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화 〉호주성 유희 9
9.
발가벗겨져 조리돌림을 당하는 양세현을 보며 과거 사도백천이 십이혈마를 무찌르고 중원을 구원했던 일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었다.
“근데 아무리 그래도 사도대협의 마누라를 저렇게 발가벗겨서 조리 돌리는 건 너무한 거 아냐?”
“그러게 말일세. 십이혈마가 그 소동을 일으킨 게 불과 십여 년 전이고 사도대협이 그들을 무찌르고 구원한 공을 다 잊은 건가. 정말 너무한 거 같은데 조정에다 고발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닐까 싶네?”
“사도대협의 공로도 있지만 사도부인 본인도 큰 공을 세웠다고 들었네. 사람들이 그때의 공을 다 잊고 저렇게 가혹하게 벌하다니 정말 안타깝네.”
양세현은 높은 무공으로 인해 귀가 밝아 군중이 떠들어대는 속에서도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다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들이 자신을 안타깝게 여기는 대화를 듣자 자신이 이렇게 음란한 몸이 되어 버려 오랜만에 큰 수치심이 몰려왔다. 하지만 그런 수치심이 오히려 더 강한 성적 자극이 되어 돌아와 보지가 더 발랑거리는 걸 느꼈다. 양세현은 자기 자신에 대해 이제 정말 말할 수 없는 음녀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대화는 계속되었다.
“지부 대인의 벼슬 정도로는 너무 위험한 짓을 하는 거 아닐까?”
“멍청이, 지부 대인이야 조정에서 임명한 관리인데 뭐가 무섭겠어. 게다가 사도대협을 떠받드는 건 우리 백성들이나 무림인들 정도뿐이야. 조정 관리의 눈에는 무림인이나 거리의 건달이나 똑같이 보일 뿐이라는 거 몰라.”
“게다가 소문 못 들었어. 저번에 이부상서의 며느리와 딸이 경성거리에서 저렇게 빨가벗겨서 조리 돌려진 거. 소문에는 그 여자들도 지금 사도부인처럼 사타구니 털을 모조리 뽑힌 뒤에 조리 돌렸다더군.”
“그건 정말 무서운 소문이었는데 진짜일까?”
“환관에게 걸리면 누구도 안 봐준다는 얘기지 뭐겠나. 지금이야 이부상서니 내각대학사니 하는 사람들이지만 심할 경우에는 황족도 안 봐 줄 걸.”
“요즘 환관이 정권을 잡는 바람에 경성에선 동창 놈들이 그렇게 설친다며.”
“어이쿠 입 당장 닥치고 조용히 못해. 이렇게 사람들 많은데서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래.”
“그래 말조심해. 여기야 동창 사람들이 없겠지만 경성에선 말 한마디 잘못하면 진짜 끝장이라더군. 예전과 달리 무림인들도 경성 일대에선아예 입을 닫고 산다더군.”
“어이쿠 무림인들까지 그런단 말인가?”
“이건 내 친구가 한 달 전에 직접 경성 거리에서 본 거라고 알려주던데 정파 무림 여자 세 명이 동창에게 걸려서 저기 사도부인보다 더 심하게 조리 돌림 당했데.”
“아니 어떻게 당했길래 저것보다 더 심하다는 건가?”
“왜 예전에 호주성에서도 작년에 한 번 그런 적 있잖아. 동창 사람들이 웬 도둑년을 잡아서 머리를 비구니들처럼 전부 빡빡 깎이고 저기 사도부인처럼 거시기 털이랑 겨드랑이 털도 싹 밀어버리고는 온 몸에 바늘은 잔뜩 꽂고 조리 돌리던 거,”
“물론 기억하고 있네. 그럼 경성에도 그런 일이 또 있었단 말인가.”
“경성에서도 딱 그랬다더군. 더구나 그때는 도둑년이었지만 이번에는 정파 무림인이었다고 하더군. 게다가 거리를 돌면서 자기가 어느 파의 누구고 동창에 무슨 죄를 지었다 운운하면서 거리를 돌았다는데 온 몸에 매를 맞은 자국이 가득했고 특히 엉덩이나 허벅지는 완전히 피투성이가 되어 있더래. 사파 무림의 여자들의 경우는 국법을 심하게 범해서 그렇게 되는 경우가 간혹 있었지만 정파 무림의 여자가 그렇게 되는 경우는 십이혈마의 난리 이후로 처음이라면서 꽤 시끄러웠다더군.”
