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화 〉유월련 7
7.
유월련은 사내가 자신을 보고 요괴라도 본 듯이 놀라 바닥에 주저앉자 입술을 삐죽이며 다른 사람들을 찾아 걸었다.
안개가 끼었다고 해도 한 치 코앞도 안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대략 십여 장 안은 잘 보였다.
유월련은 청각이 극도로 밝아 안개로 보이지 않는 가운데서도 어디에 사람들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유월련은 네 사람이 모여서 말을 돌보고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네 사람은 상품인 말을 돌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니까 오늘 팔 말 중에 이 네 필은 특별히 좋은 놈이니 싸게 넘기면 안 돼.”
“이 말들이 특별히 좋은 말들이라는 걸 사람들이 알아볼까요?”
“말 장사 오래해서 알아 볼 사람은 당연히 알아보지. 하지만 이런 물건을 다른 말들에 끼워서 싸게 살려는 놈들이 꼭 있으니까 그놈들만 주의하면 돼. 너처럼 어수룩하게 나가는 신참을 노리는 놈들이 꼭 있으니까.”
“젠장, 오늘은 이놈의 안개가 왜 이렇게 오래가는 거야.”
네 사람이 떠들어대는 가운데 유월련이 살짝 걸어갔다.
네 사람은 대화를 나누다가 갑자기 절세의 미인이 완전한 알몸으로 걸어오자 너무 놀라서 말을 잊은 듯 얼이 빠져 쳐다보기만 했다.
그런 가운데 제일 젊어 보이는 청년은 자신이 제대로 보고 있는 건지 눈을 비비기까지 했다.
유월련은 네 사람이 돌보고 있는 말들에게 다가가 말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조금 전 말한 좋은 말들이 이 말들인가요? 확실히 힘도 좋고 빠르게 생겼네요.”
유월련이 쓰다듬던 말이 투레질을 하면서 머리를 유월련의 가슴과 배에다 비볐다.
유월련이 간지러운 듯 몸을 뒤쪽으로 살짝 비틀며 말의 머리를 부드럽게 잡으며 말했다.
“착한 말이네. 넌 정말 털도 부드럽고 힘도 좋을 거 같구나.”
네 사람은 모두 말도 없이 멍하니 유월련을 바라보기만 했다.
유월련이 그들을 향해 몸을 돌려서 자신의 알몸을 모조리 볼 수 있게 하며 말했다.
“제 몸이 제법 예쁘죠?”
네 사람은 아무런 대답도 못하고 입을 벌리고 있었다.
유월련은 네 사람이 아무런 대답을 못하자 다시 다른 사람들에게로 걸어갔다.
유월련 안개 속으로 사라진 잠시 뒤 뒤쪽에서 소동이 일어났다.
“방금 그거 봤나?”
“자네도 봤나?
“형님들도 보셨죠. 그거 빨가벗은 여자 맞죠?”
“어이쿠 내가 잘못 본 건 아니구나. 난 내 정신이 어떻게 된 줄 알았네.”
“난 내 눈이 어떻게 된 줄 알았네. 그렇지 않고서야 마시에 발가벗은 여자가 나온다는 게 말이 되겠는가.”
유월련에 대해 떠들어대는 사람은 그 네 사람만이 아니었다. 앞서 말을 끌고 가다가 주저앉았던 사내가 사람들 사이로 달려가 소리치고 있었다.
“글쎄 내가 진짜 봤다니까. 진짜 몸에 하나도 안 걸리고 홀딱 벗었다고. 그것도 생전 처음보는 엄청난 미인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도 말게. 여기 마시에 왜 발가벗은 여자가 나타난단 말인가.”
“왜 나타났는지는 나도 모르지. 하지만 내 두 눈으로 확실히 봤다니까.”
“틀림없이 어제 먹을 술이 덜 깨서 지금 꿈에서 본 걸 생시로 착각하는 거야. 그러니까 술 좀 줄여.”
“맞아, 자네는 발가벗은 여자를 보고 놀라서 주저앉았다지만 사실은 꿈에서 보고 주저앉은 게 틀림없네. 안 그러면 그 여자가 왜 자네 눈에만 보이고 우리 눈에는 안 보이겠나.”
그때 유월련이 그들 앞에 나타났다.
첫 목격자를 구박하고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눈이 휘둥그레졌다.
유월련이 말했다.
“그분이 본 건 사실이 맞아요. 여기 제가 이렇게 있는 걸요. 옷도 하나도 안 입은 거 맞고요.”
