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무량산의 괴물들 4
4.
용아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혈신문과 똑같은 대법이라니 무슨 뜻이야?”
“말 그대로야. 예전에 십이혈마가 사용한 대법은 여자를 빨가벗고 생활하게 만들기는 했어도 여자가 성성이 새끼를 낳게 할 수는 없었어. 하지만 조금만 방법을 개량하면 그렇게 할 수 있기는 했는데 이번에 문주님이 여길 토벌하라고 하신 것도 그 수법이 궁금해서 그랬던 거야. 하지만 죽은 저치들이 사용한 수법은 과거 십이혈마의 대법을 개량한 게 아니고 완전히 우리 혈신문의 수법이랑 같은 거라고. 문주님의 우려가 정확히 들어맞았어.”
“그럼 우리 혈신문에서 누가 이 방법을 훔쳐 간 거야?”
청아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가능성이 없어. 우리 대법은 문주님과 나를 포함한 몇 명의 머리속에만 있고 글로 남겨둔 게 아니라서 그건 절대 아냐.”
“아니 우리 혈신문에서 훔쳐간 게 아니라면 저치들이 어디서 그걸 알았대? 하늘에서 떨어지기라도 했나?”
“그러니까 우리 혈신문 대법과 같은 근원에서 흘러나왔다고 봐야지. 애초에 이 대법의 근원은 우리 혈신문이 아냐 원래 천산영취궁에서 흘러나온 대법으로 천산영취궁이 사라지면서 딱 두 군데로 이 대법이 흘러갔지 하나는 우리 혈신문, 또 하나는 육합마궁.”
“육합마궁? 그거 이름은 나도 들어봤지만 망한지 백 년도 넘었잖아. 전조의 칭기즈칸이 서역을 원정하는 도중에 아주 씨를 말렸다고 들었는데.”
“씨를 말리지 못했다는 얘기지 뭐겠어. 어딘가에서 씨가 남아서 오랫동안 숨어 있다가 이제 다시 튀어나오려고 기지개를 켠다고 봐야지.”
“고작 대법 하나 똑같다고 너무 비약이 지나친 거 아냐?”
“그게 아냐 문주님이 이미 여러 군데서 징조를 보신 모양이야. 그러니까 딱 집어서 육합마궁의 흔적을 찾아보라고 하신 거지. 안 그래도 얘네들에게 한 가지궁금한 게 있었는데 확인해 봐야겠어?”
청아가 진란에게 물었다.
“애비 성성이는 네 전 주인 말들을 잘 들었어?”
진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전 주인이 명령하는 건 잘 들었어요. 다만 새끼들이 우리를 노리기 시작하자 그때부터 명령을 잘 안 듣기 시작했어요.”
“그 애비 성성이를 낳은 여자는 없었어?”
진란이 어리둥절해서 고개를 저었다.
“그런 여자는 없었어요. 제가 납치되어 왔을 때 이미 다 자란 성성이였고 여자는 한 명도 없었어요.”
청아가 용아에게 말했다.
“젠장 역시 뒷배경이 있는 거야. 은모대성은 절대 사람의 명령을 듣지 않아. 그 사실은 새끼 때부터 길러도 마찬가지야. 사람의 명령을 드는 건 오로지 인간 여자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놈에 한정해서만 가능해. 그러니까 그 애비 성성이도 인간 여자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거지. 누군가가 이 죽은 작자들에게 이 대법을 사용하는 방법과 함께 애비 성성이를 보내줬을 거야. 보나마나 육합마궁의 잔당이겠지.”
“이 작자들이 예전에 여자를 사용해서 예전에 그 애비를 만들었을 가능성은 없어? 그 애비를 만든 뒤에 여자는 죽었고.”
청아가 고개를 저었다.