“경성에서의 일도 그렇고 그 대단하던 성무장이 혈신문에 점령당하고 사도부인이 저꼴이 된 것도 그렇고 아무래도 세상이 점점 무서워지는 건가 봐.”
양세현은 처음 듣는 얘기였다. 혈신문과 어제 얘기 들은 강룡사의 출현이야 워낙 예측할 수 없는 부분이어서 그렇다고 쳐도 동창의 대두는 충분히 짐작하고 대처할 수 있는 부분인데도 무림맹의 누구도 몰랐다는 건 초산사효의 말대로 무림맹이 종이호랑이가 되었다고 봐야 할 것 같았다. 아니 그것보다는 정파 무림 전체가 종이호랑이라고 봐야 할 것 같았다.
양세현은 무림맹 사람들이 게으름을 피웠다고는 생각하지는 않았다. 다만 정파의 세력이 그렇게 약해진 주제에 자신은 세상이 변하는 것도 모르고 성무장 안에 들어박혀 죽은 남편만 추억하고 살았다. 어쩌면 자신이 지금 완전히 발가벗겨져서 사람들 앞에서 조리돌려지는 것도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되었다.
형리 한 명이 맨 앞에 서서 소리쳤다.
“음녀(淫女) 양세현을 지금 지부 대인의 명에 따라 조리 돌린다. 호주 백성들은 모두 나와 이 음녀가 받는 형벌을 보라.”
형리가 앞장서서 걷자 양세현의 바로 뒤에 서 있던 두 형리 중에 왼쪽에 서 있던 자가 손가락 세 개를 합친 정도의 폭을 가진 얇은 대나무 매로 양세현의 엉덩이를 찰싹 때리며 말했다.
“너도 뒤를따라라.”
정말 지독하게 아픈 매였다. 양세현은 짧은 비명을 지르며 앞서가는 형리의 뒤를 따라 걸었다. 그러자 오른쪽에 서 있던 형리도 똑같은 대나무 매로 엉덩이를 때리며 말했다.
“죄인은 자기 죄명을 호주 백성들에게 고하라.”
양세현은 큰 소리로 외쳤다.
“호주 백성, 성무장 사도백천의 처 양세현이 음란한행동을 저질러 지부 대인의 명으로 벌을 받습니다. 호주 백성들은 봐 주십시오.”
대략 스무 걸음 정도를 걸을 때마다 형리가 소리쳤고 그때마다 뒤에 서 있던 형리의 매를 맞으며 양세현은 바로 형리를 따라 자기 죄명을 외쳤다.
양세현 일행이 길을 가자 길 앞쪽에 운집해 있던 사람들이 좌우로 길을 벌려 주었다. 워낙 많은 성민들이 구경꾼들이 모여들어 있어 그들이 길을 열어준다고 해도 겨우 두세 명이 나란히 걸어갈 정도의 여유밖에 생기지 않았고 때문에 그들 사이로 걸어가는 양세현은 좌우 가까이에 서 있는 사람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게 사람들 가까이 다가가게 되자 자연히 양세현의 살짝 벌어져서 경련하는 보지도 사람들 눈에 들어왔고 그것을 본 사람들이 양세현의 보지를 손가락질 하며 소곤거렸다.
“어이쿠 저기 보지 좀 봐. 저렇게 벌어져서 발랑거려.”
“보지에 뭘 넣은 것도 아닌데 저렇게 벌어져서 발랑거릴 수가 있나?”
“난 처음 보는데 저런 얘기도 못 들어봤어.”
“어떻게 저렇게 발랑거리지?”
“진짜 음탕해서 그런 거 아냐?”
주위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양세현의 움직임에 따라 계속 걸어가며 구경하고 싶었지만 사람들이 길 좌우에 워낙 꽉 들어차 있어 걸음을 떼기 어려울 정도라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양세현이 지나가느라 열린 좁은 길 정도는 금방 사람들로 메워졌고 뒤에서도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어휴 저 궁둥이 좀 봐.”
“저 허벅지는 어떻고, 정말 죽여주는군.”
“저 가는 종아리도 좀 봐요. 저렇게 군살 하나 없이 날씬해요.”
“등이랑 허리도 정말 매끈하고 가느네요.”
“허리나 다리가 저렇게 가는데 무공을 제대로 쓸 수 있을까?”
“어휴 멍청이 저렇게 다리 날씬한 여자가 훨씬 힘 좋은 거 몰라?”
“진짜 열 살 넘는 애가 있는 여자 같지 않지?”
그 뒤에서는 사람들이 서로 밀고 밀리느라 소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어이쿠 내 발.”
“어이쿠 밀지 마.”
