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38화 〉호주성 유희 11 (138/148)



〈 138화 〉호주성 유희 11

11.

사람이 돼지가 산다는 말이 이해가 안 되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인지 다들 웅성거렸다.

“사람이 돼지가 되어 산다니 그게 뭐야?”

“난들 알겠나. 사람이 돼지가 되다니 무슨 얘기인지 원.”

양세현은 주위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아무래도 자신이 암퇘지가 됐다는 얘기는 일부 사람들에게만 전해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지부가 말했다.

“음녀 양세현은 돼지가 됐다는  어떤 것인지 보이 거라.”

양세현은 몸을 파르르 떨었다.  자리에서 그런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지금까지 극히 한정된 사람들 앞에서 보인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지금까지는 그런 모습을 보여도 성무장의 하인이나 성무장 땅을 붙여먹는 마을 사람들일 뿐이었지만 이 자리에서 보이는 것은 곧 온 세상 사람들에게 다 보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양세현은 문득 혈신문에서 왜 자신을 이곳으로 보낸 것인지 깨달았다. 혈신문주 구양선은  세상에 과거 사도백천의 아내였던 양세현이 암퇘지라는 것을 보이고 혈신문의 소유물이라는 것을 알리고자 하는 것이다.

양세현은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던 자세 그대로 엉덩이를 바짝 치켜 올리고 네 발로 부청 안 마당을 기기 시작했다. 주위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일제히 비명 같은 소리를 질렀다.

“헉, 저거, 저거.”

“어이쿠, 저거 뭐야?”

“어떻게, 여자가 저렇게  발로 기다니.”

“아이쿠, 진짜 짐승처럼  발로 기네.”

“어이쿠, 놀래라 저렇게  발로 긴다고 돼지라고 하는 모양이지.”

그들은 여인을 알몸으로 조리돌리는 광경은본 적이 있어도 발가벗은 여인이 짐승처럼 네 발로 기는 광경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양세현은 돼지처럼 꿀꿀거리기 시작했다.

“꿀꿀! 꿀꿀! 꿀꿀! 꿀꿀!”

이번에는 진짜 곳곳에서 일제히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악!”

“허억!”

“우와앗!”

“어이쿠!”

양세현은 계속 네 발로 마당을 기어서 돌며 꿀꿀거렸다.

“꾸울, 꿀꿀! 꾸울, 꿀꿀!”

구경하던 사람들은 소리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저 입만 벌리고 바라보고 있었다. 지부 대인조차 입만 쩍 벌리고 바라보고 있었고 좌우에 도열했던 형리들과 병사들조차 그냥 입을 벌린 채 바라보기만 했다. 부청 안을 가득 채운 수많은 사람들 중에  광경을 보고 놀라지 않는 사람은 초산사효뿐이었다.

양세현은 한참이나 그렇게 돼지처럼 꿀꿀거리며 부청 마당을 돌아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무릎을 꿇고 지부 대인을 향해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전 호주 백성이었던 음녀 양세현은 비루한 목숨을 이어가고자 더 이상 사람이기를 포기하고 혈신문 소유의 암퇘지가 되었습니다. 부디 지부대인께서는 넓은 아량으로 호주 백성 음녀 양세현이 비천한 짐승으로나마 목숨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주위에서는 여전히 말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고 대청에 앉은 지부는 침만 삼키며 바라보다가 한참만에야 입을 열었다.

“죄인……, 그러니까 음녀 양세현은 이제 짐승으로 살아간다는 말이냐?”

양세현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호주 백성 음녀 양세현은 비루한 목숨을 이어가고자 혈신문에 항복하고 혈신문의 암퇘지가 되었습니다. 비천한 짐승이 어찌 감히 더 이상 사람이라고 하겠습니까. 지부 대인께서는 오로지 자비를 베푸시어 전 호주 백성 음녀 양세현이 그저 짐승으로나마 한 목숨을 이어갈 수 있게 해주시길 바랄 따름입니다.”

지부 대인은 뭐라고 입만 달막거릴 뿐 한참이나 말을 못하다가 한쪽에 서있던 초산사효의 사효의 첫째가 뭐라고 전음을 날린 뒤에야 화들짝 입을 열었다.

