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5화 〉백유선 6
6.
처음 사람들이 묶여서 끌려오는 발가벗은 여인을 본 것은 호주성에서 십 리 정도 떨어진 관도였다.
조정의 법에 의하면 비록 죄를 지은 죄수라고 하더라고여인의 경우에는 처벌을 달리했다. 여인은 남자와 같은 옥에수감할 수도 없고 처형할 때 윗옷을 벗기는 것 말고는 볼기에 매를 때릴 때도 여인은 바지를 벗기지 않고 때렸다.
하지만 그런 것은 일반적인 범죄를 저질렀을 때의 일에 불과하고 죄가 너무 심하면 옷을 전부 벗겨 사람들에게 조리돌려 수치부터 주는 일은 아주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었다.
그것도 처음에는 반역죄 정도의 중죄를 범했을 때발가벗기던 것이 이제는 권력자의 비위를 상하게 하는 일도 발가벗겨서 처벌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 여죄수가 발가벗겨져 묶인 채 끌려오는 일은 어쩌면 대단한 일이 아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일어나지 않는 일이 아닐 뿐 흔하게 볼 수 있는 일은 아니었고 그렇게 여죄수가 발가벗겨져 조리돌림 당하면 구경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처음 발가벗고 끌려오는 여죄수를 발견한 사람들도 자신들이 새로운 구경거리를 발견하게 됐다고 좋아했지만 여죄수를 끌고 오는 자들이 동창이라는 걸 알자 깜짝 놀랐다. 그리고 발가벗겨져 끌려오는 여죄수가 머리카락을 빡빡 밀렸다는 걸 알자 더욱 놀랐다.
죄수의 머리를 빡빡 밀어버리는 일은 정말 드물었다. 여죄수가 도주 중에 비구니로 위장한 게 아니라면 그런 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았다.
사람들은 발가벗겨져 끌려오는 백유선을 가까이서 보았을 때 비구니로 위장했던 게 아니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비구니들은 머리를 깎은 뒤에 반드시 정수리에 계인을 찍는다.
이마 조금 위에서 정수리까지 아홉 개의 뜸을 떠 자신이 불제자임을 드러내는데 지금 끌려오는백유선은 그런 자국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머리가 그야말로 얼굴이 비칠 정도로 반들반들하게 밀려 있어 밀어버린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이십여 명에 달하는 동창의 위사들이 여인 하나를 머리를 빡빡 밀어버린 뒤에 끌고 가고 있으니 머리를 밀어버린 것도 처벌의 일종이 분명했다.
관도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수군거렸다. 제일 먼저 말을 꺼낸 사람은 글자를 읽지 못하는지 죄명이 뭔지 궁금해 했다.
사내는 백유선의 등 뒤에 꽂은 목패를 가리키며 옆에 서 있는 유생에게 물었다.
“저 등에다 꽂은 거 뭐라고 적은 겁니까?”
“독행대도 백유선이라고 적혀 있군.”
“아니 도둑질이 무슨 큰 죄라고 빨가벗기는 것도 모자라 저렇게 머리까지 밀어버렸죠?”
“그걸 내가 어찌 알겠나. 궁금하면 자네가 저 동창 사람들에게 물어보도록 하게. 저 머리를 보면 비구니 머리가 아니니 일부러 저렇게 빡빡 밀어버린 게 분명한데 진짜 무슨 큰 죄를 지었을지 나도 궁금하네.”
하지만 감히 동창에게 말을 걸 정도로 간이 부은 자는 적어도 지금 관도에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동창에게 말을 걸지는 못해도 여죄수를 품평하는 정도는 누구나 가능했다. 누군가가 말했다.
“머리를 빡빡 밀어서 그렇지 꽤 미인인 거 같군.”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얼굴을 확인해보긴 어렵지만 내 눈에도 그렇게 보이는군.”
“어이쿠 저년 가랑이를 좀 보게 머리만 밀어버린게 아니라 보지털까지 싹 밀어버렸나 봐 털이 하나도 없어.”
