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크 여행
"뭐라고? 오토바이를 수리 했다고? 얼마나 부서졌길래?"
현만은 그날 저녁에 엄마에게 전화로 한참을 시달렸다.
핸들과 앞쪽의 카울을 교체할 때 엄마가 자신에게 준 신용카 드로 결제를 했는데,갑자기 거금을 사용한 내역이 엄마의 휴 대폰 메시지로 연락이 가는 바람에 놀라서 전화를 한 것이다.
"아니 그렇게 해서 해결이 되겠어?
차라리 돈이 더 들더라도 공식 서비스센터에 수리를 했어야지. 혹시 타고 다니다가 갑자기 고장이 나면 어떡할려고."
현만의 엄마는 처음에는 학생답지 않은 큰 지출금액에 화를 내다가, 나중에는 오히려 그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특히 학교 앞에 있는 사설 수리센터에서 핸들을 고쳤다는 말 을 듣고는 걱정이 극에 달했다.
"그냥.. 그건 중고상에 처리를 해달라고 해.
어차피 핸들이니, 외부 카울이니 전부 바꿨으면 겉보기에는 새 것이랑 다를게 없잖아.
그러니 그건 학교 앞 판매점에 중고로 팔아버리고, 다른걸 하 나 사도록 해."
웬만큼 먹고 사는데는 걱정이 없는 집인지라 하나뿐인 아들을 위해서 돈을 아끼는 엄마가 아니었다.
현만은 기쁜 마음으로 당장 평소 사고 싶었던 고배기량 바이 크를 신청했다.
삼일 뒤에 탁송을 받고는 얼마나 기뻤는지 말도 할수 없었다.
기존에 타던 125CC와는 달리 600CC으| 이번 오토바이는 왠 만한 도로에서는 1단으로도 충분히 안정적으로 주행이 가능했 다.
현만은 인혜를 뒤에 태우고는 이곳 저곳을 다니면서 데이트에 열을 올렸다.
오늘은 현만의 전공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장마도 아닌 며질간 비가 오는 바람에 늦봄인데도 날씨가 쌀 쌀했다.
강의 시작시간이 지났는데도 교수가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한참 뒤에서야 조교가 들어와서는 갑작스런 사정으로 오늘 수 업은 휴강이라는 말을 하고는 나가버렸다.
"흥. 이럴 거라면 미리 공지를 하든가, 아니면 단체문자라도 보냈어야지..."
"그러게 말이다. 수업 안듣는 것은 좋은데 집에는 또 언제가 냐"
"그러게 나처럼 자취를 해야지 임마! 그리고 집은 무슨 집이 야. 오늘 술이나 빨자."
이곳 저곳에서 투덜대는 소리와 기뻐하는 소리가 섞여서 강의 실 안이 소란스러웠다.
"현만아! 오늘 시간 돼? 우리 바다보러 갈래?"
오토바이가 있는 몇 명의 친구들이 바다타령을 하기 시작했다.
바다라는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주변의 학생들이 모두 달려들었 다.
인원을 대충 살펴보니 6명인데 남자와 여자가 반반이었다. "오토바이가 3대가 있으니까 한명씩 뒤에 타고 가면 되겠다."
"그런데 누가 누구를 태우지?"
"야, 그냥 나가서 아무나 태우자."
"그럼 무슨 재미가 있냐. 그럴게 아니라 미팅하는 것처럼 우 리 오토바이 열쇠를 올리면 여자들이 선택하는 걸로 하자."
"그럴까? 재밌겠는데? 완전 구닥다리 영화에서 많이 보던건데 말이야."
누군가 꺼낸 이야기에 모두들 좋다고 떠들었다.
청춘 남녀들인지라 자신의 짝이 누가 될런지 살짝 긴장하는 기분이 묘한 흥분을 주고 있었다.
"자, 숙녀분들은 일단 강의실 밖에 나가계세요. 이따 부르면 들어와서 하나씩 고르면 됩니다."
처음에 제안했던 영환이가 사회를 보는 것처럼 웃으며 말했다.
"좋아,그럼 우리들은 나가서 누가 먼저 고를지 순서를 정해 서 들어오자."
"좋아,재밌겠다."
세 명의 남학생은 여자들이 모두 밖으로 나가자 책상위에 각 자 자신의 오토바이 열쇠를 올려놓았다.
그 다음 영환이 키를 모두 모으더니 책상 속 서랍에 넣었다.
"자, 들어와서 안쪽을 보지말고 손으로만 확인해서 꺼내면 돼!
M
여자들이 우르르 들어와서는 이미 정해놓은 순서대로 하나씩 열쇠를 꺼냈다.
