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화 〉초산사효 4
4.
성무장으로 가는 샛길로 접어들어서도 두 사내는 계속 양세현의 엉덩이를 찰싹찰싹 때렸다.
“이년아 더 빨리, 더 빨리 뛰어.”
양세현은 채찍이 엉덩이에 떨어질 때마다 짧은 비명을 지르고 엉덩이를 흔들었다.
“아앗, 아파요. 아흐응 나리 제발.”
뒤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둘째가 말했다.
“진짜 아파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은근히 셋째와 넷째를 유혹하는 건지 모르겠군요.”
첫째가 말했다.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고 어쩌면 두 번째인데 본인도 모르고 하는 일일 수도 있을 걸세. 하여간 나도 저런 계집은 오늘 처음 보는군.”
양세현이 성무장길로 접어들었을 때 무슨 일인지 몰라도 하인과 하녀 몇 명이 나와 있었다.
양세현이 대문 밖을 나와 지나갈 때 조롱이나 멸시의 농담을 지껄여대던 하인과 하녀들은 웬 무림인들이 양세현을 몰고 오자. 모두 고개를 숙이고 모르는 척하며 자기 일에 전념하는 척 했다. 그들 모두 흉악한 무림인들에게는 말 한마디를 잘못했다가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셋째가 채찍으로 양세현의 엉덩이를 때리며 말했다.
“저 농지들이 전부 성무장의 것이냐?”
“아얏, 아웅 아파라, 네, 나리 저 땅들은 전부 성무장 것이에요. 아파요 나리 제발.”
양세현의 귀에 멀찌감치 서서 자기들끼리 소곤거리는 하녀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가장 공력이 뛰어난 양세현의 귀에만 들릴 정도의 낮은 소리였다.
“어휴 이제 남자까지 끌어들이는군.”
“그러게 말일세. 이제 돌아가신 장주님이나 남궁세가에 가 있는 작은 장주님 체면은 정말 아예 생각도 안 하나봐.”
숲길을 지나서 성무장 앞까지 다가가도 아무도없었다. 양세현은 바로 대문과 중문을 지나 대청으로 달려갔고 그 뒤를 초산사효가 다가 올 싸움에 약간 긴장하며 따라갔다.
대청 마당으로 접어들자 대청에 혈신문 사람들과 남해검문 사람들이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술을 마시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양세현이 그들에게 뛰어가고 뒤를 따르던 초산사효는 상대가 전부 여자들뿐인 걸 보고 약간 의아해 하며 뒤를 따랐다.
대청에서 술을 마시던 혈신문과 남해검문, 점창파의 여인들도 양세현이 웬 말 탄 남자들을 데려오자 의아한 표정들이었다.
양세현이 대청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혈신문의 암퇘지 양세현이 문주님의 명을 받들어 나루터까지 달려갔다 왔습니다.”
양세현이 자기이름을 밝혔지만 초산사효중첫째를 제외하면 다들 아무렇지도 않았다.
사실 양세현은 유월련이나 단명선, 한교운과 달리 그저 사도부인이라는 이름으로만 강호에 알려졌고 양세현이라는 이름 자체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다른 세 사람은 강호무림에서 자신의 지위와 무공으로 주로 활동한 반면 양세현은 사도백천의 아내라는 지위로 주로 활동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양세현이라는 이름을 알고 있는 자도 간혹 있었는데 초산사효의 첫째가 그런 것 같았다.
초산사효의 첫째도처음에는 양세현이라는 이름을 어디선가 들어본 듯 했지만 그게 사도부인의 이름이라는 사실은 기억나지 않는지 몇 번 되뇌어 보다가 경악한표정을 지었다.
사도부인의 집안 조카 정도로 보았던 계집이 사도부인 본인일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기 때문이다. 사도백천의 아내에 그 자신도 무림최고수 중의 한 명인 양세현이 완전히 발가벗고 수십 리 관도를 달리고 나루터에 나타난다는 생각을 아예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첫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 네 년이 양세현이라고? 하지만 분명 성무장에는 지금 사도부인이 없다고 하지 않았느냐?”
양세현이 고개를 들고 무릎 꿇은 자세를 그대로 취한 채 대답했다.
“전 그때 나루터에 있었으니 당연히 성무장에는 없었죠. 전 나리들께 거짓말은 하지 않았어요.”
초산사효의 셋째와 넷째는 여전히 상황파악을 못했는지 의아한 표정을 지었고 둘째는 첫째의 말뜻을 이해하고 똑같이 경악했다.
