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 四 章 구배지례(九拜之禮) (5/9)

        第 四 章 구배지례(九拜之禮) 

         

        사천에는 보기 드문 괴사가 한창이었다.  

         

        민강의 강줄기를 따라 백여 명에 이르는 무림인들이 떼를 지어 이동 

      하는 광경은 좀처럼 보기 힘든 일이었다. 무리의 맨 앞에는 흑발을  

      날리는 짙은 눈썹의 청년이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고 그 뒤를 눈이 번 

      쩍 뜨일 정도의 미남자 둘과 신선과 같은 풍모의 도사와 그를 따른 

       중년의 도사 두명, 그리고 녹의 여인이 쫓고 있었다. 앞선 무리와  

      약간의 거리를 둔 채 뒤를 따르는 무리는 각양각색의 복색과 무기고 

      를 연상시키는 다양한 병장기를 소지한 채 저마다 눈치를 보는 자들 

      로 채워져 있었다. 

         

        송기무가 걸음을 빨리하면 그를 쫓는 무리도 바빠졌으며, 송기상이  

      주저앉아 숨을 고를라치면 무리도 진을 치고 앉아 휴식을 취했다.  

         

        ‘대체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내 뒤를 쫓고 있었는데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 

         

        잠시간 강가에 앉아 숨을 고르는 송기무였다. 저 많은 무리가 자신을  

      쫓고 있었음에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는 사실이 그의 마음을 어지 

      럽혔다. 기척조차 눈치 채지 못했다면 저들 중 누가 자신을 해치려  

      했다면 자신은 영문도 모르고 죽어갔을 것이다. 저들 중에 부친을 해 

      친 흉수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송기무는 현승자 등에게 자신의 목적지를 밝히지 않았다. 아직까지  

      당가연과 자신의 사이는 공식적인 관계가 아니었다. 괜한 말을 하여  

      당가연을 구설수에 오르게 할 수 없기에 그저 급하게 가야할 곳이  

      있다는 말을 했을 뿐이다. 사비옥은 송기무가 일을 마치길 기다렸다가 

       자신의 제자가 될 것인지에 대한 대답을 들어야 한다고 우기며 송 

      기무를 따르겠다고 나섰고, 현승자와 두명의 도인들 역시 송기무를  

      보호해야 한다고 쫓아왔다. 그들이 당당히 모습을 드러내고 송기무와 

       함께하자 송기무의 뒤를 쫓던 다른 무림인들도 하나 둘씩 모습을 드 

      러냈다. 더 이상 숨어있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조 

      금씩 불어난 무림인들은 송기무의 행보가 계속될수록 그 숫자가 더 

      하더니 급기야 지금에 와서는 백 여 명에 달한 것이다. 

         

        “한 모금 하시오.” 

         

        백영이 가죽으로 만들어진 물주머니를 내밀었다.  

         

        “고맙소.” 

         

        물을 몇 모금 하신 송기무는 가죽주머니를 내밀며 입을 달싹거렸다.  

      무엇인가 말을 하려다 마는 모습이었다. 송기무는 백영에게 당신도  

      영약이 탐나 함께 가고 있는 건지 묻고 싶었다. 그러나 백영의 대답을 

       듣게 되면 오히려 기분이 상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말을 삼 

      킨 것이다. 백영은 그런 송기무의 표정을 보며 잠시 기다리다가 아무런 

       말이 나오지 않자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물러갔다. 

         

        “크하하핫!” 

         

        난데없는 웃음소리가 민강유역에 퍼졌다. 처음에는 작은 소리였는데  

      점차로 커지는 웃음이었다. 중인들은 소리가 난 곳을 찾느라 두리번 

      거렸고 사비옥과 현승자의 눈살이 동시에 찌푸려졌다. 두 사람은 소리 

      의 진원이 엄청나게 먼 곳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저토록 

       먼 거리에서 터뜨린 웃음이 거리를 초월해 강가의 모든 사람들이 들 

      을 수 있을 정도로 울린다는 것은 웃음의 주인이 가진 내공이 상상 

      을 초월한다는 말이었다. 

         

        웃는 자가 없는데 웃음소리가 널리 울려 퍼지니 뒤쪽의 무리에서 작 

      은 소요가 일었다. 

         

        “크하하핫! 음양신단이 사천에 있었다니...” 

         

        웃음의 시작과 마지막 말의 크기 차이가 엄청났다. 누군가 빠른 속도 

      로 강변으로 향하며 말하는 것이었다. 사비옥과 현승자의 얼굴에 살짝 

       긴장의 빛이 흘렀다. 자신들이라 해도 이처럼 빠른 움직임을 보일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혹시...?” 

         

        사비옥의 입에서 작은 중얼거림이 들릴 때쯤 검은 인영하나가 달려 

      오는 모습이 보였다. 아니 달려오고 있다고 인지할 때쯤에 그는 벌써 

       송기무의 옆에 다다랐다. 

         

        “감히!” 

         

        어느 사이 현승자의 고검이 검집을 빠져나오며 용음을 울려내었다.  

         

        “흡혈신마(吸血神魔)!” 

         

  

        사비옥의 예리한 안목은 나타난 자의 정체를 한눈에 파악했고 그의 두 손은  

      전광석화처럼 송기무를 잡아 채갔다. 

         

        그러나 나타난 자의 신영을 어느새 송기무의 옆구리를 낚아채고 멀어지고  

      있었다. 

         

        “갈(曷)!” 

         

        현승자는 크게 외침과 동시에 몸을 날려 흡혈신마의 뒤를 쫓았다. 사비옥도  

      뒤질 새라 그 뒤를 쫓기 시작했으며, 주저앉아 구경만 하던 군중들도 황급히 

       몸을 일으켜 세워 달리기 시작했다. 두 명이 하나 되어 앞서 달리고 수많은 

       군중들이 뒤를 쫓는 진기한 풍경이 벌어진 것이다. 

         

        송기무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난데없는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휙 하는  

      뭔가가 다가와 자신의 허리를 잡아들고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몸을 버둥거려 

       저항을 하려 했으나 몸의 어딘가가 뜨끔 하는 것 같더니 팔다리를 움직일 수 

      가 없었다. 엄청난 속도로 이동하는 탓에 세찬 바람이 얼굴로 몰아쳐 숨을  

      쉬기조차 힘들었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말을 떠올린 송기 

      무는 일단 고개가 움직여진다는 것을 확인하고 자신을 들은 채 뛰는 사람의  

      용모를 살폈다. 어둑해지긴 했지만 사물을 분간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기에 

       자신을 안고 달리는 자의 모습이 똑바로 보였다. 아래쪽에서 보이는 얼굴은 

       까무잡잡한 피부에 광대뼈가 드러날 정도로 마른체구의 노인이었다. 매부리 

      코 탓인지 노인의 얼굴을 강퍅해 보였으나 자신을 납치한 것이 그리도 좋은지 

       연신 웃고 있는 표정이었다. 노인은 달리는 중에 간간히 뒤를 돌아보았다. 

         

        흡혈신마의 뒤를 현승자와 사비옥이 바짝 추격하고 있었다. 처음 달리기 시 

      작할 때에는 백여명 전원이 함께 시작을 하였으나 지금에 와서 흡혈신마의  

      시야에 그 모습이 보이는 자들은 많아야 오십 여명 정도였다. 흡혈신마의 엄청 

      난 속도를 따르지 못하고 뒤처져 버린 것이다. 

         

        송기무도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현승자가 검을 뽑아든 채 쫓아오는 모습 

      을 보자 두려운 마음이 줄어드는 것을 느꼈다. 청성의 장로인 그가 자신을  

      보호하겠다고 했고, 그 말을 지키기 위해 달려오고 있는 중이었다. 사비옥이 

       흡혈신마라고 말하는 이야기를 분명히 들은 송기무였다. 무시무시한 별호를  

      지닌 인물이니 납치되는 순간 이자가 자신을 해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떨 

      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승자라면 충분히 자신을 보호해 줄 것이라 믿었다.  

         

        “멈춰라, 이 박쥐 같은 놈아!” 

         

        사비옥의 호통소리였다. 있는 힘을 다 쏟아 부어 달리던 그가 입을 열어 말 

      을 하니 현승자와 나란히 달리다가 조금 뒤쳐지게 되었다.  

         

        “크하하핫! 싫다, 색마야!” 

         

        흡혈신마가 음흉한 웃음을 터뜨리며 대꾸했다. 사비옥과는 달리 그는 말을  

      하면서도 속도가 떨어지지 않았다. 이는 아직까지 그가 전력으로 달리고 있지 

       않다는 것을 뜻했다. 흡혈신마의 말을 들은 사비옥이 이를 악물고 따라붙었다 

      . 색마라는 말은 그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 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묵묵히 달리던 현승자는 흡혈신마가 달리는 와중에도 말을 하는 것을 보고  

      이대로 가단 놓치겠다는 생각을 했다. 흡혈신마의 경공술(輕功術)이 무림의  

      일절(一絶)이라는 이야기를 예부터 들어온 그였다. 과연 오늘 몸소 겪어본 그 

      의 경공은 세인들의 찬사가 아깝지 않을 정도였다.  

         

        “타합!” 

         

        갑작스런 기합과 함께 달리는 기세 그대로 사비옥이 쌍장을 앞으로 밀었다.  

      그러자 장심에서 밀려나가 막대한 기운이 공기를 가르며 흡혈신마의 등을 향해 

       쇄도했다. 

         

        “벽공장(劈空掌)!” 

         

        현승자의 입에서 놀란 외침이 터져 나왔다. 벽공장이란 내공을 이용해 허공 

      을 격하여 상대를 공격하는 수법을 통칭하는 말이었다. 엄청난 내공을 지니고 

       있지 않으면 꿈에서나 시전 가능한 절기였다. 현승자는 설마 사비옥의 내공 

      이 저 정도일 줄을 몰랐기에 놀라 외쳤으나 그보다 더 놀란 것은 흡혈신마였 

      다. 막대한 기운이 등 뒤를 쇄도하는데 놀라지 않을 자가 있겠는가? 

         

        흡혈신마 고적양(高勣洋)은 순간적으로 갈등해야 했다. 허공을 격하고 오는  

      장력(掌力)은 미처 닿기도 전에 등이 따끔거릴 정도로 위맹했다. 몸을 돌려 한 

       손으로 막아 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화화신군의 명성만 생각해도 한 손으 

      로 그의 공격을 막아낸다는 것은 생각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는 별 수 없이 

       송기무를 던지듯 내려놓고 몸을 돌려 쇄도하는 장력을 향해 양장을 밀었다. 

