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9화 〉호주성 유희 2 (129/148)



〈 129화 〉호주성 유희 2

2.

말을   남자와 발가벗은 알몸으로 달리는  여인이 호주성 동문 앞에 나타난 것은 사시(巳時: 오전 9시에서 11시) 중엽이었다.

호주성 동문을 지키던 수문장은 웬 절세의 미녀 하나가 완전히 발가벗은 알몸으로 관도를 지나 자신이 지키고 있는 동문 쪽으로 달려오자 처음에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고 잠시 뒤 자신의 수하들도 똑같은 것을 보고 있다는 확신이 들자 문득 한  전부터 돌고 있는 소문이 생각났다.

호주에서 가흥으로 가는 관도에 웬 발가벗은 미녀 하나가 출몰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출몰 장소는 나루터였느니 다리 위였느니 아니면 관도의 어느 샛길이니 하는 얘기였고 심지어 성무장 입구에서 발가벗은 여자가 무릎 꿇고 있더라는 이야기까지 있었다. 그리고 한 달 전에는 바로 성문 앞에서 그런 일이 있었고 그건 목격자가 너무 많아서 거짓이라고 부정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 자신의 눈앞에 소문의 발가벗은 여자가 나타나자 자신이 지금까지 들은 소문이 모두 진실이었다고 믿을 수 있었다.

하지만 믿는 것은 믿는 것이고 자신이 호주성의 수문장으로서 눈앞의 일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   수 없었다. 며칠  술자리에서  발가벗은 여자의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꽤나 호기롭게 자기라면 어떻게 한다는 둥 지껄였지만 술김에 호기롭게 한 말에 불과하고 지금은 어떻게 해야 할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발가벗은 여인이 수문장의 눈앞으로 다가왔다. 들리는 소문대로 정말 예쁘고 특히 소문 그대로 보지에 체모가 한 올도 없어 어린아이처럼 갈라진 고랑이 그대로 다 보였다.

여인이 부끄러워하는 티를 내며 입을 열었다.

“소녀는 혈신문의 전리품이 된 양세현이라는 계집이랍니다. 제 주인이 되시는 혈신문의 명령으로 호주성에 들어갔다 오라는 명을 받았는데 들여보내 주시겠어요.”

수문장은 눈앞의 여인을 보자 소문의 여인이 여우가 둔갑한 것처럼 예쁘더라는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여인이 한 말은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다만 눈앞의 여인이 미친 여자도 아니고 둔갑한 여우도 아니라는 사실만  수 있을 따름이었다.

수문장의 임무는 성문을 지키면서 지나가는 사람 중에 혹시 수상한 자가 없는  살피는 것이 첫 번째 임무였고 다음은 성 안에서든 밖에서든 무언가 사건이 발생했을 때 재빨리 성문을 닫고 출입을 통제하는 것이 두 번째 임무였다.

하지만 수문장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발가벗은 여자가 나타나서 들여보내 달라고 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운 바가 없었다.

수문장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러니까 누구라고?”

수문장은 눈앞의 발가벗고 있는 여인이 지독하게 예쁘기도 하지만 절대 신분이 낮은 여인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존대를 할까 싶었지만  왠지 발가벗고 있는 여인에게 존대하고 싶지는 않았다.

여인이 수줍어하며 다시 말했다.

“소녀는 새로 혈신문의 전리품이 되어 사람들 앞에 나서야 하는 양세현이란 계집이랍니다. 소녀의 주인이신 혈신문의 명을 받들어 호주성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들여보내 주시겠어요?”

수문장은 어떻게 사람들 앞에 발가벗고 나서면서 웃을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수문장이 약간 멍한 상태로 말했다.

“혈신문? 양세현? 그게 누구지?”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어이쿠 무림인인가? 너 무림인이냐?”

양세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소녀는 무림인이랍니다. 어때요. 들여보내 주시겠어요.”

수문장은 과거 십이혈마의 난도 경험했던 적이 있어 무림의 일에 상관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다. 수문장은 무림인이면 고민할 것도 없이 간단히 들여보냈으면 끝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수문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무림인이라면 들어가시오.”

수문장은 아무리 발가벗고 있는 이상한 여자라고 해도 무림인에게 끝까지 하대할 자신은 없었다.

