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6화 〉혈신문주 구양선 7 (66/148)



〈 66화 〉혈신문주 구양선 7

7.

양세현이 성무장에서 나와 대문 밖으로 달려갈 무렵 마침 성무장의 하인과 하녀들이 대문 앞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하인들은 양세현이대문밖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일제히 바라보며 껄껄 웃으며 양세현을 놀려댔다.

“마님, 오늘만 벌써 몇 번째로 대문 밖으로 나가시는 겁니까?”

“이야기를 들으니 관도를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빨가벗은   보여줬다면서요?”

“우리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 빨가벗고 보지 보여주니 기분이 어떻던가요?”

하녀들도 비아냥거렸다.

“이젠 우리 정도는눈에도 안 들어오는 모양이야.”

“돌아가신 장주님의 명예를 생각해서라도 저럴 바에는 차라리 자살을 했어야지.”

“죽은 장주님도 그렇지만 아직 살아계신 작은 장주님 생각도 해야지. 어미라는 계집이 저렇게 남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빨가벗고 돌아다니니 이제 작은 장주님이 세상에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겠어.”

“저런 수치도 모르는 계집년을 그동안 마님이라고 떠받들어 왔다고 생각하니 정말 화가 나.”

그리고 어째서인지 양세현이 들렀던 마을의 농민들도 몇 명 있었다.

“이년아 아침처럼 보지 만져줄까?”

“이년아 아주 보지를 까 벌리고 뛰어.”

하인과 농민 조롱과 하녀들의 멸시에 가득한 욕설을 뒤로하고 양세현은 관도를 향해 달려갔다.

양세현은 하인, 하녀들과 마을 사람들이 자신을 대하는모습이 변화하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이해가 안 갈 정도였지만 그런 의문은 앞으로 발가벗은 채로 관도를 달릴 생각을 하니 그렇게 오래가지도 않았다. 수치나 부끄러움을 넘어서 이젠 거의 무서울 정도였다.

조금  관도 앞에서 구양선을 기다릴때만 해도 머릿속이 텅 빌 정도였는데 이젠 아예 사람들로 북적이는 관도를 완전히 발가벗은 알몸으로 뛰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자 머리가  비는 정도가 아니고 자기가 자기 자신이 아닌듯한 그런 기분을 느꼈다.

정신이 너무 멍해져서 과연 자신이 양세현이 맞고 자신의 죽은 남편이 사도백천이 맞고 자기에게 사도운이라는 아들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양세현은 성무장에서 관도로 이어지는 길이 영원히 계속 이어졌으면 싶었지만 세상에는 끝없이 이어지는 길은 없는 법이고 바로 관도가 나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관도가 아니고 관도가 보이기 시작하는 부분이었지만 관도를 지나는 사람들에게 훤히 보이는 지역이니 관도라고 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평소라면 관도를 지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쪽에 관심도 두지 않고 그냥 지나가겠지만 이때는 아침에 자신이 발가벗고 관도 앞에 있었던 영향인지 지나는 사람 대부분이 이쪽을 바라보며 지나고 있었고 그들은 전부 발가벗고 뛰어오는 양세현을 발견할  있었다.

무공의수위가 올라가면 자연 눈과 귀가 밝아진다. 양세현 또한 무공이 강해지면서 눈과 귀가 밝아졌는데 때문에 멀리 관도를 지나는 사람들이 나누는 이야기가 빠짐없이 들려왔다. 양세현은 무공을 익힌 이후 지금까지 자신의 밝은 귀를 지금처럼 원망해 본 적이 없었다.

“어이쿠, 저기 좀 봐 진짜로 웬 여자가 발가벗은 채로 뛰어오고 있어.”

“어이쿠 정말이네, 그럼 아침에 여기 발가벗은 여자가 있었다는얘기도 진짜인 모양인데.”

“저길 보면 성무장에서 오는 게 틀림없는데 도대체 어떤 여자길래 성무장에서 발가벗고 나오는 걸까?”

“혹시 사도부인에게 벌을 받는 거 아닐까?”

“설마 사도부인도 여자인데 여자에게 저런 벌을 줄리 있겠나. 게다가 사도부인이 저렇게 남을 벌 줬다는 얘기도 들은 적이 없네.”

“웬 걸, 예전에 십이혈마를 추종했던사파 놈들을 징벌할 때 사도부인이 굉장히 무서웠다더군.”

“하긴 성무장에서 오는 걸 보면 사도부인의 명령일 가능성이 제일 높은 거 같기는 한데 말이야.”

“그나저나 저 몸매 좀 보게. 저렇게 쭉 빠진 다리하고 가는 허리하고 어이쿠 사람 정말 죽여주는군.”