         

        파앙! 

         

        육장(肉掌)과 장력의 충돌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굉음이 울려 퍼지며 고적 

      양의 신형이 뒤로 이장이나 날아올랐다. 이는 장력의 힘 때문이 아니라 고적 

      양이 장력의 기운을 빌어 스스로 몸을 날린 것이다. 잠시간의 멈칫거림을 틈 

      타 현승자가 검을 날릴 것을 우려해 몸을 뺀 것이다. 일단 송기무를 손에서  

      놓친 이상 현승자와 사비옥을 상대로 하여 그를 빼돌린 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미련을 두지 않고 과감히 몸을 날린 것이다. 현승자는  

      재빨리 송기무를 잡아들었다. 그 역시 고적양과 상대하는 것보다 송기무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더 급했던 것이다. 

         

        “크크큭! 천하의 화화신군이 등 뒤에서 암습이라? 고모가 오늘 사형(司兄)의  

      수단에 크게 감복했소이다.” 

         

        고적양의 말에 사비옥의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다. 그러나 사비옥과 같은 늙 

      은 생강이 그대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리는 없었다.  

         

        “당신 무리에게 이 사모가 손을 써준 것도 감사히 여겨할 것이오.” 

         

        “호오! 사귀의 명성이 하늘을 찌르는 것은 미리 알고 있었으나 이 편복(? 

      ?)을 무시하여 본교(本敎)를 자극할 수 있을 것이라고 까진 생각지 못했는데? 

       과연 화화신군은 대담하구려!” 

         

        사비옥은 자신의 실수를 감추기 위해 내뱉은 말에 실수가 있었음을 깨달았 

      다. 무공을 모르는 자를 납치한 고적양을 힐난한다는 것이 잘못하여 ‘무리’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다. 이는 고적양이 속한 단체를 모욕하는 말이 되었고, 

       사비옥처럼 특정 문파에 속하지 않은 자가 고적양이 속한 곳을 함부로 말하 

      는 것은 강호에서는 이미 고착된 묵계였다. 그런 짓을 했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비옥이었다. 그간 난감해할 

       때 현승자가 나섰다. 

         

        “무릇 모든 비난에는 원인이 있는 법! 귀교의 행실이 강호를 어지럽힌 지 수 

      백여 년이오. 사시주의 말씀이 지나친 바는 없다 사료되오만.” 

         

        “크하하핫! 그 말씀 가슴 깊이 새겨두겠소, 도장! 장강이 마르지 않는 한 말 

      이오.” 

         

        아득한 음성과 함께 고적양의 모습이 사라졌다. 사비옥과 현승자는 감히 그  

      뒤를 쫓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흡혈신마와 손을 나눈다는 것은 목숨을 걸어 

      야하는 일이었다. 그가 순순히 물러나는 한 굳이 쫓아가 혈투를 벌일 수는 없 

      는 입장이었다. 그들에겐 그보다 더 중요한 목적이 있었으므로. 

         

        현승자는 송기무의 상태를 보고서는 해혈을 했다. 본래 점혈(點穴)이란 각기  

      고유의 수법이 있는 법이라 그 수법을 정확히 알지 못하면 독특한 방법으로  

      점해진 혈을 해혈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현승자나 사비옥과 같은 

       고수의 추격을 받으며 심오한 점혈의 수법을 사용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 단순한 점혈을 풀어내는 것은 현승자에게 있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구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몸이 움직이는 것을 느낀 송기무가 두 손을 맞잡고 현승자와 사비옥을 향해  

      인사했다. 

         

        뒤늦게 쫓아오던 무림들의 모습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부나방 같은 것들...쯥!” 

         

        그들을 바라보는 사비옥의 투덜거림이었다. 

         

         

         

        불꽃의 일렁임은 종종 사람들의 생각을 빨아들인다. 춤을 추듯 타오르는 불 

      꽃을 바라보고 있다보면 동공이 고정 되고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의식 

      적으로 깨닫기 전까지는 자신이 눈이 한 곳에 고정되어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그것을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을 모르는 때가 많다. 

         

        송기무가 지금 그런 상황이었다. 모닥불에서 피어오르는 불꽃을 바라보며 넋 

      을 잃은 모습이 주위에서 보기에는 마냥 슬픔에 젖어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정작 자신의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불꽃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그의 상념 아닌 상념을 방해하는 자가 있었다. 백의의 장포를 걸친 이 

      는 송기무에게 무엇인가를 불쑥 내밀었다. 그제서야 송기무는 이완되어 있는 

       동공을 긴장시키면 나타난 이를 바라보았다. 백영이었다. 

         

        “이게...?” 

         

        “건포요. 조금 딱딱하긴 하지만 먹어 두는 게 좋을 거요. 어디로 가는지는  

      몰라도 원로(遠路)에는 배가 든든해야 하는 법이오.” 

         

        “고, 고맙소이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는 호감이 가던 인물이었다. 작은 체구와 계집애같이 생 

      긴 얼굴임에도 뛰어난 무술과 호방하고 정의로운 성격을 지녀 시간만 충분하 

      다면 친구로 사귀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주수민과의 일에 괜히 끼 

      어들어 시간을 지체하게 만들고, 말도 되지 않는 어거지로 자신을 따라 나설  

      때는 그저 골치아픈 밉살 덩어리에 불과했었다. 그러나 사비옥의 앞에서 자 

      신을 위해 당당히 주장을 펼치는 모습은 솔직히 송기무를 감동시키는 것이었다 

      . 비록 그 역시 선부를 해친 흉수일 수도 있는 용의자 중의 하나이긴 했지 

      만 왠지 그는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 송기무였다. 

         

        “고마울 게 무엇이오? 옷깃이 스쳐도 인연이고 서로 만나 통성명을 하였으 

      니 벗이나 다름없는데 그깟 건량으로 공치사를 들어야할 필요 있겠소?” 

         

        “...” 

         

        송기무는 백영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조용히 건포를 뜯었다. 고이 자란 그가  

      말라비틀어진 건포 따위를 먹어본 적이 없었기에 쉽사리 목으로 넘어가질 않 

      았다. 침을 잔뜩 묻혀 적히시 그런대로 부드러워져 그제야 조금씩 삼킬 수 있 

      게 되었다. 차가운 바닥에 누워있을 부친을 생각하면 딱딱한 건포도 호사요 

       매캐한 연기를 내뿜는 모닥불도 호사였다. 

         

        “아까는 정말 놀라셨겠구려. 그 상황에서 기절하지 않았으니 송형의 담도 매 

      우 큰가보구려.” 

         

        “그자가 누구인지도 몰랐기 때문이오.” 

         

        “아! 송형은 강호인이 아니니 흡혈신마에 대해서 잘 모르겠구려.” 

         

        “대체 그자는 누구요? 흡혈신마라는 끔찍한 별호라니, 설마 사람의 피를 빨 

      아 먹는다는 말은 아니겠죠?” 

         

 “송형의 짐작대로요.” 

         

        “그럼 진짜로 사람의 피를 빨아 먹는다는 말이오? 어찌 그런 잔인한 짓 

      을...?” 

         

        “송형은 잘 모르겠지만 강호에서 무공을 익히는 방법은 다양하기 이를 데  

      없다오. 허나 대부분의 방법들에는 공통적인 게 있지요.” 

         

        “공통점이라...?” 

         

        “그렇소. 무공을 연마한다는 것은 부단한 신체의 단련을 통해 자신을 수양하 

      는 데 궁극적인 목적이 있는 것이지만 서로가 칼을 겨누고 그로인해 원한이  

      생긴다면 그저 수양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일이 많지요.” 

         

        “...” 

         

        “그러다보니 저마다 보다 강해지는 방법을 연구하고 연구하여 극한까지 단 

      련한 신체의 한계를 넘어서는 방법을 만들어 냈소.” 

         

        “한계를 넘어서는 방법?” 

         

        “아무리 단련해도 인간이 가진 기본적인 근력이나 체력은 그 한계를 가지기  

      마련이오. 그 한계를 극복하는 힘을 강호인들은 내공이라 부르지요.” 

         

        백영은 잠시 숨을 고른 후 말을 이었다. 

         

        “호흡을 통해 우주의 힘을 몸 안에 축적해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쓴다고 생각 

      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오.” 

         

        “...!” 

         

        “이 내공을 제대로 익히려면 아까도 소생이 말했듯이 어릴 적부터 훈련을  

      해야 하는 것이오. 경락이 굳고 혈맥이 막혀버리면 아무리 자질이 뛰어난 자라 

       해도 아예 내공을 쌓지 못하거나 아니면 수련의 진도가 매우 늦어지게 되는 

       것이오.” 

        “아! 그래서 아까 백형이...” 

         

        “그렇소. 송형처럼 나이가 든 사람은 아무리 대단한 절기를 전수 받는다 해 

      도 절정의 경지에는 이르기 힘들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오. 꾸준히 수 

      련을 한다면 어느 정도 이상의 실력을 갖추겠지만 결코 일류라 불리는 고수가 

       되긴 불가능하다는 얘기지요.” 

         

        송기무는 백영의 말에 약간의 실망을 느꼈다. 사실 무공을 배워보겠다는 생 

      각을 제대로 해 본적은 없었다. 그러나 아까 사비옥이 제자가 될 것을 제안 

      했을 때 막연한 기대가 들었었다. 흉수가 무공을 익힌 자라고 가정 했을 때  

      지금의 자기로서는 복수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까 전에 본 흡혈신마라는 자는 자신을 손가락 하나로 못 움직이게 만들고,  

      또한 사람의 무게를 한 손으로 들고 달리는데도 숨쉬기 곤란할 정도로 빨랐다. 

       흉수가 그자가 아니라는 법은 없었다. 아니, 그자보다 한참 능력이 떨어진 

      다 해도 송기무에게 있어서 복수란 그저 꿈과 같은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렇 

      기에 무공을 배워보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흉수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서. 무친의 무덤에 대해 맹세한 대로 흉수의 수급으로 제를 

       올리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니 무공을 배워봤자 일류가 될 수 없다는 백영 

      의 말에 송기무가 실망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송형처럼 늦은 나이에 무공을 익혀 일류를 넘어서 절정의 경지에  

      다다른 사람들을 간혹 볼 수 있다오.” 

         

        송기상의 눈빛이 다시금 빛났다. 