양세현이 안으로 들어가자 바로 뒤를 이어 초산사효도 말을 탄 채로 뒤를 따라 들어갔다. 수문장은 초산사효가 양세현의 바로 뒤에  있다는 것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원래 성에 들어설 때는 누구라고 해도 모두 말에서 내려 검사를 받아야 하는 법이지만 초산사효는 전혀 말에서 내릴 생각이 없었고 성문을 지키던 병사들도 검을 등 뒤에 매고 발가벗은 여인을 몰고 오는 무림인에게 말에서 내려 검사를 받으라고 요구할 용기도 없었다.

초산사효가 모두 지나가자 성문을 지키던 병사들이 수문장에게 몰려들어 수군거렸다.

“진짜 저렇게 빨가벗은 여자가 돌아다니고 있었네요. 소문대로 정말 엄청 예쁘네요.”

“사타구니도 보셨죠? 진짜 사람들이 말한 대로 보지에 털이 하나도 없어요.”

“어떻게 저렇게 예쁜 여자가 저렇게 빨가벗고 돌아다니죠.”

“말하는 걸 들어보니 미친 여자는 아닌 거 같던데요. 말씨도 공손하고 우아한  왠지  꼬집어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신분이 낮은 천한 여자도 아닌 거 같았어요.”

수문장이 말했다.

“자기 이름이 양 뭐라고 했지? 누구 기억나는 사람 있어?”

수하 하나가 말했다.

“양세현이래요. 게다가 무슨 혈신문의 전리품이 되었대요.”

“혈신문? 양세현? 누구 혹시 아는 사람 있어?”

“혈신문이라면 혹시 십이혈마와 관련있지 않을까요? 이름이 상당히 비슷하잖아요.”

수문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예전에 일하던 분들께 들은 얘기지만 십이혈마가 한창 날 뛸 여기로 저렇게 발가벗은 여자가 지나 간 적이 있다고 들었어. 그때는 어떻게 그럴 수도 있나 싶어서 믿지 않았는데 오늘 보니까 진짜 그럴 수도 있었겠는데 십이혈마와 관련이 있다면 정말 큰일인데. 근데 누구 양세현이라는 이름은 들은  없어?”

수하 하나가 쭈뼛거리며 말했다.

“성무장 사도부인의 성이 양씨라고 들었네요. 어제 누가 성무장 앞에서 발가벗은 여자가 무릎 꿇고 있는  봤다던데 혹시 무슨 관련이 없을까요?”

수문장과 다른 수하들이 전부 고개를 저었다.


******


양세현은 주위의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면서 짜릿한 쾌감이 몸을 찌르는 것을 느꼈다.

양세현은 그런 느낌을 즐기며  걸음 더 대로를 걸어가며 말했다.

“첫째 나리 보지년은 호주성 지리를 잘 안답니다. 어디부터 갈까요?”

초산사효의 첫째가 말했다.

“네가 누군지 소문부터 내야 하지 않겠느냐. 관아로 가자. 거기서 네 정체를 밝히면 순식간에 소문이 나겠지. 게다가 성무장 소유의 재산들이 혈신문 소유로 바뀌었다는 것도 알려야겠지.”

양세현이 콧소리를 내었다.

“아잉 나리 소녀는 부끄러워요. 관아는 나중에 가면  되나요?”

넷째가 말했다.

“으으으 요것아 네가 이제 사람이 아닌 암퇘지가 됐다는 것도 알려야 하지 않겠느냐. 어서 앞장 서거라.”

양세현이 걸어가면서 말했다.

“나리 관아에서 소녀를 보고 빨가벗고 다니는 못된 보지년이라고 태질이라도 하면 어쩌죠?”

첫째가 말했다.

“못된 짓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하는 법이니 태질 아니라 주리라도 틀어야지.”

“안 돼요, 주리는  돼요, 소녀 다리가 부러져버릴 거예요.”

둘째가 전음으로 첫째에게 말했다.

“대형 방금 그 얘긴  계집이?”

첫째가 전음으로 대답했다.

“그렇네, 바로 관가에서 태질을 당하게 해달라고 말하는 걸세.”

둘째는 입을 딱 벌리고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양세현이 관가로 가는 길에서도 사람들이 몰려 있다가 다가오면 길을 열어 주면서 손가락으로 양세현을 가리키며 뭐라고 소곤거렸다.