“어이쿠 저 얼굴도 좀 봐. 아까는 얼굴이 안 보여 잘 몰랐는데 세상에 저런 미인 본 적 있나?”

“맹세코 저런 미인은 난 처음보네. 양주 백양루의 수향이가 미인으로 유명해서  번 얼굴을 본 적이 있긴 하지만 저만한 미인은 절대 아니었네.”

“사도부인이 그렇게 미인이라던데  여자도 그 못지않겠는 걸.”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길래 저런 벌을 받는 걸까?”

“설마 너무 예뻐서 벌을 주는 건 아니겠지?”

“그럴 리야 있나. 혹시 뭔가 지독하게 음란한 일을 하다가 벌을 받는  아닐까?”

양세현은 쏟아지는 말들을 들으면서 울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 벌을 준다는 사도부인이 바로 지금 벌을 받고 있는 자신이라고 소리치고 싶을 정도였다. 그나마 조금 다행인 점은 발가벗고 달리는 자신을 저들이 말하는 성무장의 사도부인 양세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는 정도였다.

양세현은 어느덧 관도로 접어들어 있었다. 알몸의 여인이 달리는 모습을 보고 누군가 다가와서 집적거리지는 않을까 우려했지만 다행히 그러는 사람은 없었다. 누군가 다가온다고 하더라도 양세현 본인의 무공이 고강하니 무서울 거야 없지만 딱히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주위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정말 예쁜데 한 번 가서 만져보고 싶군.”

“어이쿠 그런 소리 말게 오늘 아침에도  여자가 발가벗고 무릎 꿇고 있는 걸 보고 누가 다가가려고 했었는데 무공이 엄청났다고 하네.”

“그런 무림의 고수가 어째서 저렇게 사람들 앞에서 홀딱 벗고 달리는 걸까?”

“그거야 우리가 알 수 있나, 그냥 구경이나 하라고 괜히 무림의 일에 끼어들지 말고.”

양세현이 발가벗은 채로 달려가니 가까이 있던 사람들이 보고 깜짝 놀라서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를 쳐댔고 그 소리에 놀라 반대쪽으로 걸어가느라 등 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도 모르던 사람들도 깜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관도를 지나가던 사람들 대부분이 너무 놀라 그 자리에 멈춰서 버렸다. 그리고는 그대로 양세현이 불룩한 젖무덤을 물을 가득채운 가죽주머니처럼 뭉클뭉클 출렁거리며 다가와 저 멀리 달려간 뒤에야 겨우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리고 한숨을 쉬었다.

관도에서 양세현을 마주친 놀란 사람들이 서로 소곤거리며 나누어대는 이야기들이 귀를 찌르는 점을 빼고는 특별히 뛰어가는 양세현을 방해하는 것은 없었다.

때때로 상인이나 여행객들이 아닌 관리로 보이는 사람을 만나기도 했지만 양세현이 무림인이라는 걸 알고는 아무도 양세현을 제지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간혹 양세현이 미친 여자인 줄 알고 잡으려드는 사람이 있었지만 양세현이 아주 약한 무공을 선보이면 바로 뒤로 물러났다.

곤혹스러운 곳은 개울 위에 놓인 다리를 지날 때였다. 성무장에서 호주로 가는 관도에는 중간 중간 가로막는 조그만 개울이 많았다. 그리고 개울이라고 해도 꽤 넓은 곳이 많아 다리도 그만큼 길었는데 번화한 도시 안에 놓인 다리가 아니라 일개 관도의 다리인지라 마차나 수레 한 대가 겨우 지날 수 있을 정도의 넓이에 불과했다.

사실 사람이 많이 지나는 관도라고 해도 마차 여러 대가 한꺼번에 지나는 일은 굉장히 드문지라 그 정도 넓이로도 충분했는데 양세현으로서는 발가벗은 알몸으로 지나야 하니 문제였다.

양세현이 뛰어오는 모습을 보면 일단 사람들이 좌우로 비켜서서 바라보기만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굉장히 가까이 붙어야만 겨우 지날 수 있으니 다리 위에 서있던 사람들은 양세현의 알몸을 바로 코앞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리고 대개의 사람들은 바로 코앞을 지나가는 양세현의 알몸을 핥듯이 훑어보았다. 특별히 음란한 시선을 가진 것이 아니라 생애 한 번도 보기 힘든 미인이 발가벗고 지나가니 호기심 때문에라도 바라보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양세현이 깜짝 놀란 일도 그런 다리를 지날 때였다.

그 다리를 지날  두 사람이 다리 위의 같은 위치에서 좌우로 갈라서는 바람에 두 사람 사이로 지날 틈이 너무 좁아서 두 사람과 몸을 부딪치지 않고는 지날 방법이 없었다.

