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1화 〉돼지우리 안에서 3 (81/148)



〈 81화 〉돼지우리 안에서 3

3.

“꿀꿀! 꿀꿀! 꿀꿀! 꿀꿀!”
“꿀꿀! 꿀꿀! 꿀꿀! 꿀꿀!”
“꿀꿀! 꿀꿀! 꿀꿀! 꿀꿀!”

촌장의 며느리가 떠나고 이미 그 자리에는 듣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양세현은 계속 돼지처럼 꿀꿀거렸다.

생각 같아서는 사람의 말로 돼지우리에서 꺼내 달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보는 사람이 없다고 해서 네 발로 엎드린 상태에서 혈신문의 지엄한 명령을 어길 용기 따위는 이미 없었다.

양세현이 돼지우리의 벽에 붙어서 꿀꿀거릴 때 몇 마리의 돼지가 호기심이 생겼는지 양세현 가까이 다가왔다.

자신들을 우리에 넣어두고 먹을 것을 주는 인간들과 똑같이 생겼으면서도 발가벗고 우리 안에서  발로 기어다니는 여인이 이상하게 여겨진 것인지 아니면 양세현의 몸에서뭔가 특이한 냄새라도 나는 것인 몰라도 돼지들은 주둥이를 양세현의 몸 가까이 가져다대고 킁킁거렸다.

“꾸울, 꾸울, 꾸울, 꾸울.”

양세현 옆으로 다가온 돼지들은 바닥으로 늘어진 젖꼭지를 보아서 전부 새끼 딸린 암퇘지로 보였다.

돼지는 수퇘지와 암퇘지를 합사하지 않고 또 새끼를 낳은지 얼마 안 된 돼지는 따로 키우는 듯 했지만 새끼 돼지도 우리 안에 제법 보이는 걸로 봐서는  자란 새끼돼지는 여기서 합사하는 듯싶었다.

새끼 딸린 암퇘지들은 양세현이 자기새끼에게 위해가 되는 존재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려는지 주동이 끝으로 양세현의 발가벗은 알몸을 쿡쿡 찌르기 시작했다.

“꾸울, 꾸울, 꾸울, 꾸울.”

양세현은 무척 두려워졌다. 돼지들이 딱딱한 주둥이로 마구 찔러대고 또 물려고 하자 돼지가 사람 시체를 먹기도 한다는 얘기가갑자기 떠올랐다.

지금 돼지들에게 물어 뜯기기라도 하면 돼지들에게 잡아먹힐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러나 양세현은 영리한 여자였고 암퇘지들이 뭘 원하는지도 바로 알아차렸다.

“꿀꿀! 꿀꿀! 꿀꿀! 꿀꿀!”
“꿀꿀! 꿀꿀! 꿀꿀! 꿀꿀!”
“꿀꿀! 꿀꿀! 꿀꿀! 꿀꿀!”

양세현은 주위를 돌면서 다른 암퇘지들에게 계속 꿀꿀거리고 적의가 없다는 사실을 보이기 위해 몸을 낮추고 엎드려 기었다.

몸을 낮추자아래로 늘어진 커다란 젖가슴이 질척한 바닥에 닿았다. 하지만 돼지들에게 적의가 없다는 사실을 보이기 위해서는 바닥에 쓸리는 젖꼭지 따위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꿀꿀! 꿀꿀! 꿀꿀!꿀꿀!”
“꿀꿀! 꿀꿀! 꿀꿀! 꿀꿀!”
“꿀꿀! 꿀꿀! 꿀꿀! 꿀꿀!”

양세현은 다른 암퇘지들 마리  마리 돌아가며 계속 꿀꿀거리고 연신 굽실굽실 머리를 숙이며 자신은 적의가 없고 너희들의 아래라는 사실을 인식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사람에게 하듯이 머리를 굽실거리며 몸을 낮추는 것이 돼지들에게 얼마나 통할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었다.

연신 머리를 굽실거리던 양세현이 몸을 바짝 낮춰 젖무덤과 아랫배까지 전부 바닥에 붙이고 납작 엎드려 마치 개구리처럼 바닥을 기어가자 그제야 암퇘지들은 양세현이 자기 새끼들에게 위협이 안 된다고 느낀 건지 적의가 사라져서 주둥이로 몸뚱이를 찌르지 않고 그저 냄새만 킁킁 맡아댔다.

생김새는 먹이를 주는 사람처럼 생겼어도 냄새에서 자신들과 같은 돼지로 느낀 걸까. 잠시 뒤 돼지들은 흥미가 사라진 듯 양세현 옆에서 사라졌다.

암퇘지들이 떠나자 양세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랫배와 커다란 젖가슴, 허벅지와 엉덩이 등에 돼지우리의 질척한 흙이 잔뜩 묻었지만 이미 그런 건 신경 쓰이지 않았다.

양세현은 이미 벽에다 아무리 꿀꿀거려도 자신을 꺼내  사람은 없다는 사실이 확실히 인지했다.