“앞에 사람들 좀 비켜.”
“여기서 어떻게 비켜.”
“젠장 앞에 갈 곳이 없으니까 뒤에 사람들 밀지 마. 사람들 깔려죽겠어.”
거리 좌우의 건물에서는 이층이나 삼층 창문으로 사람들이 머리를 내밀고 구경하고 있었고 여자들도 많았다.
“어머나 진짜로 빨가벗었어. 진짜로 빨가벗었어. 언니 빨리 와서 봐요. 진짜 사도부인이 빨가벗고 조리돌려지고 있어요.”
“정말로 저렇게 아무것도 안 입고 있네.”
“어휴, 어떻게 여자가 저렇게 빨가벗고 거리를 걸을 수 있죠?”
“진짜 사도부인이 맞긴 맞아?”
“네 진짜 맞데요.”
“어머나 진짜 사도부인 맞아. 나도 예전에 본 적 있어.”
“맞아 맞아 예전에 저기 객잔에 몇 번 들렸었어. 진짜 사도부인 맞아.”
“예쁘긴 정말 예쁘네요.”
“서른 살 넘었다던데 스무 살 갓 넘은 거 같지.”
“예쁘면 뭐해, 저렇게 사람들 앞에서 빨가벗고 돌아다니는데.”
“정말 나 같으면 부끄러워서 죽어버리겠다.”
“진짜 나중에 돌아가서 자살하는 거 아냐?”
“글쎄 그게 아니래요. 한 달 전부터 관도에서 빨가벗고 다녔대요. 자살했으면 벌써 했겠죠.”
“아 그 얘긴 나도 들었어. 가흥으로 가는 나루터까지 빨가벗고 뛰어갔고 보름 전에는 여기 성문 앞에서도 빨가벗고 왔었다며.”
“나도 그 얘긴 들었는데 웬 미친 여자가 그랬다고 생각했는데 사도부인일 줄이야 누가 알았겠어.”
“난 그 얘기 듣고 누가 헛소문을 퍼뜨렸다고 생각했어요. 아무리 그래도 세상에 빨가벗고 관도를 뛰어다니는 여자가 어디 있겠나 싶었지요. 근데 세상에 그게 진짜고 그 여자가 사도부인이라니 정말 놀랐지 뭐예요.”
“어휴 사도부인이 그렇게 귀하고 높은 분인 줄 알았는데 저렇게 사람들 앞에서 빨가벗고 돌아다녀.”
“거리의 갈보도 그렇게 빨가벗고 돌아다니지는 않는데 말이죠.”
양세현은 거리 좌우를 가득 메운 남자들보다 그런 여자들의 말이 더 가슴을 찔렀다.
하지만 더 가슴을 아프게 찌르는 소리가 귀에 들렸다.
“저것 봐. 진짜 운아 엄마야. 운아 엄마가 진짜 빨가벗고 지나가고 있어.”
목소리가 들려온 곳은 어느 저택의 이층 다락방이었다. 양세현은 가슴을 졸이며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곁눈질로 살짝 바라보았다. 바로 아들 사도운의 친구 중 한 명의 집이었고 목소리를 들으니 바로 자신의 아들과 친하게 놀고 하던 어린 소년의 목소리였다. 바로 성무장에서 자신의 아들 사도운과 친하게 놀고는 하던 아이라 양세현도 잘 기억하고 있었다.
“진짜 운아 엄마 맞아. 오랜만에 보지만 얼굴이 기억나. 그런데 운아 엄마가 저렇게 빨가벗고 지나갈 줄은 몰랐어.”
이번에는 다른 목소리였지만 양세현은 조금 전 첫 번째로 들었던 목소리와 마찬가지로 아들의 친구 중 한 명의 목소리라는 사실이 기억났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운아 엄마가 저렇게 예뻤구나. 예전에 운아와 놀 때는 운아 엄마가 저렇게 예쁜 줄 잘 몰랐어.”
이번에도 다른 목소리였다. 세 소년 모두 양세현의 아들 사도운과 가장 친하게 지내던 소꿉친구들이었다. 아마 양세현이 발가벗겨져 조리돌려진다는 얘기를 듣고 거리가 잘 보이는 친구의 집 다락방에서 몰래 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양세현은 세 소년의 목소리를 듣자 너무 부끄럽고 창피해서 어딘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아니 지금이라도 당장 무공을 사용해서 자신을 묶고 있는 밧줄을 끊어버리고 주위를 감시하는 옥졸들을 쓰러뜨린 뒤에 어딘가로 달아나고 싶을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