         

        “아까 송형을 납치했던 그 자 역시 그런 경우지요. 소문에 의하면 약관 이후 

      에 무공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들었지요. 허나 그렇듯 속성으로 무공을 배울 수 

       있는 데는 반드시 이유가 있답니다. 축기를 함이란 자연에 순응하는 것인데 

       억지로 가능하게 하려니 무리수가 생기게 되는 것이지요.” 

         

        “무리수라 함은?” 

         

        “그 종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소. 아까 흡혈신마의 경우는 제가 알기로 적어 

      도 한달에 한 번 이상은 인간의 생혈을 흡수해야 한다고 들었소. 그 원리는 잘 

       모르겠지만 인간의 생혈을 바탕으로 내공을 속성으로 익히는 무공이 있고, 

       그는 그것을 익힌 것 같소. 약관이 넘어 무공을 익힌 자가 정상적인 방법으로 

       그 정도의 내공을 익히려면 역시 마공이나 사공을 익혀야 하니까.” 

         

        “살아있는 사람의 피를 빨아 마신단 말이오?” 

         

        “들은 대로요. 자연에 순응하지 않고 온갖 사악한 수단으로 내공을 늘리거나  

      유지하는 방법이지요. 소생이 알기로 흡혈신마는 한 달 이상 생혈을 흡수하지 

       않으면 가진 내공이 사라지고 엄청난 고통 속에서 죽어간다 합디다.” 

         

        “그 외에 다른 무리수란 무엇이오?” 

         

        송기무의 말에 백영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송형도 무공을 배우고자 함이오?” 

         

        “...” 

         

        “송형, 사실 오늘 처음 본 입장에서 이런 충고가 외람되게 느껴질 수도 있겠 

      으나 복수를 하기 위해 무공을 익히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한 일이 아니오.  

      속성으로 무공을 배우는 방법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끔찍한 방 

      법들을 수반한다오. 생혈을 흡수하는 것은 어쩌면 아무 것도 아니게 느껴질 정 

      도로 말이오.” 

         

        “그럼 나보고 어쩌란 말이오? 선부는 처참하게 죽어갔소이다. 몸에서 피가  

      뽑혀져 나가고 갖은 고문에 시달리다가. 그런데 자식 된 자가 복수하지 않고 

       어찌 하늘을 이고 살아간단 말이오.” 

         

        이번에 침묵을 지키는 것은 백영이었다. 송기무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 역시 송기무와 같은 일을 당했다면 당연히 복수를 맹세했을 

       것이다. 어쩌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복수를 하려 들지도 몰랐다.  

      악마에게 혼을 팔아서라도 복수의 길을 택할 것인데 그깟 마공을 익히는 것을 

       두려워하겠는가? 그러나 인간이길 포기해야 익힐 수 있는 방법을 송기무에게 

       권할 수는 없었다. 

         

        “송형, 그러한 마공을 익힌다고 모두 절정의 고수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 

      오. 방법이 기묘하다는 것은 자연의 순리를 역행하는 것이고, 그만큼 실패할 

       확률도 높은 게 마공이고 사공인 것이오. 또한 그렇게 익힌 무공으로 복수 

      를 한다면 선친 또한 흐뭇해하실 리 없다고 생각하오.” 

         

        “당신이 뭘 안다고 그래? 몸에서 피가 빠져나가 한 팔로도 가볍게 들리는  

      부친의 시신을 안아본 적이 있소? 온 몸에 피멍울이 맺히고 살갗이 터져 나간 

       부친의 시신을 땅에 묻고 비석조차 세우지 못한 한을 느껴본 적이 있소? 그 

      런 경험이 없다면 내게 충고하려 하지 마시오!” 

         

        격앙된 음성이었다. 흙을 덮으며 마지막으로 본 선부의 얼굴이 눈앞에 선한  

      송기무였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무능력함이 한스러웠다. 애꿎은 백 

      영에게 화를 터뜨린 것은 미안한 일이었지만 흥분한 그의 감정을 선뜻 사과조 

      차 꺼내기 힘들었다. 자존심이 상해서가 아니었다.  

         

        화가 난 사람은 어떤 일이건 자신을 중심에 두고 판단을 하게 된다. 물론 오 

      랜 수양을 쌓은 사람이라면 조절이 가능하겠지만 송기무는 혈기 왕성한 약관의 

       청년일 뿐이었다.  

         

        백영은 아무 말 없이 잔가지 하나를 들어 모닥불을 뒤적이고 있었다.  

         

        송기무의 격앙된 음성은 그를 둘러싸고 여기저기서 무리를 지어 있는 사람 

      들에게 다 들렸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드는 사람은 

       없었다. 송기무를 납치하여 강제로 영약의 행방에 관해 수소문하지 못할  

      바에는 송기무의 환심을 사서 어떻게 해서든 알아낼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게 

       유리할 것이었다. 한참 기분이 상해있는 청년에게 어설프게 접근하는 것은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자들이었다. 

         

        흥분이 조금 가라앉게 되자 송기무는 자신이 지나쳤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러나 여전히 백영에게 사과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가 왜 자신에게 접근하 

      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 역시 다른 자들처럼 선부가 가지고 있었다던 영약 

      을 탐내서 온 것이라면 굳이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송기무는 자리를 고르고 벌러덩 누워버렸다. 팔베개를 하고 올려다본 밤하늘 

      에는 별이 가득했다. 모닥불을 바라보듯 다시금 별을 바라보며 상념을 잊는  

      송기무였다. 

         

        그러나 그의 상념은 오래가지 않았다. 청성파의 사람들의 속삼임이 그의 귀 

      에 파고들었던 것이다. 

         

        “경계를 철저히 하거라. 흡혈신마가 달리 편복이라 부르는 이유는 그가 피를  

      빨아 먹기 때문만은 아니야. 그의 신출귀몰함은 밤에 던 진가를 드러내지.  

      잠시라고 방심한다면 그의 의도대로 되고 만다. 알겠느냐?” 

         

        “예, 장로님!” 

         

        두 명의 중년 도인들이 입을 맞추어 대답했다.  

         

        그들의 대화를 들은 송기무는 선뜻 잠을 잘 용기가 나지 않았다. 흑혈신마는  

      내공수련을 위하여 피를 빨아 먹는다고 들은 자였다. 그러나 걱정을 한다 해서 

       자신이 막을 수 있는 일도 아니었기에 눈을 감고 억지로 잠을 청해 보았다. 

       눈을 감자 강희연과 당가연의 얼굴이 잠시 떠올랐으나 상중임을 상기하고  

      아랫입술을 악물어 그녀들의 생각을 지웠다. 

         

         

        송기무는 눅눅한 기운에 눈을 떴다. 몸을 일으켜 세우려하니 알이 배긴 근육 

      들이 비명을 지르는 것만 같았다. 피워놓은 모닥불에선 간신히 살아남은 불씨 

       하나가 자신의 흔적이라도 남기고 싶은 듯 흰 연기를 만들어 올리고 있었다 

      . 노숙을 했으니 새벽이슬에 옷이 눅눅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더구 

      나 강변이라 새벽안개까지 자욱하여 옷이 거의 젖다시피 되어 그다지 상쾌한 

       기분으로 맞는 아침은 아니었다. 몇몇의 사람들도 일찍 일어났는지 강가에서  

      물을 떠 오고 자기네끼리 숙덕이고 있었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까지 단 

      잠을 자고 있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청성파의 도인들은 앉아 있다는 것이었다. 눈을 감은  

      것인지 뜬 것인지 모를 상태라 그들이 자고 있는지 아니면 깨어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밤새 저러고 있었던 것일까?’ 

         

        송기무가 그들을 보며 호기심을 느낄 때 묘한 음악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점 

      점 커짐에 따란 무리의 대다수가 눈을 비비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청성파의 세 

       도인의 눈도 떠졌다. 

         

        “영세불멸(永世不滅)!” 

         

        “만화천하(滿花天下)!” 

         

        천상의 선녀들의 합창이련가? 새벽안개 자욱한 민강유역에는 여인들의 노래 

      와 같은 외침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수십의 여인들이 한 가마를 둘러싸고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맨 앞 

      에 선 여인 넷이 어깨에 둘러맨 대바구니에서 꽃잎을 뿌리고 그 뒤를 따르는 

       여인들은 저마다 악기를 들고 연주를 하고 있었다. 하얀 궁장을 갖춰 입은 

       여인들은 미모는 하나같이 출중하여 송기무는 정말로 선녀들이 하강하여  

      다가오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었다. 화려하게 치장된 가마는 여덟 명의 여 

      인들이 받쳐 들고 있었다. 여인의 힘으로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큰 것이었으나 

       일체의 흔들림도 없이 마치 허공에 떠있는 것처럼 부드럽게 무리를 향해 오고 있었다. 

         

        “만인경배(萬人敬拜)!” 

         

        “궁주현신(宮主現身)!” 

         

        일어난 사람들의 얼굴에 공포가 떠올랐다. 화려한 가마와 허공에 흩날리는  

      꽃잎, 그리고 저렇듯 오만한 경구를 읊어대는 곳은 무림에 흔하지 않았다.  

      중인들은 한시라도 빨리 자리를 피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으나 서로의 눈치 

      를 보느라 선뜻 움직이진 않고 있었다. 

  “이화궁주(李花宮主)께서 납시었으니, 사내 된 자는 무릎을 꿇고 계집 된 자는 경배할 지어다.” 

     

        어느 새 송기무의 옆에 서있는 사비옥의 입에서 나직한 신음이 흘렀다. 

         

        “이화궁주까지...!” 

         

        “설마 그녀까지 나타날 줄이야.” 

         

        현승자의 말이었다. 

         

        송기무도 성도 내에서 나름대로 호화로운 생활을 했었지만 저렇듯 화려한  

      가마와 아름다운 여인들의 행렬은 본적이 없었다. 그는 자신이 상중이라는  

      사실조차 잃은 채 넋을 잃고 가마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화궁주께서 사천까지 오셨음을 미처 알지 못했소이다. 미리 기별이라도  

      해 주셨으면 청성에서 마중을 하였을 것이나, 알지 못하여 환영을 하지 못함 

      이니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현승자가 검을 세워들며 공손한 어투로 말했다. 이 자리에 청성파가 있음을  

      알림과 동시에 자신이 무리를 대표하고 있음을 은연중에 나타내는 말이었다. 

       이에는 아무리 이화궁이라지만 청성의 제자가 있는 한 함부로 행동하지 못 

      하리라는 계산도 포함되어 있었다. 