첫 목격자를 구박하던 사람들은 모두 입을 벌린 채로 놀라서 말을 꺼내지 못했고 첫 목격자 역시 다시 본 유월련의 놀라운 미모에 놀라 입을 열지 못했다.
“흐응.”
유월련이 콧소리를 내면서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번에 유월련이 걸어 간 곳은 수십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다. 그들은 왁자지껄 떠들어대며 한 번에 수십 마리의 말을 거래하고 있었다.
“그럼 이번 거래는 전부 합쳐서 사천마와 운남마 전부 쉰여덟 마리에 삼천칠백 량으로 하죠. 역시 용대인과의 거래는 물건을 볼 줄 아는 분이라 이렇게 편해서 좋다니까요.”
“그럼 거래를 끝낸 기념으로 다들 한 잔 하도록 하세. 오늘 거래는 그냥 이걸로 마치고 말일세.”
“하하, 감사합니다, 용대인. 이런 큰 거래를 끝냈는데 오늘 굳이 더 일할 필요가 뭐 있겠습니까. 그럼 다들 항상 마시던 그곳으로 가죠. 말들은 전부 저희 마방의 마구간에 넣어두겠습니다.”
큰 거래를 끝내고 장사를 파하려는 사람들 앞에 갑자기 알몸의 유월련이 나타나더니 나긋하게 말했다.
“흐응, 큰 거래를 끝냈나 보네요. 아쉽게 좋은 구경을 못했네요. 저기 있는 저 말들이 거래한 말들인가요?”
발가벗은 유월련의 등장에 얼이 빠진 건 그들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였지만 이번에는 사람이 수십 명이나 되어서인지 다들 빨리 정신을 차렸다.
“어이쿠, 저, 저거 왜 여자가 저렇게 빨가벗고.”
“얼굴 좀 보세요. 저게 사람 얼굴 맞아요?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예쁠 수가 있죠?”
“저 피부 좀 보게 저렇게 옥처럼 하얀데 사람이 아니고 요정이 아닐까?”
“하긴 요정은 해가 없을 때 나타난다고 했으니 진짜 요정일지도 몰라요. 오늘은 해가 없어서 안개도 흩어지지 않았잖아요.”
수십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감히 유월련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떠들어대기만 할 때 무리 중에 나이 많은 노인이 입을 열었다.
“요정은 무슨 요정이란 말인가. 여기 마시로 오십 년이 넘게 장사 길을 다녔지만 요정이나귀신이 나타났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본 적도 없고 들어본 적도 없다. 아무래도 실성한 여인 같은데 다들 조용히 하 거라.”
노인은 조금 전 말을 구입한 용대인이라는 사람으로 보였는데 말에 상당히권위가 있는 듯 그게 말하자 다들 입을 닫았다.
용대인이 수하로 보이는 사람 한 명에게 말했다.
“자네가 입고 있는 외투가 큼직해서 저 여자 몸을 감쌀 수 있을 거 같으니 자게 외투를 좀 벗어서 저 여인에게 입혀 주게. 외투 값은 내가 물어 주겠네.”
“예, 대인. 명대로 하겠습니다.”
노인의 명을 받은 장한이 급히 자신의 외투를 벗어들고 유월련에게 다가왔다.
유월련은 장한이 자신에게 외투를 입히려 하자 손을 앞으로 휙 휘둘렀다.
유월련의 손바닥에서 웅맹한 장풍이 한 줄기 뻗어 나와 흙바닥을 때렸다. 사람들의 왕래가 잦아 풀이 자라지도 않고 맨 흙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데다 무수한 사람이 밟아서 단단해진 바닥이 그대로 움푹 파였다.
유월련이 장풍을 쏘자 외투를 들고 다가오던 장한이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고 보고 있던 다른 사람들도 깜짝 놀랐다.
유월련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흐으응, 저는 옷이 필요 없답니다. 또 실성하지도 않았어요. 저는 원래 이렇게 발가벗고 다니는 계집이에요.”
유월련은 말을 마치자 가슴을 앞으로 쑥 내밀고 다리를 살짝 벌려서 그들이 자신의 보지를 잘 볼 수 있게 있다.
“어때요 제 보지가 꽤 예쁘죠? 전 원래 민둥보지가아닌데 사람들에게 보지를 잘 보이게 하려고 털을전부 뽑아버렸어요.”