“햇수가 안 맞아. 아까 얘가 말했듯이 은모대성이 새끼를 배게 할 수 있으려면 열 살이 넘어야 해. 얘가 오 년 전에 임신했으니까 그럼 최소한 십오 년 전에 그 애비가 태어났어야 하는데, 그때는 이 작자들이 십이혈마 아래에서 일할 때야 절대 불가능하지. 그리고 인간 여자가 은모대성의 새끼를 낳으려면 어느 수준 이상의 무공을 익힌 여자에게 바로 그 대법을 실시해야만 가능 해. 보통 여자는 새끼를 낳기도 전에 죽어버려. 그리고 그 둘을 겸비한 여자는 웬만해서는 안 죽어.”
청아가 소전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니까 쟤들이나 우리 암캐들 수준은 되어야 한다는 얘기야. 아까 얘가 아미파 출신이라고 했지. 진란 네가 여기 잡혀 올 때 몇 살이었어?”
진란이 대답했다.
“열아홉 살이었어요. 그래서 집안에서 아무리 늦어도 여자가 스물 이전에는 시집을 가야 한다면서 돌아와서시집부터 가라고 마구 독촉을 해온 거였어요.”
“그것 봐. 아미파에서 열아홉이 될 때까지 무공을 익혔으면 예전 네 사저들 아래는 아니었을 걸. 여기 온 이후로 초식 수련을 안 했으니 지금은 네 사저들 상대는 안 되겠지만 내공은 비슷할 거야.”
청아는 말을 마치자 다른 성성이를 낳은 여인들의 출신 문파와 이름을 물었다. 과연 청아의 예측대로 전부 화산파나 청성파, 공동파 아니면 오대세가 같은 명문청파의 제자들이었고 심지어 삼 년 전에 잡혀온 여인은 이름을 양수정이라고 했는데 놀랍게도 진란과 같은 아미파 출신이었다.
용아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뭐 같은 아미파이면서도 서로 출신 문파도 몰라봤어?”
수정이 대답했다.
“전 집에서 아미파 출신 사부에게 무공을 전수받기만 하고 아미산에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서 아미파 사람들은 거의 몰랐어요. 그래서 시집가기 전에 아미산에 한 번 가보려고 집을 나섰다가여기로 납치되었고요.”
같은 문파의 제자들끼리 배운 곳이 달라서 서로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건 구대문파 같은 거대 문파들에서는 상당히 흔한 일이었다.
때문에 강호에서 시비가 붙었다가 서로 사용하는 무공이 같아서 알아보게 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용아가 양수정의 이름을 듣더니 말했다.
“잠깐 양씨라면 혹시 성무장 양세현과 친척이야?”
“네, 아빠가 성무장의 사도부인의 사촌오빠 되세요. 제게는 종고모가 되시죠.”
용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양씨라면오대세가는 들어가지 않아도 그에 못지않은 무림명문이라 아미파의 고수를 집안으로 모셔 와서 무공을 사사받은 일도 충분히 가능했다.
용아가 청아를 돌아보며 말했다.
“얘네들 무공을 한 번 보고 싶은데.”
청아가 말했다.
“여긴 너무 좁아서 불편하니까 밖으로 나가서 해보지 뭐.”
동굴 벽에는 무기도 잔뜩 걸려있어 청아는 여인들에게 익숙한 무기를 들고 밖으로 나오라고 했고 여인들 대부분이 장검을 손에 들고 청아를 따라 동굴 밖으로 나갔다.
손일도 그들을 따라 동굴 밖으로 나가 여인들의 무공을 지켜보았다.
손일은 여기까지 오는 도중에 소전을 비롯한 여러 여인들이 알몸으로 수레를 나르거나 경산방도들을 나르는 모습을 보았어도 여전히 여인이 알몸으로 무공을 펼치는 광경은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발가벗은 여인이 아름다운 몸매를 전부 드러내고 무공을 시연하는 모습은 아름답기 이를 데 없었다.