그리고 잠시 뒤 셋째와 넷째도 첫째의말뜻을 깨닫고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그들은 사도부인이 없는 틈을 타 성무장을 털어먹고 있는 혈신문이라는 무명 잡배들을 대충 쫓아내고 자신들이 대신 성무장을 턴 뒤에 제법 마음에 든 눈앞의 발가숭이 계집애를 데리고 떠난다는 생각을 하고 왔는데 눈앞의 발가숭이 계집애가 사도부인 본인이라면 전혀 얘기가 달라지는 것이었다.
사도부인 본인을 제압해서 저렇게 완전히 발가벗겨 관도를 달리게 하는 여자들이라면 강호의무명 잡배일 수가 없는 것이다. 더구나 양세현 본인 입으로 암퇘지라고 부르게 할 정도라니 도대체 상대가 어떤 인물들인 상상이 되지 않았다.
대청에 앉아서 의아해 하던 혈신문주 구양선이눈짓을 하자 청아가 일어나 포권을 하며 말했다.
“그대들은 누구고 무슨 일로 여기 성무장으로 오셨나요?”
다른 사람들은 입도 열지 못하고 있는데 초산사효의 첫째가 간신히 입을 열고 말했다.
“우리는 강호에서 초산사효이라고 불리는 몸들이오. 조금 전 관도를 지나는데 이 여인이 알몸으로 관도를 달려가기에 성무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궁금해서 뒤를 따라온 것이오.”
초산사효는 상대방에게 소개할 때 대부분 스스로를 높여서 초산사응이라고 말하는 버릇이 있었지만 지금은 감히 그렇게 자신을 높이지 못하고 스스로를 강호에서 부르는 명칭인 초산사효라고 칭했다.
대청에 앉아 있던 유아가 양세현에게 말했다.
“돼지야 이분들 말씀이 맞는지 네가 말해봐.”
초산사효는 열네댓 살정도밖에 안 되어 보이는 어린 소녀가 양세현을 거침없이 돼지라고 부르자 의아해 하며 내심 정말 잘못 걸렸다고 초조해 졌다.
양세현이 공손하게 사실을 설명했다.
“네 암퇘지가 나루터로 가서 사람들에게 암퇘지가 혈신문의 전리품이라는 걸 말하고 있는데 이분 나리들이 갑자기 오셔서는 암퇘지 몸뚱이를 마구 만지면서 암퇘지가 성무장에 왔는지를 묻고는 암퇘지가 발가벗고 다니는 건 양세현이 성무장을 비운 틈에 다른 자들이 성무장을 점거했다고 오해하고는 대신 성무장을 털어야겠다고 말씀하시면서 암퇘지를 여기까지 몰고 왔어요.”
그 뒤로 양세현이 몇 가지 이야기를 더 하자 모두에게 초산사효의 의도가 훤히 드러나 버렸다. 혈신문주 구양선도 무척 우스운지 미소를 지었고 대청에 앉아 있던 다른 여인들이 배를 잡고 깔깔거리며 웃어댔다.
초산사효는 양세현이 자신들의 의도를 전부 밝혀버리자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첫째도 속으로 양세현에게 욕을 퍼붓고 저주했다.
“미친 갈보년, 네년은 사도백천의 마누라에다 무림에서의 지위가 그렇게 높은 주제에 어떻게 그렇게 홀딱 벗고 관도를 달려서 우리가 오해하게 할 수 있단 말이냐. 아니 관도에서 빨가벗고 달려가는 년을 우리가 어떻게 양세현 네 년인 줄 알겠느냐. 게다가 나루터에서 우리에게 조금도 경고를 주지 않고 그대로 끌고 온 것은 틀림없이우리 초산사효를 저승길로 안내하려고 한 짓이겠지. 망할 갈보년 네년 스스로 암퇘지라고 했으니 그냥 돼지 먹이나 되어라. 이 썩어 문드러질 갈보년아.”
청아가 깔깔 웃으며 말했다.
“우리 돼지가 말한 게 모두 맞나요?”
초산사효의 나머지 셋은 공포에 질려 있어 대답할 상황이 아닌지라 첫째가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대략 비슷하긴 하오만 그건 우리도 어쩔 수 없었소. 우리는 이전에 혈신문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었고 게다가 관도에서 발가벗고 알몸으로 달리는 여자가 사도대협의 아내일지 어찌 상상이나 했겠소.”
청아가 밝은 표정으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특별히 귀하를 비난할 생각은 아니랍니다. 전 그저 사실 관계를 물어 보는 거예요.”
첫째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 망할 갈보년이 말한 것은 모두 사실이오. 우리가 귀문에 이런 무례를 범했으니 어찌 무사히 돌아갈 생각을 하겠소. 우리 초산사효은 이미 각오를 하고 있소.”
구양선이 미소를 지으며 뭔가 속으로 생각을 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유아가 옆으로 달려와 뭔가 귓속말을 했다. 양세현은 유아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으로 봐서 실제로는 전음을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유아가 뭔가 제안을 했고 구양선은 그게 마음에 들었는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구양선이 초산사효를 향해 말했다.
