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화 〉무량산의 괴물들 2
2.
청아는 자신의 단창이 성성이의 가죽을 뚫지 못하자 갑자기 욕설을 쏟아내었다.
“환장해 미치겠네. 이 원숭이 새끼들, 지 에미랑 박은 씹새끼 아니랄까봐 가죽이 왜 이렇게 단단해.”
다른 여인들도 연신 검으로 성성이들을 찔러댔지만 성성이의 가죽에는 통하지 않았다.
성성이는 검이나 창에 찔리면서도 계속 두 팛을 휘둘러 여인들을 공격했고 성성이 팔에 한 번 맞으면 맞은 여인은 거의 십여 장이나 튕겨져 날아갔다가 발딱 일어서서 검을 빼들고 활에서 쏜 화살처럼 다시 싸움터로 뛰어들어 왔다.
성성이와 여인들 양쪽 다 공격이 잘 통하지 않아 싸움이 길어져 갔다.
상황이 답답해졌는지 용아가 청아에게 말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가 먼저 지쳐버리겠어. 청아다른 방법을 생각해봐.”
청아가 단창 두 개를 휘둘러대며 말했다.
“뭔가 좋은 방법 있어?”
“비선무를 써보면 어떨까?”
“그게 인간도 아닌 이런 좆같은 원숭이 새끼들에게 통할리가 없잖아.”
“그래도 인간 여자라면 엄청 밝히는 놈이라 인간 남자랑 별 다를 것도 없을 걸. 당장 우리 사저들 쫓아 온 이유도 사저들이 저 새끼들 보는데서 보지를 까니까 그 멀리서도 보지 보고 박으려고 쫓아왔잖아. 그러니까 이놈들이 모두 넷이니까 우리 사저들 셋이서 비선무로 이놈들 시선을 잡아끌고 다른 사저 셋이 옆에서 도우면 시간을 끌 수 있을 거야. 그 사이에 네가 다른 여섯이랑 같이 투호경을 사용해서 남은 한 놈을 죽여. 그런 식으로 한 놈씩 각개격파로 나가자고.”
용아의 말이 그럴듯하게 들렸는지 청아가 긍정적으로 대답했다.
“좋아, 제법 그럴듯하네. 소전, 소선, 소해 셋은 지금부터 비선무로 저 원숭이 새끼들을 유혹하고 소기, 소지, 소원 셋은 각각 소전, 소선, 소해를 옆에서 도와 용아 넌 쟤들 뒤에서 지원해줘.”
소전과 둘째 사저라고 불리던 소선, 그리고 소해라 불린 여인 셋이 동시에 어깨에 걸치고 있던 바람막이를 벗어서 옆으로 던져 버리고 장검도 바닥에 꽂아버린 뒤 알몸으로 성성이들 앞을 폴짝폴짝 뛰어다니며 야릇한 동작을 했다.
성성이들은 여인들이 알몸으로 야릇한 동작을 하며 보지를 자기들 눈앞에 보이자 성욕이 동했는지 두 손으로 여인들을 잡으려 들었다.
성성이는 움직임이 여인들에 비해 훨씬 빨라서 원래대로였다면 셋 다 순식간에 성성이에게 잡혔겠지만 여인들의 움직임은 그 야릇하게 사내들의 성욕을 자극하는 동작 속에 독특한 움직임들이 숨겨져 있었다.
애초에 이 비선무라는 춤은 남자의 성욕을 자극하고그에 자극받은 남자가 덤벼들면 요리조리 빠지면서 남자의 성욕을 최대한 끌어올린 뒤에 남자와 성교를 하도록 만들어진 춤이었다.
그래서 연약한 여인의 몸으로도 건장한 남자의 손에서 몇 번 정도는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게 만들어졌는데 그게 지금 몸이 빠른 성성이를 상대로 쓰이고 있었다.
그리고 옆에서 장검을 걸친 여인 하나가 더 붙어서 비선무를 추는 여인이 위기에 빠지려고 하면 바로 개입해서 성성이가 여인을 붙잡는 것을 방해했다.
여인들의 장검이 비록 성성이의 가죽을 찌르지는 못했지만 강한 힘이 들어있어 성성이들의 동작을 방해하는 정도는 충분히 가능했다.
거기다 용아가 뒤에서 암기를 던지거나 미리 준비한 음약을 뿌리는 등 여섯 여인을 도왔다.
