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화 〉백유선 4
4.
중년 사내의 해명에 검은 옷의 여인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하긴섬전옥수 백유선이 그렇게 무공이 강했나 싶어서 의아했는데 특이한 내공을 익혔다면 그랬을 수도 있겠군. 그럼 그년을 잡아올 준비는 마쳤나?”
중년 사내가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사람은 준비해 뒀지만 그 계집의 행방을 찾는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조금 전 그 계집이 도망친 장소를 알아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북경을 벗어나 천진을 거쳐 남쪽으로 도망쳤다고 합니다. 지금쯤은 산동에 막 들어섰을 걸로 추측합니다.”
“그래 천하의 동창이 계집 하나 추적 못해서야 말이 안 되지. 그런데 강호사미의 하나인 백유선이라니 그냥 죽이기는 조금 아까운데 언니 생각은 어때요?”
화려한 복장을 한 여인이 말했다.
“그년이 그렇게 미인이야? 희남 오라버니와 마천 오라버니가 실수로 그년에게 당할 정도로?”
검은 옷의 여인이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뭐 강호사미의 하나라는 년이니까 미인이긴 하겠죠. 오라버니들은 보나마나 그년 미모에 홀려서 그년을 따먹으려고 약을 먹였다가 오히려 당한 걸 거고요. 쳇 우리 같은 미인을 놔두고 그런도둑년을 노릴 게 뭐람. 아, 언니는 모르겠지만 그년 직업이 도둑년이에요. 자기 딴에는 도둑이라는 거 숨긴다고 숨기고 다니지만 그게 어디그렇게 쉽게 숨겨지나요.”
“뭐 남자들은 옆에 천하절색에 젊은 마누라가 있어도 옆집의 못생긴 늙은 년을 노리는 게 남자니까 우리가 이해해야지 어쩌겠어. 그나저나 그년이 오라버니에게 한 짓을 놔두면 그냥 놔둘 수는 없고 어쩐다.”
검은 옷의 여인이 화려한 복장을 한여인의 표정을 살피더니 깔깔 웃으면서 말했다.
“아! 언니 또 이상한 거 생각하고 있구나. 생각만 해도 오싹한데 빨리 말해 봐요. 그년 어떻게 괴롭혀 줄지.”
“그년이 그렇게 미인이면 얼굴 가죽을 벗겨버리는 건 좀 아깝지?”
“그건 그렇죠. 그러니까 얼굴을 훼손 안 하는 방법으로 생각해 봐요.”
화려한 복장의 여인이 중년 사내를 돌아보고 말했다.
“그년을 잡으면 빨가벗겨서 처녀를 검사한 뒤에 처녀가 아니면 팔다리를 잘라버린 뒤에 수캐랑 붙여서 끌고 와요. 팔은 팔꿈치 아래를 다리는 무릎 아래를 잘라버린 뒤에 북경으로끌고 올 동안 지나는 고을마다 개랑 붙이는 거 구경도 시키고요. 처녀도 아닌 주제에 오라버니들께 저런 짓을 했으면 그렇게 해도 싸니까.”
중년 사내는 몸을 떨었고 검은 옷의 여인은 손뼉을 치면서 좋아했다.
“역시 언니야. 언니의 이런 발상은 난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다니까. 그래서 처녀면 어쩔 거예요?”
“그년이 처녀라면 머리카락이고 보지털이고 간엔 몸뚱이에 붙은 털이랑 털은 전부 밀어버린 뒤에 몸뚱이에 바늘을 잔뜩 꽂아서 끌고 와요. 음 여기저기 마구 꼽기는 그러니까 젖통이랑 보지에 바늘을 잔뜩 꽂아서 끌고 와요. 그리고 지나오는 고을 몇 군데 골라서 남자 감방에서 구경도 좀 시키고요. 처녀는 못 건드리게 할 수 있겠죠?”
이번에도 중년 사내는 두려움을 감추고자 허리를 굽혔고 검은 옷의 여인은 손뼉을 치면서 좋아했다.
“어머나, 그거 정말 좋아요. 참 그런데 털을 밀어버릴 때 눈썹만은 남겨줘요, 눈썹이 없으면 문동이처럼 보여서 싫어요. 근데 언니 왜 처녀는 못 건드리게 하는 거예요?”
“그건 그년을 잡아오면 그때 알려줄 게. 게다가 오라버니들이 따먹으려고 했던 년인데 아무나 따먹게 놔둘 수는 없잖아.”