         

        잠시간의 침묵 후에 한 여인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궁주께서 청성의 어느 고인께서 계신 것인지 물으십니다.” 

         

        “빈도는 현승자라고 하오. 강호의 동도들이 정명검이란 허명을 붙여 주었소 

      이다.” 

         

        “궁주께서 가마에 앉아 인사를 드리는 것을 양해해 달라고 하십니다.” 

         

        “인사라니 가당치 않소이다.” 

         

        “더불어 정명검께서 오랜 은거를 깨고 나서셨으니 무림의 홍복이란 말씀을  

      전하시길 원하십니다.” 

         

         “무량수불! 빈도가 감당키 어려운 말씀이외다.” 

         

        송기무는 두 사람의 대화, 아니 중간에 한 여인을 걸쳐 이루어지는 세 사람 

      의 대화에 이상한 점이 있음을 느꼈다. 청성파의 장로라는 엄청난 신분을 가진 

       현승자가 저리 공손한 자세를 보이는 것도 그랬고, 여인이 전하는 말 역시 

       지극히 공손 한 것임에도 현승자의 표정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것 

      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두운 그림자는 현승자에게만 드리워진 것이 

       아니었다. 백여 명에 달하는 무림인들이 저마다 긴장하고 있는 기색이 역력했다. 

         

        “궁주께서 청성의 고인께서 계시는 바 이화궁의 예를 갖추지 않은 자들의  

      죄를 사하여 주신다 하옵니다.” 

         

        “빈도가 이곳에 있는 강호 동도를 대표하여 궁주께 크게 감사드립니다.” 

         

        “지나친 과례는 사양하시겠다 하옵니다.” 

         

        그제서야 현승자를 비롯한 무림인들의 표정이 한결 가벼워졌다.  

         

        “사천에 귀한 손님이 왔는데 미처 영접치 못한 것을 사죄드립니다.” 

         

        또다시 들려오는 난데없는 음성이었다. 송기무의 귀가 윙윙거릴 정도로 큰  

      소리였다. 

         

        중인의 시선은 하나 같이 소리가 난 쪽을 향했다. 사천에 온 손님을 대접하 

      겠다고 나선 자라면 사천에서의 지위가 매우 높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었다.  

      대청성의 장로가 이곳에 있으니 그렇지 않다면 저런 말을 할 리가 없었던  

      것이다. 

         

        나타난 사람들은 무려 이십 여명에 달하는 흑의인들이었다. 중인은 목소리의  

      주인이 맨 앞에 서있는 노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암천우(暗天雨) 당호엽(唐豪曄)!” 

         

        사비옥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과연 그가 아니라면 어찌 대청성의 장로 앞에 

      서 사천을 대표한다 하겠는가? 당호엽이라면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이 있고도 남을 것이다. 

         

        그는 현 당가주의 숙부가 되는 자로 대대로 내려오는 당가의 직계혈통이 가 

      진 실력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는 당가의 대표적인 고수였다. 몸 안에 무려  

      삼백 육십 여가지의 암기를 감추고 있다는 당호엽의 무명은 전대 당가주인  

      당호진(唐豪璡)보다 널리 알려졌으니 그의 실력을 익히 짐작할 수 있었다.  

         

        당호진의 출현으로 사천을 대표하는 두개의 하늘이 한자리에 모인 형상이  

      되었으니 좀처럼 보기 힘든 일이었다. 민강 유역에 모인 무림인들은 청성과  

      당문의 장로, 사귀의 일원인 화화신군과 이화궁주를 한자리에서 보게 되리라고 

      는 생각도 못했기에 그들의 신분이 어떠한 것인지, 애초에 이 자리에 온 목 

      적이 무엇인지 조차 잊고 안계를 넓히기에 여념이 없었다. 

         

        “궁주께서 당가의 장로께서 환대해 주셨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 하십니다.” 

         

        “허허헛, 지난 이십 여 년 간 강호에서 나서지 않으시던 궁주께서 사천에 오 

      셨으니 그야말로 영광이 아닐 수 없소이다. 어찌 사천에 오신 손님을 이리  

      박대할 수 있겠소이까? 궁주께서 불편하지 않으시다면 당가로 모셔 크게 환 

      영식을 하고자 하오.” 

         

        당호엽의 말에 현승자와 함께 온 두 명의 도사는 안색을 찌푸렸다. 당호엽의  

      행동이 청성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현승자는 아무런 

       내색 없이 그저 수염만을 쓰다듬고 있을 뿐이었다. 

         

        “궁주께선 이미 큰 환대를 받았으니 그것으로 족하다 하십니다. 더불어 금번  

      사천의 방문에는 목적하심이 있으시니 당가의 방문은 추후로 미루는 게 나으 

      시답니다.” 

         

        “궁주의 뜻이 그러하시다면 아쉬움을 남겨야겠지요.” 

         

        당호엽이 두 손을 마주잡으며 말했다. 

         

        “실로 오랜만이오, 당시주.” 

         

        “오! 어쩐 일로 청정을 깨고 속세에 나서신게요? 도장.” 

         

        현승자와 당호엽의 수인사가 오고갔다.   

         

        “아직 수양이 부족한 탓이지요.” 

         

        “허허헛, 당모가 간만에 집밖을 나섰더니 여러모로 호사를 하는구려. 이화궁 

      에 청성장로까지.” 

         

        당호엽의 말에 사비옥이 콧방귀를 꼈다. 당호엽처럼 이목이 발달한 고수가  

      그 소리를 듣지 못했을 리 없었다. 

         

        “그런데 저분은...?” 

         

        당호엽이 사비옥쪽을 보며 말했다. 콧방귀를 뀐 것이 무례한 일이었지만 그 

      런 행동을 한다는 것은 그만한 자신감이 있다는 얘기였다. 노련한 강호의 고 

      수인 당호엽은 무턱대고 무례함을 탓하지 않고, 현승자에게 사비옥의 정체에 

       대해 묻는 것이었다. 

         

        “이분은 화화신군 사비옥 시주시오.” 

         

        “허허헛! 화화신군이셨구려. 이 당모가 경험이 일천하여 알아보질 못했소이 

      다.” 

         

        “감당하기 어렵소이다. 사비옥이외다.” 

         

        그제야 입가에 미소를 짓는 사비옥이었다. 

         

        당호엽은 형형한 눈빛으로 중인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송소협이 누구신가?” 

         

        중인들의 표정이 벌레를 씹은 것처럼 변했다. 역시 당호엽도  음양신단을 노 

      리고 이 자리를 방문했다는 것을 새삼 깨달은 것이다. 이화신궁, 청성, 사귀도 

       모자라 이제는 당문까지 나섰으니 행여나 했던 마음이 사라져가는 중이었다 

      . 쓸데없는 헛걸음 끝에 찬이슬만 맞았다고 투덜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송소협이라는 말을 사용했지만 송기무는 당호엽이 찾는 자가 자신임을 알고  

      있었다. 

         

        “제가 송기무입니다. 어르신께 인사 올립니다.” 

         

        그의 말엔 여태껏 과는 달리 친근함이 가득했다. 당가에서 왔다하니 분명 당 

      가연과 혈연의 관계에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녀와 인연을 맺었으니 자신과도 

       멀지 않은 사이라 생각한 송기무였기에 친근한 어투가 된 것이다. 게다가 그 

      가 원래 방문하고자 했던 곳이 당문이 아닌가? 무시무시한 강호인들이 뒤따 

      르는 탓에 심한 압박을 받고 있던 그에게 있어 당가의 출현은 반가운 일이 아 

      닐 수 없었다. 

         

        “허허헛, 보기 드문 헌앙한 장부로고. 과연 연아가 사람을 잘못 보진 않았 

      군.” 

         

        “그렇군요. 바르게 보이는 청년이라 다행입니다.” 

         

        당호엽의 옆에 있던 흑의 중년인이 말을 받았다. 짙은 눈썹과 고집스러운 입 

      매가 인상적이었지만 전체적으로 준수한 중년의 사내였다. 

         

        두 사람의 말을 듣고 송기무는 당가연이 자신에 대해 이미 말을 했다는 것 

      을 알 수 있었다. 그녀에는 직접 말씀드리기 전까지 말하지 말라고 했으나  

      지금 그의 입장으로서는 매우 반가운 일었다.  

         

        내내 우울한 표정 일색이었던 송기무의 표정이 밝아지고 알 수 없는 대화를  

      나누는 당가의 두 사람을 보며 사람들은 순간적으로 상황을 파악할 수 없었다.  

         

        “내가 연아의 아비 되는 사람일세. 연아에게 자네에 대한 말을 들었네.” 

         

        송기무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당가가 모두 혈연의 관계에 있다는 것은 알 

      고 있었지만 당가연의 부친을 직접 보게 되자 반갑기도 하고 긴장도 되는 것 

      이었다. 

         

        “무량수불! 당문과 송소협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소이까?” 

         

        “허허허헛! 우리 손녀딸 가연이가 저기 송소협과 절친한 사이지요.” 

         

        당호엽의 대꾸에 강변에 모여 있는 모든 사람의 안색이 확 바뀌었다. 송기무 

      가 민강으로 향하는 이유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그들이다. 그저 그를 쫓다 

      보면 음양신단을 가지고 있는 자와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했었다. 그러나 당호엽의 이야기로 미루어 송기무의 종착지는 당문이었던 것이 

      다. 만약 음양신단을 가지고 있는 게 당문이라면 그 누가 무력으로 영약을  

      빼앗을 수 있겠는가? 천하를 다 뒤져도 미치지 않고서야 당문과 원한을 사려하 

      는 자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남녀 사이에 절친함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자 

      세한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지만 중인들은 대충 짐작하고 있는 터였다. 

         

        “허헛! 빈도가 미처 몰랐구려. 영애의 안목이 뛰어나 이와 같은 청년을 맞이 

      하였으니 장차 당문의 성세가 눈에 보이는 듯 하외다.” 

         

        현승자의 말에 당천기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잡혔다. 그때 당호엽이 나서며  

      말했다. 

         

        “송소협이 이리로 향하고 있다기에 당문을 방문하려 하는 것이라 생각했네.  

      맞는가?” 

         

        많은 사람들이 들을 수 있게끔 일부러 언성을 높이는 당호엽이었다. 내력이  

      실린 그의 목소리는 크게 울리지는 않았지만 선명함을 간직한 채 널리 퍼져  

      중인 모두가 들을 수 있었다. 

         

        “예, 그러하옵니다. 저는 당가연 소저를 만나기 위해 당문으로 향하는 중이 

      었습니다.” 