용아가 투덜거렸다.
“이 귀한화합산을 이렇게 막 뿌려도 되는 거야?”
다른 여섯 여인과 함께 성성이 한 마리만을 상대해서 훨씬 여유가 생긴 청아가 말했다.
“처음부터 이놈들 상대하려고 가져온 거니까 다 써버려도 상관없어 화합산을 마시면 사람이든 짐승이든 수컷은 더 성욕에 미치게 만드는 거니까 지금이 바로 제일 필요할 때라고. 그리고 조심해 그놈들 손에 잡혔다간 당장 원숭이한테 따먹히는 건 물론이고 목숨도 장담 못한다고.”
“하긴 따먹을 때야 안 죽이겠지만 따먹고 나면 동료들이 죽은 걸 기억하고 바로 죽여 버릴 수도 있겠다.”
“제일 위험한 게 너라는 걸 절대 잊지 마. 네 사저들이야 전부 대법을 받았으니 어지간히 상처를 입어도 도로 살아나지만 넌 대법도 안 받았고 아직 혈신경의 수준도 입문에 불과해서 그런 상처를 입으면 회복하기 어려워.”
청아와 용아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성성이 세 마리는 발가벗은 여인들의 유혹에 걸려 점점 거리가 멀어지고 있었다.
여섯 여인과 청아가 동시에 한 마리를 집중해서 괴롭혀대자 그 놈이 화를 참을 수 없는지 두 손을 번쩍 치켜들며 괴성을 질렀다. 청아가 기다려온 바로 그 순간이었다.
“지금이야!”
청아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여섯 여인들 둘이 바람막이 속에 지니고 있던 갈고리 같은 것을 꺼내 성성이의 팔을 걸었고 그 순간 다른 네 명의 여인이 장검으로 동시에 성성이의 심장을 찔렀다.
네 여인이 찌른 장검이 서로 간에 한 치 간격도 안 될 정도로 좁은 지점을 동시에 찔렀고 바로 그 순간 장검에 맞은 부위에서 한줄기 푸른 광채가 뻗어 나왔다.
그리고 푸른 광채가 나온 바로 그 순간 청아가 들고 있던 단창을 던져 푸른 광채가 뻗어 나오는 부분을 찔렀고 청아의 단창이 성성이의 심장을 관통했다.
심장이 관통당한 성성이는 더 이상 날뛰지 못하고 천천히 쓰러졌다.
청아는 푸른 광채가 뿜어져 나오는 부분에 단창 하나를 더 박아 넣어 성성이의 숨통을 완전히 끊었다.
발가벗은 여인들을 쫓던 세 마리의 성성이도 그렇게 처리하는데 그다지 긴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청아는 철관에서 뿜어져 나온 액체로 처리한 열두 마리의 성성이와 청아 자신이단창으로 심장을 찔러 죽인 네 마리의 성성이를 전부 둘러보고는 소전에게 말했다.
“저 위에 계신 방주님을 모셔와.”
소전은 발가벗은 그대로 바람처럼 위로 올라가 손일을 데리고 내려왔다.
손일은 아름다운 여인들과 열여섯 마리의 괴물 성성이들과 싸우는 광경을 보고는 그 엄청난 싸움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손일이 청아에게 포권하며 말했다.
“경산방의 손모가 소저 덕분에 크게 안계를 넓혔소이다. 그런데 이 성성이들은 도대체 어떤 괴물이길래 소저들의 장검이나 단창이 이빨도 먹히지 않은 거요?”
청아가 성성이들의 심장에 박힌 단창을 회수해서 날에 뭍은 피와 기름을 닦아내며 말했다.
“이놈들은 은모대성이라는 놈들이에요. 원래 사천이나 곤륜, 천산의 오지에 사는 놈이에요. 은모대성 그 자체도 나이를 먹으면 도검이 불침하고 움직임도 웬만한 강호의 절정고수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빠른 놈이지만 그놈들은 사람이 길들일 수도 없고 또 명령에 따라 움직이게 하는 건 더욱 불가능한 일이죠. 하지만 이놈들은 아주 특수한 방법을 사용해서 원래의 은모대성 같은 괴물이면서도 사람의 명령에 따르도록 만들어진 놈들이에요.”
손일은 청아가 성성이들을 죽인 수법도 궁금했지만 상대의 무공에 대해 깊이 질문하는 일은 강호의 금기였다.