“그런 그런데 그년들 오라버니들께 선물로 줄 생각은 말아요. 안 그래도 오라버니들 주위에 계집들이 많은데 그년까지 끼워 줄 수는 없어요.”
“그럴 생각은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
검은 옷의 여인이 중년 사내를 돌아보며 말했다.
“언니가 말한 대로 그년을 잡아 와. 잡은 뒤에 빨가벗겨서 옷 같은 것은 다시는 입히지 말고 그대로 빨가벗긴 채로 끌고 와. 처녀가 아니면 팔다리 잘라버린 뒤에 수캐랑 흘레붙여서 끌고 오고 처녀면 언니가 말한 대로 눈썹이랑 속눈썹만 남기고 털이란 털은 전부 밀어버린 뒤에 젖통이랑 보지에 바늘을 잔뜩 꽂아서 끌고 와. 그리고 처녀라고 해도 오라버니들이 팔다리에 겪은 고통을 그대로 느끼게 팔꿈치랑 무릎 관절을 뽑아서 고생 좀 시키고.”
중년 사내는 급히 허리를 숙이고 물러나왔다.
동창 독주 가위성은 건물에서 물러나며 두 여인의 잔인함에 속으로 욕설이 터져 나왔다.
‘개 같은 쌍년들 어떻게 천하의 우리 동창보다 더 지독하고 악독할 수가 있냐고. 올케와 시누이가 같이 붙어서 다른 놈들이랑 함께 서방질하는 것도 모자라 그 잡놈들이 강간하려다 실패한 년을 잡아서 뭘 어쩌고 어째? 젠장 내 주위에 저런 년들이 없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지 원.’
하지만 온 세상이 두려워하는 천하의 동창독주 가위성도 감히 이런 욕설을 입에서 꺼낼 수는 없었다.
검은 옷의 여인 연성군주 주하문은 당금 천자의 사촌누이다. 손이 귀한 황족들이라고 하지만 이상하게 황제의 항렬에서 사촌 남자는 제법 있는데 비해 여자는 연성군주 주하문 한 명 뿐이었고 황제의 어린 사촌 누이에 대한 총애는 정말 남달랐다.
황제의 사촌 누이가 황족 여인의 몸으로 무공을 익힌 거야 그럴 수 있다고 쳐도 황제의 사촌 누이가 검은 무복차림으로 멋대로 돌아다녀도 누구 한 사람 감히 뭐라고 할 수 없었다.
또 화려한 복장의 여인은 바로 그 주하문의 올케언니로 구문제독의 딸이자 황제의 사촌인 영왕의 왕비다. 그런 여인이 시누이와 함께 외간 남자와 바람을 피우는데 누가 건드릴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당연히 영왕의 귀에도 왕비가 외간남자와 바람을 피운다는 이야기가 들어갔다. 왕비가 외간남자와 바람을 피웠다면 그 남자와 왕비는 불에 태워 죽여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영왕은 마누라가 바람을 피운다는 얘기를 듣고는 오히려 기쁜 안색을 보이며 사실을 감추고는 오히려 왕비가 자기 마음대로 외출할 수 있도록 편리를 봐줬다고 한다.
그것만 해도 희한한 이야기인데 하필 그 바람을 피우는 상대가 왕비와 군주를 건드릴 수 있도록 만든 장본인이 바로 자신이니 가위성은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빌어먹을 잡놈들.’
가위성은 우희남과 마천에게도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병필태감은 동창의 수장이다. 그러니 자신은 직속상관의 양자에게 비위를 좀 맞춰주려고 희귀한 미약을 구해다 선물했다.
하지만 저 미친놈이 건드릴 여자가 없어서 구문제독의 딸이자 황제의 사촌인 영왕의 정혼자를 건드릴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더구나 그 영왕이 정혼자라는 계집은 황제의 사촌에게 시집을 갔으면 처녀 시절 바람피운 건 숨기고 비밀로 할 생각은하지 않고 이번에는 시누이인 연성군주를 자기 바람상대와 연결시켰다.
가위성은 정말 이해가 가지 않았다 우희남과 마천이 제법 미남자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도대체 어떻게 계집들을 녹였길래 여자들이 이렇게 죽고 못가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하긴 그것도 재주라면 큰 재주지.’