         

        “허허헛! 역시 그랬구만. 그럴 것 같아 우리가 이렇게 마중을 나왔네. 강호 

      에는 썩은 고기를 주워 먹는 승냥이 같은 자들이 넘쳐흘러서 말이야. 당문의 

       귀한 손님인 자네가 혹시라도 화를 당할까 두려워 이렇게 나왔다네.” 

         

        당호엽은 손님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어 말했다. 그의 말 한마디로 인해 송기 

      무를 따르던 무리가 모두 썩은 고기를 탐내는 승냥이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 

      러나 중인 중 누구도 당호엽의 말에 반박하고 나설 수는 없는 입장이었다.  

      나서는 순간과 이승을 하직하는 순간이 겹쳐지게 될 것이므로. 

         

        사실 그의 말은 청성의 장로나 이화궁주를 앞에 놓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었 

      다. 그러나 현승자나 이화궁주가 지금 발끈해서 나서게 되면 도둑이 제 발  

      저리는 셈이 되는 것이라 함부로 나서지 못할 것을 계산하여 송기무와 당문의 

       관계를 확고히 하기 위해 한 말이었다. 

         

        당호엽의 말에 사비옥의 안색이 살짝 변하는가 싶더니, 이내 회복하고 앞으 

      로 나섰다. 이대로 가다간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날게 뻔했다. 너 

      구리같은 당호엽은 손녀를 내세워 송기무를 데려갈 속셈인 것이다. 

         

        “당문에 경사가 났으니 경하 드리오.” 

         

        “감사하외다.” 

         

        “이런 말이 좀 외람될 것이나 이 사모는 저 아이의 사부가 되길 자청했었소.  

      그러니 저 아이가 결정을 내릴 때까지 사모도 동행을 해야할 것 같소이다.” 

         

        당호엽의 눈썹이 꿈틀했다. 

         

        ‘뜻대로는 안 될 거다. 늙은 너구리!’ 

         

        사비옥인 내심 웃음을 터뜨렸다. 

         

        “사형의 말이 사실인가, 송소협?” 

         

        당호엽이 인자한 목소리로 물었다. 

         

        “네, 그렇습니다.” 

         

        “어허! 우리 당가의 식구가 될 지도 모르는 송소협을 사형이 어여삐 보아 주 

      셨다니 이 당모가 감사의 말씀을 드리겠소.” 

         

        당호엽의 미소 띈 얼굴과는 달리 당천기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특히  

      당호엽이 식구라는 말을 할 때는 미간에 내 천(川)자가 깊숙이 패였다. 

         

        “허나 당문이 비록 보잘것없는 가문이라 할지라도 제 몸 하나 지킬 수 있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오. 그러니 사형께서 그런 큰 은혜를 베풀지 않 

      으셔도...” 

         

        “그 아이가 아직까지 당가의 식구가 된 것은 아니지 않소? 제 사부 정도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오만...” 

         

        사비옥이 당호엽의 말을 자르고 나섰다. 순순히 물러날 그가 아니었던 것이 

      다. 당호엽의 얼굴에 난처한 기색이 피어오를 그 때 두 사람의 대화를 자르고 

       끼어드는 경망스러운 목소리가 있었다. 

         

        “켁케케켁, 어째서 저런 평범한 아이를 제자로 삼지 못해 안달이지?” 

         

        “푸히힛, 그러게? 저런 골격이라면 상승의 무공을 익히기는커녕 이류가 되기 

      도 힘든데 말야.” 

        갑자기 중인들 사이에서 요란하게 떠드는 두 명의 노인이었다. 한명은 얼굴 

      이 벌개져 있어 술을 마신 것과 같고 한명은 창백한 안색을 하고 있어 시체와 

       같아 보이는 노인들이었다. 두 노인의 기괴함은 안색에만 있지 않았다. 홍안 

      의 노인은 머리카락이 타오르는 불꽃처럼 붉었고, 백안의 노인의 머리카락은 

       푸르스름하였으니 보는 이로 하여금 알 수 없는 두려움을 심어주는 외모였다.  

         

        “글쎄? 갑작스레 아이들이 떼거지로 몰려다니기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싶 

      어 쫓아왔더니, 저런 평범한 아이를 제자로 삼으려고 이 난리를 낸 건가?” 

         

        “크케케켁! 우리가 없는 사이에 인재를 고르는 방법이 변한 건 아닐까?” 

         

        두 노인은 강변에 모여 있는 무림인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대화에  

      몰두했다. 

         

        “두 분은 어디서 오신 고인이십니까?” 

         

        당호엽이 포권을 취하며 예를 갖췄다. 두 명의 기괴한 노인들이 걸어 나온  

      곳은 분명 무림인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이곳에 오자마자 눈에 띄는 자들에 

       대한 파악을 위해 중인들을 훑어보았던 당호엽이었다. 이처럼 기괴한 차림 

      의 노인이 있었다면 애초부터 이상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 당호 

      엽이 둘러보았을 때는 두 사람이 없었다. 그렇다면 당호엽이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있을 때 은근슬쩍 무리에 끼어든 것이 틀림없었다. 아무리 대 

      화중이라지만 당호엽과 같은 고수의 감각을 피해 중인들 사이에 숨어들었으니 

       범상한 자들이 아니라 판단되었기 당호엽은 공손한 자세를 취한 것이다. 

         

        “그럴 리가 없지. 그럴 리가 없고말고.” 

        청발(靑髮)의 노인이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수양이 깊은 당호엽도 이 순간에는 인상이 찌푸려졌다. 당문의 장로인 자신 

      이 나서서 인사를 했음에도 노인은 무시를 하고 계속 대화에만 열중하고 있 

      었기 때문이다. 

         

        “뭐가 그럴 리가 없어?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일갑자의 세월이 흘렀 

      으니 인재를 고르는 방법이 변하지 말라는 법 있어?” 

         

        “또 우긴다, 또!” 

         

        “네놈이 우기는 거지?” 

         

        “혹시 거 예전에 유행했던 무슨 태양천골지체(太陽天骨之體)니, 태극혼원지 

      체(太極混元之體)니 하는 헛소문이 다시 도는 거 아닐까?” 

         

        “개뿔! 그 이름만 긴 천고기재들에 대한 소문? 그게 말도 되지 않는 소리라 

      는 게 밝혀진지 백년도 더 되었는데 아직도 그럴려구.” 

         

        “또 모르잖아. 원래 무림인이란 우르르 몰려다니는 개떼 같은 놈들인데.” 

         

        “아냐, 아무리 생각해도 저 꼬마 놈에게 무슨 특별한 재능이 있는 거야. 그 

      렇지 않고서 저마다 데려가려고 난리를 내겠냐? 아까 저 말코 도사가 말하는 

       거 못 들었어? 저 놈을 데려간다고 축하한다잖아. 그러니 뭔가 있어. 내 눈 

      은 속일 수 없다고.” 

         

        “에라이, 네놈이 제대로 볼 줄 아는 게 뭐가 있다고 그러냐?” 

         

        “뭐야? 내가 그럼 눈을 장식으로 달고 다니냐? 볼 줄 아는 게 없게?” 

         

        “장식이나 다름없지. 어딜 봐서 저 놈이 천고의 기재로 보이냐?” 

         

        “네 놈 눈이 썩은 동태눈이다. 저 봐라. 삐쩍 마른 몸하며, 가는 골격... 흠...” 

         

        “크히히히힛, 그래도 눈은 있구나. 보긴 보는 것을 보니.” 

         

        “이놈아, 왜 말 끊어 먹냐? 내가 하려던 말은 삐적 마른 몸과 가는 골격 때 

      문에 잘 안보이지만 저 놈의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오묘한 조화가 내 눈에는 

       보인단 말이다. 나처럼 신선의 경지에 이르는 사람은 겉모습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 생긴다 이 말씀이야.” 

         

        적발의 노인이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자 청발의 노인이 눈에 힘을 주 

      어 송기무를 바라봤다. 

         

        “에라이, 이놈아! 보이긴 뭐가 보이냐?” 

         

        “거 참! 이렇게 수준 낮은 놈이랑 이 갑자를 어울려 다녔다니. 내 스스로가  

      한심하다.” 

         

        “뭐라고?” 

         

        “그렇게 안 믿어지면 내기 할텨?” 

         

  “뭐? 무슨 내기?” 

         

        “저놈이 기재인지 아닌지 말이야.” 

         

        “흠...” 

         

        “자신 없으면 관두고. 이 암울한 노괴야.” 

         

        “에라이! 좋아 내기하자고. 천고의 기재라면 이십년 이내로 강호 제 

      일의 고수가 될 수 있겠지.” 

         

        “이화신궁의 궁주께서 음양이선(陰陽雙仙)의 강호재림을 경하드립니 

      다.” 

         

        두 늙은이의 실없는 대화를 끊는 낭랑한 목소리였다. 이화신궁의 궁 

      도의 외침을 듣고 당호엽과 현승자 등의 고수들의 안색에 핏기가 사 

      라졌다.  

         

        음양이선이란 별호는 들은 적이 없는 그들이었다. 그러나 약 육십  

      여 년 전 강호가 비좁다고 설치던 두 괴물 같은 기인(奇人)에 대한  

      이야기는 끊임없이 들었다. 음양쌍선이란 말 자체는 들어본 적이 없지 

       그들의 별호를 연상시키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적어도 그들이 젊 

      었을 때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다던 무적의 고수들 중 하나로 추앙  

      받던  음양쌍괴(陰陽雙怪)에 대한 기억을 말이다. 

         

        “서, 설마!” 

         

        사비옥의 입에서 믿을 수 없다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크헤헤헷, 음양이선이라? 흠, 흠!” 

         

        “푸히힐! 듣기 괜찮은데?” 

         

        “괜찮긴 이 주책 맞은 노괴야. 어찌하여 쌍괴가 이선으로 바뀐단 말 

      이냐?” 

         

        “이놈이? 아까는 제 스스로 신선이 어쩌구 하더니 이제 와서 왜 딴  

      소리냐?” 

         

        “에구, 너 같은 놈하고 말다툼을 하는 내가 바보지. 관두자! 근데 설 

      마하니 저 이화궁주가 그 이화궁주는 아니겠지?” 

         

        “아니, 무림에 이화궁주가 둘이냐? 저 이화궁주와 그 이화궁주?” 

         

        “그게 아니잖아, 이 멍청한 노괴야!” 

         

         “농담도 못하냐? 푸헤헤헬!” 

