 듣자 유월련은 뭔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주섬주섬 입고 있던 옷을 모두 벗기 시작했다.

옆에서 유월련과 청아의 싸움을 보고 있던 경산육호는 유월련이 갑자기 옷을 벗기 시작하자 너무 놀라서 모두 입을 쩍 벌리고 다물지 못했다.

유월련은 입고 있던 옷을 모조리 벗어버리고  팔을 머리 뒤로 돌려 자신의 알몸을 활짝 드러낸 뒤에 외쳤다.

“곤륜파의 유월련이 청아선자님께 투항합니다. 부디 청아선자님이 원하시는 대로 조련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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