다리를 교차하면서 걸어가면 보지가 잘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제야 백유선의 보지털까지 싹 밀어버린 걸 발견하고 서로 수군거렸다.
“원래 보지털이 없는 계집도 있긴 하다자민 저건 밀어버린 게 분명하겠지?”
“뻔한 걸 말해 뭐 하겠나.”
“정말 무슨 도둑질을 했길래 저렇게까지 하는지 궁금하군.”
“난 저년 죄목보다 얼굴이 더 궁금하네. 저렇게 고개를 푹 숙이고 있으니 얼굴을 볼 수 없잖아.”
주위 사람들의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당두가 백유선 뒤에서 걸어가는 위사에게 전음으로 말했다.
“저년 얼굴을 들어서 사람들에게 구경시켜라. 저년을 잡아오라고 하신 분들은 저년이 철저하게 창피를 당하길 원하고 계신다. 저렇게 고개를 숙이고 걸었다는 게 알려지면 우리에게 책임이 돌아올 수도 있다.”
명령을 받은 위사는 들고 있던 가죽 방편으로 백유선의 볼기를 강하게 때렸다. 위사가 들고 있는 가죽 방편은 길이는 두 자 정도 되고 너비는 성인 남자의 손가락 세 개 정도의 넓은 가죽으로 만들고 거기다 공기의 저항을 받지 않게 수십 개의 구멍을 뚫어서 사람을 매질하기 편하게 만든 넓은 가죽 매였다.
회초리나 채찍과 달리 맞은 사람에게 큰 상처는 남기지 않으면서 고통은 심하게 주는 물건이었다.
찰싹!
“히이이익!”
매를 맞은 백유선이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위사가 크게 말했다.
“죄인은 고개를 들어 사람들에게 얼굴을 보여라. 다시 고개를 숙이면 그때마다 매를 때리겠다.”
백유선은 어쩔 수 없이 푹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비록 머리를 빡빡 밀어버려 미모를 상당히 훼손당했지만 백유선의 아름다운 얼굴이 드러나자 구경꾼들이 탄성을 질렀다.
“어이쿠, 정말 미인인데.”
“머리를 밀어버려서 그렇지 진짜 미인이야.”
머리를 밀어버렸던 아니던 간에 발가벗긴 여죄수 그것도 젊고 아름다운 여죄수를 끌고 가는 건 진귀한 구경거리가 분명했고 호주성에 다가갈수록 구경꾼은 점점 불어나더니 호주성문에 다가 왔을 때는 몰려던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동창의 위사들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성문을 지나가기조차 어려워 보이자 고개를 돌려 당두를 바라보았고 당두는 그들을 향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위사 충 하나가 앞으로 나가 소리쳤다.
“동창이 공무를 수행중이다. 호주 백성들은 길을 비켜라.”
동창은 주로 북쪽에서 활동하고 이런 남쪽까지 내려오는 일이 거의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악명까지 전해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위사가 동창이라는 이름을 꺼내자마자 성문 앞에서부터 안쪽으로 사람들이 물러나 꽤 넓은 길이 새로 생기는 것처럼 보였다.
성문지기들도 감히 동창에게 성으로 들어가기 위해는 신분을 검사해야 한다는 소리는 못하고 길을 벌려주었다.
성문으로 들어선 동창 위사들은 아무런 장애도 없이 백유선을 데리고 지부가 거처하는 부청까지 갈 수 있었다.
부청에서도 동창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알아보자 호주부의 지부대인까지 직접 나와서 그들을 맞이했다.
동창의 위세가 아무리 높다고 해도 지위로 따지면 지부대인이 동창의 당두보다 상급자라도 한참이나 상급자였다.
얼굴에 기름기가 흐르지만 아주 비대하지는 않고 배가 조금 나온 사십 대 중반 정도의 지부대인이 물었다.
“동창이 여기 남쪽의 호주까지 웬일인가? 그리고 그 머리를 빡빡 같은 여죄수는 누군가? 설마 무슨 반역 사건 같은 게 있었던 건 아니겠지?”