         

        “신소리 하지 말고 빨리 저 놈이나 데려가자.” 

         

        적발의 노인의 말이 끝나는가 싶더니 송기무는 눈앞에서 붉그스레한  

      빛이 살짝 보이는 것을 느끼자마자 정신을 잃어버렸다. 화양괴(火陽怪) 

       무진장(武珍張)이 그의 혈도를 점하고 데려가 버린 것이다. 화양괴 

      의 움직임은 전광석화라는 말을 무색하게 할 정도여서 바로 옆에서  

      보고 있던 사비옥이나 현승자도 미처 손을 쓸 사이가 없을 정도였다.  

      강변에 모인 무림인 중에서는 무진장이 움직였다는 것조차도 모르는 

       자가 많았다. 단지 번쩍 하는 순간 그의 옆구리에 송기무가 끼어 있 

      는 것을 보고 대체 무슨 사술을 쓴 것인가 하는 놀라움만 느낄 뿐이었다. 

         

        “크헤헤헤, 이제 천하제일의 기재가 내 제자가 되는 거다.” 

         

        “개뿔이 기재는 무슨! 보통 애들 보다 못하다니까.” 

         

        “두 분 고인께선 잠시만 제 말씀을 들어 주십시오.” 

         

        당호엽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긴장의 기색이 역력 

      했다. 음양쌍괴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송기무의 향방은 당문으로 가는 

       것이 기정사실화 되었었다. 이화신궁의 궁주가 마음에 걸리긴 했지 

      만 미리 초대의 의사를 밝혔는데도 거절하였으니 달리 수가 없을 것 

      이라 생각하고 득의양양했었다. 그런데 죽어도 예전에 죽었어야할 두 

       노괴들이 갑작스레 세상에 튀어나와 훼방을 놓으니 그의 기분은 말 

      이 아니었다. 

         

        “후배는 사천 민강에 위치한 당가의 후손 당호엽이라 하옵니다.” 

         

        당호엽의 말에 빙음귀(氷陰怪) 추밀벽(秋?璧)의 눈에 이채가 돌았 

      다. 

         

        “야, 불덩어리. 쟤가 당준일(唐俊一)과 관계 있나봐.” 

         

        당호엽의 안색이 더욱 굳어졌다. 빙음귀가 말한 당준일은 자신의 조 

      부였던 것이다. 그가 안색을 굳힌 이유는 조부의 이름을 함부로 불러 

      서라기보다 자신의 조부와 비슷한 항렬의 고수들인지라 더욱 긴장이  

      된 것이다. 

         

        “그래? 그럼 말이라도 들어주자. 당가놈들 화나면 골치아프잖아.” 

         

        “골치만 아프냐? 저놈들이 달려들면...에휴!” 

         

        빙음귀가 고개를 젓더니 당호엽을 바라보며 말했다. 처음으로 자신 

      들의 대화에 제 삼자를 끼워준 것이다. 

         

        “그래 당가 아이야. 무엇을 말하고 싶은게냐?” 

         

        “지금 화양...선, 무선배님께서 데려가신 청년은 저희 당문의 식구가  

      될 지도 모를 사람입니다. 두분께서 하교하실 일이 있으시면 저희 당 

      문으로 함께 가시면 되실 것입니다.” 

         

        “뭐? 식구면 식구고, 문도면 문도지 식구가 될 지도 모를 사람은 또  

      뭐냐?” 

         

        “그게...” 

         

        당호엽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아직까지 당가연과 혼약을 발표하 

      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당천기로부터 송기무와 당가연의 혼약을 반대 

      하여 당가연이 집을 뛰쳐나갔다는 소리를 들은 터였다. 당가연이야  

      찾아오면 그뿐이지만 아무리 영약이 탐을 난다해도 몰락한 상인의 후 

      예를 당가의 사위로 맞이할 생각은 그에게도 없었던 것이다. 일단은  

      인연을 강조하여 음양신단의 행방을 찾는 게 우선이었고, 복잡한 문 

      제는 나중에 천천히 풀어도 된다고 생각한 그였다. 

         

        “뭐 어쨌거나 아직까지 당가의 식구가 아니라면 이 꼬마놈과 관련이  

      없는 것이니 너는 괜히 나서지 말아라.” 

         

        당호엽은 말을 잇지 못했다. 어릴 적에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음양쌍 

      괴의 괴팍한 성격에 대한 소문을 들어온 그였다. 화가 나면 전 무림 

      과도 상대해 맞서 싸울 자가 화양괴와 음빙괴였다. 나서지 말라고 좋 

      게 말해 준 것도 순전히 자신의 조부인 당준일의 체면을 세워준 것이리라. 

         

        “궁주님께서 송소협과 용무가 있으시니 두 고인께선 송소협을 이화 

      궁에 인도하시랍니다.” 

         

        열화귀의 숯덩이 같은 눈썹이 역팔자로 꺾였다. 

         

        “뭐야? 지금 누구보고 해라, 마라야?” 

“이봐, 참으라고. 너 이화궁주가 얼마나 골치 아픈지 잊은 거야?” 

         

        빙글거리며 만류하는 빙음괴에 의해 화가 더 치민 듯 화양괴가 외쳤 

      다. 

         

        “뭐? 내가 이화궁주를 두려워할 것 같아?” 

         

        “그럼? 이화궁이랑 한판 붙어보겠단 말이냐?” 

         

        “못할 것도 없지.” 

         

        화양괴가 턱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감히!” 

         

        소리가 터져 나온 것은 이화궁도들 쪽이었다. 

         

        화양괴의 말에 모욕을 느꼈는지 흰옷을 걸쳐 입은 열두 명의 이화궁 

      도가 하늘로 날았다. 긴 치마가 펄럭이는 모습이 그야말로 선녀들의  

      비상과도 같은 풍경이었다. 그 모습에 중인들의 탄성이 절로 터져  

      나왔다. 

         

        “너 이제 큰일 났다. 푸헤헤헷!” 

         

        빙음괴는 자기랑 상관 없다는 듯이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이런 치사한 놈! 이 녀석이나 받아.” 

         

        화양괴는 옆구리에 끼고 있던 송기무를 빙음괴에게 던지고 날아오는  

      이화궁도들을 향해 나아갔다. 

         

        -휘리리릭! 

         

        하늘로 뛰어오른 이화궁도들의 손에서 한줄기 가느다란 천이 뻗어  

      나왔다. 열두 명이 뻗어낸 천이 서로 엇갈리며 하늘을 가리우니 천라 

      지망이 따로 없는 듯 했다. 

         

        “흥!” 

         

        화양괴의 코웃음이 터지더니 그의 쌍장이 하늘을 향해 어지러이 움 

      직였다. 그러나 장심에서 일어난 경력이 그를 옭아매기 위해 내려오던 

       천의 움직임을 방해하여 천끼리 얽혀들었다. 열 두 궁녀의 미간이 살 

      짝 주름이 생기더니 한 명의 궁도가 외쳤다. 

         

        “십이이화진(十二梨花陣), 출진(出陣)!” 

         

        열두 명의 여인은 엉켜가는 천을 회수하며 화양귀를 둘러싸듯 착지 

      했다. 그러나 화양귀는 이미 일 갑자 전에 이화진과 붙어 싸운 경험이 

       있는 자였다. 진의 효용이 시작되면 일이 복잡해진다는 것을 잘 아 

      는 그는 두 명의 여인이 착지하는 순간을 노려 쌍장을 내밀었다. 

         

        미처 발진을 하기도 전에 위맹한 공격이 밀려오자 당황한 두 명의  

      궁도는 내공을 채 실지도 못한 장력을 밀어내는 수밖에 없었다. 화양 

      귀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그의 장력이 두 궁도의 쌍장과 부딪히려 

      는 순간 분홍빛 가느다란 천이 사이에 끼어들었다. 

         

        -퍽! 

         

        위맹하기 이를 데 없는 장력이 격증되는 소리라기엔 너무나 미약한  

      소음만 터지고 분홍의 천은 힘없이 하늘거리다 땅바닥에 떨어졌다.  

      놀랍게도 하늘거리는 천이 땅에 떨어지는 순간 쿠앙 하는 소리와 함 

      께 거의 일장여의 넓이로 땅바닥에 구덩이가 파였다. 

         

        “이화접목(移花接木)?” 

   화양괴의 놀란 외침이 터져 나왔다. 자신의 힘을 분홍천이 그대로 담아 땅을 파헤친 수법은 이화 

      궁의 절기중 하나인 이화접목의 수법이었다. 오늘날 이화궁을 강호 

      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곳 중의 하나로 만든 무공이었다. 

     

        이화접목은 상대의 공력을 그대로 담아 다른 곳, 혹은 상대에게 다 

      시 돌려주는 무공이다. 이화궁의 궁주나 궁주의 직계제자만 전수받는 

       절기 중의 절기였다. 

         

        화양괴는 자신의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자 화가 치밀어 올라 공력을  

      끌어올려 이화궁주의 가마 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를 포위하고 있던  

      이화궁도 둘이 가로막으려 했으나 신출귀몰한 화양괴의 신법을 막기에 

      는 역부족이었다. 모습이 희끗해진다고 생각되는 순간 어느새 그는 가 

      마의 이 장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에도 막아 보시지?” 

        화양괴의 외침과 더불어 그의 쌍장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태양신장(太陽神掌)! 모두 피해!” 

         

        가마 안에서 놀란 외침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동안 궁도를 통해서  

      말을 전하던 이화궁주가 다급한 나머지 직접 외친 것이다. 하얀색 물이 

       갈라지듯 반으로 벌어지는 이화궁도의 사이를 뚫고 화양괴의 장력 

      이 노도와 같이 가마를 향해 쏟아져 들어갔다. 

         

        퍼엉! 

         

        엄청난 폭음과 함께 화려했던 가마가 산산조각이 나서 흩어졌다. 놀 

      라운 것은 산산조각난 가마의 조각들이 모두 불타오르고 있다는 것 

      이다. 이화궁주의 가마는 귀하디귀한 서천오목(西天烏木)으로 만들어 

      진 것이었다. 서천오목은 강하기가 철보다 더하다고 알려진 나무였다 

      . 그런 가마가 단 일장에 산산조각이 난 것은 화양괴의 장력이 얼 

      마나 강한가를 증명하는 것이었다. 

         

        “크하하하핫!” 

         

        화양괴의 득의한 웃음이 울려 퍼졌다. 천하의 이화궁주가 타고 다니 

      는 가마를 한방에 부수었으니 절로 터져 나온 웃음이었다. 