사람들은 유월련의 무공에 놀라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하고 그저 눈을 멀뚱거리며 쳐다보고만 있었다.
이때쯤 되자 사방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뭐 여자가 발가벗고 나타났다고? 뭐 자네들도 다 함께 봤어?”
“단체로 실성하기라도 했나 왜 그래?”
“뭐 저쪽에 있는 사람들도 봤다고?”
“어디야 어디? 어디에 빨가벗은 여자가 나타난 거야?”
“생전 처음 보는 미인이었다고? 그런 여자가 왜 빨가벗고 나타나?”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점점 시끄러워 지더니 그 자리에 있건 누군가가 다른 사람들에게 연락을 한 건지 사람들이 유월련 쪽으로 몰려왔다.
“여기 이쪽이야 이쪽. 이쪽에 있대.”
“어이쿠 진짜 빨가벗고 있잖아.”
“우와, 몸매가 뭐 저렇게 예뻐? 난저런 몸매는 기녀원에서도 한 번도 못 봤어.”
“몸매도 그렇지만 얼굴 한 번 봐. 저런 미인을 본 적이 한 번이라도 있나?”
“물론 못 봤네. 세상에 저런 미인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처음으로 저런 미인을 본 게 완전히 빨가벗은 여자로군.”
유월련은 사람들이 자신을 중심으로 모여들자 콧소리를 내면서 빙글 몸을 회전시켰다.
“흐으응.”
유월련은 콧소리를 내면서 몸을 돌리고 또 팔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려 사람들이 자신의 알몸을 더 자세히 볼 수있게 했다.
조금 전 유월련이 장풍을 쏘는 것을 보지 못한 몇몇이 말했다.
“아무래도 실성한 여자 같은데 저렇게 예쁜 여자가 실성하다니 불쌍하군. 누가 뭐라도 좀 입혀 주는 게 좋겠는데.”
“그러게 말일세. 아무리 미인이 발가벗고 있어서 보기가 좋다고 해도 실성한 여자 상대로 그럴 수는 없지. 내 외투라도 벗어줘야겠네.”
말을 마친 사내가 외투를 벗으려고 하자 유월련이 다시 팔을 휘둘러 장풍을 쏘았다.
퍽!
다시 한 번 바닥이 움푹파였다. 유월련의 장풍에 바닥이 움푹 파이는 걸 보자 유월련을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이 분분히 뒤로 몇 걸음씩 물러났다.
“어이쿠 무림인이잖아.”
“저게 장풍이라는 건가 보군. 난 말만 들었지 생전 처음 보네.”
“장풍은 굉장한 고수들만 쏠수 있다던데 저 실성한 여자도 고수인 걸까?”
유월련이 흥얼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외투를 벗어주시는 건 고맙지만 전 항상 발가벗고 있어야하는 계집이랍니다. 전 옷을 입으면 괴로워서 견딜 수 없어요. 그리고 전 실성한 게 아니고 벌을 받고 있는 거랍니다.”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이 벌이라는 말에 웅성거렸다.
“벌이라니 무슨 소리일까?”
“그러게 말일세. 세상에 저런 미인을 발가벗기는 벌을 주는 몹쓸 인간도 있나보네.”
맨 처음 자신의 수하에게 유월련에게 외투를 벗어주라고 명령했던 용대인이라는 노인이 말했다.
“벌이라니 무슨 말이오? 우리가 알 수 없는 사정이라도 있으시오?”
유월련이 용대인을 알아보고 대답했다.
“조금 전 외투를 벗어주라고 하셔서 감사해요. 하지만 전 벌을 받아야 하는 몸이라 옷을 입을 수가 없어요. 제가 어떤 분들께 죄를 지어서 이렇게 발가벗고 있게 되었어요. 하지만 전 이게 무척 마음에 들어요.”
“마음에 들어? 그게 무슨 말이오? 세상에 발가벗고 있는 게 마음에 든단 얘기요?”
“그럼요. 대인, 제가 예쁘지 않나요? 전 사람들이 제 알몸을 보면서 예쁘다고 해주는 게 정말 좋아요. 그리고 전 천한 계집이니 예를 갖출 필요는 없어요.”
유월련은 말을 마치자 다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두 손을 옆으로 뻗은 뒤 몸을 빙글빙글 돌리며 춤추는 동작을 했다. 무공이 아니라 간혹 서역에서 온 무희들이 보여주는 호선무와 비슷한 동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