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화 〉남해검문 4
4.
전아와 선아 앞에 놓인 장검들은 위협적이었다. 날카로운 칼날이 온몸의 요혈을 노리는 것도 위협적이었지만 전아와 선아아 몸에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라 피부를 살짝 스치기만 해도 피를 뿜어낼 것 같아 더 위협적이었다.
전아가 킥킥 웃으며 말했다.
“설마 정말 날 찌를 거야.”
전아의 요혈을 겨루고 있던 소녀 하나가 말했다.
“대사저의 행동은 정말 너무 이상해. 지금은 이게 최선인 것 같아.그러니 움직이지 마. 칼에는 인정이 없고 지금 대사저의 행동은 충분히 우리 남해검문을 배신하는 걸로밖에 안 보이니까.”
전아가 다른 소녀들을 돌아보자 다른 소녀들도 전부 살기 어린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전아가 그 모습을 보고 미소를 띠며 말했다.
“어휴 우리 사매들이 이렇게나 대견하게 행동할 줄 정말 몰랐지 뭐야.”
그리고 번개처럼 손을 들어 올려 자신의 요혈을 겨누고 있는 장검들을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튕겼다.
챙! 챙! 챙! 챙!
전아의 요혈을 겨누고 있던 네 자루의 장검이 순식간에 전부 검신이 부러졌다.
챙! 챙! 챙! 챙!
선아도 전아와 동시에 손을 들어올려 자신을 겨누고 있던 검신을 손가락으로 튕겼고 네 자루의 검신이 전부 부러졌다.
기아와 지아, 해아, 원아의 전아, 선아와 동갑내기인 네명의 제자는 전아와 선아가 순식간에 자신들을 겨누고 있던 검신들을 손가락을 튕겨 부러뜨리는 모습을 보고 경악했다.
전아와 선아를 대사저와 이사저라고 불러주긴 하지만 그들 네 명은 나이도 같고 입문 순서도 큰 차이가나지 않아 무공 수준은 거의 차이가 없었다.
그런데 방금 전아와 선아가 보여준 한 수는 자신들로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도 없는 높은 수준의 내공이 있어야만 가능한 한 수였다.
기아를 포함한 네 사람은 전아와 선아가 한 달만에 발가벗은 채 나타나서 사문을 배신하는 말을 하는 것도 놀라웠지만 조금 전 보여준 한 수는 몇 배나 더 놀라웠다.
방금 같은 한 수는 자신들의 사부인 한교운이나 펼칠 수준이지 이제 열여섯 살밖에 되지 않은 자신들이 펼칠 수준의 무공이 아니었다.
네 사람이 경악하고 미처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도 못했을 때 용아 옆에 앉아 있던 홍아가 번개처럼 움직여서 네 사람이 들고 있던 장검 전부를 빼앗아 가버렸다.
너무나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기아를 포함한 네 사람은 홍아가 자신들의 장검을 용아 앞이 탁자에 놓았을 때에야 비로소 자신들이 장검을 빼앗긴 사실을 깨달을 정도였다.
기아를 포함한 남해검문의 제자들은 발가벗고 나타난 전아와 선아 뿐 아니라 혈신문의 제자라는 홍아와 녹아의 무공이 너무나 높아 자신들은 절대 이길 수 없는 상대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기아가 뒤로 한걸음 물러나서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너, 너희들 이제 우릴어쩔 셈이냐?”
용아가 킥킥 웃으면서 말했다.
“아이참, 셋째 사저 그렇게 너무 무서워하지 마. 우리가 설마 사저들이랑 사매들을 해치겠어. 그냥 혈신문에 협력하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야. 물론 사저와 사매들 중 몇 명은 전아 사저랑 선아 사저처럼 빨가벗고 노예가 되겠지만 말이야.”
기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누, 누가 그런 파렴치한 짓을 한단 말이야?”
“어머나 기아 사저 너무 그렇게 자신하지 마. 기아 사저도 어쩌면 조금 뒤에 전아 사저와 선아 사저처럼 빨가벗겨 달라고 애원할지 모른다고. 지아 사저, 해아 사저, 원아 사저도 마찬가지고.”
용아에게 지명당한 지아, 해아, 원아가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용아가 킥킥웃더니 말했다.
“사저들도 너무 그렇게 자신하지 마. 전아 사저, 선아 사저 사저들이 여기 올 때 어땠는지 설명 좀 해줘.”