         

        “고인의 수법이 듣던 바보다 훨씬 고명하시군요.” 

         

        화양괴의 웃음을 뚫고 울려 퍼지는 아름다운 음성이었다. 

         

        “아!” 

         

        “허! 저럴 수가!” 

         

        “이화궁주다!” 

         

        선녀의 하강인가?  

         

        아니 밑에서 솟아올랐으니 승천하는 선녀의 모습일런지도 몰랐다.  

      흰색 옷을 나풀거리며 허공에 떠 있는 이화궁주의 모습은 너무나 신 

      비로워 중인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 것이다. 하얀 면사포로 얼굴을 

       가린 이화궁주는 마치 꽃잎이 떨어지는 허공에서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며 땅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태양신장의 오의를 깨치신 것인가요?” 

         

        이화궁주가 아름다운 목소리로 물었다. 

         

        “끙! 계집애야, 빙선녀(氷仙女) 조지약(曹智?)과는 무슨 관계냐?” 

         

        화양괴는 이화궁주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반문했다. 

         

        “저희 사조님이십니다.” 

         

        이화궁주는 계집애라는 말에 전혀 동요하지 않고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푸헤헤헷, 잘 한다! 천하의 화양괴가 빙선녀의 사손에게도 쩔쩔 매 

      는구나. 역시 이화궁은 무섭다니까.” 

         

        빙음괴가 화양괴를 놀리며 웃어댔다. 만약 가마 안에 있던 여자가  

      빙선녀였다면 화양괴의 일장을 피해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빙선녀 자신이 아니라 그녀의 사손이 조금의 손해도 보지 않고 가볍 

      게 화양괴의 일장을 피해냈으니 화양괴는 망신을 당한 것이나 다름없었 

      다. 비록 전력을 다한 공격이 아니었고, 초식이 담기지 않은 허공을 

       격한 공격이었다 해도 상대의 옷깃 하나 스치지 못한 것이다. 

         

        “이놈아, 행여나 이렇게 어린 계집애가 타고 있을까봐 손에 사정 둔  

      거다. 내가 어찌 어린 계집아이에게 직접 손을 쓰겠냐?” 

         

        화양괴가 지지 않고 외쳤다. 

         

        “푸헤헤헬, 핑계는...” 

         

        화양괴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내 본때를 보여주지.” 

         

        화양괴가 다시금 공격해 들어갈 기미를 보이자 이화 궁도들이 궁주 

      의 주위를 둘러 싸려했다. 

         

        “물러서라.” 

         

        이화궁주는 궁도들의 움직임을 제지했다. 화양괴와 같은 고수에게는  

      하수들의 숫자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저들이 끼어들면 오히려  

      운신의 폭만 줄어들 터였다. 

         

        “크하하핫! 계집애야 네가 노부의 삼장만 받아내어도 이겼다고 인정 

      해주마.” 

         

        “...” 

         

        이화궁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럴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화양괴는  

      이미 육십 여 년 전부터 강호에 명성을 날리던 고수였다. 자신의 사 

      조와 비슷한 실력을 가진 자의 삼장이란 어쩌면 죽음을 각오해야할 지 

      도 모르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일지도 몰랐다. 

         

        [조심해라. 네가 다치면 빙선녀가 화양괴를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저 녀석은 성질머리가 급해서 손속에 사정을 안 둘지도 모른다구.] 

         

        이화궁주의 귀에 빙음괴의 전음이 들렸다. 자신들이 살아 있으므로  

      사조가 살아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어떻게 그녀의 사부가 살아 있 

      다는 것을 아는지 이화궁주는 궁금했다.  

         

        과거 자신의 사조가 음양쌍괴와 꽤 많이 다투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이화궁주가 두 사람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은  

      사조가 음양쌍괴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빙음괴는 이화궁의 힘에 대해 조심스러워 하는 것이리라.   

         

        “제 일장!” 

         

        화양괴의 외침과 더불어 그의 신형이 순식간에 이화궁주의 앞으로  

      이동하더니, 그의 좌수가 왼쪽 옆구리에서 상대의 어깨 쪽으로 기묘한 

       각도를 그리며 뻗어갔다. 내력이 집중된 화양괴의 좌장은 이화궁주 

      의 몸에 미처 닿기도 전에 느낄 수 있을 정도의 후끈한 열기를 담고 

       있었다. 화양귀의 양강한 내력의 수위를 짐작케 하는 한수였다. 

         

        이화궁주는 화양괴가 전력을 기울이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경시하지 못했다. 두 손에 내력을 집중해 열기로부터 손을  

      보호하며 화양괴의 좌장을 받았다. 세 개의 손이 충돌하는 순간 이화 

      궁주의 쌍장이 부드럽게 뒤로 밀리며, 화양괴의 위맹한 장력을 흡수해 

       들어갔다. 이화접목의 수법으로 화양괴의 장력을 전이하려는 것이다 

      . 그러나 이미 전전 이화궁주와의 대결을 통해 이화궁의 절기에 대 

      해 잘 알고 있는 화양괴였다. 부드럽게 이화궁주의 양손을 밀어내던  

      좌장이 한 번 크게 요동을 치면서 순간적으로 이화궁주의 양손을 떨구 

      어 냈다. 이화궁주가 다급히 헛바람을 들이켰다. 막대한 내력의 차 

      이를 이용해 화양괴가 상대의 힘을 전이하는 이화접목의 수법을 떨쳐 

      낸 것이다. 당황한 그녀가 화양괴의 공격을 피해낼 수는 없었다. 이 

      화궁주는 어쩔 수 없이 잠시간 담아 두었던 화양괴의 장력을 빌어  

      그의 좌수를 맞받아쳤다.  

         

        퍼억! 

         

        아무리 화양괴의 내력을 빌렸다지만 애초부터 화양괴와의 정면충돌 

      은 이화궁주에게 무리가 있었다. 그녀의 상체가 크게 흔들리며 뒤로  

      이장이나 밀려났다. 최후의 순간까지 이화접목의 수법을 활용했던 지 

      라 내상은 입지 않았다. 뒤로 밀려날 뿐 쓰러지지 않는 이화궁주를  

      보는 화양괴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호오! 과연 이화궁의 후예로군. 크허헛! 그럼 다음 장도 받아봐라.” 

         

        오랜만의 싸움이어서 그런지 화양괴는 무척 신이나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의 우수가 현란한 변초를 만들어 내며 이화궁주를 압박해  

      들어갔다.  

        이화궁주는 자신의 경험부족을 탓하며 재빨리 신형을 움직이려 했다.  

      엄청난 고수를 상대하면서 직접 공격을 받아내려 했던 것은 그녀의  

      오만이었던 것이다. 단 한수로 인해 실력의 차이를 명확히 깨달은 그녀 

      는 신법을 사용하여 화양괴의 공격을 해소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상 

      대는 이미 수백 번 이상을 싸운 경험이 있는 노련한 고수였다. 마치  

      그녀의 행동을 예상이라도 하듯 현란한 변초를 포함한 일장을 내지 

      름으로서 그녀가 피할 방위를 봉쇄하고 있었다. 어느 방향으로 피하던  

      적중될 것 같은 화양괴의 공격에 이화궁주는 몸을 피해볼 엄두도 내 

      지 못하고 이를 악물었다.  

        천상 화양괴의 공격을 직접 받아내어야 할 상황이었다. 화양괴의 공 

      격이 수많은 변화를 가지고 있다지만 이것저것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줄만큼 서서히 날아오는 것은 아니었다. 

         

        “봉신무위(縫神無爲)!” 

         

        이화궁주의 입에서 낭랑한 음성이 터져 나오며 그녀의 손이 수십 개 

      로 불어나는 것처럼 보였다. 이화궁이 자랑하는 최고의 절초중의 하 

      나가 그녀의 손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좋구나!” 

         

        빙음괴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수많은 변초로 공격해 들어가 

      는 화양괴의 공격에 맞서 물러서지 않고 변초로써 변초를 상대하려  

      하는 이화궁주의 시도는 당당하면서도 호방하여 그녀가 여자라는 것 

      을 잊게 할 정도였다. 

         

        분명 수많은 장영을 만들어 내는 화려한 변화는 이화궁주의 수법이  

      훨씬 고명하다고 볼 수 있었으나, 각 변화마다 담겨진 힘의 차이는  

      극명하게 드러났다. 비록 한 번의 충돌도 없었지만 이화궁주는 연신 뒤 

      로 발걸음을 옮기지 않을 수 없었다. 도저히 정면으로는 상대의 공격 

      을 해소할 수 없다고 생각한 이화궁주는 여러 개의 장영을 만들어내 

      며 조여오는 손을 내버려 둔 채 오히려 화양괴의 복부를 노리고 공격 

      을 해 들어갔다. 방어를 포기하고 상대만을 노리는 공격이었으니 마 

      치 동귀어진의 수법과 유사했다.  

        결코 지지 않겠다는 그녀의 태도는 옆에서 보기에는 무척 호기로운  

      것이었으나, 직접 그런 류의 공격을 당하는 화양괴의 입장에서는 화가 

       치미는 수법이었다.  

        감히 전전대의 고수와 기필코 승부를 내겠다고 덤비는 그녀가 괘씸 

      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본래부터 성격이 급했던 화양괴는 치밀어 오 

      르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몸을 회전시켜 이화궁주의  

      장력을 피해내며 그녀의 우측 어깨를 그대로 가격했다. 

        퍼억! 

         

        둔탁한 음향이 울려 퍼지며 이화궁주의 신형이 실이 끊긴 연처럼 뒤 

      로 힘없이 날았다. 

         

        “화양괴! 이 미친 놈아!” 

         

        빙음괴의 다급한 음성을 듣고서야 화양괴는 자신의 실책을 깨달았다.  

      화가 난 나머지 후배에게 지나친 수를 쓴 것이다. 화양괴 정도의 배 

      분이라면 지금의 이화궁주 정도의 어린 후배에게는 분명히 손속에  

      양보를 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강호의 노고수가 어린 후배를 핍 

      박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되는 것이다. 비록 상대가 강호인들을 두 

      려움에 떨게 하는 이화궁의 궁주라 할지라도 화양괴와는 엄청난 배 

      분의 차이가 있었으므로 그는 어떻게 해서든 양보를 했었어야 했다.  

        화양괴가 자신의 실수에 잠시간 넋을 잃고 있을 때 어느 사이엔가  

      빙음괴가 이화궁주의 신형을 받아들고 그녀의 맥을 짚고 있었다. 화 

      양괴는 긴장된 표정으로 빙음괴의 표정을 살폈다. 

