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7. (87/113)

다시만난 짝사랑

희경과 헤어져 집에 돌아온 현만은 잠시 뒤척이다가 잠이 들 었다.

평범한 나날이 이어졌다.

인혜와 여전히 달콤하게 연애를 하고 있었고, 가끔은 희경이와 같이 다른 여인들과 잠자리를 가졌다.

그러나.. 이런 평범한 날들은 현만에게 지루함을 주고 있었다.

처음 만나고 몸을 섞을때는 이 세상을 얻은 것 같은 쾌감이 들었으나 몇 번을 반복해서 잠자리를 갖게 되니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었다.

물론, 이 몇 명의 아름다운 여성들은 현만을 아껴주었고, 그 역시도 그들과 섹스를 하면서 행복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어딘 지 모르게 설레거나 흥분된 마음이 줄어드는 것은 어쩔수 없 었다.

오매불망 한명의 여자친구라도 만들기 위해서 전전긍긍하는 그 의 친구들이 만약 이 모습을 보았다면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 다.

그러던 어느 주말이었다.

인혜가 가족모임이 있어 현만도 집에서 주말을 보내기로 했다. 더군다나 다음주 화요일까지 전공교수들의 세미나가 계획되어 있었기에 모처럼 집밥을 먹으면서 축난 몸을 달래기로 했다.

커다란 교통사고 이후에 그를 걱정하던 엄마는 간만에 집에 돌아온 그를 위해서 신경을 써서 음식을 만들어주었다.

잠자리가 바뀌어서인지 토요일 아침 일찍 현만의 눈이 떠졌다.

오랜만에 집 근처 PC방에가서 게임이나 할 요량으로 집을 나 섰다.

"엇, 저 누나는?"

노출이 많은 옷차람의 여자가 현만의 눈 앞으로 지나가고 있 었다.

배꼽이 원히 드러난 짧은 민소매 티셔츠에 허벅지 위쪽까지 올라오는 돌핀 팬츠를 입고 머리를 연한 갈색으로 염색한 하 얀 피부의 여성이었다.

분명 그녀였다.

과거 현만을 사랑의 열병으로 잠못들게 했던 은지 누나가 분 명했다.

이른 아침이라고는 하지만 한여름의 공기는 벌써부터 후텁지근 했다.

분명히 그녀 정도의 노출은 이상하지도 않았고,별로 희귀한 것도 아니었는데 그녀만이 유독 거리에서 존재감을 빛내고 있 었다.

그녀는 늘씬한 허벅지를 뽐내며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유리문을 한손으로 열고 들어가는 그녀의 뒷모습, 허리와 골반 으로, 다시 허벅지로 내려가는 그 아름다운 곡선에서 기묘한 색기가 홀러내리고 있었다.

현만의 머릿속에서 과거의 기억이 다시 떠오르고 있었다.

윤은지... 그녀는 현만보다 한 학년 위의 선배였다.

당시 현만은 선정과의 일이 있기 전이었다.

학교를 다닐 때 은지선배의 근처를 지나다닐때면 그 피부의 향긋한 냄새가 현만의 콧속으로 들어와서 그를 기분좋게 간지 럽혀주었다.

그러니 지금 저렇게 노출된 피부에는 분명 그때의 향긋한 피 부냄새와 더불어 화장품의 향기와 성인 여성 특유의 페로몬 향까지 더해졌을 것이다.

걸어들어가는 미끈한 허벅지 위로 속옷이 약간 보이는 듯했다.

은지 누나는 그것을 모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일부러 보이도록 유도를 한 것일까?

은지 누나의 향기를 따라서 현만이 자신도 모르고 카페로 들 어갔다.

마치 피리를 부는 남자를 따라서 물가에 뛰어들었던 생쥐가 된 기분이었다.

은지 선배는 카페의 가장 구석자리에 앉아있었따.

그 자리는 배치 구조상 다른 자리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곳이 었다.

은지 선배가 앉은 자리와 같은 구석공간에는 조그만 테이블이 또 하나 마련되어 있었는데 누가 보기에도 섣불리 선택하지 않을 자리였다.

물론 현만은 그곳으로 걸어가 자리를 잡았다.

언제 생겼는지도 모를 이 카페는 개인 바리스타가 하는 곳인 듯 했다.

그녀는 바나나무스와 초콜렛이 가득 들어간 음료를 시켰다. 그 달콤한 맛이 그녀의 입술을 타고 들어가 온 몸을 흘러다닐 것이다.