 사람은발가벗은 절세미인이 다리 위로 달려오자 너무 놀라서 그저 길을 비킨다는 생각만 했을 뿐 약간 자리를 옮겨 길을 내줘야한다는 점까지 미처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양세현은 정말 울고 싶은 심정으로 두 사람 사이를 억지로 지나는데 둘 중에 젊은 사내가 엉덩이를 쓰다듬었다. 양세현은 깜짝 놀라 “앗” 하는 짧은 비명을 지르며 튕겨나가듯이 앞으로 달려갔다.

양세현이 앞으로 달려가는데뒤에서 젊은 사내를 야단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놈아 정말 죽고 싶어 환장했느냐? 저 이상한 여자가 그냥 지나가서 망정이지 널 죽이기라고 했으면 어쩔 뻔했느냐? 그렇게 명을 재촉하고 싶어?”

“정말 저도 모르게 손이 간 거예요. 눈앞에 저 여자의 둥근 엉덩이가 있기에 손이 저절로 올라간 거예요. 저도 지금 내가 왜 그랬나 싶어서 무서워 죽을 지경이에요.”

그렇게 이십 여리나 되는 관도를 달리고 몇 개나 되는 다리를 지나고서야 겨우 구양선이 명령했던 호주성 성벽이 나타났다.

그리고 성벽  가운데 호주성의 거대한 성문이 있었다. 지나는 사람이 많은 곳이라 성문 앞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고 그들 앞에 발가벗은 양세현이 나타나자 큰 소동이 일어났다.

입을  벌린 채 다물지도 못하고 그저 바라만 보는 중년인이 있었고 고함을 지르며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여자도 있었고 뭔가 뜨거운 것을 먹거나 마시다가 그걸 자기 몸에 쏟았는지 비명을 지르며 펄쩍펄쩍 뛰는 사내도 있었다.

“어머나 저 여자 뭐야? 왜 저렇게 옷을 전부 다 벗었어?”

“앗 뜨거, 어이쿠 다 쏟았어. 어이쿠 뜨거워, 물, 물 어딨어. 허벅지, 허벅지를 전부  데었어.”

심지어 성밖으로 놀러 나온 건지 성벽 주위를 유유히 거닐다가 너무 놀라서 발을 헛디뎌 호주성의 해자와 연결된 강에 빠지는 젊은이도 있었다. 그나마 더러운 해자에 빠진 게 아니라 다행이었다.

사방에서 소란스럽게 소리를 질러댔다.

“뭐야, 저 홀딱 벗고 나타난 미친년은?”

“미, 미친 거 맞겠지?”

“미친년이 아니면 어느 여자가 성문 앞에 빨가벗고 나타난단 말이야.”

“그나저나 미친년치고는 정말 예쁘네.”

“미친년이 아무리 예뻐 봤자 미친년이지  미친년을 보고도……, 어라 정말 예쁘네.”

“어휴 저 쭉 뻗은 다리랑 가는 허리  봐.”

“난 우리 마누라도 저렇게 완전히 빨가벗겨서 세워놓고 구경하지는 못했는데 오늘 정말 희한한 구경을 하는군.”

“근데 저기 보지 위에 털이 하나도 없어.”

“어이쿠 정말이네. 어떻게 저렇게  자란 여자가 거기에 털이 없지?”

“간혹 저렇게 털 없는 여자가 있다더군.”

“그나저나 털이 없으니까 보지  갈라진  완전히 다 보이네.”

“어휴 저기 쭉 갈라진 거 좀 봐.”

“거기다 움찔움찔 움직이고 있어.”

“난 지금까지 여자 조개가 저렇게 움직이는  처음 봐.”

“젠장, 미친년보고 별 지랄들을 다 하는군. 아무리 여자에 굶주렸고 저년 얼굴이 예쁘다고 해도 미친년 보면서 그게 무슨 짓이야.”

“쳇 그렇긴 하네. 누가 옷 좀 입혀 줘야겠어.”

양세현은 달려오는 길에서는 자신이 발가벗고 달리는 모습을 보고 아침에 성무장 앞길에서 자신이 무릎 꿇고 앉아 있던 일을 얘기하는 사람을 많이 봤지만 여기서는 그런 얘기를 전혀 들을 수 없었다.

아침에 관도를 지나간 사람들은 나루터로 배를 타러  사람들인데 비해 지금 관도를 지나가는 사람들은 나루터에서 내려 호주성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배에서 내려 아침에 성무장 앞에서 발가벗은 여자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나루터에서 들을  있었지만 성무장에서 이십 여리나 떨어진 호주성에는 아침에 벌어졌던 일이 아직 전해지지 않은 듯싶었다.

소란스럽게 떠들어대던 사내들 중 하나가 짐에서 낡은 장포 하나를 꺼내어 양세현에게 입혀주려고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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