“전 호주 백성 음녀 양세현은 감히 백성으로서의 염치를 버리고 오로지 비루한 목숨을 구해보고자 짐승이 되는 길을 선택했다. 이는 사람으로서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지만 호생지덕은 왕법또한 바라는 바라 태형 백 대를 때려 죄를 벌하고 앞으로 짐승으로서나마 목숨을 이어갈 수 있게 하겠다. 태형을 받은 순간부터 호주 백성 음녀 양세현은 사라지고 앞으로 짐승이 되는 것이니 호주 백성들은 이를 유념하고  음녀를 짐승으로 여기도록 하라.”

판결이 떨어지자 양세현은 연시 머리를 조아리며 지부 대인에게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호생지덕을 베푸시어 천한 짐승에게 한 가닥 살길을 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위에 도열해 있던 형리들이 형틀을 가져다 놓고  위에 양세현을 엎드리게 한 뒤 손발을 묶었다.

그 뒤 다섯 자 정도 되는 길이에다 어른의 엄지손가락 정도 굵기의 굵은 버드나무 회초리를 가져와 형리 하나가 숫자를 셀 때마다 그것으로 힘껏 양세현의 벗은 볼기를 때렸다.

“하나!”

형리의 목소리가 떨어지자 회초리를 든 형리가 주위의 사람에게 다 들릴 정도의 공기 가르는 소리가 날 정도로 버드나무 회초리를 휘둘러 양세현의 볼기를 때렸다. 찰싹 하는 커다란 소리가 가까이 있던 사람들에게 전부 들렸다.

양세현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아악!”

비명소리가 터져 나온 뒤에 바로 양세현이 감사한다는 소리를 크게 외쳤다.

“비천한 음녀 양세현에게 호생지덕을 베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양세현의 말이 끝나자마자 형리가 다시 외쳤다.

“둘!”

다시 공기 가르는 소리가 들리고 양세현의 엉덩이에 회초리가 떨어졌다. 양세현의 입에서 다시 비명이 터져 나오고 잠시  살려줘서 감사한다는 외침 소리도 나왔다.

태형  대를  맞는 데는 한참이나 걸렸고 태형이 끝났을 때 양세현의 엉덩이는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눈에 피투성이로 보였을  혈신문의 대법을 받은 양세현의 피부는 무서운 속도로 상처를 아물게 해 엉덩이에 묻은 피를 제외하면 상처는 이미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태형이 모두 끝나자 형리들이 다가와 형틀에서 양세현을 풀어주었고 양세현은 엉덩이와 허벅지가 피를 가득 묻힌 채로 지부 대인에게 무릎을 꿇고 엎드려 머리를 조아렸다.

호주 지부가 소리쳤다.

“전 호주 백성 음녀 양세현은 이제 사라졌고 남은 것은 한 마리 짐승이다. 너는 더 이상 사람으로 행세할 수 없고 다른 호주 백성들이 이 짐승을 더 이상 사람으로 대우해서는 안 된다.”

양세현은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살려줘서 감사한다고 소리쳤다.

잠시 뒤 초산사효가 말을 타고 오자 양세현은 네 발로 기어서 그들 옆으로 다가갔다.

초산사효의 첫째가 말했다.

“이제 성무장의 모든 것은 혈신문의 소유가 되었으니 너는 호주성 안에 있는 이전 성무장 소유의 건물들로 안내하도록 해라.”

첫째의 명령이 떨어지자 양세현은 앞장서서  발로 기어가고 초산사효를 말을 탄  양세현의 뒤를 따랐다. 부청 앞에 운집해 있단 사람들은 그들이 나오자 모두 좌우로 물러서서 길을 열어 주었다.

좌우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이젠 진짜 짐승이 된 건가?”

“그렇다고 하잖아. 지부 대인이 그렇게 말했으니 최소한 호주성 안에서는 그런 거겠지 뭐.”

“이런  말이라도 들어본 사람 있어?”

“말은커녕 꿈도 꿔보지 못했네. 눈으로 보지 못했으면 이런 일이 가능하다는 걸 상상도 못했을 걸.”

“우리는 그럼 저 갈보를 짐승으로 대하면 되는 건가.”

“지부 대인이 그렇다고 했으니 그렇겠지 뭐.”