“저 여자 좀 봐. 한  전부터 소문났던 그 여자가 틀림없어.”

“소문대로 정말 예쁘네요. 저렇게 예쁜 여자는 처음 봐요.”

“저기 다리 사이에 진짜 털이 하나도 없어.”

“원래 없는 여자도 있다던데.”

“근데 저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전부 뽑아버린  같아요. 하필 발가벗고 돌아다니는 여자가 털이 없다는 건 이상하잖아요.”

“어휴 저 젖통 좀 봐. 저렇게 커다란  출렁출렁 흔들리니까 진짜 사람 미치게 만드네.”

“난 저 허리가  대단해보여.  가는 허리랑 배꼽 깊은 것 좀 봐. 저렇게 매끈한 여자  적 있어?”

“허벅지도 그렇지 저렇게 길고 매끈한 허벅지랑 종아리는 무림인 말고는 절대 없어. 무릉원에서 춤추는 무희들이 다리가 그렇게 길고 예쁘다고 소문났지만 절대 저 여자만큼은 아니라고.”

“근데 무림인이라면 도대체 누구지? 저렇게 미인이면 소문이 많이 났을 건데.”

“성무장으로 가는 길 앞에서 무릎 꿇고 있었다고 했는데 혹시 저렇게 예쁜  보면 사도부인이랑 친척이나 뭐 그런  아닐까? 왜 사도 부인이 그렇게 미인이라고 하니까 말이야.”

“말도  되는 소리 아무리 그래도 사도 부인의 친척쯤 되는 여자가 왜 저런단 말인가. 혹시 사파의 어느 여마두 일지도 몰라. 그래서 사도부인이 벌을 주는 걸지도 모르지.”

양세현은 내공을 모아서 사람들의 속삭임을 모두 들었다. 사람들이 속삭이는 소리들이 하나같이 감미롭게 들렸다.

‘난 예쁘다는 소리 듣는  정말 좋아요. 더 말해 줘요. 보지에 털이 없으니 더 잘 보이죠. 모두 내 보지를  줘요. 으응  젖통이 그렇게 크고 예뻐? 가까이 있었으면 만져보게 해 줄 건데. 아 누가 젖통 좀 주물러 줬으면 좋겠어. 내 허리랑 배꼽은 내가 봐도 예쁘지. 나도 무지 자랑스러워하는 거라고 내 남편도 내 배꼽을 보면 정말 좋아했어.  허벅지랑 종아리는 정말 오래 연마를 해서 만들어진 거야.  정도 되려면 이십 년은 수련해야 돼 그따위 춤추는 애들이랑 비교하지 말라고요.’

사람들은 양세현과 초산사효의 뒤 멀찌감치 서서 그들 뒤를 졸졸 따라왔다.

양세현과 초산사효가 관아 앞에 도착하자 관아 앞을 지키던 병사들이 뒤로 물러났고 그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겨우 주춤거리며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

“여긴 호주부의 부청이니 아무래도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소이다.”

초산사효의 첫째가 말했다.

“우리는 지부대인을 뵈러  것이니 바로  것이다. 왜 돌아가겠는가. 자넨 지부대인에게 가서 좀 뵙자고 청하게.”

대장이 일그러진 얼굴로 말했다.

“지부대인은 무척 바쁘십니다. 무림의 일은 지부대인께 굳이 아뢸 것이 없으니 그냥 알아서 하시고 돌아가시지요.”

“무림의 일이 아니고 이 계집에 관련된 일이라 지부대인을 꼭 뵈어야겠네.”

“이 여자, 여협도 아무리 봐도 무림인 같은데 굳이 지부대인께 아뢸 필요가 뭐있겠습니까 그냥 돌아가시지요.”

양세현이 나서서 말했다.

“소녀는 호주부의 백성이랍니다. 그러니 지부대인을 뵈어서 아뢰어야 해요. 그러니 지부대인을 만나게 해주세요.”

대장은 양세현의 나긋나긋한 음성을 듣자 몸이 녹아내리는 듯싶었고 초산사효가 끝까지 우길 뿐 아니라 셋째와 넷째가 검을 꺼낼 시늉까지 하는 지라  이상 거절하지 못하고 말했다.

“잠시 기다려 보십시오. 지부대인께 소인이 아뢰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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