그러나 청아는 그 부분까지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성성이를 죽일 때 사용한 무공은 투호경이라는 것으로 최소 세 명 이상이 동시에 한군데 좁은 지점을 노리고 찌르면 그 부분에 기의 흐름이 멈추어버리게 되요. 은모대성의 가죽이 두텁고 강하긴 하지만 그래봤자 일개 짐승 가죽인데 무슨 수로 정강으로 만든 장검이나 단창의 날을 막아내겠어요. 다만 은모대성 같은 특수한 성성이는 태어나면서 기를 운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몸이라 어느 나이가 되면 무공의 고수가 금강불괴신공을 연마하듯이 몸 전체가 도검불침이 되는 거예요. 그렇다고 해도 기가 몸에서 원활히 흐를 때만 도검불침인거지 기의 흐름이 사라지면 금강불괴의 위력도 떨어지게 되죠. 투호공은 바로 그 약점을 공격하는 것으로 기의 흐름이 끊어져 금강불괴가 사라진 부분을 제가 단창으로 찔러버린 거예요.”
청아는 혀를 내두르며 감탄하는 손일을 보며 말했다.
“지금부터 이 괴물들을 만들어낸 놈들을 해치우러 갈 건데 같이 가시겠어요? 이 성성이들을 다 해치웠으니 진짜 위협이라고 할 건 이제 없을 거예요.”
손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괴물을 만든 자가 누구인지 꼭 보고 싶었다.
청아는 단창을 전부 회수하자마자 바로 몸을 날렸고 다른 여인들도 일제히 몸을 날렸다.
손일은 그들에 비해 경공이 현저하게 떨어졌기 때문에 여전히 소전의 품에 안겨서 이동해야만 했다.
다른 여인들은 전부 바람막이를 어깨에 걸쳤는데 소전만은 여전히 등에 장검 하나만 걸친 발가벗은 그대로였다.
손일은 소전이나 다른 여인들이 발가벗은 채 남자는 안는 걸 즐기는 듯하다고 생각했다.
일행은 잠시 뒤 동굴 몇 개가 있는 절벽에 다다랐다.
소전은 여기까지 와서도 바람막이를 걸치지 않더니 자신의 바람막이를 손일에게 걸쳐주며 낮게 말했다.
“전 상처를 입어도 웬만한 건 바로 회복되기 때문에 그건방주에게 더 필요할 거예요.”
일행 중에 가장 무공이 약한 것이 손일이라는 건 손일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양하지 않고 바람막이를 걸쳤다.
바람막이를 걸친 손일은 이렇게 가벼운 물건이 그런 엄청난 방어력을 가졌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청아와 여인들은 손가락으로 뭔가 신호를 주고받더니 동굴을 나눠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뒤 동굴 안에서 참혹한 남자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뒤 선아가 동굴에서 나와 손일을 동굴로 불러들이며 말했다.
“적들은 전부 다 해치웠어요. 동굴이 안에서 다 연결이 되더군요. 이젠 들어가도 돼요.”
소전은 손일을 데리고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서 청아가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특별히 찾은 건 없어?”
용아에게 둘째 사저라 불리던 소선이 대답했다.
“상자들을 전부 뒤집어서 찾아봤는데 특별히 배후가 있다고 볼만한 건 없는 거 같아요. 배후가 있으면 특정한 신표 같은 게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안 보여요.”
청아가 말했다.
“그렇다면 다행인데 혹시 배후가 있다면 귀찮아질 거야.”
손일이 안으로 들어가자 바닥에 여섯 명의 남자 시신이 쓰러져 있었다.
청아가 시신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자들이 바로 그 성성이들을 만든 자들이에요. 여섯 명 전부 십이혈마의 잔당이죠. 아마 십이혈마가 사도대협에게 괴멸되자 사람의 출입이 없는 여기 무량산에 숨어 있다가 사도대협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이런 성성이들을 만들어내어 장차 강호에 소동을 일으키려 한 거 같아요.”
청아의 말이 끝나자마자 소해라 불린 여인이 동굴 안쪽에서 나오며 말했다.
“여자들을 찾았는데 보시겠어요?”
청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소해가 이끄는 곳으로 걸어갔고 손일과 다른 여인들도 뒤를 따랐다.
청아가 손일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제 성성이들의 어미들을 보게 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