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화 〉호주성 유희 3
3.
대장은 한참 뒤에야 돌아와서 말했다.
“정말 웬만하면 그냥 돌아가시면 어떻겠습니까. 지부대인이 갑자기 편찮으신데요.”
둘째가 말했다.
“조금 전까지 멀쩡하게 공무를 봤던 거 같은데 갑자기 어디가 아프다는 거요?”
대장이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
“글쎄 조금 전까지 멀쩡하셨던 분이 갑자기 쓰러지셨으니 아무래도 뭔가 급병이나 역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시 다른 분께 전염될 수도 있으니 그냥 돌아가시지요. 지부대인께서 혹시 정무를 보러온 백성들에게 전염될지 모르니 오늘 업무는 중단하고 부청 문을 닫으라 하셨습니다.”
첫째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조금 의술을 배웠으니 지부께서 급병에 걸리셨다면 치료할 수 있을 듯싶네. 다시 한 번들어가 여쭤보게, 혹시 진짜 역병이라면 부청을 전부 태워버려야 할지도 모르지 않나.”
첫째가 부청을 태워버린다고 위협하자 대장이 다시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달려 나왔다.
“지부대인의 병이 갑자기 쾌차하셨습니다. 아무래도 단순한 급병이라 단순하게 빨리 치유되었나 봅니다.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부청 안으로 들어가니 대청 의자에 앉아있는 지부대인이 보였다. 비대하고 뚱뚱한 몸에다 얼굴에는 잔뜩 개기름이 흐르는 것이 이마에다 나는 무능한 탐관오리라고 적어 둔 것 같은 사람이었다.
지부가 말했다.
“무림인들이 보잘것없는 부청에는 무슨 볼일이시오. 본관은 부임한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아 공무로 상당히 바쁜지라 웬만하면 짧게 일을 끝내고 돌아가 주셨으면 좋겠구려.”
첫째가 웃으며 말했다.
“본인도 강호의 떠돌이라 관아에는 웬만하면 오고 싶어 하지 않소만 새로 혈신문이라는 문파의 일을 거들다보니 오지 않을 수 없었소이다. 혈신문주로부터 여기 이 계집의 일을 처리하라는 명을 받아서 말이지요.”
“혈신문? 혈신문이 무슨 문파지요? 그리고 그 여자는 누구길래 호주부에서 처리해야 한다는 말씀이시오?”
둘째가 말채찍으로 양세현의 엉덩이를 가볍게 때리자 양세현이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
“소녀는 호주부의 백성으로 성무장 사도백천의 아내였던 양세현이라고 한답니다. 이번에 새로 혈신문에 사로잡혀 혈신문의전리품이 되었는지라 이렇게 부청까지 오게 되었어요.”
지부는 무림의 일도 잘 모르고 양세현이 누군지도 잘 몰랐지만 부청의 아전들 가운데는 양세현을 아는 자들이 제법 있었다. 그런 아전들의 입에서 일제히 가는 신음 같은 소리들이 흘러나왔다.
“사도부인 어떻게 이럴 수가!”
아전들의 입에서 사도부인이라는 소리가 흘러나왔는데도 뚱뚱한 지부는 제대로 이해를 못한 듯싶었다.
지부가 소리쳤다.
“아니 성무장의 사도백천이 누구길래 그의 마누라라는 여자를 저렇게 옷을 전부 벗겨서 데리고 온 거요?”
사도백천이 누구냐는 소리에 초산사효가 어이가 없어서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고 주위에 서 있던 아전들조차 한심하다는 눈길로 쳐다보았다. 심지어 발가벗고 서 있던 양세현은 약간 화난 표정까지 보였다.
지부는 완전히 겁에 질려 몸을 부들부들 떨고 제대로 생각도 못하는 와중에도 양세현의 미모와 눈부신 알몸에 눈이 끌리는지 자꾸만 힐끔거렸다.
아전 하나가 급히 그에게 달려가 뭐라고 속삭인 뒤에야 지부는 펄쩍 뛰면서소리쳤다.
“서, 성무장 사도대협의 부인이라고?”
지부는 그제야 양세현이 누구인지 깨닫고는 거의 몸을 탁자 아래로 숨긴 채 초산사효에게 물었다.
“성무장 사도대협의 부인을 어떻게 저렇게 아니 왜 저렇게 해서 우리에게 오신 거요?”
첫째가 말했다.
“우리가 한 게 아니고 혈신문이 한 것이고 우린 그저 심부름을 온 것에 불과하오.”
지부가 간신히 탁자 위로 머리를 내밀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도대체 우리에게 뭘 원하시는 겁니까?”