“네, 저는 운현쪽으로 뛰어 왔어요. 청선진, 금성, 왕가촌을 지나서 왔는데 세 고을 사람들이 제가 빨가벗고 뛰어가는 걸 구경했는데 전 정말 좋아서 죽을 뻔 했어요. 처음에는 천천히 걸어갔기 때문에 마을에 소문이 퍼졌는지 나중에 사람들이 엄청나게 나와서 구경했어요. 그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빨가벗고 알몸을 보여주니까 정말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어요.”
선아도 말했다.
“저는 전아 사저랑 달리 대성, 경강진, 천우촌을 지나왔는데 역시 저도 전아 사저처럼 마을에 들어갈 때는 천천히 걸어들어가서 사람들이 나오 길 기다렸어요. 그래서 그 고을 사람들에게 제 빨가벗은 몸뚱이를 실컷 구경시켰어요. 정말 기분이 너무 좋아서 몸이 녹아내리는 기분이었어요.”
전아와 선아가 말하는 청선진, 금성, 경강진 등은 모두 남해검문으로 오는 길목에 있는 고을들 이름이었다. 두 소녀는 각각 다른 길로 혼자서 발가벗은 알몸으로 그 고을들을 지나온 이야기를 했다.
두 소녀가 완전히 발가벗은 채 각각 세 개의 고을을 지나면서 알몸을 구경시켰다고 이야기하자 남해검문의 제자들은 자신들고 그렇게 되는 건 아닌지 극도의 공포에 질렸다.
그중에서도 제일 어린 세 명의 제자가 훌쩍훌쩍울기 시작했다.
제일 나이 어린 민아가 울면서 말했다.
“용아 사저, 그렇게 무서운 이야기 하지 마. 난 사람들 앞에서 발가벗고 달리기 싫어. 그런 거 너무 무섭고 부끄럽단 말이야.”
민아보다 한 살이 많은 다른 두 명도 울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용아가 녹아와 홍아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홍아와 녹아는 순식간에 세 명의 어린 제자를 용아 앞으로 데려왔다.
그들 앞을 막고 있건 해아와 원아가 대응조차 못할 무서운 속도였다.
용아가 세 사매를 제일 가까운 의자에 앉히고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너희들은 그런 일 하지 않아도 되니까 안심해. 이건 나이 많은 사저들에게나 해당되는 얘기란다. 그리고 나이 많은 사저들도 자기가 원하지 않으면 절대 안 시킬 거야.”
민아가 그제야 울음을 그치고 말했다.
“정말이야? 그럼 전아 사저랑 선아 사저는 왜 저렇게 빨가벗고 사람들 앞을 달렸어?”
“그건 전아 사저랑 선아 사저가 그걸 원해서 그런 거야. 두 사람은 빨가벗고 사람들 앞에서 알몸을 보이는 게 너무 기분이 좋아서 그런 거야.”
“사람들 앞에서 빨가벗고 달리는 게 부끄럽지 않고 기분 좋다고? 난 생각만 해도 부끄러워서 죽을 거 같은데 그게 진짜야?”
“물론이야. 여자가 어른이 되면 그렇게 바뀌는 경우가 있어. 그러니까 다른 사저들도 그게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 알게 될 거야.”
용아의 말을 듣고 있던 기아가 용기를 짜내어 말했다.
“사부님이 오시면 절대 네 말대로 안 될 거야. 너희들 무공이 아무리 높아도 사부님 상대는 될 수 없을거야.”
기아가 사부인 한교운 이야기를 꺼내자 용아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 맞다. 사부. 사부를 기다리게 해놓고 까먹고 있었네. 사부 빨리 여기로 와 봐.”
용아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한교운이 완전히 발가벗은 알몸으로 대청으로 들어왔다.
한교운은 두 손을 머리 뒤로 돌려 깍지를 끼고 자신의 발가벗은 알몸을 완전히 개방한 채 들어왔는데 놀랍게도 코에는 커다란 검은 쇠로 만든 코뚜레를 하고 있었다.
한교운의 코뚜레 끝에는 은빛으로 빛나는 가는 사슬이 달려 있었고 그 사슬의 반대편 끝은 보지공알에 달린 금빛 고리에 연결되어 있었다.
한교운은 그런 모습으로 대청에 들어와서 소리쳤다.
“남해보지 교운이가 용아선자님의 명을 받들어 왔습니다.”