         

        “너 이제 큰일 났다.” 

  

  “죽었냐?” 

         

        “빨리 손을 써야겠다.” 

         

        “뭐해? 그럼 빨리 손을 써야지. 구경만 하고 있을 거야?” 

         

        화양괴가 재빨리 다가가 이화궁주를 안아들고는 달리기 시작했다.  

      눈부시게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그를 보며 이화궁도들은 미처 막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조지약, 그 할망구에게 전해라. 우리가 치료해서 보내주겠다. 우릴  

      괴롭힐 생각은 하지도 말라고 해!” 

         

        빙음괴는 송기무를 옆구리에 끼고 달리며 이화궁의 궁도들에게 외쳤 

      다.  

         

        강변에 서있던 군중들은 망연히 음양쌍괴가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워낙 순식간의 일이라 어찌 손을 써볼 틈이 없었던 것 

      이다.  

         

         

         

        훈훈한 공기가 느껴지며 송기무는 눈을 떴다. 어두침침한 공간이라  

      순간적으로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몇 번 눈을 껌뻑이자 곧 제대로  

      사물이 분간되기 시작했다.  

         

        “쟤 혈도는 풀었냐?” 

         

        “응, 풀어 놓고 수혈만 짚어 놨었으니 곧 일어날 걸?” 

         

        공간에서 울려 퍼지는 두 노인의 목소리는 송기무의 귀에도 낯이 익 

      었다. 

         

        “그나저나 이 계집아이는 어떠냐?” 

         

        “화기가 심맥까지 뻗쳤다.” 

         

        “죽지는 않겠지?” 

         

        “워낙 기초가 튼튼히 잡혀있는 아이라 당장 죽지는 않을 성 싶다.” 

         

        “당장은 아니라면? 죽긴 죽는단 말이냐?” 

         

        “아, 그럼 안 죽는 인간도 있냐?” 

         

        “이런 개뿔! 그런 얘기가 아니잖아.” 

         

        “일단 응급처리를 잘 해서 예까지 왔으니 회복시킬 수 있을 것 같 

      다.” 

         

        “그, 그래? 얼마나 걸리겠냐?” 

         

        “흠... 거동하는 데는 한 육개월?” 

         

        “뭐, 육개월?” 

         

        “완전히 회복하려면 꽤 걸릴 듯싶다. 그나저나 저놈 일어났나 보다.” 

         

        송기무가 몸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선 빙음괴가 말했다.  

         

        “저 놈은 어찌 할 거냐?” 

         

        “뭘 어떻게 해? 내기했잖아.” 

         

        화양괴가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 

         

        “무슨 내기?” 

         

        “저 놈이 천고기재인지 아닌지 증명하는 거. 시침이 뗄 작정이냐?” 

         

        “아! 그거. 뭘 걸 건데?” 

         

        “지는 놈이 이기는 사람을 형으로 삼기.” 

         

        “크하하핫, 그래 아우야. 내 백여 년 만에 네놈에게 형 대접을 받겠 

      구나.” 

         

        “웃기고 있네. 너 일로 와바.” 

         

        화양괴가 송기무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송기무는 두 노인을  

      본 기억이 정확히 났다. 음양이선이 어쩌고 하는 얘기를 들었고, 그 

      들의 나타나자 사비옥이나 현승자등이 매우 곤란해 하던 것도 떠올랐다. 

         

        “저 말입니까?” 

         

        “아, 거기 너 말고 누가 또 있냐?” 

         

        “...” 

         

        송기무는 조심스레 두 괴상한 노인의 앞으로 걸어갔다. 강변에 모였 

      던 강호의 고수들조차 곤란하게 만들었던 두 사람이었다. 함부로 행 

      동했다가는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몰랐다. 

         

        “네 이름이 뭐냐?” 

         

        화양괴가 갑자기 목소리에 무게를 주면서 말했다.  

         

        “저는 송기무라 하옵니다.” 

         

        “흠...기무라. 거봐, 이놈은 이름에까지 무(武)자가 들어가잖아. 그러 

      니 천고기재가 틀림이 없어.” 

         

        “에라! 이름에 무자 들어간 놈이 한둘이냐? 그럼 네놈도 이름에 무 

      자가 들어갔으니 천고기재인 게냐?” 

         

        “당연하지. 나 같은 기재 본 적이 있냐?” 

         

        “쯧쯧쯧... 이래서 늙으면 죽어야 한다는 말이 나오지.” 

         

        “이놈아, 뭐하냐? 사부님을 뵈었으면 어서 절을 해야지.” 

         

        화양괴가 팔짱을 끼며 송기무에게 말했다. 

         

        “그,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이놈아. 이 노신선님께서 네놈의 뛰어난 자질을 알아보고 천하무적 

      의 절학을 네게 전수해 주시기로 했다. 그러니 어서 절을 하렴.” 

         

        “크하하핫, 엉터리 천고기재에 엉터리 천하무적이라... 어찌 보면 잘 

      도 어울리는군.” 

         

        “닥치고 있어라, 이 얼음덩이 노괴.” 

         

        송기무는 정신이 없었다. 갑작스레 납치를 당해 끌려온 상태에서 눈 

      을 뜨자마자 천고의 기재니, 천하무적의 절학이니 하며 되도 않는 소 

      리로 떠들어대는 노인들 때문에 혼란스러운 것이다. 

         

        “어서 절하지 않고 뭐해?” 

         

        “부족한 소생을 제자로 삼아 주시려 하심은 감사하기 이를 데 없으 

      나 소생은 아직 고인께서 누구인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아! 노부는 백여 년 전에 강호 최고수로 인정을 받은 음양이선 중  

      화양선 무진장이라고 하느니라. 노부의 절기를 배우길 바라는 자가  

      차고도 넘치는바 그중 선택된 너는 기연을 맞이한 거나 다름없으니 어 

      서 절을 하거라.” 

         

        짐짓 무게를 잡고 말하는 화양괴였다. 그러나 붉은 머리를 흔들며  

      말하는 화양괴를 보며 송기무는 그저 두렵다는 생각뿐이었다. 

         

        “이 의례에는 저에게 선택권이 있는 것입니까?” 

         

        송기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무리 세상물정으로 모른다 해도 어 

      깨너머로 부친의 상술을 보아온 그였다. 전후 사정을 파악하지 못할  

      바보는 아니었던 것이다. 

         

        “크하하핫, 이 꼬마 놈이 아예 바보는 아닌가보다. 네놈의 사부로 삼 

      기 싫어하는 것을 보면 그래도 사리판단은 할 줄 아는 놈이라는 얘 

      기가 아니더냐?” 

         

        빙음괴의 놀림에 화양괴의 얼굴이 순식간에 시뻘게졌다. 

         

        “지, 지금 네가 노부의 제가가 되는 것이 싫다는 얘기냐?” 

         

        흥분한 화양괴는 말까지 더듬었다. 

         

        “그게 아니옵고...” 

         

        “그게 아니라면 어서 무릎을 꿇지 않고 무엇을 하는 게냐?” 

         

        결국 송기무에겐 선택권이 없다는 얘기였다. 게다가 화양괴의 눈에 

      서 불같은 광망이 쏟아져 나오자 송기무는 혼비백산하지 않을 수 없 

      었다. 절정의 고수가 뿜어내는 안광의 힘이라 무공을 익힌 자도 감당하 

      기 힘든 경우가 많았다. 하물며 무공의 무자도 모르는 송기무에게 있 

      어 화양괴가 뿜어내는 안광은 거의 살인적인 위력을 발휘했다. 송기 

      무는 자신도 모르게 떨리는 다리를 굽혔다. 어차피 선택권 없는 그였다 

      . 그저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유일한 선택일 것이다. 

         

        “아홉 번 절을 하고 사부라 불러라.” 

         

        그 짧은 순간 송기무는 수많은 갈등에 빠져야만 했다. 그는 이들이  

      누군지 정확히 모른다. 강변에 있을 때 다른 이들의 반응을 통해 대충 

       짐작을 해 볼 수는 있지만 무공이 얼마나 강한지, 또한 강호에서  

      평판은 어떠한지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 

      이 납치하다시피 이곳으로 끌고 왔으니 그다지 좋은 사람들도 아닐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악인인지 선인인지도 모를 자들을 사부로 모 

      셔야 할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도 생겼다. 그러나 적발의 노인이 뿜 

      어내는 흉흉한 기세로 보아 만약 자신이 제자 되길 거부한다면 어떤  

      짓을 할지 몰랐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사천 최고의 고수들인 당문과 청성파의 장로들마 

      저 공손한 모습을 보이던 이화궁주였다. 그런 이화궁주가 고인이라  

      칭하는 이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수들이 분명했다. 그들이 마음먹고 

       송기무에게 해코지를 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 생각 

      이 여기까지 미치자 송기무는 생각보다 단순하게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악인이건 선인이건 이들에겐 실력이 있을 것이다. 자신이 무공을 배 

      워서 하고자 하는 것은 복수였다. 백영의 말처럼 이미 경혈이 굳어버린 

       자신은 절정의 무공을 배울 수 없는 입장이었다. 어쩌면 선부를 해 

      친 흉수는 일류를 넘어서 절정의 경지에 오른 고수일 수도 있었다. 선 

      부를 호위하던 곽양은 소위 말하는 일류의 고수였다. 그런 그 역시  

      지금 행방불명이지 않은가? 어차피 자신의 실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흉수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이렇게라도 모신 사부가 자신을 

       대신해 선부의 복수를 해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 생각되자 송기무는 떨리는 다리에 힘 

      을 주었다. 복수를 위해서라면 악마에게라도 영혼을 팔 수 있다고 생 

      각하는 그였다. 억지로 사부를 모시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복수를 위해서라면... 

         

        송기무는 정성을 다해 화양괴에게 아홉 번의 절을 했다. 

         

        “스승을 모심에 있어 군주와 같고 부모님과 같음이오니 제자 송기무 

      는 천지신명께 맹세하여 사부님을 모시고자 청하오니 부디 하해와  

      같은 은혜로 가르침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쯧쯧쯧...! 또 한 놈 망가지는구나.” 

         

        “크하하핫! 천고의 기재가 나 화양선 무진장의 제자가 되었으니 내  

      너를 이십년 이내로 천하제일의 고수로 만들어주마.” 

         

        음양괴의 나직한 조소를 무시한 화양괴의 광소가 산중에 널리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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