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42화 〉죽림비궁 4 (142/148)



〈 142화 〉죽림비궁 4

4.

조금 뒤에서 첫째와 함께 따라오던 동매가  모습을 보며 말했다.

“정말 사도대협의 아내이자 십이혈마를 무찌른 강호 제일의 여제갈로 유명한 양세현이  모양이라니 눈으로 보지 못했다면 절대 믿지 못했을 거예요.”

첫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처음 보고 양세현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사실 두 눈으로 직접 보고도 믿기 어려운 일이었지.”

“정말 그래요. 저 암퇘지는 사도대협의 아내로서만 유명한 게 아니고 본신의 무공 또한 천하에서 손꼽히던 몸인데 어떻게 그렇지 않겠어요. 하지만 저희들로서는 무려 십 년이나 저 계집을 상대하기 위해 고련을 거듭했는데 저런 모습을 보니 조금 허탈하네요.”

“저 계집과는 어떻게 시비가 붙었던 거냐?”

“저희 죽림비궁은 여자들로만 이루어진 문파인데 원래 중원에서 기원한 문파가 아니라 중원의 예교에는 구애받지 않는 편이에요. 그래서 문도들이 남자를 사귀거나 해도 문파에서는 전혀 상관하지 않지요. 그렇게 바깥에서 남자를 사귀고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아오거나 해도 전혀 흠이 아니에요.

하지만 그 때문에 중원 사람들은 저희들을 사파로 여기고 업신여기는 편이죠. 하여간 우리는 중원 문파들이 우리를 어떻게 여기든 상관하지 않고 살아왔어요. 근데 오히려 그게 다행히 복이 되어 십이혈마의 난리 때는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죠. 근데 그게 정파인들은 우리가 십이혈마와 결탁한 걸로  모양이에요.

같은 사천에 있는 아미와 청성은 십이혈마의 난리  엄청난 피해를 겪었는데 비해 우리는 멀쩡하니 오해를 산 거였죠. 근데 십이혈마가 전부 죽고  뒤 어느 날 저 계집이 우리들 앞에 오더니 본궁에 십 년간 강호에 나오지 말아달라는 거예요. 그때는 정말 뜬금없는 시비로 여겼는데 뒤에 알고 보니 우리와 사이가 안 좋은 아미파에서 우리가 무서워 그런 수작을 부린 거였어요.

당시 아미파는 고수들이 전부 죽고 어린 제자 몇 명만 살아남았으니 우리에게 당할까 무서워 저 계집에게 우리 험담을 마구 해대고는 십 년만 시간이 있으면 된다고 저 계집을 꼬드긴거죠. 그래서  계집이 찾아와 우리에게 그런 시비를 건 거고요.

당시에는 저 계집이 아직 젊을 때였고 머리가 영리해서 사도백천의 여제갈 역할을 한다는 건 알았지만 무공은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을 때였죠. 그래서 본궁의 궁주가  계집에게 우리 검진을 혼자서 깨뜨리면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한 거고요. 근데  계집의 무공이 그 나이에 그렇게 강할 줄은 생각도 못했죠.”

“그 뒤엔 너희를 골라 저 계집에 대한 복수를 맡긴것이냐?”

동매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 궁주께서 생각하기에 다른 문도들은 나이가 많아 새로 무공을 크게 증진하기는 어렵다고 보고 당시에는 아직 나이가 어렸던 저희 넷을 골라 본궁의 가장 강한 무예를 골라 아낌없이 전수해 주고 또 검진을 수련하게 했어요.

일대일로는 도저히 저 계집을 이길 자신이 없어서 다시금 검진으로 저 계집과 싸워보겠다는 뜻이었죠. 그래서 저희들은 십 년간이나 본궁 밖으로 나가보지 못하고 오로지 무공만 수련했죠.”

확실히 일리가 있는 얘기라 첫째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어서 물었다.

“이런 얘기가 어떨지 모르겠다만 너희에겐 큰 흠이 되는 얘기가 아닌 것 같아서 묻겠는데 너희들은 처녀는 아닌 거 같은데 어려서부터 궁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수련만 했다면서 어떻게 남자를 알게 된 거냐?”