“귀하들이 본문에 무례를 범한 사실을 인정하니 쉽게 돌아갈 수 없다는 건 알고 계시겠죠?”
혈신문의 문주로 보이는 구양선이 청아 대신 직접 입을 열어 말하자 초산사효의 나머지 셋이 얼굴이 사색이 된 가운데 첫째 또한 하얘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호랑이 굴에 스스로 걸어 들어왔으니 어찌 무사히 돌아가길 기대하겠소.”
“좋아요. 이해를 하시는군요. 제가 제안을 하나 하겠어요. 응낙하고 않고는 귀하의자유지만응낙하신다면 결코 나쁘진 않을 거예요.”
첫째가 솔깃해져서 물었다.
“어떤 제안이오?”
“본문의 협력자가 되는 거예요. 앞으로 본문은 무림맹은 물론이고 많은 적과 싸워야 해요. 하지만 보시다시피 본문은 여기 있는 사람들과 다른 곳에 있는 몇몇이 전부라 사람이 너무 부족해요. 귀하들이 본문에 계속 힘을 보태달라는 얘기예요.”
첫째는 구양선의 말이 협력자이지 사실상 혈신문의 수하로 들어오라는 제안임을 깨달았다.
첫째는 혈신문의 지금까지 강호를 떠돌며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하던 자유는 없어지겠지만 대신 생명의 안전을 보장받고 혈신문 같은 엄청난 배경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대신 혈신문의 수하가 된다면 행동의 자유가 상당한 제약을 받게 되고 만약 혈신문이 패배할 시 똑같이 무림 공적으로 몰릴 우려가 있었다.
첫째가 물었다.
“우리가 혈신문에 협력하면 주로 무슨 일을 하게 되는 거요?”
“일단 귀하들이 본문의 협력자임을 공표해야 하겠죠. 그리고 우리가 하기 어려운 일들을 좀 도와야 해요.”
구양선은 양세현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일단 저 아이를 훈련시키는 일을 좀 도와주세요. 우리는여자들뿐이라 저 아이를 훈련시키는 일에 남자의 도움이 필요하답니다.”
초산사효뿐만 아니라 양세현까지 구양선의 제안에 깜짝 놀랐다. 구양선은 초산사효를 살려줄 뿐만 아니라 양세현까지 그들 손에 맡기겠다는 것이 아닌가.
초산사효의 나머지 셋은 살려줄 뿐만 아니라 양세현까지 자신들에게 맡기겠다고 하자 얼굴에 기쁜 빛이 가득했다. 하지만 첫째는 다른 얘기를 꺼냈다.
“귀문의 협력자가 되어 충분히 저 암퇘지를 훈련시켜 드릴 수 있소. 하지만 우리도 저 암퇘지를 훈련시켜 드리는 대신 뭔가 대가를 받아야하지 않겠소이까?”
첫째의 당돌한 요구에 구양선과 청아를 포함한 다른 혈신문의 여인들 중몇몇과 또 무릎 꿇고 앉아 있던 양세현까지 조금 놀랐다.
양세현은 초산사효의 첫째가 목숨을 건진 것에 만족하지 않고 과감하게 대가까지 요구하는 모습을 보면서 초산사효의 첫째가 제법 재간이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혈신문과 남해검문의 어린 소녀들은 무공은 지극히 고강해도 이런 방면으로는 잘 모르는데 비해 양세현은 강호에서 오래 동안 생활했기 때문에 이런 일을 잘 알았다.
구양선은 젊은 나이에 강호 경험이 별로 없을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바로 초산사효 첫째가 제법 재간이 있다는 점을 알아보았다.
구양선이 웃으며 말했다.
“제가 귀하를 잘못 판단했던 모양이네요. 좋아요 귀하의 요구를 받아들이죠. 저 아이를 훈련시키는 대가로 호주에 있는 성무장 소속의 반점 두 개를 드리면 어떻겠어요?”
첫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일은 장사의 흥정이아니니 어찌 밀고 당기며 실랑이를 하겠소. 우리 초산사효는 귀문의 제안을 받아들여 귀문의 협력자가 될 것을 약속드리겠소.”
양세현은 일이 엉뚱하게 흘러가 죽거나 지독하게 혼이 날 걸로 생각했던 초산사효가 혈신문의 협력자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제 자신까지 그들 수중에 떨어졌다고 생각했다.
양세현은 자신이 초산사효의 수중에 떨어진 것이 그렇게 싫지만은 않았고 묘한 기대감마저 들었다. 다만 그들이 자신을어떻게 괴롭힐지는 조금 걱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