양세현은 이제 이 돼지우리 안에서 최대한 안전하게 살아가는 게 최우선 목표라고 생각했다.

다른 돼지들이 양세현에게 특별한 적대감을 느끼지 않는다고 해도 돼지들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다른 돼지들에게 위협이 될 수는 없었다.

혹여 잘못해서 새끼 딸린 암퇘지의 심기를 건드렸다간 이번에는 진짜 물어뜯길 지도 몰랐다.

양세현은 돼지우리 한쪽 귀퉁이로 기어가서 엎드린 뒤 몸을 최대한 웅크렸다.

몇몇 다른 돼지들이 양세현에게 다가와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기도 했지만 그런 돼지들도 얼마 안가 사라졌다.

양세현은 안심이 되자 갑자기 피곤해졌다. 피로함과 함께 노곤한 졸음이 파도처럼 밀려왔고 양세현은 서서히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얼마나 잤는지 알  없을 때 양세현은 눈이 번뜩 뜨였다.

양세현을 잠에서깨운 정체는 뭔지 알 수 없는 음식냄새였다. 양세현은 입에 저절로 침이 고였다. 음식냄새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어도 먹고 싶어 견디기 어려울정도였다.

“꿀꿀! 꿀꿀! 꿀꿀! 꿀꿀!”

“꿀꿀! 꿀꿀! 꿀꿀! 꿀꿀!”

“꿀꿀! 꿀꿀! 꿀꿀! 꿀꿀!”

이미 다른 돼지들도 전부 여물통이 있는 쪽으로 달려가 먹이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양세현도 도저히 참지 못하고 여물통 쪽으로 다가가 밖을 내다보았다.

밖에는 양세현이 돼지우리로 들어올 때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커다란 쇠솥 하나가 걸려 있었고 솥 안에는 뭔지  수 없는 음식이 익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장정 두 명이 뭔가커다란 나무통을 열고 안에 든 것을 솥에다 붓는 모습을 보았다.

양세현은 나무통을 보자 그게 무엇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성무장 사람들이 먹고 남은 잔반을 모으는 통이었다.

백 명이 훨씬 넘는 성무장 사람들이 먹고 남은 잔반을  통에 모아서 돼지먹이로 사용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났다.

 태호에서 성무장 소유의 어선이 잡은 물고기들 중 팔리지 않은 것 중에서 먹기 어려운 것은 돼지 먹이로 보낸다는 얘기도 들었었다.

물론 그런 것들만으로는 돼지들을 먹이기에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콩비지나 기름을 짜고 난 콩깻묵 같은 것도 돼지 먹이로 사용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 온갖 잡탕을 모아서 돼지 먹이로 사용하는 것이었고 이제 양세현은 다른 돼지들과 함께 그것들을 먹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생각해도 솥에서 풍겨오는 냄새는 너무나 큰 유혹이었다.

“꿀꿀! 꿀꿀! 꿀꿀! 꿀꿀!”

“꿀꿀! 꿀꿀! 꿀꿀! 꿀꿀!”

“꿀꿀! 꿀꿀! 꿀꿀! 꿀꿀!”

솥 안에서 돼지 먹이가 익어가자 돼지들이 일제히 꿀꿀거리며 보채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보채는 돼지들 중에는 양세현도 포함되어 있었다.

“꿀꿀! 꿀꿀! 꿀꿀! 꿀꿀!”

양세현도 먹이를 기다리며 꿀꿀거리고 있자 촌장의 며느리가 다가오더니 말했다.

“어때 보지야? 저건 돼지죽인데 너도 먹고 싶어?”

양세현은 돼지죽이 정말 먹고 싶었다. 그게 아무리 지저분하고 더러운 잡탕으로 만든 것이라도 좋았다.

“꿀꿀! 꿀꿀! 꿀꿀! 꿀꿀!”

양세현은 열심히 꿀꿀거려서 자신이 얼마나 음식을 기다리고 있는 지 알렸다.

여인이 깔깔 웃으면서 말했다.

“이 돼지죽 뭘로 만드는 건지 알고 있니?”
양세현은 지금 끓이고 있는 돼지죽을 뭘로 만드는지  알았다.“

“꿀꿀! 꿀꿀! 꿀꿀! 꿀꿀!”

“몸뚱이에 흙도 잔뜩 묻었고 뭘로 만드는지 알면서도 돼지죽을 먹고 싶다니 완전히 진짜 돼지가 다 되었네. 넌 돼지들이랑 같은 여물통에서 먹어야 하는데 그럴 수 있어.”

양세현은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꿀꿀! 꿀꿀! 꿀꿀! 꿀꿀!”

양세현이 계속 먹이를 보채자 솥 앞에서 돼지죽을 끓이던 사내들이 큰소리로 웃었다.

“하하하하, 우리 꿀꿀이 마님이 이제 진짜 돼지가 다되었구먼.”

“그러게 말일세. 평소에 먹던 걸 생각하면 이걸 먹는다는 생각만 해도 구역질이 올라와야 하는 거 아닌가?”