'누나의 다리 사이에 있는 구멍에서도 달콤한 맛이 날까?’

현만은 잠시 그녀의 다리를 잡고 자신의 입으로 마구 탐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가끔씩 들어오는 다른 남자 손님들고 허옇게 드러나있는 그녀 의 허벅지를 힐끔 힐끔 바라보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현만은 늘 먹던대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한잔 시켰다.

쓴 커피 한잔이 현만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잠시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 들고는 그녀와의 추억이 떠올랐 다.

윤은지...

그녀는 현만의 학창시절 선배이기도 하지만, 더욱 정확히는 처 음 여자에 대한 동경을 일깨워준 사람이었다.

학교를 다닐때부터 발육이 남다른 데가 있었는데,가슴과 엉덩 이가 아주 커다란 편이었다.

한여름 무더위가 찾아올때면 은지누나는 어리고 탄력있는 피부 를 마음껏 드러내는 복장을 하곤 했는데, 현만과 같이 아무런 활동이 없는 평범한 학생들에게는 그 정도로도 충분히 천사 로 불리웠다.

게다가 그녀는 동아리활동을 적극적으로 하였는데,바이올린 같은 악기도 곧잘 다루어 학교 행사때 단독 연주를 몇 번이나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녀는 친구나 후배들에게도 항상 자상하고 부드럽게 대해주는 완벽한 선배였다.

학업이나 친구사이의 교우관계, 가정사, 그리고 개인적인 고충 까지도 상담을 할때면 진지하게 들어주는 편이었고, 스스로의 성적도 좋았기 때문에 동아리 후배들에게 공부를 가르쳐주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활발하고 귀여운 성격으로 도대체 단점이라고는 없 는 사람 같았다.

외모 도한 극히 아름다웠는데 유명 아이돌을 닮은 기본바탕에

애교있는 웃음과 귀여운 말투를 가졌기에 학교 남학생들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는 편이었다.

그러면서도 가끔은 여성스럽고 다정한 모습을 보여주는 그녀는 당연히 현만의 동경의 대상이 된 것이다.

저렇게 귀엽고 이쁜 얼굴에, 글래머러스한 몸매, 성격은 다정 하고 남자를 존중해주는 가치관....

이런 여자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거 자체가 믿어지지 않을 정 도였다.

당현이 현만은 그녀를 짝사랑했다. 은지 선배를 보고 있으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자신의 마음을 그녀가 들킬까봐 불안했다.

무엇보다 현만의 마음을 더욱 애절하게 만든 것은 은지에게 공식적으로 남자친구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은지 스스로도 남자친구가 없다고 말을 해왔고, 그녀의 친구들 에게 확인몰 해보아도 마찬가지였다.

현만은 이때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서 남자가 되어가고 있었 다.

그는 단순하게 생각했다.

은지에게 남자친구가 없으면 자신에게도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같은 동아리에서 항상 자신을 바라보며 웃음을 보이고, 어디서 만나든지 그에게 자상하고 상냥하게 대해주는 모습을 보자면

은지도 자신에게 마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그녀가 이미 자신에게 반했을지도 모른다.

현만은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고 무조건 그녀에게 고백을 하기 로 했다.

그날 현만이 만약 그녀에게 고백을 하고,그녀가 그것을 받아 들여주었다면 지금 이렇게 카페에서 몰래 그녀를 바라보는 것 이 아니라, 당당하게 같이 앉아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을 것 이다.

현만이 그녀에게 고백하던 그날도 오늘처럼 무더운 날이었다.

해가 뜨겁고, 바람이 한점도 없는 여름이었다.

현만은 선배애게 고백을 해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현만은 수업을 마치고 늘 그랬던 것처럼 동아리방으로 갔다.

조금있으면 그녀가 올 것이고,자신은 은지에게 고백을 할 예 정이었다.

현만이 긴장된 마음으로 동아리방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는데, 계단 밑에서 올라오고 있는 은지선배가 보였다.

그의 가숨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런데 동아리방이 있는 곳으로 올라오던 은지 선배를 그녀와 같은 학년인 남자선배가 맞이했다.

그리고는 웃음을 보이면서 은지를 데리고 동아리방 반대편의 교실로 들어갔다.

현만은 몰래 그 교실로 걸음을 옮겼다.

이미 수업을 마친 교실에 왜 들어간 것일까?

몰래 유리창 너머로 현만은 안쪽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현만은 그 안에서 펼쳐진 광경에 경악을 금할 수가 없 었다.

0