동창독주 가위성은 그저 속으로 욕하고 투덜거리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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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유선이 자신에게 추적자가 붙은 걸 알아차린 것은 산동 제남에서였다. 처음에는 자신에게 추적자가 붙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자 바로 해치워버리려고 했다.
하지만 자신에게 따라붙은 추적자가 동창 소속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자신을 쫓는 놈을 죽이려는 생각은 씻은 듯이 사라져버렸다. 백유선은 정말 혼신을 다해 도망쳤다.
백유선은 동창이 얼마나무섭고 집요한 조직인지 잘 알았다. 백유선은 북경에서 최대한 멀어지는 것만이 살길이라고 생각하고 남쪽으로 더 남쪽으로 달아났다.
동창의 추적술은 소문대로 집요하고 끈질기고 정확했다. 배유선이 어떻게 변장하고 어떻게 숨어도 결국 백유선이 도망쳤던 길을 찾아내어 쫓아왔다.
백유선은결국 남쪽으로 계속 도망쳐 성무장 안으로 도망칠 계획을 세웠다. 사도백천 대협이 세운 성무장은 감히 조정에서도 건드리지 못한다고 들었고 사도대협의 아내인 사도부인에게 구원을 요청한다면 비록 자신이 도둑이라는 숨겨진 직업을 가졌다고 해도 같은 무림인을 사도부인이 외면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백유선은 성무장에 불과 십여 리 떨어진 곳에서 동창에 붙잡혔다.
백유선의 앞을 가로막은 사내 하나가 옆이 사내에게 말했다.
“어떤가 여기로 올 거라고 한 게 맞았지. 자네 이제 내게 술을 사야 하네.”
옆에 있는 사내가 침을 뱉으며 말했다.
“젠장 설마 이렇게 대놓고 성무장으로 도망치려고 할 줄은 몰랐는데 저년 머리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나쁘군. 내기에 건 술은 북경에 돌아가면사겠네.”
백유선은 자신이 이미 더 이상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장검을 뽑아들었다. 상대가 두 사람뿐이라면 천하의 동창이라도 어쩌면 상대할 수 있을지 몰랐다.
하지만 두 사람뿐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착각이었고 어느 사이에 이곳저곳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가 동창에서 온 걸 알고도 검을 뽑다니 어린계집애 치고는 용기가 제법인데.”
“아니 저런 건 용기가 아니고 만용이라고 해야지. 이럴 때는 차라리 모든 무기를 버리고 빨가벗고 엎드려서 살려달라고 싹싹 비는 게 오히려 용기 있는 일이지. 잡혀가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그만큼 고문이라도 덜 당할 것 아닌가.”
백유선은 고문이라는 말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비록 소문으로만 들었지만 당금 천하에서 동창의 고문이라는 말을 듣고 몸을 떨지 않을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백유선의 앞과 뒤는 열 명이 넘는 동창의 고수들에 의해 포위되었다.
백유선의 앞에 서 있던 동창의 인물이 말했다.
“계집애야, 지금이라도 그 자리에서 무기를 버리고 빨가벗으면 딱 명령받은 만큼만 널 주물러주마. 그게 아니고 귀찮게 저항을 하면 우리도 널 얌전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고문을 해야 하니 말이다.”
백유선은 자신이 죽었다 깨어나도 눈앞의 동창 위사들을 이길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당장 이야기를 꺼낸 사람만 해도 처음 목소리가 들렸을 때는 저 멀리였는데 어느 틈에 바로 자기 옆에 다가와 있었다.
백유선은 처녀다운 수치심 때문에 평소라면 동창 위사들의 말을 고려해 본다는 생각조차 않았겠지만 보름이 넘는 기간 동안 동창에 쫓기고 추적을 당하면서 이미 용기와 수치심 따위는 거의 대부분 사라지고 없었다.
백유선이 손에 들고 있는 장검은 동창 위사들을 보며 떨고 있는 와중에 저절로 손에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백유선은 장검이 바닥에 떨어진 사실을 알고도 몸을 굽혀 주울 힘도 없었다.
백유선이 가늘게 애원했다.
“제발 살려주세요.”
눈앞에 있는 동창 위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글쎄 죽이지는 않는다니까. 우리는 널 체포한 뒤에 빨가벗겨서 끌고 오라는 명령을 받았을 뿐이라서 말이다. 너도 알다시피 우리는 나라의 녹을 먹는 사람들이고 명령을 받는 입장이라 위에서 명령하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어서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