첫째가 말했다.
“이 계집은 그 유명한 사도백천의 아내로서 이런 모욕을 당할 바에는 차라리 자결해야 마땅함에도 본분을 지키지 못하고 비루한 생명을 구하고자 혈신문에 항복하고 이렇게 백주에 발가벗은 알몸으로 거리를 다니는 음행을 저지르며 이렇게 죽은 남편을 모욕하고 있소.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하지 않겠소?”
“다, 당연한 말씀입니다만 남편이 이미 죽었는지라 그게 법률에 위배되는지는 모르겠소. 아시다시피 법 조항에 없으면 처벌하기가 어렵지 않겠소.”
“그거야 지부의 직권으로 하면 될 것 아니겠소.”
“그럼 어떤 벌을 주라는 말씀이십니까?”
“혈신문에서는 이 계집의 몸뚱이에 상처가 남지만 않는다면 어떤 벌이라도 좋다고 했소. 지부에겐 좋은 벌이 없겠소.”
“그럼 주리 같은 것은 절대 안 되겠고 압슬도 안 되겠군요. 그런 건 전부 몸에 흉이 남소. 게다가 태형도 몸에 흉이 남소. 그럼 남는 건 얼마 없는데 그러니까…….”
첫째가 말을 잘랐다.
“아니 주리는 뼈가 부러지니 안 되겠지만 압슬과 태형 정도는 상관없소. 이 계집이 이래보여도 무공의 고수라 압슬과 태형 정도의 상처는 금방 아물어 버리게 할 수 있소.”
첫째가 양세현을 보며 말했다.
“그렇지 않느냐?”
압슬은 깨진 사금파리 조각을 놓은 바닥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그 허벅지 위에 다시 무거운 돌을 놓는 고문이다. 그 얘기를 듣자 양세현은 몸을 바르르 떨었다.
양세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 마, 맞습니다. 소녀는 웬만한 상처 정도는 금방 아물어 버립니다.”
첫째는 양세현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는 이유가 기대감 때문인지 두려움 때문인지 헷갈렸다. 어쩌면 양세현 본인도 모를지도 모른다 싶었다.
지부가 말했다.
“그렇게 쉽게 상처가 아물어 버린다면야 그 둘 말고 다른 것도 많지요.”
“또 무엇이 있소?”
“그러니까 태형만 해도 장형과 태형이 있지요. 장형은 곤장으로때리는 벌로 정말 중차대한 일에만 치고 이런 일에는 주로 태형을 치오. 태형은 장형과 달리 곤장이 아니라 버드나무로 만든 회초리로 친다오. 그리고 그 외에도 손가락 조이기가 있고 여자의 경우 젖통이나 젖꼭지를 조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발가락과 손가락 끝에 바늘을 쑤시기도 하고 목에다 칼을 채우는 가형(枷刑)만 해도 얼마나 무거운 칼을 씌우느냐에 따라 그냥 씌우기만 해도 벌이 되는 것이 있소.”
지부는 뭔가 신이라도 난 듯 여러 가지 고문을 줄줄이 늘어놓았다. 아무래도 선정을 베풀기 보다는 이렇게 백성을 괴롭히는 일에만 능한 사람 같았다.
그리고 잠시 뒤에는 고문을 넘어 사형에 대한 것도 줄줄이 늘어놓았는데 사람을 죽이는 방법도 얼마나 혹독하고 다양한지 양세현뿐만 아니라 초산사효까지 안색이 바뀔 정도였다.
첫째가 말을 잘랐다.
“아니 사형에 대한 건 되었소. 우리가 하려는 게 아니니까 그쪽 얘기는 더 할 필요가 없소.”
지부는 그제야 늘어놓던 사형에 대한 이야기를 멈추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왔다.
“아 예 그러니까 여자 죄수의 경우로 다시 돌아오면범죄의 질에 따라 조리를 돌리고 형벌을 가하는데 이 조리를 돌린다는 것도 종류가 많다오. 제일 가벼운 경우는 손을 뒤로 묶고 등에다 죄명을 적은 나무패를 꽂은 뒤에 간단하게 돌리는 것이고 조금 더 무거운 죄의 경우 등에 북을 매달아서 그 북을 치면서 가는 것도 있다오. 조금 더 심한 경우 무거운 칼을 채우고 그걸 끌면서 가게 하는 것도 있고 제일 무서운 건 역시 간부(姦夫)와 결탁해 지아비를 죽인 경우 받게 되는 나무나귀(목려: 木驢)라는 것으로…….”
첫째가 다시 말을 끊었다.