동매가 깔깔 웃었다.

“궁 밖으로는 나가지 못해도 궁으로 찾아오는 남자들은 간혹 있었죠. 원래는 궁 안으로 남자가 들어올 수는 없었는데 문도들이 밖으로 나갈 수 없으니 그들이 안으로 찾아왔죠. 본궁의 장로들도 남자들이 본궁의 가장 비밀스런 장소로 접근하지만 않으면 상관하지 않았죠.

게다가 아까 문도들이 바깥에서 남자와 사귀어 아이를 낳기도 한다고 했죠. 물론 그 아이가 딸이면 궁 안에서 길러요. 하지만 그게 반드시 딸이라는 보장을 어떻게 해요. 당연히 사내아이도 태어나고 그 애들은 당연히  밖 가까운 곳에서 기르죠. 그러니 그 사내아이들은 비교적 본궁의 여자들과 친해요.  아이들도 궁에 자주 출입했죠.”

첫째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은 특별히 여자의 처녀성을 따지는 편이 아닌데다가 여자도 당연히 욕망이 있을 것이니 그렇게 남자와 사귀는 것도 전혀 나쁘게 보지 않았다.

“그런데 저 계집과 겨루겠다고 십 년간 고련한 건 이해하겠는데 혈신문주는 왜 만나려는 것이냐, 설마 저 꼴이 된 계집과 싸우겠다는 건 아닐 테고?”

동매가 조금 깊이 생각을 하더니 대답했다.

“원래 이건 본궁의 비밀인데 오라버니께 전부 숨길 수는 없으니 일부만 말씀드리죠. 본궁에는 비밀리에 전수되는 비약을 만드는 방법이 있는데 굉장히 조건이 까다로워서 거의 백 년이나 그 비약을 만들 수 없었어요. 그런데  조건 중의 하나가 바로 저런 계집의 존재예요. 저 계집이  조건에  맞는지는   없지만 혹시라도 가능성이 있을까 싶어 혈신문주에게 물어보려는 거예요.”

“무슨 비약이기에 그렇게중요시하는 거냐?”

“정확히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소림의 대환단과 맞먹는 효력을 지닌약이라는 말씀을 드리죠.”

초산사효는 복용하면 일갑자의 공력을 올려주고 죽어가는 사람도 살아난다는 소림 대환단과 같은 효력을 지녔다는 말에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처음에는 거짓말이 아닐까 싶었지만 비밀에 싸인  문파가 백 년에 걸쳐서 만들어내지 못했다면 충분히 대환단 못지않은 물건이 될  있을 듯싶었다.

성무장에 닿자 양세현의 엉덩이를 때리던 여인들도 엉덩이 때리던 것을 멈추고 조심스럽게 초산사효의 뒤를 따라 말을 몰고 성무장 안으로 들어갔다.

대청 앞 마당으로 들어가기 전에 초산사효가 말에서 내리자 그들도 전부 말에서 내리려하는데 첫째가 말했다.

“돼지야 엎드려서 선자님들의 다리 받이가 되어 드려라!”

양세현은 재빨리 여인들의 말 옆으로 네 발로 엎드려서 그들이 자신의 등을 밟고 내릴 수 있게 했다. 여인들이 깔깔 웃었다.

서란이 양세현의 등을 밟고 말에서 내리며 말했다.

“죽림비궁 사람들이 이 꼴을 보면 얼마나 좋아할까.”

남국도 양세현의 등을 밟고 내리며 말했다.

“아마 우리가  암퇘지를 제압하고 너무 가혹하게 군다고 하지 않을까?

북죽이 말했다

“아니 더하라고 할 걸. 우리가 그 동안 이 암퇘지 때문에 그런 모욕을 당했는데 이제 이 정도가 무슨 대수겠어.”

말을 마치며 북죽은 자신을발을 받쳤던 양세현의 엉덩이를 걷어차 버렸다.

“본궁이 이런 암퇘지에게 패했던 것도정말 모욕이고 말이야.”

양세현이 그렇게 죽림비궁의 여인들을 상대하고 있는 사이 초산사효의 첫째가 여인들을 기다리게 하고는 급히 안으로 들어갔다가 조금 지나서 나왔다.