“앞으로 저 갈보는 어떻게 될까?”

“그걸 우리가 어떻게 알겠어. 혈신문 소유라고 하니 그 혈신문이라는 곳에서 알아서 하겠지.”

“사도대협의 마누라가 저렇게 된다니 눈으로 보고도안 믿어지는군.”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그게 더 걱정 돼.”

거리의 이층 창문에서 여자들이 대화를 나누는 소리도 들려왔다. 태형을 받느라 시간이 꽤 걸려 그 사이에 이미 상당히 소식이 전해진 모양이었다.

“저것 봐요. 진짜 짐승처럼  발로 기어가요.”

“부청 안에서 돼지처럼 꿀꿀거렸다며.”

“그렇데요. 그리고 매도맞고 지부 대인도 이제 사람이 아니고 짐승이라고 말했데요.”

“저렇게 빨가벗고 네 발로 기어가니 딱 짐승은 짐승이네.”

“그것도 그냥 짐승이 아니고 돼지래요 돼지.”

“아까까지는 웃으면서 봤지만 이제 좀 무서워요.”

“그러게 말이야. 나도 이제  무서워.”

엉금엉금  발로 기어가던 양세현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성무장 소유의 객잔으로 기어갔다. 객잔은 반점을 겸하고 있었고 호주성 안에서도 손꼽히게 큰 객잔이어서 많은 손님이 머무르고 있었는데 손님들은 양세현이 벌이는 일을 구경하려고 전부 거리로 나가 있어서 객잔의 주루에는 손님이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객잔의 점장과 점소이들에다 주방의 일꾼들까지 전부 자기네 주인마님이 발가벗고 돌아다닌다는 소문에 거리로 구경을 하러갔다가 양세현이 객잔으로 들어가자 부랴부랴 뛰어 들어왔다.

양세현이 네 발로 기어서 객잔의 주루 안으로 들어서자 초산사효도 말에서 내려 주루로 들어갔다.

주루 안에 아무도 보이지 않자 초산사효 중의 막내가 소리쳤다.

“점장은 어디 있느냐?”

바깥에서 점장이 부랴부랴 뛰어 들며 소리쳤다.

“예, 예, 여기 점장이 있습니다.”

점장은 발가벗은 알몸으로 엉덩이를 치켜들고 네 발로 엎드려 있는 양세현을 힐끗곁눈질하고는 초산사효에게 말했다.

“소인이 이 객잔의 점장입니다요. 하명해 주십시오.”

셋째가 소리쳤다.

“점장이라는 놈이 자리를 비우고 어디를 갔었느냐. 게다가 점소이  놈도 보이지 않는  뭐냐?”

점장이 이마의 땀을 닦고 네 발로 엎드린 양세현을 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소인도 그렇고 점소이들도 그렇고 하도 밖에서 구경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저, 저, 저분……이, 소인들의 주인마님이었는지라.”

넷째가 소리쳤다.

“저 암퇘지는 그냥 암퇘지라고 부르면 된다. 주저할 것도 없고 신경 써 줄 것도 없으니 그냥 암퇘지라고 불러라.”

둘째가 말했다.

“자네가 성무장에서 위임한 이 객잔의 총 책임자인가?”

“예, 예, 소인이  객잔의 총책임자입니다.”

그들이 얘기를 나누는 사이 주루의 점소이들과 객잔의 다른 점원들도 뛰어 들어와 그들이 나누는 얘기를 들었고 주루 바깥에는 사람들이 운집해서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구경하고 있었다.

둘째가 계속 말했다.

“성무장이 혈신문 소유가 됐고 이 암퇘지가 이제 더 이상 사람이 아니고 암퇘지라는얘기는 들었겠지?”

“예, 들었습니다.”

“때문에 과거 성무장 소유였던 재산은 이제는 모두 혈신문의 소유가 되었다. 여기  암퇘지가 모두 증언할 것이니 우리 말을 믿을 수 있겠지?”

발로 엎드려 있던 양세현이 무릎을 꿇고 점장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네 분 나리의 말씀은 모두 사실입니다. 소녀만 해도 이제 혈신문 소유의 암퇘지인지라 과거 성무장의 재물은 모두 혈신문의 것이 되었습니다. 이제 이 객잔과 주루도 혈신문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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