진란과 수정이 펼치는 아미파의 무공은 여인들만의 문파답게 우아하면서도 치명적인 날카로움이 숨어있었고, 화산파 출신의 여인이 펼치는 무공은 속도와 예리함이 조금 전 성성이들과 싸우던 여인들 못지않았다.
청성파나 공동파 그리고 오대세가의 무공도 대단했다. 하북팽가 출신이라는 여인은 도를 사용했고, 진주언가 출신의 여인은 무기 없이 권장술을 펼쳤는데 위력이 엄청났다.
맨 마지막으로 아미파 무공을 펼치고 난 진란이 말했다.
“청아선자님, 여기 잡혀온 이후로 한 번도 무공을 사용한 적도 없고 수련을 한 적도 없는데 이상하게 내공이 엄청나게 강해졌고 몸의 움직임도 예전에 비해 훨씬 빨라졌어요.”
진란과 다른여인들은 소전들을 보고 배웠는지 아니면 누군가 가르쳐 줬는지 이미 청아를 선자님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청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원래 대법을 받으면 특별히 수련을 하지 않아도 내공과 움직임은 저절로 빨라져. 너희들이 잡혀온지 오 년, 삼 년이 되었지만 외모가 그대로인 것도 마찬가지야. 대법을 받으면 외모가 거기서 그대로 고정되어 전혀 늙지 않아. 사실 상처를 입어도 바로 나아버리는 것도 그래서 그런 거고. 초식만 조금 더 수련하면 우리 애들처럼 활동할 수 있을 거야.”
손일은 여인들의 알몸을 볼 때부터 생각이 날 듯 말 듯하는 게 있었는데 여인들이 무공을 펼치면서 커다란 젖가슴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자 바로 생각이 났다.
경산육호의 여섯째가 소전들을 처음 봤을 때 여자들의 젖가슴과 젖꼭지 모양 그리고 대음순의 모양이 너무 비슷하다고 했었는데 지금 여기서 성성이를 낳았다는 여인들도 젖가슴과젖꼭지 그리고대음순의 모양이 소전들과 흡사했다.
청아가 동굴 안에서 자신들이 펼치는 대법과 이 여인들이 받은 대법이 같은 거라고 하더니 저런 모양까지 똑같은 효과를 나타내는 모양이었다.
손일이 그 점을 깨닫고 있을 때 동굴에서 소전들이 나오더니 소전이 대표로 말했다.
“선자님 말씀대로 하나씩 전부 찾아봤지만 특별한 건 찾지 못했어요. 뭔가 신물이 있다고 하더라도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물건을 신물로 사용했는지도 모르겠어요. 다 죽이지 말고 한 놈쯤 살려둘 걸 그랬네요.”
청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뭐 후회해봤자 별 수 없지 그럼 너희들은 돌아가서 경산방 분들을 여기로 모셔와. 수레랑 마차도 가져오고. 그리고 금을 담았던 상자를 열어 보고 누가 금을 가져갔으면 도로 찾아서 돌려놔. 그리고 금을 훔쳐간 사람은 하루 동안 너희들 몸뚱이 만지지 못하게 해.”
소전들은 몸에 걸친 바람막이를 전부 벗어버리더니 다시 홀딱 벗은 알몸이 되어 골짜기 밖으로 쏘아져 나갔다. 다만 소전만큼은 여전히 손일에게 바람막이를 벗어준 상태라 원래 알몸이었다.
청아가 야릇한 웃음을 지으며 손일에게 말했다.
“어때요 방주님, 누가 금을 훔쳐갔는지 아닌지 저랑 내기하지 않으실래요? 전 누가 금을 훔쳐갔다는데 걸겠어요.”
손일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소인도 같은 곳에다 걸 거라 내기가 성립이 안 될 것 같소이다.”
청아와 손일이 골짜기 밖으로 나와 성성이들 시체가 있는 곳에 서 있는데 한참 뒤 발가벗은 소전들이 경산방도들을 안고 돌아왔다.