사내들이 말하는 그런 건 이제 과거의 일이었고 양세현 자신은 이제 혈신문의 암퇘지에 불과했다.

“꿀꿀! 꿀꿀! 꿀꿀! 꿀꿀!”

양세현은 계속 꿀꿀거리며 먹이를 보챘다.

양세현이 먹이를 보채는 모습을 보면서 사내들이 솥에서 익힌 돼지죽을 나무통에 옮겨 담았다.

그리고 통을 들고 돼지우리 앞으로  통에  돼지죽을 돼지들 앞에 놓인 길쭉한 여물통에 부었다.

“꿀꿀! 꿀꿀! 꿀꿀! 꿀꿀!”

“꿀꿀! 꿀꿀! 꿀꿀! 꿀꿀!”

“꿀꿀! 꿀꿀! 꿀꿀! 꿀꿀!”

돼지들이 일제히 길쭉한 여물통으로 몰려들어 돼지죽을 먹기 시작했다. 양세현도 돼지들 틈에 끼어들어 돼지죽을 먹고자 했지만 쉽지 않았다.

여기 있는 돼지들은 새끼들을 제외하면 전부 양세현 자신보다 서너 배는 더 덩치가 나가는 돼지들이었고 그들이 그 거대한 덩치와 몸무게로 옆으로 밀어대는 걸 몸이 가벼운 양세현으로서는 도저히 버티기가 어려웠다.

결국 여물통 옆으로 밀려난 양세현은 이번에는 새끼들이 먹고 있는 여물통 쪽으로 가보았지만 거기서는 어미가 화를 내며 달려들어 감히 다다갈 수도 없었다.

양세현이 어쩌지 못하다가 비록 허락받지는 못했지만 차라리 무공을 사용해서라도 돼지죽을 먹어야겠다고 결심했을 때 여인이 깔깔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먹고 싶으면 내가 자리를 만들어 줄까?”

양세현은 귀가 번쩍 뜨이는 느낌이었다.

“꿀꿀! 꿀꿀! 꿀꿀! 꿀꿀!”

여인의 말일 떨어지자마자 양세현은 여인을 향해 머리를 질척한 바닥에다 연신 조아리며 계속 꿀꿀거렸다.

“꿀꿀! 꿀꿀! 꿀꿀! 꿀꿀!”

여인이 질척한 바닥에 머리를 조아리는 양세현을 보며 깔깔 웃더니 말했다.

“뭔가 재주라고 부리게 하고 싶지만 그건 이미 많이 봤고 거기 바닥에 납작 엎드려서 보지를 문지르면서 기어 봐.”

양세현은 여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질척한 바닥에 납작하게 몸을 붙이고 보지를 바닥에 비비면서 개구리처럼 바닥을 기었다.

“꿀꿀! 꿀꿀! 꿀꿀! 꿀꿀!”
“꿀꿀! 꿀꿀! 꿀꿀! 꿀꿀!”
“꿀꿀! 꿀꿀! 꿀꿀! 꿀꿀!”

다른 돼지들이 먹이를 먹고 있을  그렇게 한참이나 바닥을 기자 여인이 웃으며 말했다.

“좋아 그만하면 됐으니까 이쪽으로 와.”

여인은 회초리로 먹이를 먹는 돼지들을 한쪽으로 몰면서 여물통에 조금 자리를 내주었다.

양세현은 간신히 그 틈으로 끼어들어가 돼지죽을 먹었다.

하지만 돼지죽의 양이 너무 적었다. 양세현은 대법을 받은 뒤 다 자란 돼지 한 마리가 먹는 양보다 훨씬 많은 먹을 것을 필요로 했다.

“꿀꿀! 꿀꿀! 꿀꿀! 꿀꿀!”
“꿀꿀! 꿀꿀! 꿀꿀! 꿀꿀!”

돼지들이 먹이를 다 먹고 여물통에서 떠났는데도 양세현은 여물통을 떠나지 못하고 계속 꿀꿀거리며 먹을 것을 요구했다.

여인이 그런 모습을 보며 말했다.

“어머나 그거로는 양이 안 차서  먹고 싶어?”

“꿀꿀! 꿀꿀! 꿀꿀! 꿀꿀!”

“그럼 일단 여물통에 남은 걸 전부 핥아 먹어.”

돼지는 먹이를 그다지 깨끗하게 먹지 않는지라 여러 개의 여물통에는 음식 찌꺼기가 약간씩 남아 있었다.

양세현은 여인의 말이 떨어지자 그렇게 남은 여물통을 깨끗이 핥기 시작했다.

양세현이 그렇게 여물통을 깨끗이 핥아먹자 여인은 돼지죽을 양세현 앞에 놓인 여물통에다 조금씩 떠 주었다.

양세현이 계속 돼지죽을 먹는 모습을 본 다른 돼지들이 몰려왔지만 여인인 회초리를 매섭게 휘둘러  쫓아내고는 양세현이 배를  채울 때까지 먹이를 퍼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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