지부대인이 잇따른 질문을 들으고 당두가 깊이 허리를 숙여 인사한 뒤에 말했다.
“소인은 병필태감과 제독태감의 명을 받들고 이 계집을 잡기 위해 내려온 것일 뿐 특별히 그런 무도한 일이 있었다고 듣지는 못했습니다.”
지부대인은 당두의 말을 듣고는 호주성이 연루된 사건이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안도의 한숨을 쉰 뒤에 당두 뒤에 얼굴을 들고 서 있는 백유선을 바라보았다.
지위 때문에 제법 많은 계집을 겪어볼 수 있었던 지부대인으로서 저런 미인은 본 적이 없었다 싶을 만큼 이목구비가 뚜혔한 미인이었다.
지부대인이 백유선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빨가벗겨버린 거야 일부러 모욕을 주려고 그런 게 분명한데 머리를 빡빡 밀어버린 걸 보니 국사범이 아니라면 뭔가 윗사람들에게 큰 죄를 지은 게 분명하겠구나. 방금 저 동창 당부의 말로는 병필태감과 제독태감의 명을 받았다고 했는데 설마 저 계집이 그 두 분께 죄를짓기라도 했단 말인가?’
지부대인이 당두에게 물었다.
“저 죄인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 나도 알 수 있겠는가? 명색이 이 호주부의 수령이라 죄명 정도는 알았으면 좋겠구먼.”
당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찌 감히 지부대인께 이 죄인의 죄명을 감추겠습니까.이 죄인은 무림인으로 병필태감의 양자와 제독태감의 양자의 사지를 부러뜨리고 재물을 훔쳐간 죄인입니다.”
작금에는 궁중의 환관이 조정의 대신보다 더 큰 권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게 환관이 활개 치는 시대에 환관 권력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병필태감과 제독태감의 양자들을 사지를 부러뜨리고 재물을 훔치는 간 큰 도둑이 있을 줄은 지부대인은 상상도 못했다.
“어허, 세상에 병필태감과 제독태감의 양자들을 그렇게 만들다니 아무리무림인이라도 하더라도 세상에 그런 멍청이가 있을 줄은 몰랐네.”
지부대인은 그저 탄식하며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백유선도 자신이 사지를 부러뜨린 우희남과 마천이 병필태감과 제독태감의 양자라는 사실을 지금 막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왜 빨가벗고 머리카락을 빡빡 밀린 채로 조리돌림을 당해야 하는지 확실히 깨달았다.
백유선은 너무 놀라서 그 자리에서 주저앉더니 잠시 뒤 무릎을 꿇고 이마를 돌을 깔아둔 부청 바닥에 찍으면서 소리쳤다.
“죄인은 두 분 공자께서 병필태감 공공과 제독태감 공공의 아드님들인 걸 전혀 몰랐습니다. 죄인은 하늘이 얼마나 높은지 땅이 얼마나 두터운지도 모르는 멍청한 계집입니다. 제발 목숨만 살려주세요.”
백유선은 지금 우희남과 마천이 자신을 강간하려고 했다는 이야기를 끄집어 낼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자신이 모든 잘못을 저질렀고 오로지 자신이 멍청해서 우희남과 마천을 건드렸다고만 이야기해야 했다.
비록 머리카락을 빡빡 밀어버리기는 했지만 백유선 같은 아름다운 미인이 완전히 발가벗은 채 무릎을 꿇고 이마를 조아리고 있으니 지부대인은 백유선의 미모에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지부대인은 부패한 탐관오리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지금 백유선의 미모에 빠쳐 감히 이 정도 사안의 일에 끼어들어 백유선의 편리를 봐 줄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지부대인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빨가벗겨서 모욕을 주는 건 그렇다 쳐도 머리를 빡빡 밀어버린 걸 보면서 무슨 되를 지었는지 궁금했는데 지금 자네 말을 들으니 충분히그래야 하는 계집이로군. 그래 내가 자네들에게 뭘 해주면 되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