소전들에게 안긴 경산방도들은 대부분 소전들의 보지와 젖퉁이를 주무르고 있었지만 누군가 금을 훔쳤던 게 걸렸는지 계속 자신을 안고 있는 여인의 몸뚱이를 만지려고 했지만 손이 여인의 호신강기에 튕겨나가고 있었다.
사내가 큰 소리로욕하는 소리가 저 멀리에서부터 들리고 있었다.
“이년아 튕기지 좀 마. 다른 놈들에겐 실컷 만지게 해주면서 정말 나만 못 만지게 할 거야. 제발 나도 보지 좀 만져보자.”
“흥, 그러니까 우리가 죽지도 않았는데 왜 그 사이를 못 참고 금을 훔쳐요. 오늘 하루는 우리 보지나 젖통 절대 못 만지니까 그렇게 아세요.”
목소리를 들어보니 경산방도 중에 예전에 소매치기 노릇을 한 적이 있다는 사내였다.
원래대로라면 자신들 같은 상행을 보조해서 먹고사는 방파에는 절대 가입할 수 없는 사내였지만 사람이 없어 일이 급해졌을 때 고용했다가 몇 번 공을 세운 적이 있어서 차마 쫓아내지 못하고 경산방에 그대로 머물고 있는 자였다.
지난 수 년 간은 경산방의 상행에서 나쁜 손버릇을 보인 적이 없어서 어느 정도 안심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금을 보고는 결국 옛날 버릇이 나온 모양이었다.
손일이 한숨을 쉬며 청아에게 말했다.
“내가 진짜 단단히 혼을 내놓을 테니 부디 목숨만은 빼앗지 말아 주시오.”
청아가 웃으면서 말했다.
“견물생심은 인간의 본성인데 누가 어쩌겠어요. 금을 보고도 가지고 도망을 가지 않은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하니 너무 우려하지 마세요.”
소전들은 경산방도들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들을 데리러 다시 돌아갔고 손일은 금을 훔친 사내의 귀를 잡고 외진 곳으로 끌고 갔다.
사내가 손일에게 애원했다.
“아니 그러니까 방주님 제가 죽을죄를 지었으니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금덩이를 눈앞에서 보자 정신을 차리지 못해서 그런 것일 뿐 진짜 방주님이나 소저들이 죽을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닙니다.”
잠시 뒤 어디를 심하게 얻어맞는지 안니면 사내의 엄살인지 찢어지는 듯한 사내의 비명이 계속 들려왔다.
경산방도들이 전부 도착하고 수레와 마차까지 전부 다 옮겨오자 청아가 사내를 두들겨 패고 돌아온 손일에게 죽은 성성이들의 시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동안 무량산 길에서 행방불명된 사람들은 전부 이놈들을 시켜서 죽인 거였어요. 아마 성성이들에게 살인 훈련을 시키느라고 그랬겠죠. 그리고 이 죽은 아이들은 아무리 사람을 해쳐 온 짐승들이라지만 사람이 낳은 아이들이라 이대로 놔둘 수는 없으니 어딘가 묻어주는 게 좋겠어요. 방주님이 방도들을 데리고 수고를 좀 해주세요. 굳이 무덤을 만들어 줄 필요까지는 없고요.”
손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적당한 곳에 묻어주겠으니 소저는 걱정 마시오.”
손일은 죽은 성성이들을 다시 한 번 둘러보았다.
소전들이 철관에서 뿜어낸 액체에 맞아 죽은 열두 마리의 성성이들은 털과 가죽이 거의 녹다시피 되어 있어 보기 흉했지만 옮길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고 싸우다가 청아의 단창에 찔려죽은 네 마리는 아직 살아있는 것처럼 생생했다.
성성이들이 청아나 소전들과 싸울 때는 무섭기 이를 데 없는 야수로만 보였지만 성성이들을 낳은 여인들을 생각하자 약간의 동정심도 들었다.
손일은 경산방도들을 모아 성성이들을 묻을 곳을 만들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