“아니 그만 되었소. 사람을 죽이려는 건 아니니까 자꾸만 그쪽으로 갈 필요는 없소.”
첫째가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
“그럼 그냥 조리를 좀 돌리고 압슬과 태형을 가합시다. 곤장은 좀 심하니 태형이 좋지 않겠소.”
지부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 댁들이 그걸 원한다면 그렇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소. 그런데 지금 사도부인이 아무것도 입고 있질 않은데 뭔가 좀 걸치게 해야 하지 않겠소?”
“그 계집은 특이한 대법을 받아 몸에 아무것도 입을 수 없소. 게다가 여기까지 벗겨서 왔는데 뭐 하러 다시 뭔가 입히겠소. 혹시 발가벗겨서 돌리는 건법에 금지되어 있소?”
“그럴 리가 있겠소. 저희도 역모에 가담했다거나 산적 질이니 다른 떼도적 질 같은 데 가담하다가 잡힌 계집의 경우 옷을 전부 벗겨버리고 알몸으로 조리를 돌힌다오. 전부 벗기지 않고 아랫도리만 벗겨서 돌리는 경우도 있지요. 주로 시부모에게 불효했다거나 전처의 자식을 학대한 경우 그렇게 하고 있다오. 떼도적 질을 하다가 잡힌 경우 발가벗겨서 조리를 돌릴 때 머리를 빡빡 밀어버리기도 하는데 이 경우에는 대개 아래쪽 털 그러니까 겨드랑이와 사타구니의 털도전부 밀어버린다오. 그쪽 사도부인의 경우는 머리카락을 빼고는 다 그렇게 되어 있구려.”
첫째가 말했다.
“머리를 빡빡 밀어버릴 필요는 없소. 그럼 일단 이렇게 합시다. 먼저 손을 등 뒤로 묶은 뒤 죄명이 적힌 깃발을 등에다 꽂읍시다. 특별한 죄명이 없으니 그냥 성무장 양세현이라고 적으면 될 것 같소. 그런데 조리를 돌릴 때 어떤 사람을 따라 붙게 하는 거요?”
“주로 하급 형리를 붙여서 죄수의 앞에서 걸어가며 죄명을 알리게 하고 뒤쪽에는 감시하는 형리를 붙이고 북을 달아서 가는 경우 북치는 자를 또 하나 붙인다오.”
“그럼 앞에 형리 하나가 앞으로 가면서 사람들에게 이 계집의 신분과 죄명을 알리게 하고 뒤에 회초리를 든 형리 둘이 따라가면서 걸음을 늦추거나 하면 회초리로 때리게 합시다.”
지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말씀하신 건 아무 문제없소이다. 다만 죄명은 뭔가 구체적인 것이 있어야 할 건데 무엇으로 할 거요?”
“죄명은 음행(淫行)으로 하시오. 사도대협의 부인으로 자결하지도 않고 이런 꼴로다니고 있으니 음행이 아니고 뭐겠소.”
“역시 그게 어울릴 거 같구려. 그럼 조리 돌린 뒤에 형벌은 뭘로 하실 거요?”
“압슬을 가하든 태형을 가하든 그건 조리를 돌리고 난 뒤에 결정하도록 합시다. 관아 문을 열어서 사람들이 들어와서 구경을 하게하며 형벌을 내리면 될 거요.”
“알았소이다. 말씀대로 그렇게 하지요.”
지부가 아전 하나를 불러 뭐라고 명령하자 곧 형리 두명이 다가와 양세현을 뒤 쪽으로 데려갔다.
첫째가 형리들에게 말했다.
“이 계집은 아무것도 봐줄 필요 없으니 그냥 산적 질이나 떼도둑 질을 하다 잡힌 죄수와 다름없이 그들에게 하는 대로 똑같이 대하도록 하게. 그리고 시중에 먼저 알리려면 시간이 걸리니까 시간이 좀 걸려도 상관없으니 천천히 하도록 하게.”
양세현을 대청 뒤로 데려가며 형리 하나가 말했다.
“사도부인 우리도 명을 받아 하는 것이라이렇게 하더라도 우리를 원망하지는 마십시오.”
양세현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소녀는 이제 혈신문의 전리품으로 일개 물건이에요. 두 분 나리께서는 사도부인이라고 부르지 마세요. 소녀는 남편의 명예를 팔아 목숨을 구걸하는 비천한 계집이예요. 그러니 부디 소녀를 큰 죄를 범해 빨가벗겨 놓고 벌을 주는 여죄수와 똑같이 대해 주세요. 비천한 소녀가 어찌 나리들을 원망하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