한교운의비참한 모습을 본 제자들이 일제히 낮은 비명을 질렀다. 자신들의 사부이자 구대문파와 자웅을 겨룬다는 남해검문의 문주이며 십이혈마를 무찌른 전사들 중 하나인 한교운이 완전히 발가벗은 채 너무나도 비참한 모습으로 나타나자제자들은 뭔가 항의나 힐난의 말을 할 기운조차 사라졌다.
용아가 한교운에게 말했다.
“보지 사부, 여기까지 오면서 어떻게 왔는지 말해 봐.”
한교운이 백운산장에서 남해검문까지 지금과 똑같이 발가벗은 채 두 손을 머리 뒤로 돌려 깍지를 낀 모습으로 이백 리 길을 걸어오면서 겪은 일들을 말했다.
몇 개의 마을을 지나며 사람들이 나와서 자신을 구경하며 수군거리던 일과 미친 여자 취급으로 하며 몽둥이를 휘둘러 내쫓던 일, 불량배들이 자신의 곁으로 다가와 몸뚱이를 마구 주무르며 강제로 끌고 가려던 일, 그리고 개들에게 쫓기던 일 등을 말했다.
용아가 뭔가 의아한 듯 말했다.
“개한테 쫓겼다고? 사부 같은 개보지가 왜 개한테 쫓겨?”
“그게 수캐들이 제 보지 냄새를 맡았는지 절 보고 다가와서 제 보지에 주둥이를 대고 냄새를 맡았어요. 저도 수캐들이랑 빠구리하고 싶었지만 여기 오는 게 더 급해서 그냥 뛰어서 달아났어요.”
한교운의 말을 듣고서야 용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네 개보지는 수캐들이 환장하긴 할 거야.”
민아를 포함해 남해검문에서 가장 나이 어린 세 소녀를 제외한 모든 제자가 한교운의 말을 듣다가 신음소리를 흘렸다.
용아와 한교운의 말을 들어보면 한교운이 이미 진짜 수캐와 흘레붙었다는 뜻으로 들렸기 때문이었다.
“그럼 그렇게 빨가벗고 오면서 부끄럽거나 싫었어?”
한교운이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 보지년은 사람들이 제 빨가벗은 몸뚱이를 봐주고, 욕해주고, 만져주는 게 정말, 정말 좋았어요.”
용아는 고개를 들어 한교운의 말을 듣고만 있는 남해검문의 사저와 사매들을 바라보았다.
남해검문 여제자들의 표정을 정확히 둘로 나뉘어 있었다. 이제 열세 살이 되는 네 명의 제자는 성난표정으로 용아를 노려보고 있었고, 나머지 이제 열다섯 살과 열여섯 살이 되는 열 명의 제자는 전부 고개를 숙이고 다리를 비비꼬고 있었다.
심지어 조금 전까지 자신을 욕하며 화내던 셋째제자 기아까지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다리를 비비꼬고 있었다.
용아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보지 사부, 저 신아 사매랑 다른 어린 사매들은 내가 사부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 오해를 좀 풀어 줘.”
한교운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어머나, 용아 선자님은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어요. 제가 먼저 빨가벗고 혈신문의 노예가 되고 싶어서 편지를 남겨두고 나갔고 그 뒤에 혈신문에서 저를 본 용아 선자님과 소전, 소선 두 분 소저가 제 영향을 받으신 걸요.”
한교운은 신아를 포함한 네 명의 제자에게 자신이 여선루에서 겪은 일들을 설명해 주었다. 다만 맨 처음 홍아와 녹아에 의해 발가벗겨진 일들은 말하지 않고 스스로 발가벗고 여선루로 찾아간 일과 거기서 노예가 되어 발가벗고 일한 일부터 여선루에 들린 손님들에게 발가벗은 채 여선루를 안내하고 음식을 나른 일과 보지에 매를 맞은 일 등을 조금씩 섞어서 이야기 했다.
“전 원래 이렇게 음탕한 계집이었어요. 하지만 그 동안 제 본색을 숨기고 정숙한 계집인 채 연기를 하다가 마침내제 본성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선자님들 앞에서 빨가벗고 절 노예로 삼아달라고 애원했어요. 전 이제 남해검문의 문주도 아니고 선자님들과 소저들의 사부도 아니에요. 그저 선자님들과 소저들의 명령을 받는 개보지 암캐일 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