현만의 열쇠는 희경이라는 여학생이 뽑았다.
"자, 제가 뽑은 백마탄 왕자님은 누구 신가요?"
희경이 그의 오토바이 열쇠를 손에 들고 흔들자 현만이 앞으 로 나섰다.
열쇠를 들고 웃고있는 희경을 보면서 현만을 제외한 두명의 남자는 아쉬운 한숨을 토했다.
그녀는 평소에 완전히 달라붙은 스키니진을 자주 입고 왔는데, 그녀의 돌출된 엉덩이를 볼때면 야릇한 상상이 절로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엉덩이 뿐만이 아니라 그녀는 얼굴도 픽 아름다웠는데,왠지 모를 퇴폐적인 느낌을 함께 갖고 있어서 더욱 인기가 좋았다.
"자, 그럼 각자 다른 곳에 주차를 해놨으니까, 오늘 파트너들 이랑 가서 학교 정문 앞에서 만나자."
현만은 희경을 데리고 자신의 오토바이로 갔다.
그녀는 그의 오토바이를 보자마자 놀라서 말했다.
"우와... 이렇게 큰 오토바이는 처음인데? 이거 깡패들이나 타 는 거 아니야?"
현만이 먼저 오토바이에 걸터앉았다.
이 600CC의 수입오토바이는 일반 레플리카형으로 장거리의 고속주행용 오토바이다.
손잡이는 앞쪽에 낮게 설치되거 있고,주행을 하려면 몸을 앞 으로 숙여서 타야만 했다.
운전자가 엎드려서 타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그의 뒤에 앉은 희경도 앞으로 엎드리면서 현만의 허리를 잡을 수 밖에 없었 고,그녀의 상체가 현만의 등에 밀착되고 있었다.
"우와 좋다. 나 이런건 처음 타봐."
희경은 조금도 서스름없이 가슴을 현만의 등에 밀착시키고는 자신의 얼굴까지 그의 등에 꽉 붙였다.
그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학교의 정문까지 가니,이미 다른 팀 들이 도착해있었다.
"자, 출발!"
영환이 소리치자 다들 기쁘게 웃음을 터뜨리고는 경쟁적으로 앞으로 달려나갔다.
현만은 먼저 출발하는 팀들을 보고서도 서두르지 않았다.
핸들을 잡은 손을 놓고는 허리를 세워 앉았다.
몸에 입고 있던 레인코트를 벗어서 뒤집어 입었는데, 마치 바 람막이를 입은 것처럼 앞에서 불어도는 바람에는 빈틈이 없을 것 같았다.
그제서야 만족한 듯 다시 핸들을 잡고, 부드럽게 액셀러레이터 를 돌리니 이 괴물같은 오토바이가 쏜살같이 앞으로 튀어나갔 다.
부앙~시 !
"와"죽여주는데?"
희경이 몸에 느껴지는 짜릿한 중력감에 소리쳤다.
그들은 달린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먼저 출발한 친구들을 따 라잡았다.
첫 번째로 눈에 띄인 것은 영환이었다.
그는 낡은 스쿠터에 여학생을 태우고는 쁄쁄거리면서 달려가고 있었는데, 현만의 오토바이가 그 옆을 바람처럼 지나갔다.
"먼저 간다!"
현만이 웃으면서 말하고는, 손을 흔들며 지나가니 영환이 부러 운 얼굴을 그를 바라보았다.
새로산 오토바이가 부러운지, 아니면 바로 뒤에 황금골반을 뽐 내고 있는 희경 때문에 부러운 것인지....
잠시 후, 또 다른 친구를 추월했다.
뒤늦게 출발을 해서도, 이렇게 한팀 한팀 앞지르고 있으니 기 분이 상쾌했다.
과 친구들을 따돌리고 조금 더 달리니,바다로 가는 큰 대로 에 진입할 수 있었다.
쭉 벋은 도로를 바라보면서 현만이 액셀을 잡은 손에 힘을 주 었다.
부우옹!!
지금까지도 빠르다 생각했던 오토바이가 마치 고삐가 풀린 것 처럼 가속을 하기 시작했다.
80킬로미터...
90킬로미터...
100킬로미터...
120킬로미터...
600CC의 고배기량을 자랑할려는 것처럼 오토바이는 조금도 속도를 늦추지 않고 계속해서 속도가 올라갔다.
일정하게 가속을 올리던 현만의 오토바이가 시속 160킬로미터 에 도달했다.
항상 자신만만하던 희경도 이때는 감히 고개를 들거나,장난스 런 말을 하지 못했다.
그녀는 무서운 듯 두 눈을 감고 현만의 뒤에 바짝 몸을 붙이 고는 그의 허리를 꽉 껴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