남의문파 사이에 비밀스런 이야기를 나눌 때는 끼어들지 않는 것이 예의인지라 초산사효는 죽림비궁의 네 여인들만 대청으로 들여보내고 자신들은 들어가지 않았다.

죽림비궁의 여인들이 모두 대청으로 다가가니 대청 의자에 혈신문주 구양선이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동매는 초산사효의 첫째로부터 혈신문주가 자신들과 비슷한 나이의 젊은 여인이라는 말을 미리 들었지만 직접 그 모습을 보게 되자 속으로 감탄하지 않을  없었다.

‘저 여자는 저렇게 아름다운데다 아무리 봐도 우리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수하들만으로 성무장을 제압해 버릴 정도로 대단하구나.’

서로 나이는 비슷해도 구양선은 일문의 문주요 동매와 다른 여인들은 일개 문도들에 불과했다. 동매와 다른 죽림비궁의 여인들이 전부 한쪽 무릎을 꿇고 포권하면서 소리쳤다.

“서천 죽림비궁의 제자 군자사검 동매, 서란, 남국, 북죽이 감히 혈신문주를 뵙습니다.”

동매, 서란, 남국, 북죽은 모두 사군자의 이름을 따고 있는지라 죽림비궁에서는 그들을 합쳐 군자사검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구양선도 일어나 포권하며 말했다.

“보아하니 비슷한 연배 같은데 너무 예의 차릴 것은 없어요. 여기 오셔서 함께 차라도 들지요.”

군자사검이 빈석에 앉자 구양선이 가볍게 손뼉을 쳤고 곧 유월련이 쟁반에 차 주전자와 찻잔을 담아 와서 그들 앞에 놓았고 바로 뒤를 이어 단명선이 과자가 담긴 접시를 그들 앞에 놓았다.

동매와 다른 여인들은 절색의 여인들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발가벗은 알몸으로 다과를 내오자 초산사효가 말했던 여인들로 짐작하고 물었다.

“혹시  여자들이?”

구양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예전 곤륜파의 장문부인과 점창의여장문이었죠. 하지만 지금은 본문의 암캐일 뿐이니 예의 차릴 필요는 없어요. 그냥 짐승을 대하듯 하면된답니다. 호주성에서 본문의 암퇘지도 보았으니 이런 걸 특별히 꺼리지는 않으시겠죠?”

동매와 다른 여인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동매가 약간 놀란 눈으로 말했다.

“저희는 이런 모습을 전혀 꺼리지 않습니다만 다만 저 계집들의 원래 신분을 생각하니 귀문의 힘이 너무나 엄청나 단지 조금 놀란 것뿐입니다.”

구양선이 빙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런데 본문에 하실 말씀이 있다고요?”

동매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포권하고 말했다.

“전혀 인연이 없는 처지에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 예의가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만 꼭 한 가지 여쭐 것이 있습니다. 본궁으로서는 백 년에 걸친 숙원에 관련된 일이라 여쭙는 것이니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구양선이 생긋 웃으며 말했다.

“혹시 금령사(金鈴蛇)에 관련된 얘기인가요?”

구양선이 금령사라는 말을 꺼내자 동매만이 아니고 다른 세 여인까지 모두 경악했다.

동매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금령사는 본궁이 백 년간 지켜온 비밀인데 어떻게 문주께서 알고 계신지요?”

구양선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귀궁의 비밀을 알게 된 것이 아니고 금령사에 대해 본문에 전해지는 기록이 있어서 알고있는 거랍니다. 다만 귀궁의 제자들이 강호에 출두할 때 항상 금령사를 기를 수 있는 태를 찾는다는 얘기를 듣고 귀궁도 금령사의 비밀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했을 뿐이죠.”

동매가 입을 벌리고 한참이나 말을 못하다가 간신히 다시 입을 열었다.

“금령사의 비밀을 이미 알고 계셨다니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혹시 저희가 여쭈려는 게 무엇인지도 짐작하고 계시나요?”

구양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알고 있어요. 낮에 호주성에서 보셨던 암퇘지나 여기 이 암캐들이 귀궁에서 찾는 그런 여인들이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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